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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47화 (147/444)

제147화. 쥐를 잡자 (2)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 있다 보면, 본래 멀쩡하던 곳에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컨대 등창이 생길 수도 있고, 근육이나 관절이 굳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외조부의 경우는 큰 외숙부가 후원 출입은 단속하긴 했어도, 시비와 의원은 상주(常住)를 시켜 놓은 덕분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등창 같은 피부병에 걸리지 않으신 듯했지만.

“…끙.”

누워 계시던 동안 굳은 근육과 관절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여 외조부의 첫걸음부터 크게 휘청였다.

나는 외조부를 빠르게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는 않지. 하나 괜찮아야 하느니라. 내가 건재한 모습을 보여야 감히 태원상단을 삼키려 한 자들의 마음에 초조함이 깃들 것이다. 그래야 그자들이 무리수를 둘 것 아니냐?”

맞는 말이기는 했다.

하나,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냥 전각의 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외숙부들을 안으로 들이시지요?”

눈빛과 목소리는 충분히 추상같으시니, 그 정도만 해도 산서금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충격은 전해질 터였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텐데?’

애초에 나는 딱 그 정도를 생각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한 것이었다.

하나, 외조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로는 부족할 것이다. 내가 건재함을 보이지 않으면, 당장 나를 이렇게 만든 원흉을 잡아내도 이후에 태원상단이 도전을 받게 될 것이야.”

외조부의 태도에 나는 한 손으론 그를 부축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천하의 산서금붕이 도전을 겁내신다고요?”

“내가 겁내는 것은 도전 자체가 아니라, 그 도전에 따라붙는 혼란이다.”

그런 내 말에 외조부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후원 쪽을 응시했다.

“태원상단이 산서상인의 맹주가 되어 상계의 질서를 새로 정립하기 전에는 미곡과 소금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굶어 죽는 자들이 나왔고, 석탄이 발에 챔에도 얼어 죽는 자들이 나왔었다.”

“…….”

“장사치가 과분하게도 붕새의 이름을 별호로 얻었는데, 그 꼴을 볼 수야 없지.”

고요하게 끓고 있는 외조부의 눈빛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는데.

그런 외조부의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해오셨다.

- 용운이 너와 네 외조부가 생각한 건재함의 정도가 다른 듯한데, 어찌할 것이냐?

‘아무래도 외조부의 뜻에 따라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하기야 늙은 눈동자가 저리 용광로처럼 끓어대는데 말릴 재간이 없지. 방법은 있겠느냐?

‘왜, 보준이 때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수가 점혈과 운기의 묘리를 역으로 이용한 거지 않습니까?’

- ……?

‘…보준이처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방식이요 방식. 보니까 외조부님의 휘청거림이 허리부터 시작되던데, 허리 쪽의 요혈을 점혈해서 잠시 굳게 만들고 다리 쪽은 풀어서 관절과 근육을 정렬하면 되지 않을까요?’

- 일리가 있구나. 그럼 허리 쪽은 신도혈과 근축혈을 가볍게 짚어 굳힌 뒤에, 내력을 불어 넣어 용천혈 독비혈 의사혈을 순서대로 가볍게 자극해 보거라.

그렇게 사부님과 방안을 의논한 나는 곧바로 외조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면, 할아버님. 소손께 잠시 몸을 맡겨 보시렵니까?”

“몸을 말이냐?”

“예. 소손이 이래저래 익힌 재주가 약간 있습니다. 당장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주 미덥지는 않으시겠지만….”

“네가 왜 못 미덥겠느냐? 충분히 미덥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를 침상에서 일으킨 것도 용운이 너의 기지가 아니더냐?”

“음. 그건 그렇지요?”

“긴말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거라. 내 생살을 짼다고 하더라도 참아 볼 것이다.”

외조부의 허락을 받은 나는 다시금 침상에 외조부를 눕힌 뒤.

점혈을 겸한 안마를 시전했다.

팟- 팟-

파파팍-

그러자 일시적으로 외조부의 허리와 다리에 지지력이 돌아왔다.

“허허. 정말로 다리의 후들거림이 크게 줄었다. 이 정도면 부축 없이 걸을 수 있겠구나?”

그에 침상의 외조부님께서 감탄을 해오셨는데.

“무림인의 수법 중에 몸을 굳게 만드는 것이 있음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구나.”

“잠시동안 써먹을 수 있는 얕은 수일 뿐입니다. 당장에야 움직이게 되셨지만 여파로 몸살이 나실 수도 있으시고요.”

“여파야 당연한 것이고, 잠시라 해도 신통방통하다. 이런 건 어디에서 배웠느냐? 학관에서 배웠느냐?”

“임기응변을 좀 부려 보았습니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어서 기지를 발휘한 것이라 하니.

외조부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행동력과 심계만 갖춘 줄 알았더니, 번뜩임도 있구나. 네 기지가 오늘 산서성을 구할 것이다.”

* * *

홀로 거동을 할 수 있게 된 산서금붕 이길환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우선 용운이 네가 먼저 나가 보거라. 먼저 나가서 내가 나갈 것이라 알려다오. 내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어 그런다.”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냐.”

딱히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외조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나는 곧바로 전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주님께서 곧 나오실 겁니다.”

그런 내 음성에 후원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히 내 쪽으로 향했다.

“저분은 영영 아가씨네 큰 도련님이 아닌가?”

“한데 의복이 왜 저러지? 시커먼 것이 꼭 도둑놈이나 살수들이 입는 잠행복 같은데?”

“같은 게 아니라 맞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장주님이 나오신다니 무슨 말이지? 오늘 낮까지만 해도 오늘내일하던 분이 갑자기 거동을 하신다고? 말이 되나?”

“조금 전에 소장주님과 두 분 당주님께 호통을 치시던 목소리를 못 들었나? 오늘내일하는 분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말이 되고?”

“이거야 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나는 그렇게 시선을 보내오는 이들 중 노삼에게 전음을 보냈다.

[교수님?]

[일이 잘 풀렸나 보구나?]

[예.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을 드릴 테니 일단 애들과 함께 제 쪽으로 와주십시오. 외조부님이 곧 나오실 건데, 혹시 모르니 저희가 호법을 서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하자.]

그에 노삼과 아이들이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노삼은 나를 가까이서 훑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네 말마따나 몇몇 사람이 내 허명을 좇아 객관에 왔더구나. 내 팔자에도 없는 연기를 한다고 혼났다. 아무튼, 언가 네 녀석도 괜찮은 것 같고, 일도 잘 풀렸다니 다행이구나.”

잠행복을 벗어던진 소릉이 녀석은 다시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쭈뼛거렸다.

“제가 도움이 되었을까요?”

“큰 도움이 되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네 도움이 있었음에도 아슬아슬했는데, 없었다면 아찔했지.”

제갈설지와 천장호 그리고 정현은 미간을 좁혀왔다.

“…그나저나 용운 님. 암호로 화생방을 사용하시기 있으신가요?”

“맞습니다. 거, 너무 심하셨수. 이름만 들어도 목이 갑갑해지는 그 단어 말고 다른 것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그 단어를 고르십니까, 고르시기를.”

“빈도의 생각에도 그것은 도가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내가 전하는 말이라는 걸 너희가 듣기만 해도 알아챌 단어가 그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그 정도로 미간을 좁힐 일인가? 훈련 덕분에 독에 대한 저항도 갖추게 되었고, 실전성을 지닌 훈련도 해보고 좋지 않았나?”

“…와.”

“허.”

“원시천존.”

음? 아니야?

아무튼 그런 녀석들을 향해 나름대로 해명하고 있으니, 용명이 녀석이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

뭐, 녀석이 궁금한 것은 결국 외조부의 상태일 터.

잠시 뒤면 외조부가 건재하심을 알게 될 텐데, 굳이 지금 전해줄 필요가 없었다.

하여 용명이 녀석의 어깨나 좀 두드려주고 있는 이때.

큰 외숙부 이중영이 이쪽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용운아. 병상에 누워계시던 분이 어찌 저리 우렁찬 목소리를 내시는 것이냐? 나오신다는 말은 또 뭐고?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너는 뭔가 아는 것이 있지?”

한데, 그 태도가 처음 나와 용명이를 마주했을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이놈 저놈 하던 어투가 누그러졌고, 빈대를 보는 듯하던 눈빛은 살가워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장주인 나는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아는 것을 좀 털어놔 보거라,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마.”

그러면서도 나를 어르고 달래려는 것이, 큰 외숙부 본인도 자신의 일장춘몽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 그런 큰 외숙부의 심경을 헤아려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큰 외숙부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피차 왕래도 잘 없는 사이에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외조부님이 나오시면 직접 물어보십시오.”

“하!”

저녁때 만찬장에서 퍼마신 술기운의 영향으로 마음속의 초조함이 고개를 쳐든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덮어두고 진주언가를 아래로 보는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이중영은 화를 참지 못했다.

“내가 사사로이는 네 녀석의 숙부이고! 이가장의 소장주이며! 태원상단의 부단주다!”

그때였다.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줬을 뿐인데, 이중영이 혼자 분기탱천해 화를 쏟아내기 시작한 그때.

“감히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한단 말이냐? 지금 당장이라도 장내의 금역에 함부로 발을 들인 죄를 물을 수도 있다! 아니, 물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물어야겠다! 금 총관!!”

전각의 문이 덜크덕- 열렸다.

그리고 외조부이신 산서금붕 이길환이 지팡이 하나를 벗 삼아 걸어 나오시더니.

추상같은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금 총관은 나설 것 없다!”

그런 외조부의 음성에.

호위무사들을 움직이려던 금총관이라는 양반이 즉시 행동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굽혔고.

“장주님을 뵙습니다.”

이어서 이중영이 헛숨을 삼키며 무릎을 굽힌 것을 시작으로.

“…윽꾹. 아, 아버님?!”

이가장의 다른 식솔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외숙부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중영은 당황 그 자체고. 이윤영은 안도감인가?’

윤영 숙부는 유일하게 우리를 잘 대해준 분이긴 했지만.

내 짬바에 의하면, 보통 이럴 때는 성격 좋아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통수를 치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었다.

‘서자여서 동기도 어느 정도 있다고 봤고.’

한데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은 그냥 그간의 설움이 복받친 효자 같았다.

‘저것까지 연기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지금 보니 막내 외숙부의 얼굴에 든 당혹감이 더 수상했다.

‘외조부를 살리겠다고 여기저기서 방사까지 데려온 사람이, 정작 기운을 차린 외조부를 보고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아무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손을 휘저어 식솔들의 인사를 받아준 외조부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내 분명 후원의 호위대주에게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음을 알리라고 하였거늘. 방금의 모습을 보아하니 중영이 네 녀석은 그것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이 아비가 죽기를 바랐더냐?”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용운이 녀석이 아버님께 저를 뭐라고 고했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용운이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 것 같은데?”

“제가 괄시를 했다거나, 아버님이 돌아가시기를 바라 후원을 금역으로 설정했다 같은 말을 했겠지요.”

외조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없건만.

이중영은 제 발이 저린 것인지 제 입으로 제 행동을 술술 불었다.

그리고 나름의 변명을 해왔다.

“솔직히 소자가 괄시는 좀 한 것도 같습니다. 미묘한 시기에 외조카들이 나타났으니까요. 하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시기를 바란 적은 없습니다.”

외조부는 그런 이중영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여셨는데.

“계속해 보거라.”

그 목소리에 힘입어 이중영은 더욱더 열심히 자기변호를 했다.

“저는 소장주이고 부단주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버님의 자리를 물려받을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소장주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해괴한 소문이 돌지 못하도록 가법을 엄히 세우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대인들에게 집중했을 뿐입니다.”

하나 이중영의 말은 딱 거기까지였다.

어느새 이중영의 코앞까지 다가선 외조부가 그의 허리에 달린 소장주의 패와 부단주의 직인을 뜯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투둑-

“아, 아버님?!”

“못난 놈. 차라리 가솔들을 챙기면서 내가 죽기를 바랐다면 그래도 야심은 있다고 하였을 것이다. 장강의 뒷물결은 언제나 앞 물결을 밀어내기 마련이니까.”

“…예?”

“한데 제 형제자매를 두려워하고 조카들을 괄시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했다.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는 녀석에게 어찌 산서상인의 미래를 맡기겠느냐? 하기야 너는 어릴 적부터 그랬지, 당과가 양손에 주어져도 동생들에게 나눠줄 줄 모르는 위인이었어.”

“……그, 그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소장주의 역할을 맡기면 네 녀석의 그릇이 넓어지려나 했으나 내 오늘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외조부는 큰 외숙부의 허리춤에서 떼어낸 물품 중 태원상단 부단주의 직인을 윤영 숙부에게 던지시더니.

“소장주가 관장하던 상단의 일은 안민당주가 볼 것이고, 이가장의 일은 내 직접 챙길 것이나 용운이 녀석을 통할 것이니 그리들 알 거라.”

다시금 전각을 향해 몸을 돌리시며 축객령을 내리셨다.

“알아들었으면 금총관과 정무학관에서 오신 객들만 남고 다들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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