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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50화 (150/444)

제150화. 사람 잘못 봤어 (1)

풍수지리의 풍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산세가 빼어남을 알 수 있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번듯한 전각.

드그극-

어지간한 장원의 사랑채도 감히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팔작지붕과 화려한 공포.

그 아래 자리한 거대한 문에는 이(李)자가 붕새 모양으로 상형(象形)이 되어 있었는데.

그 문 뒤의 제실(祭室) 안에서.

드그그르륵-

뱀가면을 쓴 사내가 벽조목(霹棗木)으로 이루어진 굵직한 주사위 두 개를 손아귀 안에서 거칠게 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산서금붕이 정말 기운을 차렸단 말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내의 이름은 곽사홍.

천마신교의 호교법왕 중 한 명인 역천괴마 구천서의 막내 제자이자, 다른 교인들은 귀도마군(鬼賭魔君)이라 부르는 사내였다.

“그럼 연환고목(連環蠱木)의 저주가 깨졌다는 것인데?”

별호에 내기 도(賭)자가 괜히 박힌 것이 아닌지라, 곽사홍의 성정은 도박사의 기질이 다분했다.

표정 관리에 능했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죽마고우처럼 굴 줄도 알았으며, 천한 자들도 스스럼이 없는 듯 대했다.

그런 성정을 바탕으로 돈이든 무엇이든 한참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도 허허 웃을 수 있는 사내가 바로 곽사홍이었다.

하나, 그것은 판의 끝에선 자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었다.

수가 틀려버린 판국에서는 마인(魔人)이라는 본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사내가 바로 귀도마군 곽사홍이었다.

하여, 이 순간 곽사홍의 성정을 익히 아는 기존의 교인들은 바짝 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마저 참고 있었는데.

“…….”

어제까지는 이가장의 행랑채에서 먹고 잤으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앞마당을 쓸었던 칠복이라는 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이가장 소식을 들려주면 돈푼을 쥐여주는 점쟁이 정도로 생각한 칠복은 은자 몇 개가 더 넘어오기를 기대하며 목청을 높였다.

“염병고물의 저주인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아무튼 어르신께서는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오늘 아침나절엔 죽을 두 그릇이나 비웠답디다!”

그런 칠복에게 돌아온 것은 기대하던 은자가 아니라 검붉은 아지랑이가 감긴 주사위였다.

쌔애애애액!!

“컥?!”

그렇게 곽사홍이 칠복의 입을 영원히 열리지 않도록 만들자.

늘어선 교인 중 기도로 치면 곽사홍보다도 더 강맹한 노인이 다른 교인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이놈은 치우고. 모두 나가 있어라.”

그 턱짓에.

다른 교인들이 밖으로 나가자.

노인은 곽사홍을 향해 읍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 참으로 외람되오나 이가장을 온전히 꿀꺽하는 것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노인은 통칭 경 노야라 불리는 사내로 괴왕부의 내사(內使)였는데.

내사라는 직위의 위치를 백도무림의 것으로 치면?

어디보자, 당장의 무위보다 훗날 천마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에게 높은 지위를 주는 천마신교의 특성상 백도무림의 그것과 격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 한 문파의 장로 배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하여 이번에는 아지랑이가 감긴 주사위가 날아오는 대신 곽사홍의 입이 열렸다.

“경 노야. 내가 그걸 모를 것 같나?”

“하면 어찌 그리 장고를 하고 계십니까? 혹 물러나는 것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럴 리가. 이 일은 물러날 수 없는 일이야.”

“예, 그렇습니다. 이 일은 교주님과 스승님이신 괴마 어르신께서 큰 기대를 걸고 계신 일이고, 공자님께서 진주언가의 비급을 빼내신 공으로 다른 제자분께 갈 기회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 기회를 날렸다간 단순한 질책으로 끝이 나지 않을….”

“그것도 알아. 노야나 나나 독이 바짝 오른 사저의 장난감이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이 되겠지.”

“알고 계시는군요. 이 늙은이가 노파심에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알다마다. 단순히 노야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를 위해서도 퇴각은 불가능해. 정파 놈들도 정확히는 몰라도 슬슬 우리의 움직임 정도는 눈치를 챘을 거야.”

“그럴 것입니다. 하남의 검속이 매우 살벌해졌으니까요.”

“그렇다면 이길환이라는 노인네를 죽여 없애고, 이가장의 금고라도 털어 재물이라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겠지, 그럼 산서가 엉망이 될 것이고 천하도 혼란에 빠지겠지.”

“참으로 옳은 생각이십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뿐일 것입니다.”

“그래. 그러기 위해서 저쪽이 가진 패를 잠시 가늠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때였다.

그렇게 곽사홍과 경 노야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그때.

밖으로 나갔던 교인 중 한 명이 기별을 해왔다.

“공자님. 제세당주가 찾아왔습니다.”

그에 의자에서 몸을 뗀 곽사홍이 밖을 향해 입을 열었고.

“안으로 모셔라.”

피풍의를 뒤집어쓰고 제실 안으로 들어온 이권영이 코를 싸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윽? 제실에서 어째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그에 곽사홍이 장내에 피 냄새가 감도는 이유를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일에 갑자기 마가 껴서 미물을 잡아 점을 좀 쳤소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이권영은 코를 싸쥐고 있던 손을 떼고 곽사홍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말 참 잘했소! 일에 마가 아주 단단히 꼈소! 내 당신들을 믿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우리를 믿은 게 아니라 내 방술의 위력을 직접 보고 믿은 거 아닌가? 우리 몰래 점쟁이를 불러다 몰래 확인까지 하셨다가 불쌍한 점쟁이만 죽어 나가게 하신 분이 누구시더라?”

“아무튼!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이권영도 나름대로 상계에서 구른 자였기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그렇게 운을 뗐을 뿐.

이 판국에 자잘한 잘잘못을 따지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이오? 신교는 다른 복안도 세워 두었겠지?”

“이렇게 된 이상 진짜 힘을 빌려드리지.”

“진짜 힘이라면?”

“문자 그대로 진짜 힘. 고수들을 붙여줄 테니, 이권영 당신의 면을 팔아 붕성을 통과시키오 이후로는 여기 경노야가 알아서 할 것이오. 그렇게 잔치 준비가 한창이던 이가장이 생지옥이 되는 동안, 이 당주는 안팎의 수장고(收藏庫)에 있는 보물과 지하에 있다는 금은을 빼내는 것을 도와주면 되겠소.”

“…어. 그 말은?”

“말이 어렵나? 산서금붕을 시해할 것이오.”

“그,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자는 거요?”

“어차피 아비를 죽이려 우리 손을 잡으셨으면서, 그런 표정은 너무 새삼스럽소만?”

“그, 그래도 이건 방법이 너무 과격….”

“이봐, 이권영. 이건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야.”

“……!”

“당신 앞에 놓인 선택지는 내 말에 순순히 따라 신교에서 호의호식을 하던지, 아니면 그렇게 증오하던 서자 놈이 승승장구 하는 것을 여기 핏자국을 남긴 미물처럼 저승에 가서 구경….”

그때였다.

이권영을 한창 겁박하던 곽사홍은 자욱한 혈향 사이에서 일순 미세한 향을 잡아냈다.

“음? 잠깐만. 피 냄새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당신 목에서 천리향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설마 멍청하게 꼬리를 달고 온 것인가?”

그런 곽사홍의 말에 이권영은 우선 펄쩍 뛰었는데.

“그럴 리가! 내 가장 어수선한 틈을 타서 나왔소! 그리고 근래 내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없소! 심지어 부인의 손도….”

생각해보니 아침에 누군가와 부딪힌 기억이 있기는 했다.

“아?! 아침나절에 용운이 그 녀석이랑 부딪혔는데 설마 그 녀석이?”

그렇게 이권영의 입에서 새어 나온 기억에.

곽사홍의 입이 급히 열렸다.

“용운이? 언용운? 진주언가의 망나니를 말하는 건가? 당신 외조카?”

“맞소!”

이어서 이권영의 입이 계속해서 뭐라 뭐라 말을 쏟아 냈지만.

“아침나절에 그 녀석이랑 부딪혔었는데, 어쩐지 녀석이 갑자기 그릇을 들어준다 어쩐다….”

미간을 좁힌 곽사홍의 생각의 초점은 완전히 언용운에게 향했다.

‘일을 누가 어그러 뜨렸나 했더니 언용운이었나?’

망나니 놈이 어찌 수석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대략 알아본 뒤로, 신경 쓸 필요가 없겠다 싶어 안중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는데.

그러고 보니 그놈도 지금 이가장에 들어가 있었다.

‘…그 망나니 놈이 제 가문의 비급을 찾으려고 나를 쫓다가 어찌어찌 주운 실마리를 기반으로 이번 일을 훼방 놓은 건가?’

기실 앞뒤가 딱 들어맞지는 않는 추론이었으나.

‘그러고 보니 무당의 도사도 일행 중에 있었고, 언용운 그놈도 상단전이 트인 체질이긴 했지?’

곽사홍의 뇌리에는 교주와 사부인 역천괴마 그리고 조금 맛이 간 사저가 있었기에 마음에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곽사홍이 직접 확인한 언용운은 너무도 하찮은 자였다.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도 있던 것을 살려두면 정파놈들의 얼굴에 두고두고 똥칠을 해줄 것 같아서 일부러 살려뒀을 뿐인 놈.’

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이 되었고, 그런 해석은 웃음이 되어 터져 나왔다.

“크큭큭큭. 언용운이 그놈이었구나! 이가장에 내가 모르는 패라도 숨겨져 있는 줄 알았더니 고작 그놈이었어! 고민한 시간이 아깝군. 그놈이라면 계산이 선다! 경 노야!”

“예. 공자님.”

“지금 잠폭환(潛爆丸)을 받고 입교한 마군졸이 몇이나 있지?”

“얼마 전에 일개 대를 교단으로 보내서 현재 마기를 견뎌내고 입교해온 자들이 일백, 오늘 아침에 마기를 받아들인 자가 다섯 있습니다.”

“경 노야가 모조리 이끌고 가도록 해. 여기 이 당주랑 함께가서 다섯 놈 쪽은 폭주시켜서 오방(五方)에 풀어놓고, 나머지 놈들과 함께 산서금붕의 목을 비틀도록 해. 나는 이 당주를 따라온 녀석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해가 질 즈음 지원을 하러 가지.”

“듣자하니 이곳의 위치가 발각이 된 듯 합니다만, 그리하여도 괜찮겠습니까?”

“그만큼 몰려가면 보통 몰려가는 군세를 쫓겠지, 내 예상대로 언용운이 놈이 따라온 것이라면 남아 있겠지만. 그 놈은 별거 아닌 놈이야.”

“그렇습니까?”

“하북에서 직접 확인을 했지만, 경노야가 산서에 오기 전에 내가 한번 더 확인했으니 틀림없지. 나는 여기 이 당주처럼 신교에 투신을 해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어.”

“호오. 정무학관 내에 간자를 넣는 일은 다른 왕부에서 신중히 추진중인 일이라 알고 있는데. 그자가 넘어온다면 큰 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야는 이가장에 집중을 해 아비규환을 만들어서 저쪽의 주전력인 노삼이나 금 총관을 묶어두기만 하면 돼.”

* * *

나와 동기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천리향이 이끄는 대로 이권영의 뒤를 몰래 밟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가장 밖이 아니라 태원성 밖에 있는 산이었는데.

울타리가 처져 있는 산의 초입에 이르자 용명이 녀석이 헛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외가의 선산입니다.”

그런 용명이 녀석의 말에 천장호 녀석이 나를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용운형? 잘못 짚은 거 아니요? 그냥 조상님들께 향 피우러 오신 거라거나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천장호를 향해 제갈설지가 바보냐는 듯이 입을 열었고.

“이 시점에요? 그것도 뒷간에 몰래 뚫어놓은 길을 통해서?”

소릉이 녀석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완전 이상한데요?”

나는 그런 녀석들의 말에 애초에 산서행이 결정된 이유를 보탰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맨 처음 산서행 대민지원 이야기가 나온 게 맹주님과의 면담 자리였다. 그때 말씀하시길, 외가의 선산이 도굴을 당했는데 막상 잃어버린 물건이 없었다고 이야기하셨지, 아무래도 여기가 이번 일을 꾸민 놈들의 소굴인 것 같다.”

그런 내 말에 정현이 고개를 주억이고 나섰고.

“최초에 도굴 사건을 조사하고 넘어가면서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벗어났겠군요. 본디 선산이라는 게 특정한 때가 아니면 찾지도 않는 데다가, 이곳 사람들이 산서금붕 어르신을 존경하는 것을 보면 금역 중의 금역으로 통했을 테니.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두움을 이용한 모양입니다.”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는 헛웃음을 지어 보이셨는데.

- 허허허. 네 막내 외숙이라는 자는 파면 팔수록 정신 나간 위인이로구나. 아비를 해하려는 자들을 선산에 들여?

‘제정신인 사람은 애초에 아버지한테 저주를 걸지를 않죠.’

- 그건 또 그렇구나.

그러고 있는 사이.

멀찍이서 무사들이 집합을 하는 듯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이번 이가장 공격에서 공을 세우면, 우리가 받은 영단은 상대도 안 되는 신공절학을 익히게 해준다지?!”

“평생 산적 졸개나 하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일류가 되고도 더 강해질 수 있다니. 내 꼭 공을 세워서 날 학대한 채주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 줄 테다!”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수십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소릉이 녀석을 이가장으로 출발시켰다.

[소릉아. 지금 당장. 이가장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네! 언형!]

그리고 천장호도 개방의 산서분타로 보냈다.

[천장호 너는 개방의 분타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해. 계속 불어나는 게 팔십 명, 아니 백 명은 될 거 같다.]

[알았수.]

그러자마자 인기척이 이쪽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해서.

‘엎드려!’

남은 넷이 인기척을 완벽히 죽이고 있으니.

‘숨죽이고!’

이권영과 사람깨나 잡아본 듯한 노인이 백여 명에 달하는 무리를 이끌고 이가장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놈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걸 어떻게 쳐야 잘 쳤다고 소문이 날까를 고민했다.

‘지금 치는 건 위험해. 수도 수지만 맨 앞의 노인네는 진짜 보통이 아닌데?’

그런데 이때.

선산 위쪽에서 일부러 자박거리는 발걸음을 내며 걸음을 옮겨오는 또 하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운 손님이 오신 거 같은데.”

한데 이번 인기척은 어째선지 알은 척을 해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나를 콕 집으며 고래고래 입을 열었다.

“여기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는 거 다 안다! 언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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