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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51화 (151/444)

제151화. 사람 잘못 봤어 (2)

산중에서 또렷이 울리는 내 이름에 함께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들 전음조차 사리며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지만.

‘저자가 언 소협을 찾고 있습니다.’

정현의 또렷한 눈동자는 말 그대로 어찌하면 좋겠는지 물어오는 듯했고.

‘용운 님?’

제갈설지는 뱀가면이 나를 어찌 아는 것인지 묻는듯했다.

마지막으로 용명이 녀석은….

‘…형님?’

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는 말 취소.

‘용명이 이 녀석은 모르겠네.’

눈동자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길래, 순간적으로 막내 숙부처럼 저쪽으로 넘어갔는지 묻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런 와중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오셨다.

- ‘그리운 손님’이면 용운이 너와 면식이 있다는 것 아니냐?

‘…….’

- 그나저나 저 녀석의 혼백에 말라붙은 피 냄새가 여간 지독한 게 아니구나. 조금 전에 지나간 노인도 그랬지만, 그 노인은 나이가 많으니 그렇다 쳐도, 저 뱀가면을 쓴 놈은 아직 이립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 저리 피를 뒤집어썼을꼬? 용운이 너는 어찌 저자와 어찌 면식이 있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물음들에 속 시원히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놈이라 돌려줄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데?’

나는 미간을 좁히며 뱀가면에 대해 짐작을 해보았다.

‘이 와중에 저쪽은 나를 안다는 것은 전(前) 용운이 놈을 안다는 거고. 그 녀석이 마교랑 얽힐 일은….’

내가 이 녀석의 몸을 차지하게 되면서, 지금 시점에 마교와 얽혔을 사건은 하나뿐이었다.

‘진주언가의 비급을 빼낸 놈인가?’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쳐 가자, 이쪽이 잠자코 있는 게 답답했던 모양인지.

“내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느냐? 하기야 그날 좀 많이 얻어터지기는 했지.”

저쪽이 딸각 하고 뱀가면을 벗어내며 입을 열더니.

“아! 혹시 이렇게 하면 기억이 나려나?”

그리고 비굴한 목소리를 과장되게 흉내 내며 짐작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공자님! 너무 따가시는 거 아니십니까요? 청해에서 온 가난한 책쾌를 불쌍히 여겨, 여비는 좀 남겨 주십시오! 곽가놈이 이렇게 빕니다요오! 큭큭큭! 내가 이렇게 살살 긁어주니까 본인이 호구를 잡힌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판돈을 올려 대더니, 나중에 가문의 비급까지 가져다 바치지 않았나?”

“…….”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으니 밝히도록 하마. 나는 천마신교 괴왕부의 막내 제자인 곽사홍이다. 너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에게 털린 것이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런 뱀가면, 아니 곽사홍의 음성에.

조금 전 내게 물음을 던져왔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 용운 님.’

‘…혀, 형님?!’

‘…저런 천인공노할 자를!’

- 저 녀석이 네가 진주언가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녀석인가 보구나. 어쩐지 네 녀석답지 않게 저런 놈이 주둥이를 털어대는 걸 가만히 듣고 있더니….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언용운이 마교에 진주언가의 비급을 빼앗긴 일은 원작의 뒤편에서 진행되었던 이야기다.

하여, 그렇게 빼앗긴 비급이 역천괴마(逆天怪魔) 구천서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사실만 알았지.

정작 눈앞의 뱀가면이 그래서 누군지는 알 길이 없었는데.

‘막연히 마두겠거니 할 뿐이었는데 본인이 신원 확인을 해줬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알맹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할 테니.

놈은 전(前) 용운이 녀석과 내가 동일인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녀석이야 나도 꾸준히 답이 없다고 생각한 놈이었다.

‘그 녀석을 직접 털어먹은 저 곽사홍이라는 놈은 내가 하찮게만 여겨지겠지.’

나아가 다시금 호구를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있을지도 몰랐다.

‘근데 사람 잘못 봤어.’

뒤편에는 이가장을 치러가는 군세가 있고.

앞편에는 마두 놈이 튀어나와 일종의 진퇴양난에 빠졌는지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됐는데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곽사홍. 역천괴마의 셋째 제자이자, 강시술사.’

녀석과 내 능력은 완전한 상하 관계에 있었다.

* * *

원작에서 곽사홍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때는 역천괴마의 강시군단이 중원 침공을 시작할 때였다.

그가 이끄는 강시군단은 백도무림의 합종군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혔기에, 곽사홍은 상당한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무위만 놓고 보면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다.’

어쨌거나 주인공 세대의 합공에 죽었으니까.

그렇게 죽은 곽사홍은 자신의 사저에 의해 강시가 되어 다시 등장하기에 저 이름과 행보가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물론 당시에 합공에 가담한 녀석은 다섯 명이었고, 이쪽은 네 명이긴 했지만.’

그 시점이 지금보다 나중이고, 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마공이 내력과 무위가 훨씬 빠르게 상승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원작과 달리 나도 있고.’

하여 나는 당장 진퇴에 관한 결정을 내렸는데.

‘…정현, 용명이, 제갈설지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곽사홍부터 공격한다.’

내 입이 떨어지기 전에 용명이 녀석의 눈이 이글거리더니.

“역시 그랬었어. 지금까지 형님 혼자 저자들과….”

말릴 새도 없이 자리를 떨치고 나갔다.

“이 마두 놈아!”

그리고 곽사홍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내 오늘 네 녀석을 엄벌에 처하고 형님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고.

안 그래도 공격을 하려고 하긴 했었다.

‘참나. 근데 이 와중에 쳐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엄벌에 처한다네.’

하지만 언용명의 행동은 분명히 개인행동이었다.

‘이놈 새끼. 나중에 혼 좀 내야겠네.’

뭐, 아무튼.

혼을 낼 때 내더라도 보고만 있을 새는 없었다.

검을 뽑지도 않고 집째 들어 용명이 녀석의 일권을 손쉽게 막아낸 곽사홍이.

쾅!!!

이윽고 스렁- 하고 검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음? 동생 쪽인가?”

그렇게 검을 뽑아든 곽사홍은 용명이 녀석을 향해 매섭게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쪽 형님을 호구 잡아준 덕분에 진주언가를 물려받게 되었으면 십만대산 방면으로 매일 아침 절을 해도 모자람이 있다 할 것인데, 왜 그리 화가 나셨는가?”

“닥쳐라!”

반면 용명이 녀석의 머리는 너무 뜨거워 보였다.

‘살려야 한다.’

나는 빠르게 회한을 잡아뽑으며 양옆의 사람을 채근했다.

“정현! 제갈소저!”

그리고 동시에 비영파천보를 시전하며 땅을 박찼다.

그런 내 말에 정현과 제갈설지도 각각 제운종과 백학보를 시전하며 나를 기준으로 삼각형의 대형을 만들며 단숨에 곽사홍과의 거리를 좁혔다.

쌔애애애액!!!

그렇게 세 방향에서 짓쳐 드는 검에 곽사홍의 검이 급격하게 수세로 전환되었다.

챙! 채채챙!!

그렇게 곽사홍이 수세로 접어드는 것을 확인한 나는, 급히 방향을 꺾어 용명이 녀석의 덜미를 잡아챘다.

채앵!

채애앵!!

그러는 사이 정현과 제갈설지의 검을 튕겨낸 곽사홍은 짐짓 여유가 있다는 듯 검을 멈추더니.

“워. 내가 알던 언용운이 맞나? 괄목상대라더니, 기도가 눈부시게 바뀌긴 했구만.”

산책하듯 자신이 걸어 내려온 산등성이 쪽으로 몇 걸음 물리며 입꼬리를 비실거렸다.

“네놈한테 그딴 칭찬 듣고 싶지 않다.”

잠시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비실거리는 곽사홍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나는 곧바로 용명이 녀석의 뺨을 후려쳤다.

짝-

그리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신 차려 언용명.”

“……!”

그에 용명이 녀석이 눈을 번쩍 떠 오는 이때.

곽사홍이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이며 혀를 차고 나섰다.

“너희 형제와 친구 두 명? 쯧쯧쯧. 정신 좀 차린다고 겨우 넷이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러지 말고 내가 기회를 줄테니 그 기회를 잡아라 언용운. 네가 진주언가의 비급을 내게 선물해 줬으니, 나도 은혜를 베풀어주마.”

“무슨 기회를 주겠다는 거지?”

“신교에 들어와라. 나와 손을 잡고 그 옆의 놈들을 처단해라,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얄팍한 우정을 떨쳐내고 내 쪽에 붙을 기회를 주마. 어디서 작은 기연을 얻었는지 헌앙해지고, 정무학관에서 가장 구질구질한 기숙사긴 하지만 부회장도 되어 제법 날리는 모양이던데….”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사부님, 저놈 새끼가 사부님보고 작은 기연이라는데요?’

- 내 비록 검마라 불리었을지언정 나름의 도가 있었거늘. 저런 근본도 없는 놈이 내 후인을 자처하다니, 내 육신만 있었어도 직접 무너뜨렸을 놈이로다.

나는 잠시 사부님과 생각을 주고받고 있다가.

“네 녀석의 지위를 이용해 안에서 우리를 도와라. 십만대산에 가면 네가 얻은 기연과 비교할 수 없는 절세신공과….”

곽사홍의 말이 끝나갈 즈음.

귀를 후비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잘난 놈들이 왜 지도에서 고개를 한참이나 좌로 돌려야 되는 청해 끝자락에 처박혀 있냐?”

“……?”

많은 말도 필요 없었다.

“십만대산에서 지은 밥은 모래 맛이 난다지?”

내가 딱 두 마디를 던지자.

“하? 하하하! 언용운 네놈이 죽기 직전까지 맞아서 초주검이 되었던 날을 잊었나 보구나?”

곽사홍은 다시금 검초를 뻗어내 왔다.

“내 그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마. 그 뒤에도 이리 나불댈 수 있나 보자!”

기세 좋게 검을 뻗어온 곽사홍의 검은 나를 단박에 갈라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쌔애애애액!!!

허초와 살초가 절묘하게 섞여지며 매섭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매서움은 나와 제대로 된 일 합을 교환하자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챙!!!

“…교주님의 천마검결?”

곽사홍의 의아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모르지 않았지만.

“…아닌가?”

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파천검법의 초식을 시전하며 검초로 이루어진 격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챙! 채채챙!!

푸른 검기를 흩뿌리며 합세한 정현이 한쪽 방위를 견실하게 막아주며 내가 일으키는 검의 격류가 끊기지 않도록 거들어 주었고.

채앵! 챙챙채앵!

우리가 곽사홍보다 하수이다 보니 발생하는 틈은.

제갈설지가 와룡검 특유의 적재적소라는 말이 어울리는 찌르기를 보이며, 내가 일으킨 격류가 끊이지 않게 메워 주었다.

쌔애액!

챙!!

그리고 여기서 정신을 차린 용명이 녀석도 제대로 몫을 하기 시작했다.

쌔액!

꽝!!

용명이 같은 권사는 검사와의 대결에서 상대의 공격을 무마하며 초근접을 해야 하는 게 숙제였는데.

나, 정현 그리고 제갈설지가 곽사홍의 공격을 무마해주자.

그야말로 우기를 만난 벼락처럼 권장을 뿌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꽝!! 꽝!!!!

콰콰쾅! 쾅!!!

그에 처음에는 산책하듯 물렸던 곽사홍의 걸음이 전에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물리고 물린 걸음이 어느덧 산등성이에 지어진 태원이가의 제실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입술을 짓씹은 곽사홍이 일순 회한에 감긴 기운보다도 훨씬 농도가 진한 기운을 자신의 검에 감아 우리 쪽을 향해 크게 그어냈다.

쌔애애애액!!!

거의 검강에 준하는 위력을 내는 곽사홍의 검이었지만, 본인도 아직 그 기운을 능히 다루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는지.

연격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발성 초식이었고.

그마저도 허초가 없는 정직한 가로베기인지라.

“피해!”

내 고함에 맞춰 능히 피해낼 수 있었기에.

나를 포함해 모두 옷자락을 조금 베였을 뿐 다친 녀석은 없었는데.

- 내력 소모만 심한 쓸데없이 짓을 왜 했을꼬?

그렇게 사부님께서 쓸데없는 짓이라 평한 행동으로 잠깐 시간을 번 곽사홍은 소매에서 주사위 같은 것을 꺼내더니 급히 부쉈다.

콰직-

그러자, 주사위 안에서 실이 달린 시뻘건 방울이 딸랑하고 안에서 나왔다.

곽사홍은 그 방울을 왼 손목에 감아, 일정한 박자로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딸랑-

그러자 이내 곽사홍의 뒤에 있는 제실에서 쾅! 쾅! 하고 관뚜껑을 박차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쾅!!!!!!!!!!!!

제실의 문이 열리며 강시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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