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쥐를 잡자 (4)
이권영을 누가 감시할 것인지 장고를 하시던 외조부는 노삼 교수님에게도 생각을 구했다.
“…용운이가 적임인 것 같기는 한데. 노대협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이 거지의 짧은 생각으로도 제가 데려온 아이들이 적임인 것 같습니다. 용운이 녀석이 말했듯 우가 녀석은 경신술에 일가견이 있고, 다른 녀석들도 저래 봬도 솜털도 덜 가신 나이에 절정을 넘보는 기재들입니다. 용운이 녀석은 이미 절정의 반열에 들어섰고요.”
한데, 노삼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또다시 외조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버렸다.
“약관에 절정이라! 가만있자, 금 총관?”
“예. 장주님.”
“자네가 저 나이 때 무위가 어느 정도였지?”
“저도 나이가 제법 들어 기억이 가물거립니다만, 간신히 고수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용운이는 절정이라는 구만?”
“감축드립니다, 장주님.”
“허허허. 내 자리를 보전하기 전에 용운이 네 소식을 듣긴 했으나, 근 이십 년간 들어오던 소식과 완전히 딴판이라 뭔 일인가 하고 말았는데, 이제보니 그 코딱지 같은 언가장과 언서방 그 미련퉁이 같은 녀석 밑에서 나오면서 꽃을 피웠구나! 물 만난 고기가 되었어!”
그런 외조부의 음성에.
용명이 녀석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코딱지?’ 소리를 했고,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는 정현과 우소릉이 동시에 ‘미련퉁이?’ 같은 소리를 했는데.
이 와중에 노삼 교수님과 허리춤의 사부님도 한마디씩을 보탰다.
“허험. 이 경우엔 구체적으로는 저희 정무학관이, 더 구체적으로는 청죽관이 그 물이라 할 것입니다.”
- 용운이가 고기면 내가 물이지, 지렁이 같은 장법, 그것도 몇 수 꼼쳐 놓은 그지 새끼가 말은 잘하는구나.
그건 배우려면 제가 거지가 되어야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뭐, 아무튼.
그 바람에 또 한 번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하나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나와 동기들의 무위가 어지간한 견붕대의 무사들을 웃돈다는 것을 확인한 외조부께서 곧바로 중심을 잡으시며 우리가 막내 외숙부를 감시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좋다. 용운이 너와 동무들이 권영이를 담당하는 것으로 하자. 단….”
물론 단서가 붙긴 했다.
“…무엇보다도 너와 네 동무의 안전을 우선토록 하거라. 본디 이가장 같이 곳간이 가득한 곳에는 쥐들이 있기 마련이다. 언제나 있던 쥐를 잡자고 보옥을 잃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느냐?”
“예.”
“정말로 알아들었느냐?”
“일이 위험해질 거 같으면 몸을 빼라는 말씀 아니십니까?”
“더해서, 혹여 쥐가 너를 물려 한다면 때려잡아도 좋다는 말이다.”
한데, 그 단서가 제법 서슬이 퍼런 구석이 있어서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혐의일 뿐이고, 아들들의 일이기도 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외조부의 말을 직역하면 막내 외숙부가 마교와 내통한 사람이라면, 유사시에 목숨을 거두어도 좋다는 말이었다.
그런 외조부의 말은 단순히 나를 아끼는 마음이나 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넘어 내 강단을 시험에 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본래부터 그런 상황에서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
이권영이든 누구든 단순한 내통을 넘어 나를 죽이려 든다면 참을 이유가 없지.
“예. 이해했습니다.”
하여 단호한 음성을 뱉어낼 수 있었고, 내 대답에 외조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냐. 하면 권영이 녀석은 용운이 네가 맡기로 하자. 금 총관은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내어주게.”
그렇게 외조부의 허락을 받은 우리는 외조부의 침소에서 나와 금 총관의 뒤를 따라 후원의 별채로 이동했다.
“장주님께서 이가장 내의 일을 용운 도련님을 통하겠다고 하셔서, 객관에 있던 짐들을 후원의 별채에 옮겨 두었습니다. 임의로 옮기긴 하였으나 열어보지는 않았으니….”
“예. 안 그러셨겠죠. 저는 금 총관님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보아하니 잠행복들은 있으신 것 같은데, 다른 물품은 무엇을 준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만한 장원을 관리하려면 건물 관리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예. 시설의록(施設儀錄)이라는 책권을 만들어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올해 쓰인 것과 천리향(千里香)을 좀 부탁합니다.”
“예. 바로 준비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당도한 별채에서 잠시 금 총관이 요청한 물품을 가져다주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동기들은 저마다 잠행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한데, 그러는 중에 정현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기백이 대단하시더군요. 두 분 언소협의 심지가 어디서 왔는지 엿본 것 같습니다.”
“누구? 외조부님?”
“예. 빈도는 상계의 사정을 일푼어치도 모르지만, 산서금붕이라는 이름을 어찌 얻으셨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쥐가 물려고 하면 때려잡아도 좋다는 말씀에선 괄골요독(刮骨療毒)의 의지가 느껴지시더군요. 가히 관제(關帝)의 고장을 호령하시는 분답습니다.”
괄골요독은 뼈를 긁어내 독을 치료한다는 말로, 정현이 관제라 부르는 관우의 일화에서 기인한 말이었는데.
관우의 고향인 이곳 산서에서는 그 양반이 상인들을 도와주는 재신으로 통하는지라 묘하게 말이 맞았다.
하여, 고개를 주억이고 있으니.
천장호가 나를 빤히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뭐. 왜.”
“소신 발언 한마디만 해도 됩니까?”
“언제는 물어보고 했냐? 그런 적 없는 거 같은데?”
“이 집에서 막말한다고 하도 교수님한테 차여서 이번에는 먼저 물어봤습니다.”
“뭔데, 소신 발언이라는거 어디 해봐.”
“저는 좀 무섭던데요? 그 소장주라는 양반의 허리춤에서 직인이랑 패를 뜯을 때도 그렇고, 방금 마지막에 눈을 매처럼 뜨시면서 하신 말씀도 그렇고. 무공을 전혀 모르는 영감님 때문에 하반신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다니까요?”
“에이. 언형을 보실 때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시던데요? 근데 묘하게 언형의 아버님이신 언가주님께 박한 느낌이 있으시던데 제 기분 탓일까요?”
“빈도가 느끼기도 그런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용명이 녀석의 입이 열렸는데.
“그건 어머님과 아버님이 혼인하시는 과정에서 약간의 비사가 좀 있어 그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정현, 우소릉, 천장호의 기가 동시에 쫑긋했다.
하기야 이런 이야기가 재밌는 이야기기는 하지.
빙의자인 나도 금시초문인 이야기라 사실 궁금하긴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문밖에서 금 총관이 기척을 내왔고.
“도련님. 금 총관입니다.”
옆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제갈설지도 기척을 내왔다.
“용운 님? 저는 다 갈아입었어요.”
나는 짝- 하고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한 뒤.
“자자.”
금 총관과 제갈설지를 안으로 들였다.
“비사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두 사람은 들어들 오시오.”
* * *
“제갈 소저는 이 책에서 최근에 중축한 건물 중 수상한 곳이 있는지 살펴본 다음에 와주시오.”
나는 금 총관이 가져다준 두 가지 물건 중 시설의록이라는 책은 제갈설지에게 넘긴 뒤.
“우리는 먼저 가서 제세당의 동향을 살피고 있겠소.”
남은 녀석들을 이끌고 막내 외숙부가 기거하는 제세당에 진을 쳤는데.
용명이 녀석과 소릉이 녀석을 시켜 외조부의 예상대로 이권영이 오늘은 제세당을 비우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있으니.
[숙모님은 안채에 계십니다.]
[언형의 막내 외숙부님은 별채에 계시네요.]
어느 순간.
시커먼 잠행복으로 갈아입은 제갈설지가 표표한 걸음으로 내가 있는 지붕으로 건너와 전음을 건넸다.
[용운 님. 여기 보시면 근래 들어 빈객들이 많아져서 소장주전과 제세당은 측간 그리고 부엌을 증축한 것으로 나와 있네요?]
[제갈 소저는 그 사실을 후원의 외조부님께 알려서 소장주전을 감시하는 사람들도 확인할 수 있게 하시오. 나는 이쪽을 확인해 보겠소.]
[예.]
그렇게 제갈설지를 돌려보낸 나는 지붕에서 내려와 천장호와 정현을 불러들인 뒤 우리만 들을 수 있는 은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집의 측간이랑 부뚜막이 근래에 고친 흔적이 있단다.”
그런 내 말에 천장호는 짐짓 볼멘소리를 내왔는데.
“이 형님이 저번엔 독을 먹이시더니, 이번에는 똥간을 뒤지라고 하시네?”
그런 게 통하지 않는 것을 아는 정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더니 곧바로 걸음을 틀었다.
“빈도가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부뚜막 방향이었다.
그에 천장호가 아차 하더니 번개같이 정현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 도사가 은근슬쩍 나를 똥간으로 보내려고 하네?”
“…급히 걸음을 돌리다 보니 그리되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됐고. 양심이 있으면 석두전도보로 합시다.”
그렇게 단판의 가위바위보가 오갔는데.
“남자는 석두! 석두전도보!”
“……!”
남자는 석두를 외치고 가위를 낸 천장호에게 보자기를 낸 정현이 패하며 측간행이 결정되었다.
“하늘이 이 거지를 버리지 않으시는군.”
“…워, 원시천존.”
한데, 여기서 반전은 증축된 측간 중 한 칸이 정말로 비밀통로였기에.
발판을 치우고 나니 깔끔한 길이 나와서 정현은 깔끔한 상태로 돌아왔고.
부뚜막을 뒤진 천장호는 숯이 잔뜩 묻은 검댕이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도입니다.”
* * *
그렇게 외조부님이 깨어나신 첫날 밤은 외조부와 금 총관만 알고 있는 비밀통로 말고도 밖으로 통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끝이 났다.
그리고 밝아온 다음날 아침.
외조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소릉이 녀석과 함께 옷을 갈아입고 후원으로 이동하니.
외숙부들이 한 분씩 후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님, 권영입니다. 안사람이 미음을 좀 쒔습니다.”
한데, 가장 먼저 후원을 찾아온 사람이 의외로 이권영이었다.
그런 이권영의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내둘러 오셨다.
- 지금 용운이 네가 가장 의심하는 자가 바로 저자 아니냐?
‘예. 비밀통로야 안에서 나가기도 하지만 밖에서 사람을 들여보낼 수도 있고, 그간 집안의 일은 큰 외숙부가 다 보셨으니 그쪽이 뚫었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제 촉은 저 양반인 거 같습니다.’
- 흠. 네 촉이 맞다면 지금 저게 제 아비가 죽기 전에 마지막 힘을 낸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음까지 끓여서 왔다는 건데, 그게 사람이냐?
사람 아니죠.
그래서 저도 거친 방법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려고요.
나는 이권영이 침소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소릉이 녀석을 불렀다. 그리고 천리향을 건네며 전음을 보냈다.
[이거 받아.]
[천리향이 담긴 함이네요?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천리향은 이름처럼 향이 천 리를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라 놓으면 미세한 향이 수십 리까지 나는 향으로 지금 같이 누군가를 감시하는 상황에서 대상에게 사용하면 딱이었다.
[막내 외숙부가 나오면 내가 은근슬쩍 다리를 걸 테니, 그때 네가 부축하는 척 연기하면서 이걸 묻혀.]
[근데 제가 연기는 자신이 좀….]
소릉이 녀석은 할 말이 남은 듯했지만, 더는 이야기를 나눌 새가 없었다.
덜크덕-
문이 열리며 이권영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릉이 녀석의 전음을 무시하며 자연스럽게 이권영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그릇은 제가 치워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비영파천보를 응용해 은근슬쩍 다리를 걸었다.
그에 이권영의 균형이 단박에 무너졌는데.
“어엇?!”
그 바람에 공중으로 던져진 쟁반과 그릇을 내가 탁탁 받아내는 사이.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어색한 말투와 그런 말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손놀림으로 이권영의 목 뒤에 천리향을 찍는 소릉이 녀석이 보였다.
그렇게 천리향 묻히기는 성공했고.
“에잉!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도와드린다는 게 그만. 여기 그릇이랑 쟁반입니다.”
“됐다! 네 녀석의 살림에 보태 쓰든지 버리든지 하거라!”
이권영은 옷소매를 털며 후원을 나갔다.
‘내 촉이 맞다면 저 천리향이 마교놈들이 산서성에 차린 소굴로 우리를 안내해 주겠지.’
뭐, 이후로는 큰 외숙부가 와서 빌다가 쫓겨났고.
“아버님,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꼴도 보기 싫다 하지 않았더냐. 처소에서 근신하고 있어도 부아가 치밀 것 같은데, 화를 돋우고 싶은 것이냐?!”
다음으론 졸지에 소장주의 역할을 대리하게 된 윤영 숙부는 이권영처럼 죽을 들고 왔다가.
“윤영숙부도 죽을 가져오셨군요? 막내 외숙이 먼저 들고 왔다 갔습니다.”
내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좀 늦었구나. 그래도 아버님이 본디 음식에 식초를 듬뿍 친 것을 좋아하시는데, 이 미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기왕지사 들고 온 거 한술 더 뜨실지도 모르니 가지고 가봐야겠다.”
“예. 그러고 보니 아까랑 달리 이번에는 좀 새콤한 냄새가 나네요.”
“그리고 본래 아버님의 생신연에 사람들이 각지에서 왔다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형님이랑 권영이가 다투는 바람에 영 모양이 이상하게 됐는데. 이참에 쾌차하신 것을 겸해서 더 큰 잔치를 할까 한다.”
“잔치요?”
“그래. 들어가서 따로 허락을 받겠지만, 아버님이 장원의 일은 너를 통한다고 하셨으니 내 네게는 미리 말해주마.”
애초에 외조부의 뜻이 자신이 건재함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영숙부의 생각은 그런 외조부의 뜻과 맞았다.
하여, 귀띔해준 쾌차연은 곧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야, 이놈들아! 차양막이 반대로 되었잖느냐?! 똑바로 펴라, 똑바로! 엇! 행화촌의 촌장님 아니십니까?”
“예. 산서금붕 어르신께서 쾌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빚은 분주(汾酒) 중에 으뜸인 녀석들만 골라 수레에 실어 왔습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덕분에 이가장이 정신없이 바빠진 상황에서.
한줄기 천리향을 남기며 이권영이 은밀히 장원을 나갔는데.
“가자.”
나와 동기들은 그 걸음을 은밀히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