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52화 (152/444)

제152화. 사람 잘못 봤어 (3)

시퍼런 얼굴을 한 강시가 줄줄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며 우수에 들린 사부님께서 한마디 해오셨다.

- 어쩐지 걸음을 자꾸 물리더니, 저런 깜찍한 수를 준비해 뒀구나.

‘그러게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강시를 숨겨 놨네요?

그 모습에 나는 남몰래 입꼬리를 비틀며 강시들의 머릿수를 헤아려 보았다.

‘스무 구.’

하지만 조금 전까지 곽사홍을 밀어붙였던 녀석들은 저마다 경악하며 걸음을 물렸는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용명이 녀석이었다.

“어찌 제실에서 강시들이?! 설마 조상님들의…?”

그런 용명이 녀석의 말에 답을 해주고 있으니.

“그분들은 이미 뼈만 남았지, 저놈들은 살점이 붙어 있다 못해 단단해 보이잖아.”

무당의 심법을 오래 쌓아, 몸에 정순한 내력이 충만한 정현이 강시들이 뿜어내는 사기에 본능적으로 미간을 좁혀왔다.

“사특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한테는 고향의 냄새 같은 느낌인데?

그리고 제갈설지는 튀어나온 강시들이 보편적인 강시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부적이 없는데요? 저게 그 무부강시(無符僵尸)라는 건가요?”

이 부분에 관해선 학관에서 수업으로 배우기도 했고.

또 원작에 저런 강시들이 나온 적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답을 할 수 있었다.

“맞소.”

강시를 전투에 활용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약점을 없애려고 부단히도 노력한다.

종래의 강시들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 술사가 붙여놓은 부적을 떼거나 다른 부적을 위에 덧붙이는 것인데.

‘그 약점을 없애고자 시체의 몸뚱이 어딘가에 부적을 새겨놓은 것이 무부강시지.’

그렇게 제갈설지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는 이때.

사부님께서도 씁- 하는 소리와 함께 질문을 던져 오셨다.

- …하면 네 방술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답은 있죠. 근데 문제가 단순히 강시를 무력화하는 것 뿐 아니라 곽사홍까지 생각해야 하니까. 어떻게 풀이를 할지는 한 가지 확인을 해보고 결정을 해야겠네요.’

그때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조금씩 뒤로 물려보고 있는 그때.

가장 먼저 제실 밖으로 튀어나온 강시가 지척까지 이르더니 콩! 하고 도약함과 동시에 시계 방향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콩! 하고 뛰어오르는 모습 자체는 우스운 희극의 한 장면 같았지만 그걸 보고 웃을 수는 없었다.

쌔애애액!!

강시의 팔은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독기가 서린 듯한 시커먼 손톱 또한 바짝 세워져 있었다.

하여 강시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독이 발린 팽이가 돌면서 다가오는 것과 진배없었다.

백독단을 먹여 놓긴 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혹시 몰랐다.

나는 급히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검사를 휘감은 회한으로 회전하는 강시의 손을 쳐올렸다.

“내가 맡는다! 너희들은 뒤쪽의 양달로 다섯 보씩 물러나!”

한데, 속 시원한 절삭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눈앞의 존재가 사람이거나 그저 방부 처리한 조잡한 강시였다면 댕겅! 하는 소리가 들렸겠지만.

똭!!!!

들려온 것은 장작을 패는 듯한 소리였고, 회한이 남긴 상흔은 도끼로 통나무를 찍은 것처럼 약간의 패임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무부금강시(無符金僵尸).”

강시의 재원을 확인한 나는 뾰족한 이빨로 내 어깨를 물어뜯으려 하는 강시의 팔에서 급히 회한을 거두며 몇 걸음을 뒤로 물려 다른 녀석들이 서 있는 양달에 섰다.

크어!!

햇빛은 강시의 약점이었다.

하여, 아직 해가 완전히 서녘으로 기울지 않았기에, 가지가 정돈된 선산의 수풀 사이로 햇빛이 스미는 양달쪽으로 강시들은 넘어올 수가 없었다.

치이이이익!!

크어어어!

그 틈을 타 조금 전에 꽁지가 빠지게 걸음을 물렸던 곽사홍이 이죽이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호오. 나름대로 언가의 강시종을 복원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던 놈이라 그런가? 꼴에 강시를 알기는 좀 아는구나? 큭큭큭. 하지만 잠깐이다 언용운! 곧 해가 질 것이야. 지금이라도 내 제안을 다시 생각해봐라!”

개소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조만간 끝이니 마음대로 지껄이라는 생각으로 곽사홍을 무시하며, 나는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

‘애들이 없어도 되겠어.’

곽사홍의 무위 수준과 스무 구의 금강시.

두 요소를 면밀이 검토해본 결과 나 혼자 놈을 대적하는 게 가능하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다면 남은 전력은 이가장에 보내는 게 맞았다.

‘뭐, 흑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은 숨길 수 있으면 최대한 숨기는 게 좋기도 하고.’

학관에서 관련 수업을 들었고 좋은 학점도 받았다.

그리고 전(前) 용운이 놈도 강시에 관심이 있던 모양이니 우기려면 우길 수도 있겠지만 강호에서 실력을 감춰서 나쁠 건 없었다.

‘강호에서는 가진 능력의 서푼은 숨기라는 말이 왜 있겠어.’

…그런데 애들이 설득될까?

여기서 문제는 이놈들이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었다.

상황 자체는 중과부적과 진퇴양난이 겹친 상황이니, 내가 막는 동안 너희는 이가장에 가서 사람을 불러오라는 말을 하기가 좋아 보이기는 했다.

‘…제갈설지 녀석은 이성적이라 이렇게만 말해도 내 말에 따라 줄 것 같기는 한데.’

정현이랑 언용명.

문제는 이 두 녀석이었다.

정현은 절대 나를 두고 자리를 이탈할 놈이 아니었다.

오늘 보니 용명이 놈도 비슷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이번에 저주를 해주한 실적이 있으니까.’

나는 다른 녀석들을 향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정현, 언용명, 제갈설지. 너희는 지금 당장 이가장으로 돌아가라.”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내 말에 나름의 반항을 해왔다.

“용운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혹 저희만 도망치라는 말씀이신 겁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꿀밤들을 먹이며 입을 열었다.

“도망이 아니라 임무야. 저만한 강시가 스물이나 나왔으면 분명 힘을 보내는 장소가 있을 거다.”

그런 내 말에 정현과 언용명은 놀라는 티를 내왔다.

“아.”

“그런?!”

하지만 제갈설지는 나를 향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용….”

나는 그런 제갈설지를 향해 잠자코 있으라는 눈빛을 보낸 뒤.

정현과 언용명을 향해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가장 관람을 할 적에 소동물들을 풀어 놓고 키우던 정원의 연못 너머가 당시 금지였는데, 그쪽에 가면 사특한 기운을 내뿜는 기물이 있을 거다. 정현 너라면 느낄 수 있을 거야. 이래 봬도 내가 강시학개론 만점자다. 혼자서라면 버텨낼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버티는 동안 너희가 가서 그걸 없애. 급하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 해.”

* * *

정현, 언용명, 제갈설지.

세 사람이 언용운의 말에 따라 급히 이가장 쪽으로 내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

어느 순간 선두에서 달리던 정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에 언용명과 제갈설지도 걸음을 멈추고 정현을 응시했는데.

“!?”

“?”

정현은 그런 시선에 눈길도 주지 않고, 달려온 길 너머에 있는 태원 이가의 선산 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런 정현의 음성에 언용명이 언성을 높였는데.

“정현도장! 지금 형님께서 마두와 강시들 사이에 혼자 놓인 상황입니다! 이상이든 뭐든 나중에 생각하시고, 형님께서 말한 강시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물부터 파괴해야 합니다!”

“바로 기물을 파괴하라는 그 말씀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원체 상황이 급박하고, 언소협의 말씀이라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걸음부터 옮겼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 빈도가 무당의 심법을 오래 수행해 온 몸이라 사특한 기운을 잘 느끼는 편이긴 합니다. 하나, 언소협에 비하겠습니까?”

이어져 나온 정현의 말에 언용명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

“제가 눈치챌 정도의 사특함이라면, 애초에 언소협이 산서금붕 어르신의 저주를 푸는 과정에서 눈치를 채셨어야 옳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언소협은 그런 것을 눈치채면 바로 없애 버리는 분입니다.”

“하, 하지만. 외조부님께 걸린 저주를 해주할 때를 생각해보면 우선 파악만 해두고, 확신이 드실 때 움직이신 예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언용명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정현에게도 옮겨왔는데.

“…어르신의 일은 복합적인 사정이 있어 그러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애초에 이가장에 숨겨져 있는 기물이 선산에 있는 강시에게 영향력이 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방울 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만 멀어져도 움직임을 멈추는 게 강시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정현도장의 말씀은 형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겁니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제갈설지가 이 대목에서 와락 아미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걸 이제 아셨나요들?!”

그런 제갈설지의 음성에.

정현의 거친 눈빛이 그녀에게 쏟아졌고.

“소저께서는 처음부터 아셨으면서 걸음을 옮기셨다는 겁니까?”

이어서 언용명의 불안한 눈빛이 이어졌는데.

“…제갈소저께서 아셨다는 말씀은 정현도장의 추측이 맞다는 말씀 이신가요? 그럼 형님께서 저희라도 살리려고 그런 선택을 하신 거라는 겁니까? 소저께선 그걸 아셨고요?”

그런 눈빛들에 제갈설지가 짧은 답을 내어놓자.

“예. 맞아요.”

정현의 음성이 드물게도 높아졌다.

“그런!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아셨으면 말리셨어야 했습니다!”

“…….”

“벗이 희생하려는 알면서도 어찌 순순히 걸음을 물리셨단 말씀이십니까?! 혹여 목숨을 잃을까 두려우셨습니까?”

그에 제갈설지의 목에도 핏대가 섰는데.

“정현 님은 정작 벗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잘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두 사람 사이의 불꽃이 더 커지기 전에 언용명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부화뇌동하여 그 마두 놈에게 뛰어들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아가 저희 가문의 실책이고요. 형님께서 홀로 마두 놈을 쫓고 계시는 것도 모르고, 망나니라는 낙인을 찍은 죄를 어찌해야 할지….”

한데 언용명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너무 어두워서, 정현과 제갈설지의 노기를 모두 흡수해 버렸다.

“아닙니다. 어찌 이 일이 작은 언소협과 진주언가의 탓이겠습니까.”

그 덕에 잠시 머리가 식은 정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고.

“그리고 제갈소저. 언소협의 일이라 빈도가 잠시 이성을 잃었습니다. 제 우둔함에 일어난 화를 소저께 뱉은 꼴입니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으나 이렇게 사죄를 드립니다.”

제갈설지도 눈을 일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도 미안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산서행에 따라왔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헛똑똑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네요. 그래서 분통이 터지던 참이라 말이 뾰족하게 나갔어요.”

그렇게 잠시간의 다툼이 매듭이 진 상황에서 정현이 다시금 선산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갈설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마 지금 용운 님이 계셨다면, 그것이 도가 맞냐는 말을 하셨을 것 같네요. 용운 님께서 거짓말까지 해서 저희를 이가장으로 보내신 이유가 뭐겠어요? 단순히 저희만 살리자고 그러셨을까요?”

“…이가장을 지켜달라는 뜻이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추측을 덧붙였다.

“예. 이가장이 무너지면 단순히 용운 님의 외가 식솔만 거리에 나앉게 되는 게 아니에요. 산서성이 무너지고, 장강 이북의 소금값과 땔감의 값이 치솟을 거예요. 천하가 혼란에 빠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겠죠.”

제갈설지의 말에 정현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원시천존. 그야말로 살신성인이 아닙니까. 하나 언소협의 인(仁)이 제게는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런 정현의 모습에 언용명이 애써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지우며 입을 열었다.

“무겁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 그게 무슨….”

“꼭 형님께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 정해둔 것 같지 않습니까?”

“…아.”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신 형님이시니, 빨리 이가장을 수습하고 노삼 교수님이든 총관님이든 모시고 돌아가면….”

“예. 분명 본인의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면서 저희를 혼내 오실 겁니다.”

“용운님께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면 서둘러야겠네요.”

잠깐 멈췄던 세 사람의 걸음이 이가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정현과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곽사홍이 이죽거려 왔다.

“큭큭큭. 무부금강시를 알아본 녀석이 기물이니 어쩌니 헛소리를 하기에 무슨 생각인가 지켜봤더니. 그 세 놈을 보내려고 그런 모양이구나? 그래 듣는 귀가 없이 나와 긴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냐? 어떻게 신교에 들어오겠느냐?”

“…….”

“…표정을 보니 아닌 모양인데? 아! 그럼 객기를 부린 것이로구나? 하기야 예전에도 어미의 패물을 훔쳐 도박하는 주제에 호방한 척이란 척은 다 했었지. 기연을 좀 얻고 명성도 얻고 나니 그게 살신성인으로 진화한 것인가? 큭큭큭!”

“…라고.”

“이제 겁이 나서 목소리도 안 나오는 모양이구나. 그러게 깜냥도 되지 않는 놈이….”

“좁밥 새끼가 뒈질라고.”

녀석은 돌변한 내 태도가 어이없는지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빡였다.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강시 몇 마리 굴리는 데 방울이 필요한 새끼가 으스대기는.”

나는 더는 말하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사람 잘못 봤어, 이 새끼야. 그 대가를 지금부터 치르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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