제140화. 뜻밖의 초대 (4)
사람의 관절은 본디 접히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뚜두두둑-
한데, 눈앞에 있는 산적의 몸은 그 법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연체동물이라도 되는 양 기괴한 소리와 함께 자유분방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뚜두두두둑-
그 모습은 이지(理智)를 가진 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물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에 우리 중 강호의 못 볼 꼴을 가장 많이 본 축에 속하는 천장호부터 입을 쩍 벌리며 걸음을 물렸고.
“…무슨 사람의 팔다리가 쥐어짜인 빨래처럼?”
진성채의 산적들도 주춤주춤 걸음을 물렸는데.
“호, 홍식이 저놈이 갑자기 왜 저러지?!”
“술병 공자한테 맞아서 그런 거 아냐?”
“대가리가 깨졌는데 왜 팔다리가 말려?! 다른 놈들은 멀쩡한데 왜 홍식이 저놈만 저렇고?”
“어. 그, 그럼 배탈이 났나?”
“이 새끼 이거. 무식한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네? 야, 인마! 배탈이 났으면 배를 잡고 누워야지 팔다리가 왜 저렇게 말리냐고?!”
“염병! 무식하다면서 왜 자꾸 나한테 물어봐!”
“네가 홍식이 저 새끼랑 같은 막사를 쓰니까 물어봤지!”
“나도 그냥 홍식이 저 새끼가 억삼이랑 태원 다녀온 이후로 속이 안 좋다고 그래서 그런 거야!”
산적들이 중얼거리다 튀어나온 말에 어떤 그림이 맞춰졌다.
‘…그러고 보니.’
억삼 그 사람이 동료들과 이야기할 땐 홍식이라는 산적과 함께 심부름을 하러 갔었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그럼 저 홍식이라는 사람은 마교로 추정되는 녀석들한테 무슨 시술을 받거나 뭘 받아먹은 건가?’
어쩐지.
술병으로 딱 쳤을 때 타격감이 묘하게 이상하더라.
‘기절해야 할 혈을 제대로 쳤는데 눈을 멀뚱멀뚱 떴지.’
작중에 나오는 마교인들이 강해지기 위해 시도하는 일이 너무 다양하고도 많아서 저 홍식이라는 자가 뭔 짓을 당했는지 확정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거 잘못 건드리면 터진다.’
아니나 다를까.
왼손에 들린 사부님께서도 딱 그와 비슷한 추측을 해오셨다.
- …저놈 지금 내력이 폭주하는 것 같은데? 일단 가까이 가지 말아라. 예로부터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자라도 죽음과 맞닿은 순간 발생하는 힘이 한 번에 폭발하면, 검강에 준하는 위력이 일시에 새어 나올 수가 있느니라.
그러고 보니 마교, 그러니까 천마신교는 우리 파천검문의 발자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사부님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혹시 잠재울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 저번에 보준이 놈 아랫도리 잠그듯이 사부님께서 일러주시면 제가 처리하는 식으로?’
- 지금에 와서는 방법이 없느니라. 사람의 팔다리가 저리 유작회(油灼檜)처럼 꼬였는데 다른 혈도라고 제자리에 남아 있겠느냐?
유작회는 중국식 꽈배기였는데, 아무튼 내 상식으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혹시나 해서 물었으나 사부님께서도 난색을 보이셨다.
- 강제로 진원진기까지 뽑혀 나오며 괴이한 방식으로 환골탈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로서는 저 녀석이 스스로 생명을 다 태우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고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주변을 향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다! 다들 근처에 뻗은 사람들 끌고 스무 걸음씩 물러나!”
구태여 마교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눈 앞의 광경이 괴이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동기들과 산적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경종을 울린 나는 빠르게 회한을 검집에 꽂아 넣고, 가까이 있던 쌍도귀의 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솔선하여 걸음을 물렸는데.
이쪽의 소란스러움이 꼭대기의 산장까지 닿았는지, 우리가 있는 입구에서 제법 떨어진 산채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산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노삼 교수님과 녹림왕 도중광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 둘이면 든든하지.’
한데, 두 사람이 당도하기 전에 연체동물처럼 몸을 뒤틀어대던 산적이 갑자기 오뚝 허리를 세우더니.
“…쳐?”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짐승같이 땅을 박차며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쳐라아하앜!!”
마기의 부작용을 겪은 홍식이라는 산적이 보인 행동은 대부분의 사혼(死魂)이 하는 행동과 판박이여서 나는 단박에 사태를 파악했다.
‘뇌리에 남아 있는 마지막 명령이 몸을 움직이나 본데?’
하여 대처도 빨랐다.
뒷덜미를 잡고 있던 쌍도귀를 아무렇게나 던졌고.
“에이씨. 그러고 보니 저 명령 쌍도귀 이 새끼가 내린 명령이잖아?!”
이어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굴렸다.
그에 목표가 엇나간 마인이 휘저은 팔은 애꿎은 목책에 직격했는데.
쾅!
콰지직!!!
그 위력이 굉장했다.
“워.”
목책에 거대한 곰이 뜯어 할퀸 것 같은 흔적을 남기는 꼴을 목격하고 나니 아무리 나라도 입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나한테 처맞고 기절할 때만 해도 잘 쳐 줘야 이류 수준에 불과했던 잔데….’
회광반조인지 산혼철조인지 살벌하구만.
‘저 공격을 직접 받아냈다면 사부님의 말대로 검강을 받아낸 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겠는데?’
어쩐지 심지가 약한 무림인들이 왜 마교에 홀리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류였던 내가 초고수?’
그걸 어떻게 참나.
물론 눈앞의 마인은 이지를 상실한 상태에서 생명을 태워 가고 있기에 저 정도 괴력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때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그때.
목책에 박힌 팔을 뽑아낸 마인이 다시금 나를 향해 짓쳐 들기 시작했다.
“크아아!!!!!!!!”
하지만 해볼 만했다.
지원군이 도착했으니까.
꽈르릉!!!!
꽝!!!
첫 번째 지원군은 벽력같은 굉음을 내는 항룡장과 함께 마인을 날린 노삼 교수님이었다.
“이게 뭔 지랄 같은 상황이냐?! 널브러진 산적들이랑 흩뿌려진 피는 뭐고? 다친 곳은 없느냐?”
노삼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내 입으로 마교니 어쩌니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저런 유형의 마인은 아니지만, 마공을 익힌 자들과 겨뤄본 전력이 있는 노삼이니 알아서 판단할 터였다.
“산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도중광 저놈이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시뻘건 눈알이나 피부에 돋은 핏발을 보면 마인인가? 근데 또 마공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혈맥이 폭주한 것 같습니다. 한데, 자세한 설명은 당장 시간이 부족하겠는데요? 저 녀석 또 올 겁니다.”
“그럴 리가? 내가 분명 비룡재천의 초식을 제대로 먹였…. 엥? 정말로 다시 일어나는구나?”
그렇게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마인의 모습에 노삼이 눈을 키우는 이때.
두 번째 지원군도 도착했다.
두 번째 지원군은 동기들이었다.
“저희도 가세하겠습니다!!”
하나, 그런 녀석들을 향해 노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 상대가 아니다! 딱히 초식도 뭣도 없는 것이 짐승과도 같았다. 꼼짝 말고 물러나 있거라.”
그 말만을 남기고 노삼은 득달같이 마인을 향해 달려 나갔고.
나는 그런 노삼의 말을 주워 구체적으로 뱉었다.
“그래. 너희들은 물러나 있어.”
그런 내 말에 제갈설지가 아미를 좁혔다.
“…그 말, 용운 님은 가세하시겠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나는 가야지. 교수님 혼자서는 위험하오.”
노삼과 마인의 무위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노삼에 대한 크나큰 실례였다.
하나 이 경우엔 성향 그리고 보편적인 상식이 문제였다.
노삼이 한때 광풍투개라 불렸던 바는 있으나, 그건 싸움을 좋아한다고 붙은 별명이었지 살육을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인에게 뭔가를 캐내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성향과 생각은 생각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교수님은 살인을 맨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하실 텐데, 내가 방금 스쳐본 바로는 그런 식으로 멈추기 힘들 거 같소. 그러다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교수님이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그런 내 말에 제갈설지는 ‘아!’ 하고 입을 벌렸고.
“교수님이 당하시면 녹림왕의 초대가 그때도 호의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보장이 없겠군요? 난리통에 거기까지 내다보셨네요.”
정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하면 더더욱 빈도와 다른 동기분들이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정현을 향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현, 네가 좋아하는 문자를 좀 빌리면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그렇게 몰려가서는 우리 쪽을 신경 쓰시다가 교수님의 동선이 꼬일 수가 있어.”
그러고 나자 용명이 녀석이 미간을 좁혀왔다.
“하면 형님께서도….”
“나는 항룡장의 초식을 이해하고 있으니, 동선이 안 겹치게 알아서 잘하지. 천장호가 나보다 잘 알긴 하겠지만. 장호 너는 사람 못 죽이잖아?”
“…….”
“그리고. 교수님께서 꼼짝 말라고 하셨는데 움직이려고? 그런 건 망나니나 하는 짓이다.”
* * *
나는 동기들에게 산적들이 준동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견제하고 있으라는 명을 내렸다.
팟!!
그리고 회한을 뽑아 들고 마인과 박투를 하고 있는 노삼을 향해 빠르게 짓쳐 들었다.
그런데 이 순간.
내가 예상했던 대로 노삼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기실 상대가 무림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자였다면 찾아올 리 없는 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꽈릉!!!!
노삼의 손에서 뻗어져 나와 작렬한 장력에 마인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보면 갈빗대가 박살이 난 것으로 보였고.
“끄르르럿!”
빡!
빠악!!!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진 권장을 허용해 축 늘어진 마인의 오른팔은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도 좋았다.
“크러러럵?!”
갈빗대가 저만큼 나가고 오른팔이 저렇게 된 상황에서, 계속 공격을 이어갈 무림인은 어지간하면 없을 터였다.
하나, 눈앞의 마인은 축 늘어진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쌔애애액!!
아무리 노삼 수준의 고수라도 상식을 벗어나 들어오는 공격은 불의의 일격에 속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뭔, 이런 놈이?!”
물론, 투개 소리를 노름으로 따신 것은 아니라.
노삼 교수님은 바쁘게 수세로 전환을 해냄과 동시에 장력을 분출하기 위해 디딤발을 트는 모습을 보이셨다.
‘하지만!’
내가 가세할 예정인 이상 굳이 저렇게 대처하실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교수님! 항룡유회가 아니라 현룡재전(見龍在田)으로!!”
“!?”
그런 내 말에 노삼은 반보쯤 벌리려던 디딤발을 한참을 더 뻗어 냈다.
그리고 뻗어 낸 다리로 나락을 쓸듯 땅을 훑음과 동시에 용오름을 피워내듯 장력을 질러올렸다.
꽈르르릉!!
그에 위협을 느낀 마인이 땅을 뒤로 박차며 몸을 뒤로 물렸는데.
‘지금!’
그 바람에 잠시 잠깐 공중에 고립된 마인을 향해 나는 파천선풍을 내질렀다.
쌔애애액!!!!
촤악!!!!
그에 채찍처럼 휘둘러지던 마인의 오른팔이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본래 내 계획은 계속해 몰아붙여 목을 베는 것이었지만.
“크라앜!”
발작하듯 휘둘러오는 손아귀가 괴상하고도 지랄 맞아서 안전을 기하기 위해 일단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꼼짝 말라니까 왜 왔느냐?”
“교수님이 방금처럼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참나. 세상천지 어느 학관의 생도가 교수를 걱정하게 되어있느냐?”
“할 수도 있죠. 벌점 매기시던지요.”
“염병할 놈, 한마디를 안 지네.”
재회의 인사는 여기까지.
나는 노삼을 향해 바로 본론을 던졌다.
“죽여야 끝날 것 같습니다.”
“오냐. 짐승 수준인 줄 알고 사로잡아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함을 알았다. 명만 붙어있지, 저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구나. 되도록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게 저 자에게도 예의겠지.”
“예.”
“보이느냐? 방금 너와 내가 먹인 공격으로 기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저 정도면 나 혼자서도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데, 네 녀석은 내가 빠져 있으라고 해도 빠질 생각이 없지?”
“예. 없습니다. 안전하게 가시죠. 어쨌거나 적지 아닙니까.”
“오냐. 그럼 내가 일시에 장력을 쏟아낼 테니, 네가 틈을 봐서 마무리하거라.”
그때였다.
그렇게 노삼과 내가 마지막으로 합격(合擊)을 조율하고 있는 이때.
“언형!”
소릉이 녀석이 급히 부르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산장에서 내려오자마자 산적들 쪽으로 달려갔던 녹림왕 도중광이 언월도를 꼬나쥐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광풍투개.”
그에 나와 노삼은 마인과 도중광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등을 대고 섰는데.
“미안한데, 내 집에서 내 식구의 마지막을 거두는 일을 손님에게 맡겨서는 안 될 것 같소.”
도중광은 그런 우리를 지나쳐 곧장 마인에게 달려들더니.
캉! 쾅!!
캉!!!!
시시각각 미라처럼 변해가는 마인의 공격을 몇 번 받아낸 끝에.
부웅-
촤아악!!
마인의 목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언월도를 휘릭 돌려 땅에다가 푹! 하고 박아 넣더니.
양손을 포개며 이쪽을 향해 포권을 취해왔다.
“사태를 파악한다고 가세가 좀 늦었소. 내 사과하지.”
흑도의 거두이자 일흔둘 녹림채의 주인이 전해오는 사과에 순식간에 일대의 흐름이 빨려 들어가듯 장악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내 혀끝에선 한마디 말이 근질근질 맴돌았다.
‘…쓰흡. 설마 저거 맨입으로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인사관리 실패에다 방금도 딱 막타만 때린 양반이 어딜 입을 씻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