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41화 (141/444)

제141화. 뜻밖의 초대 (5)

나는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참지 않고 뱉어냈다.

“그게 끝입니까?”

그런 내 말에 도중광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뭐가 말이냐?”

그렇게 도중광의 관심을 끌어낸 나는 기름칠과 할 말을 섞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흑도인이라 하면 덮어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저는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 말에, 도중광은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계속해 보거라.”

“가문 같은 것에서 좀 자유로우시다 보니 예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셔서 범절이 좀 흐릿하실 뿐. 유심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의리가 있으시고, 또 이해관계에 밝지 않으십니까?”

사실 이 세계에 와서 흑도 꼬리표 붙은 놈치고 괜찮은 놈을 못 보긴 했지만, 어차피 감언이설이니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한데, 그런 흑도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현판이나 다름없는 녹림왕 선배님께서 이만한 사태를 포권 한 번으로 퉁 치셨다가 그 이름에 누가 남을까 조금 걱정이 돼서요.”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을 종합해보면, 이 사태의 원인이 우리 쪽에 있는데 내가 입을 싹 닦으려고 하는 것 같다 뭐 그런 말이지? 그쪽에 거지들이 있는데 평판 지켜낼 자신이 있냐는 은근한 겁박이기도 하고?”

흑도의 짬밥을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닌지, 은근한 말 사이에 섞어 던진 내 심계를 직독직해를 해낸 도중광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나, 저런 눈초리에 목을 움츠릴 내가 아니었다.

“제가 어찌 감히 선배님을 겁박을 하겠습니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밥과 잠자리 대접을 받기로 해놓고, 능히 예견할 수 있는 사태를 꾹 참고 넘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고.

그런 내 모습에 도중광이 웃음을 터트렸는데.

“크하하하. 당돌하구만, 당돌해. 이보시오 광풍투개. 이 친구 이거 당신 제자요?”

그런 도중광의 모습에 어째선지 노삼이 어깨를 으쓱였다.

“에헴. 뭐 그런 비슷한 것이지.”

그리고 허리춤으로 돌아간 사부님께선 불쾌함을 내비쳐 오셨다.

- 어허이. 저 거지 새끼가 은근슬쩍 제 놈이 사부인 것처럼 구는구나? 고작 지렁이를 흉내 낸 장법 몇 개를 전수해준 사.감.교.수.에 불과한 주제에.

‘…거, 그 정도는 좀 넘어가십시오.’

그러는 사이 도중광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 보니 네 녀석이 요즘 녹림에까지 이름이 들려오는, 그 당금수석을 꿰찼다는 언가의 망나니 놈이로구만?”

“말학의 이름이 그런 식으로 불리고 있다 들었습니다.”

“내 너 같은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나 계산은 똑바로 해야지.”

“그렇습니다. 계산을 똑바로 해야지요.”

그렇게 계산을 제대로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낸 도중광은 기절한 산적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내 수하들에게 듣자 하니, 음식을 나르던 녀석들을 너희가 죽도록 패는 바람에 일이 터졌다던데? 그 일과 조금 전에 갑자기 미쳐 날뛰던 놈의 일이 비등해 보이기에, 내 사과면 충분한 값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 계산에 틀린 바가 있느냐?”

나는 지지 않고 답했다.

“두 가지 오해가 있으신데. 우선 피가 줄줄 새는 게 보기에는 큰일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피 좀 흘렸다고 위험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머리에 고여 울혈이 되는 게 더 위험하겠죠. 상처는 침 바르면 나을 거고, 혈을 좀 세게 찍어 놓은 거라 시간이 지나면 다들 일어날 겁니다.”

도중광은 턱을 쓸며 다음 물음을 던졌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자. 남은 한 가지 오해는 무엇이냐?”

“그렇게 당한 그쪽 식구 중에 나중에 당한 분들은 문답무용으로 싸움을 걸어오다 그렇게 되었는데, 이건 저 쌍도귀라는 양반 일어났을 때 물어보시면 될 거고.”

“최초에 맞은 자들은?”

“그 두 분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맞을 짓을 하셨습니다. 저희를 희롱했거든요.”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일찍이 던져놓은 억삼이라는 산적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최초에 음식을 나르던 인원이 사실 셋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기 억삼 형은 멀쩡하게 서 계십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런 내 말에 곧바로 억삼이 불려왔고.

도중광의 입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음식을 나르던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바른대로 고해라.”

그런 도중광의 말에 억삼의 눈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나름대로 살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모양이었는데.

구르는 눈알에서 이미 답을 찾은 도중광이 입을 열었다.

“이거 정말로 우리 식구가 희롱을 한 모양인데? 네 녀석의 말이 사실인가 보군.”

그런 도중광의 음성에 억삼이라는 산적이 납작 엎드렸다.

“…그 자식들이 평소에 통행세를 걷다가도 한 번씩 맛이 간 행동을 해서 채주께 처맞곤 하는 놈들인데, 그놈들이 그만 주둥이를 함부로 놀렸습니다요. 하지만 저는 결단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비틀려 올라가려 하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누르며 도중광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이후의 이야기는 조금 곤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이따 광풍투개랑 따로 보도록 하지.]

* * *

그리하여 들게 된 진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장에서 도중광은 내게 묵직한 전낭 두 개를 던져주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넣었다. 나와 내가 데리고 온 녀석들의 전낭을 모조리 뜯어 합친 것이다.”

쩔그럭-

쩔그럭-

“내가 녹림왕이라고 불리지만 왕부를 연 진짜 왕들처럼 다른 채주들과 군신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니라 마음대로 이곳의 곳간을 털 수는 없다. 그랬다간 나름대로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던 이곳 산채 놈들이 화적떼가 될 것이다. 광풍투개도 너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

도중광의 음성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나는 전낭을 얼른 소매 춤으로 옮겨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중광은 헛웃음을 지었는데.

“하. 내 남에게 돈을 뜯겨본 일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하하하. 뭐? 마음이 다쳐? 쓰흡. 저 친구 저거 머리 돌아가는 게 완전히 우리 쪽인데?”

그에 노삼이 언성을 높이고 나섰다.

“거, 도적 주제에 언감생심 탐을 낼 것을 탐을 내라! 어디다 침을 바르느냐 바르기를!”

“저 친구가 볕 잘 드는 백도무림을 등지고 춥고 습한 우리네로 넘어올 리가 만무한데 지레 게거품을 물기는? 그리고 언감생심 같은 말을 모르기에 녹림왕이 된 사람이오, 내가.”

“자랑이다 새끼야.”

“거지나 산적이나. 광풍투개 당신 성정을 생각해 보시오. 당신 인생도 삐끗하면 이쪽이었소.”

“오늘 그냥 사생결단을 낼까?”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억삼에게 들은 마교에 관한 정보를 도중광에게도 공유하기로 했다.

‘원작의 흐름을 유도한다고 마교의 위협을 알려주지 않기에는 좀 아까운 사람이네.’

흑도는 투신하기는 쉬워도 오래 살아남기가 백도무림보다 몇십 배는 힘든 곳이었다.

‘살아남기 팍팍하면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없어진 여유 속에 쌓인 업들은 이후의 행동도 강제하게 된다.

어차피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자리 잡아 그야말로 흑심(黑心)만이 가슴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그전에 눈먼 칼 맞고 죽던지.’

하여 일말의 양심이나마 가진 자들이 드물었고.

백도무림과 공생을 하려는 자는 더더욱 드물었으며.

그런 자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도중광이 근데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네.’

원작의 마교는 녹림과 수로채를 장악해서 강호의 혈관인 물류를 멈추게 만든다.

원작에선 그 사건이 터지기 전 단계가 묘사된 바가 없으니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그 일의 서막은 아마도 도중광의 죽음이지 않을까?

‘기왕지사 뒤틀리기 시작한 이야기다.’

하여, 나는 도중광에게도 억삼에게 얻은 정보를 공유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사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더 있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억삼이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한, 그가 태원에서 마교의 끄나풀을 접선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억삼이라는 자는 채주의 성화가 두려워서 심부름에만 집중했는데, 괴이하게 변하며 폭주했던 홍식이라는 자는 그 수상한 자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먹든 주워 익히든 한 모양입니다.”

그런 내 말에 노삼과 도중광의 표정이 동시에 심각해졌는데.

그중에 도중광이 입을 열었다.

“딱히 강호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게 우리 식구들이다. 그것도 말단을 도대체 왜?”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아마 현혹되기 쉽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흠.”

“아까 홍식이라는 분이 짐승처럼 날뛰었을 때 두려움을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무위를 지녔던 동료가 갑자기 어떻게 저만큼 강해졌는지 호기심이 생기는 자도 있을 겁니다.”

“…하기야. 나도 졸병 시절에 그런 소리를 들었으면 혹하긴 했겠구만.”

그렇게 잠시 고개를 주억이던 도중광은 일순 눈에 띄게 미간을 좁히며 턱을 쓸었다.

“가만있어봐. 이거 우리 녹림도가 완전히 사냥감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 같습니다.”

도중광의 입에서 나온 사냥감이라는 표현은 제법 적절했다.

‘백도무림의 무인 중에도 위선자들이 더러 있긴 하고, 마공에 손을 대는 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체면과 가문 그리고 정도라는 간판을 지키기 위해 위선이라도 떠는 만큼, 마공에 대한 기본적인 저항력이 있었다.

하지만 녹림의 산적들 같은 사파인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저항력이 있기가 힘들었다.

그에 도중광의 탄식이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이거. 우리 쪽에서 단속이 가능한 일이 아니군.”

이 또한 적절한 분석이었다.

그도 그럴 게.

도중광 본인이 전낭을 주며 말했듯, 그가 녹림왕이라 불리고 있다 하나 녹림이라는 곳은 본디 봉건제 비스름한 형태로 관리가 되는 곳이었다.

‘미래로 치면 산채 하나하나가 개인사업자인 거지.’

도중광은 그런 산채들이 다른 흑백의 방파들에게 최소한 이유 없이 짓밟히지 않는 정도의 억지력이 되어주는 대신 적절한 조공을 받아 챙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 진성채처럼 도중광 개인이 친분이 있는 산채가 아니고서야, 졸병 관리 같은 자잘한 내정에는 깊이 관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녹림왕의 깃발 아래 모든 녹림도를 집결시키는 쪽은 가능하겠지만.’

그 경우엔 녹림의 결집을 백도무림이 두고 보고 있겠냐는 것은 둘째치고, 상대인 마교가 아직 제대로 된 실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도중광도 그 점을 정확하게 인지했는지 이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림맹은 강호에 저런 잡놈들이 생길 동안 뭘 한 건지 모르겠군.”

그렇게 열린 도중광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거칠었으나.

“도적놈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무림맹을 들먹이네. 도중광이 네가 무림맹을 들먹일 자격이 있냐?”

“없지. 나도 없고. 저 밖에 있는 놈 중에도 그런 자격을 갖춘 놈은 없을 거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중에 한 줌 정도는 세파(世波)에 몰리고 몰려 산에 들어온 자들이 있소.”

마지막은 진중했다.

그렇게 도중광은 일흔둘 녹림채의 주인 된 자의 풍모를 보이며 다시 포권을 취해왔다,

“방법을 좀 찾아주시오. 둘이 있을 때 나눴던 이야기와 달리, 이 건에 관해서는 나도 조건 없이 돕겠소.”

그런 도중광의 음성에.

노삼이 신경질적으로 턱을 긁으며 잠시간 미간을 좁히더니.

“쓰흡. 이거 호로잡놈의 새끼들이 창궐을 한 거 같은데.”

나름대로 내가 총장님이 임명한 대민지원단의 생도 대표라 그런가?

어째선지 내게 일의 진퇴를 물어왔다.

“일단 이쯤에서 여정을 중단하고 낙양으로 가서 이 일을 공론화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나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만….”

이 시기에 정현과 언가의 자제가 태원을 방문한다는 원작의 장면 자체가 사라지고.

준비 중이던 청죽관의 사업들에도 차질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다 덮어두더라도 노삼에게 할 말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랬다간 그나마 잡은 저들의 실마리가 사라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크흠.”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 집단이라면, 맹에서 공론화가 되자마자 더욱 깊숙이 숨을 것입니다. 수법은 교묘해지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였다.

그렇게 내가 태원행을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뱉은 그때.

노삼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추켜세웠다.

“네가 나보다 낫다.”

그런 노삼의 말에 나는 곧바로 겸양의 말을 뱉었다.

“말씀이 너무 과하신데요?”

하나, 노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이더니 곧바로 도중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확실히 내가 생각이 좀 짧았다. 이봐, 도중광이.”

“말씀하시오.”

“이렇게 하자. 나는 수상한 놈들의 뒤를 쫓겠다. 너는 일단 오늘 일에 관해 진성채의 산적들만 입단속을 좀 시켜라.”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근데 그거면 되겠소?”

“그래. 다른 산채에도 홀린 녀석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놈들을 채근해봤자 이뤄지는 것 없이 이야기만 샐 거다. 이런 건 본체 쪽을 끌어내야 해.”

녹림왕 도중광과의 대담은 그렇게 끝이 났고.

우리는 진성채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도중광이 우리에게 사과해온 상황에서 그 권위를 무시하고 설치는 자는 없었다.

하여, 나름대로 안락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렇게 찾아온 다음 날 아침.

도중광은 우리에게 통행패를 내밀었다.

“광풍투개. 내 당신을 초대할 생각에 호북이남에서 올라오는 소규모 행객을 좀 잡아 두라고 아랫놈들한테 밀명을 내려놨는데, 남은 여정에선 이걸 내보이면 귀찮게 구는 녀석들이 없을 거요.”

그렇게 마교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는 실마리와 녹림왕의 통행패를 손에 넣은 우리는 다시금 태원을 향해 마차의 고삐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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