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46화 (146/444)

제146화. 쥐를 잡자 (1)

저주를 해주하는 내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는 감탄을 해오셨다.

- 네 녀석의 방술은 볼 때마다 신기하구나. 순간적으로 상단전에서 짜낸 술식을 이용해 음과 양의 기운을 손바닥 사이에서 회전시켜 신상이 머금고 있던 저주를 빨아내고, 백(魄)만 남은 신상은 부숴버린 것이냐?

‘…어. 뭐 비슷합니다.’

그런 사부님의 말씀에 잠시 어울려 드리고 있으니.

저주에서 풀려난 외조부가 초점을 되찾은 눈을 느릿느릿 깜빡이더니, 오랜만에 목구멍을 짜내느라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로 어떤 이름을 불렀다.

“…영영이?”

영영은 내 어머니인 이화부인의 이름이었다.

그에 내 머릿속엔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직 제정신이 아니신가?’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눈만 내놓은 복면 차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눈매만 보여서 어머님이랑 착각하신 건가?’

어느 쪽이든 빨리 상황 파악을 하게 도와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후원으로 뛰어들 때 기감으로 내 존재를 눈치챈 호위무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명히 무슨 기척이 느껴졌다! 포위망을 형성해서 원내를 샅샅이 뒤지면서 서서히 좁혀 들어간다!”

나는 빠르게 복면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영영이는 아니고 아들놈입니다.”

“…용운이로구나?”

“예.”

눈앞의 비쩍 마른 노인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본디 이쯤에서 ‘이게 다 무슨 일이냐?’ 하는 식의 대화로 빠졌을 것이다.

하나, 내 외조부 되시는 산서금붕 이길환은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물음을 던지는 대신 본인의 눈동자를 굴려 가만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있는 외손자, 앙상해진 본인의 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어느 순간 완전히 총기를 되찾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나를 좀 일으켜다오. 그 옆에 물도 좀 주고.”

나는 속으로 ‘됐다.’ 소리를 외치며 외조부의 상반신을 일으켜드린 뒤.

한쪽에 놓여 있는 주전자를 찾아 물도 한잔 따라드렸다.

“여기….”

그런데 뻗어오는 앙상한 팔이 과연 이 물잔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냥 내가 도와 드리기로 했다.

“소손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그렇게 외조부께서 물을 들이켜도록 돕고 있으니.

“여긴 의원밖에 없습니다.”

“시비들의 침소에도 없습니다.”

“그럼 남은 곳은 장주님의 침소뿐인가?”

밖에서 일던 소란이 점점 더 가까워졌는데.

“장주님, 후원의 호위대주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어느 순간.

그 소란을 지휘하던 자가 덜크덕!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외조부의 입에서 물그릇을 떼어냈다.

탁-

그리고 조심스럽게 회한에 손을 가져갔다.

슥-

외조부는 해야 할 교통정리를 하시라는 뜻에서였고.

회한에 손을 가져간 것은 호위무사들이 큰 외숙부나 마교로 마음이 완전히 넘어갔을 수도 있기에 그 점을 대비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

한데, 어째선지 외조부께서는 눈앞의 교통정리를 미루시고 ‘이놈 봐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

그에 경룡이형이나 언동생들을 지휘하며 버릇이 된 턱짓이 나도 모르게 나가버렸는데.

‘지금 보실 곳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입니다.’

제가 아니라 저쪽의 호위대주를 단속하셔야죠?

그런 내 모습에 외조부의 얼굴에 건조한 웃음 같은 것이 걸렸다.

뭐, 어쨌거나 의미는 전달됐는지 외조부께서는 곧바로 저쪽을 향해 입을 여셨다.

“내가 이씨 성을 허락해준 순평이로구나.”

“예? 예! 후원의 호위 대주 이순평이 장주님을 뵙습니다!”

“네가 기별하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나는 입실을 허락한 바가 없다. 한데 순평이 너는 어찌 장주의 침소에 함부로 들어왔느냐?”

그런 외조부의 음성에.

순평이란 이름의 호위대주가 황급히 한쪽 무릎을 굽혔고.

“송구합니다!”

뒤쪽에 있던 다른 호위무사들도 급히 무릎을 굽혔다.

“소, 송구합니다!!”

저렇게 나오는 이상 최소한 마교의 끄나풀은 아닐 터.

나는 우선 회한에서 손을 뗐다.

그러는 사이 외조부의 목소리가 계속해 이어졌다.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송구하다는 말이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를 말해야지.”

“…그, 그것이 장주님께서 몸져누우신 이후로 허락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 후원을 경비하던 중에 수상한 기척이 느껴져서 부득불 소인이 이렇게 무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그래? 한데 순평아.”

“예! 장주님!”

“외손주가 할애비가 걱정되어 후원을 찾는 일이 어찌 수상한 행동이 되었을꼬?”

그야.

내가 시커먼 옷을 입고 암흑동화까지 써가며 담을 넘었으니까?

하나, 몸은 비쩍 말랐어도 눈만큼은 맹금류의 그것과 같아 보이는 외조부의 음성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어찌하여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묻고 있었다.

‘이것이 산서금붕의 압박 면접인가?’

살벌하네.

하기사 미래로 치면 대리쯤 되는 양반이 회장님 면담하는 거잖아?

아무튼 그 점을 이해한 순평이란 사내도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소장주께서 혈육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후원에 들지 못하게 하라는 명을 내리셔서, 영영 아가씨네 큰 도련님께서도 부득불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중영이 그놈이 그랬단 말이지?”

여기서 순평이란 사내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외조부의 질문에 단순한 긍정을 내놓으면 큰 외숙부에게 흠이 가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이런저런 내막을 이야기하면 막내 외숙부에게 흠이 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순평은 큰 외숙부의 손을 들고 나섰다.

“장주님을 쾌차시키기 위한 방법을 두고 소장주와 제세당주 사이에 대립이 있었는데, 제세당주의 방식이 방사들을 장원에 들이는 것이라 그런 명을 내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원 내 평판은 큰외숙부 쪽이 막내 외숙부보다 나은 모양이었다.

그 결과.

외조부는 본인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동안 이가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순식간에 파악하게 되었다.

그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내둘러 오셨는데.

- 녹록한 노인네가 아니로구나,

‘그러게요. 제가 나름대로 발품을 팔아서 얻은 결론을 앉은 자리에서 얻어 버리시네요.’

- 그도 놀랍지만. 다 죽어가다 일어난 게 조금 전이고, 아까 만찬을 보니 그사이 네 큰외숙부 되는 자가 나름대로 위세를 쌓은 듯하던데, 그 위세가 모래성이라도 되는 양 무너뜨리면서 그 일을 행한 것도 놀랍다.

‘예. 비록 후원의 무사들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찬장에서 희희낙락하던 자들은 말 그대로 그게 최후의 만찬이 될 것 같습니다.’

- 그러게 말이다. 이래서 용운이 네가 외조부만 눈을 뜨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로구나.

사부님과 그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어느 순간 맹금류의 그것을 닮은 외조부의 눈이 내 쪽으로 향했다.

“용운아.”

“예?”

그리고 뜬금없는 소리를 던져오셨다.

“방금 기운을 차렸는데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내가 기력이 좀 딸리는구나. 내 방금 용운이 네게 일러줬던 말을 저기 있는 이순평 대주에게 대신 전해 주겠느냐?”

저주에서 풀려난 외조부가 눈을 뜨고 내게 했던 말은 몸을 일으켜 달라는 것과 물을 좀 달라고 한 게 다였다.

‘아, 영영이냐고 묻기도 하셨네.’

아무튼, 그런 말 중에 호위대주에게 전해줄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산서금붕 이길환이 내게 내는 일종의 시험문제였다.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수를 두겠냐는 이건가?’

- 노인네가 네 그릇을 재보려는 모양인가? 한데 이만한 일의 결정을 네게 맡겨도 되는 것이야?

‘예. 외조부님 입장에서는 아무런 손해가 없으니까요.’

내가 뭐라 말하는지를 지켜보다가 마음에 든다면 그 말이 맞다고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말 한마디면 상황을 뒤집을 수가 있을 테니까.

‘와. 근데 이 와중에 내 그릇을 재시네.’

어차피 태원과 이가장에 숨어 있는 마교놈들을 축출하고 나면 외조부와 소식지 사업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 외조부가 나를 시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하고 있었다.

하여,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이런 순간에 이런 식으로 하실 줄은 몰랐는데.’

뭐, 소릉이와 잠행복을 입고 객관을 나서던 순간부터 외조부를 깨운 뒤엔 어떻게 할지 큰 그림을 떠올려 뒀기에 의견을 말하는 것은 어려울 게 없었다.

“외조부님께서는 본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는 말을 전하라는 말씀과 함께 이가장의 구성원들은 모두 후원으로 모이라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내가 말을 마치자.

후원의 호위대주 이순평이 외조부 쪽으로 고개를 돌려 확인을 구했다.

“도련님의 말씀에 틀림이 없는지 여쭙습니다.”

이순평의 물음에 외조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에 호위대의 무사들이 바쁘게 몸을 세웠는데, 나는 개중에 한 명을 향해 조금 다른 명을 내렸다.

“거기 맨 뒤에 계신 분은 지금 당장 객관에 가서 정무학관에서 오신 손님들한테 제가 이리로 빨리 좀 오라고 했다는 말을 전달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아! 아마 안 믿을 수도 있을 텐데, 말미에 화생방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다들 내가 말했다고 믿을 겁니다.”

* * *

그렇게 호위무사들이 침소에서 나가자 외조부가 눈빛을 빛내며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셨는데.

“화생방이 무엇이냐?”

“학관 동기들이랑 나눴던 단란한 추억입니다. 이 경우엔 저희끼리만 나눈 추억이라 제가 한 말임을 보증해 주는 거죠.”

처음에는 그저 화생방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궁금해서 물어오신 줄 알았지만.

“하여, 용운이 너는 방금 호위대주에게 말한 그 방법을 어찌 떠올렸느냐?”

이제보니 아무래도 다른 것이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는 외조부님께서는 어찌 제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까?”

한데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서 되물음을 던졌더니.

“그야 네 말이 내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지.”

“하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으실 이유가 없지 않으신지요?”

외조부는 천연덕스럽게 눈꺼풀을 껌벅이며 입을 열었다.

“답만 같게 적어 낸 것인지 과정도 같은지를 봐야지.”

소식지 사업 추진하기 한번 녹록지 않네.

“제 짧은 생각으로는 외조부님께서 몸져눕게 된 일에는 배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의 수작에 가담한 이가장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내 말에 외조부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매서운 질문을 던져왔다.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하나,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

“외조부님의 상태가 안 좋으시면 그러려고 했습니다. 한데 순식간에 후원 호위대주의 무릎을 굽히게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운신의 폭이 좁은 그 방식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해 보거라.”

“외조부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는 소식을 알리면, 아마 이 일에 가담한 자 중 말단에 속하는 자들은 배후에게 달려갈 것입니다. 이가장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면 일차로 그들을 걸러낼 수가 있습니다.”

음.

방금 외조부께서 입맛을 다신 것으로 보였는데 착각인가?

뭐, 아무튼.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외조부님께서 많이 믿으셨을 태원상단의 수뇌부 중에도 이 일에 가담한 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말이 진실인지 참인지 확인하고자 달려오겠지요.”

“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다. 개중에 속마음을 다르게 먹은 자를 구분할 방법은 있고?”

“굳이 그런 방법이 필요하겠습니까?”

“방법이 없으면서 사람을 모았다는 것이냐?”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당장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해야겠네요. 일단 정정하신 외조부님의 모습을 보고 나면 저쪽에서 알아서 무리수를 던지리라 생각합니다.”

“…….”

“이 일에 매몰된 시간과 비용이 결코 적지 않을 텐데, 외조부님께서 눈을 뜨시며 모든 게 수포가 되게 생겼으니까요. 본전을 챙기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지 않겠습니까?”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마교와 이가장의 배신자가 지어놓은 다 된 밥에 딱 재를 야무지게 뿌린 상황이었다.

‘근데 내가 재를 뿌린 밥이 그 집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쌀로 지은 밥이라면?’

재가 묻은 곳을 깎아내고 어떻게든 먹으려 드는 게 사람이지.

그때였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씩 물음을 던져오던 외조부께서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시는가 싶더니.

“허허허. 곰 같은 아비에게서 용이 나왔구나.”

대뜸 하북 방면으로 손가락질을 하셨다.

“이런 인사를 궁핍한 무가의 방식에 끼워 넣으려고 하니까 밖으로 나돌 수밖에.”

…어.

그러니까 지금 곰 같은 아비는 언정웅이고, 궁핍한 무가가 지금 진주언가인 거지?

“하여간에 언서방은 사람이 뻣뻣해서, 그래서 내가 혼인을 뜯어치우려 했던 것인데. 음. 하기야 그랬으면 네 녀석이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겠구나.”

그렇게 외조부의 얼굴에 너털웃음이 걸려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후원이 점점 소란스럽다 싶더니.

어느 순간 외숙부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님, 소자 중영입니다.”

“윤영입니다.”

“권영입니다.”

그 목소리에 외조부의 눈빛이 전에 없이 매서워졌다.

“내 시간은 금이라 누누이 말했거늘! 참 빨리도 오는구나! 밖에서들 기다리거라!”

그런 외조부의 모습에 나는 내심 몸 상태는 몰라도 기력은 다 회복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목소리와 눈빛만 보면 자리보전을 하고 있던 노인네라는 게 믿기지 않네.’

그런 내 모습이 본인의 다른 모습을 보고 놀란 거라고 판단한 것일까?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니다.”

나를 보실 때는 또 다시금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 손등을 도닥이시더니, 어느 순간 손아귀에 힘을 주시며 몸을 일으키셨다.

“나가서 쥐를 잡아 보자꾸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