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도(道)둑들 (3)
종주의 술을 건 순간부터 외조부의 몸에서 뻗어 나온 붉은 기운이 저주의 근간인 기물들이 있는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황가에 황궁이 있으면 민가에는 이가장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윤영의 말마따나 이가장이 워낙 커서 붉은 기운들의 종점이 각종 벽과 방실에 막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진주언가의 언가장 만한 크기의 대원만 무려 여섯 개가 딸려있고, 인공연못이나 정원을 낀 누각이 스무 개, 평범한 방실은 삼백 개가 넘는다니까.’
게다가 소장주인 이중영의 서슬이 퍼레서 꼼짝없이 밤중에 몰래 기물을 찾아 돌아야 할 판국이었는데.
이윤영의 제안 덕분에 한결 일이 수월해질 것 같았다.
“예.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교수님과 동무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리하거라.”
그렇게 이가장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이윤영의 말에 냉큼 동의하고 안민당 안으로 들어가니.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행들이 몸을 세우는 가운데 노삼 교수님이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나는 그런 노삼 교수님을 향해 진정하시라는 손짓을 취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 예상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에 노삼도 목소리를 낮췄고.
“…언가 네 녀석의 예상대로라면?”
동기들은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외조부님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시고, 그런 일을 꾸민 자들은 저희가 근래 들어 겪은 일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 같습니다.”
그에 노삼 교수님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안민당주가 이르기를 너희가 이 댁의 소장주와 함께 산서금붕을 뵈러 갔을 것이라 하던데? 그 양반은 그런 사실을 아는 눈치더냐?”
노삼은 콕 집어 큰 외숙부에 관해 물었지만.
저 질문은 기실 이가장에 몸담은 모든 사람에게 대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글쎄요 라는 답밖에는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산서금붕이 몸져누운 일의 배후에 마교가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고.
알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방조를 했을 수도 있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거들었을 수도 있었다.
“한 길 사람 속도 모른다는데, 대저 장사치라 하면 사람 중에서도 속을 알기가 가장 어려운 족속들 아닙니까?”
“네 녀석의 신랄한 혀는 외숙부들에게도 가차 없구나. 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
“몇 가지 생각과 이 상황을 타개할 해법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제 속에서 정리가 덜 됐습니다.”
그러려면 어쨌거나 기물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이건 정리가 되는 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려면 우선은 나가시죠.”
“나가자고? 어디로 말이냐?”
“윤영 숙부. 아니, 안민당주께서 집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 내 말에.
노삼은 내가 같은 제안을 이윤영에게 처음 들었을 때처럼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 판국에 말이냐?”
“예.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짐짓 단호하게 주장하자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럼. 그렇게하자.”
그렇게 노삼의 허락을 받아낸 나는 곧바로 동기들을 준비시켰다.
“다들 들었지? 채비들 해라.”
말은 채비라고 했지만.
애초에 입고 온 의복이 학관에서 예복으로 삼는 옷이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 사이 구겨진 옷들을 툭툭 쳐서 펴고, 마음가짐을 챙기는 것으로 끝이었다.
“얼굴들이 너무 심각해. 그런 표정들 짓지 말고. 진짜 명승지를 관람한다는 생각을 되뇌면서 표정들 풀어라.”
그렇게 채비를 마친 우리는 안민당을 나섰다.
그렇게 우리가 안민당 밖으로 나오자마자, 윤영 숙부는 멀찍이 보이는 외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고.
“이가장의 건물배치는 사실 이(李)자의 모형을 본떠서 만들어졌네. 저기 보이는 외벽의 모서리마다 세워둔 정루(顶楼)에 올라가서 보면 한눈에 볼 수 있네만, 근래 들어 가문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며 이런저런 번잡한 가법이 생기는 바람에 객들은 올라갈 수가 없게 되어 아쉽군.”
그렇게 이가장 관람이 시작되었는데.
“아무튼. 혹자들은 이를 두고 태원 이씨들의 자기애가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 비웃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자신들의 성을 따서 장원을 지어 올리기도 하는데. 사실, 이 장원이 설계된 이유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다.”
“어떤 뜻이 있습니까?”
“정현 도장이라고 했나?”
“예.”
“궁금하면 오백 냥.”
“…그, 금액이 너무 많습니다. 빈도는 그만한 돈은 철전으로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농담이네, 농담.”
이윤영의 입담이 워낙에 좋아서 안민당을 나설 때만 해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띠고 있던 생도들이 조금씩 진심으로 이가장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의 뜻을 담아 이리 지었다네.”
“자두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 쓰지 말라. 오해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옛 말씀 아닙니까?”
“맞네. 우리 가문이 처음 일어설 때, 다른 상인들은 자와 되를 속여 이득을 취했네. 하지만 우리는 되려 덤을 주었고, 그러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천하의 장사치 중에 산서의 이가들은 믿을만하다 하기 시작했다네.”
“아! 하면 장원 전체가 이(李)자를 이루고 있으니?!”
“전각들의 처마 밑이 곧 자두나무가 되는 것이고,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
“원시천존. 언소협께 흐르는 도기의 근원은 외가댁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정현 같은 녀석은 이윤영이 보증을 서달라고 해도 따를 것처럼 감탄하며 관람을 시작했고.
천장호는 그런 분위기 속에 아무렇게나 입을 열었다가.
“와, 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의 삶이 어지간한 거지들보다 낫겠는데요? 아니 그렇습니까, 교…. 아! 아앜!”
노삼 교수님에게 있는 대로 차였다.
- 쯔쯔쯔쯧. 젊은 거지 놈은 참 매를 사서 맞는 녀석이로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사부님께서 얼마나 제자 복이 있으신지 새삼 실감이 나십니까?’
- ?
‘?’
그렇게 사부님을 상대해 드리고 있던 나는 조금 풀어진 분위기 속에 숨어 조용히 우소릉과 제갈설지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용운 님?”
“왜 그러세요, 언형?”
그리고 건물과 벽의 배치를 유심히 봐두라는 전음을 보낸 뒤.
내 눈에만 보이는 붉은 기운을 가만히 쫓기 시작했다
* * *
워낙에 이가장의 규모가 넓다 보니, 장원 구경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담긴 전각과 빈객들에게 공개하는 보물을 전시해 놓은 수장고(收藏庫)를 둘러보고.
그러다가 인공연못이 나오면 발을 담가 보거나, 잉어들에게 밥도 주고.
점심때가 되어 시비와 가복들이 가져온 춘권과 도삭면도 먹고.
소동물을 풀어놓은 정원 구경도 하고.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장원 관람은 저녁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여기까지. 빈객들의 관람이 제한되는 곳을 빼놓고는 다 보여준 것 같구만.”
하지만 다음 일정이 바로 있었다.
“어디 보자, 해시계를 보니 벌써 신시(申時)가 다 지나가는군. 노 대협?”
“말씀하시오.”
“술시(戌時)에 소장주께서 주최하는 만찬이 있습니다. 교수님과 생도들을 초대하시겠다 하시더군요. 우선 객관으로 안내해 드리겠으니, 쉬시다가 그때 참석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일정은 저녁 만찬이었는데.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린 음식들은 휘황찬란했으나 썩 유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찬을 주도하는 이중영은 우리를 자신을 빛내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느낌이었고.
“이 사람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가볍게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저쪽은 정무학관에서 오신 광풍투개 대협과 학관의 용봉들이고, 이쪽은 산서성에서 늘 태원상단과 발을 맞춰주시는 개방의 덕근 분타주님이시고. 아, 용대인도 오셨구려. 용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섬서성의 서안에서….”
우리를 제외한 참석인 중 대다수가 그런 이중영의 눈에 들기 위해 감언이설이나 쏟아내는 자리였으니까.
“소장주, 기운을 차리십시오! 이 사람도 산서금붕 어르신께 큰 은혜를 몇 번이고 입었습니다만, 그만하면 천수를 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기운을 차리기는 개뿔.
“허허허. 감숙의 강대인이시군요. 강대인의 위로를 들으니 기운이 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술을 한 순배씩 돌리겠습니다.”
기실 이중영을 보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해서 외조부가 정정할 때 이중영의 기가 얼마나 펄펄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이 저거보다 팔팔하기는 힘들지.’
뭐, 아무런 수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만찬장 한쪽에서 자신의 세력과 함께 무게만 잡고 있던 막내 외숙부가 만찬이 끝나자, 우리 쪽에 접촉을 해왔으니까.
“광풍투개 대협, 노고가 많으십니다. 젊은 날 강호를 위해 동분서주를 하셨음을 알게 된 이후로 남몰래 흠모해 왔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태원상단의 제세당주이자 여기 있는 용운이와 용명이의 작은 외숙이 되는 이권영입니다.”
“노삼이오.”
이권영.
나이순으로는 윤영 숙부의 아래인 삼남이지만.
본부인에게서 난 자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적서의 기준을 엄히 적용해서 노골적으로 이윤영을 배제하는 인물.
‘개방 산서분타주의 표현을 더 하면.’
이중영과 가장 치열하게 후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인물.
아니나 다를까.
이권영은 곧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만찬장에서는 형님이 결례가 많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정정하실 적에는 저렇게 독불장군으로 굴던 위인이 아니었는데, 사람이 좀 변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이권영은 사과하는 척 이중영을 깎아내리고 있었고.
그 사과를 받으면 자신의 주장에 이쪽이 동의하게 되는 교묘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애초에 노삼 교수님을 흠모했다는 것부터 거짓말이겠지.’
우리가 하루 종일 이가장을 돌아다녔는데, 저 말이 진심이고 나나 용명이 녀석을 생각했다면 진즉에 와서 인사했을 것이다.
물론, 노삼 또한 녹록한 위인이 아니었다.
“거지가 밥 얻어먹었으면 됐지, 뭘.”
노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권영의 얼굴에서 당황을 끌어냈고.
“그, 그러십니까? 하하하하. 역시 호방하십니다.”
그렇게 이권영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걸리자마자, 나는 곧바로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태원 성내에 해괴한 차림의 방사와 도사, 승려들이 많던데, 듣자 하니 외숙께서 그들을 불러 모았다더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사이비 방사들까지 모으려 한 것은 아니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권영의 말에 노삼이 팔짱을 끼고 나섰다.
“그중 몇은 부르긴 하셨구만?”
이 세계의 거지 주둥이는 파급력이 강한 소셜미디어와 같은 구석이 있어서 해명을 잘못하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뱉은 말을 수습하기 위해 이권영이 자초지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자리보전을 막 시작하셨을 무렵. 백약이 통하지 않고 오는 의원마다 병명을 모르겠다는 답답한 소리만 하길래, 당시 태원 성내에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다 아버님께 데려간 적이 있다.”
“그래서요?”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뭘 주섬주섬 깔고, 구슬을 흔들더니만 바다가 더러워졌다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하여 그런 점쟁이 말고 고승이나 도력이 높은 도사를 부르면 해결이 될까 싶었는데, 기껏 부르면 뭐 하느냐?”
“큰외숙께서 후원에 안 들여보내 주시는군요?”
“그래. 이가장에서 그런 식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선 안 된다느니, 좌도방문을 가까이하면 유자(儒者)들이 등을 돌려 관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느니, 산서는 사방이 내륙인데 무슨 바다 같은 소리를 하냐면서 갖은 이유를 대는데, 실은 아버님이 기운을 차리는 게 싫겠지.”
* * *
이권영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온 객관.
천장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낮의 발언을 정정했다.
“이 집 개의 삶이 거지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이 집 사람의 삶보다는 거지의 삶이 낫겠습니다.”
빡!
“아! 이번에는 왜?!”
“네 친구랑 네가 형님 거리는 언가 녀석들이 이 집 사람인데 말을 그런 식으로 해야겠냐?”
그렇게 천장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노삼 교수님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가장 관람도 했고, 만찬에도 참석했다. 이제 아까 낮에 한다던 생각 정리가 얼추 되었느냐?”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나는 곧바로 용명을 향해 입을 열었고.
“용명아, 제갈 소저에게 지필묵 좀 갖다 드려라.”
나름대로 이가장이 익숙한 용명이 녀석은 묵묵히 지필묵을 찾아와 제갈설지 앞에 깔아주었다.
“용운 님?”
그러자 제갈설지가 나를 향해 눈을 키웠다.
“혹시 숙부님들 중에 의심 가는 분을 가려내라는 거면, 저는 아직 판단이 확실히 서지 않았는데요?”
“나도 숙부님들에 대한 판단은 아직이오.”
“그럼 어찌 지필묵을 제게?”
“오늘 낮에 내가 이가장의 건물 배치를 유심히 기억하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셨죠?”
“소저가 나는 새라고 생각하고, 공중에서 본 이가장의 전경을 그려보시오.”
그런 내 말에 제갈설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땅에서 본 전경을 토대로 조감도를 그려내기 시작했는데.
본 것을 그리라는 내 말에 제갈설지는 후원과 출입금지 지역을 제외한.
子
아들 자 모양의 조감도를 완성했다.
“다됐어요.”
“붓 좀 이리 내보시오.”
그렇게 붓을 돌려 받은 나는 제갈설지가 나름대로 지붕과 벽을 표현한 세세한 조감도의 위쪽에 나무 목자를 대충 그어 넣었다.
木
子
그렇게 이(李) 자를 완성한 나는, 낮에 확인했던 저주의 근간이 되는 기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하나씩 찍기 시작했다.
“어?”
그런 내 행동에 제갈설지와 같은 말을 들었던 소릉이 녀석이 중얼거렸다.
“저거 물항아리가 있던 곳 아닌가요?”
물항아리.
이 시대의 저택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큰 항아리를 곳곳에 배치해놓고 물을 가득 담아 놓았는데.
무속적으로는 재신을 모시는 측면도 있었고, 실질적으로는 목조건물에 불이 났을 때 빠르게 진화하기 위해서였다.
“제갈소저? 그런 항아리를 세가에서 달리 뭐라고 하더라?”
“바다(海)라고도 하는…. 아? 바다가 오염됐다?”
나는 제갈설지에게 붓을 돌려주었다.
“어차피 장원 건축이라는 게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지 않소? 좋은 머리로 안 가본 곳도 한번 찍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