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사람 잘못 봤어 (4)
곽사홍을 향해 일갈을 내지른 나는 곧바로 싸울 태세에 돌입했다.
우웅-
오른손에 쥔 회한에는 하단전에서 끌어올린 아지랑이를 감았고.
곽사홍을 향해 까딱였던 왼손은 검결지의 형태를 취했는데.
사아아악-
그렇게 취한 검결지엔 상단전에서 실처럼 뽑아 올린 내력을 술식의 형태로 둘둘 감아 흑마법진을 그려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좁밥? 뒈져? 그리고 뭐? 대가를 치러? 허, 맛이 완전히 갔군.”
곽사홍은 헛웃음을 터트리는가 싶더니.
“이봐, 언용운. 조금 전까지 너희는 넷이었고 나는 하나였다. 지금은 네가 하나고 이쪽이 스물하나야. 이건 객기라고 부르기도 그런데?”
내가 검결지에 감아 놓은 흑마법에 관심을 보였다.
“왼손에 감은 기운은 보아하니 얄팍한 주술 같은데? 역시 네 할애비에게 걸어놓은 연환고목의 저주도 네 녀석이 해주를 한 것인가?”
하나 내 왼손에 감기고 있는 흑마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모르겠으면, 너는 알려줘도 몰라.”
그런 내 음성에.
곽사홍은 다시 한번 혀를 차더니.
“쯧. 못 본 사이 자의식이 상당히 비대해졌구나. 강시를 무력화해 보려는 모양인가?”
제 놈도 나름대로 강시술사라고 내 계획을 얼추 추측해왔다.
“아서라. 네 할애비에게 걸린 저주는 원리와 위치만 알면 되니 어찌 해결했을 테지만, 이 강시들은 오직 혈령(血鈴)으로만 움직이고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강시술이라는 우물 안에 사로잡혀 있는 개구리의 추측이었다.
하여 나로서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큽.”
때마침 산중의 해가 자취를 감추며 양달이 사라지자, 곽사홍이 크게 혀를 차고 나섰다.
“쯧. 산서금붕에게 걸어놓은 연환고목의 저주를 깬 것도 그렇고, 신교의 검과 닮은 듯 다른 검술도 그렇고. 나는 언용운 너와 나누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그리고 제가 부리는 강시의 위력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걸음을 물리더니 왼손에 감긴 붉은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랄랑-
“그런데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보아하니 팔 하나쯤은 잘라놔야 비대해진 자의식을 꺾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
그에 잠시 일렬로 도열해 있던 스무 구의 강시들이 나를 향해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크어어어!!
딱 맞춰서 검결지에 감고 있던 흑마법이 완성됐기에, 나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드루와! 드루와!!”
하나, 반가운 마음과 별개로 강시들의 공격은 조심해야 했다.
바짝 세워 독을 발라 놓은 강시들의 손톱을 생각 없이 받았다간?
‘어지간한 독에 면역이 있긴 하지만.’
중독 이전에 피부가 뜯겨나갈 터였고, 강철만큼 단단한 저 몸뚱이에 치이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크어어어!
하여 나는 팔을 휘저어 오는 강시들의 틈바구니에서 발작하듯 배를 당겼고.
크어!!
곡예를 하듯 몸을 뒤틀고 땅을 구르며 놈들의 팔뚝과 도약을 피했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도저히 피하기 힘든 각도에서 휘둘러져 오는 공격은 회한의 검면으로 적절히 때려 막았다.
딱!!!!!
아, 물론.
피하고 막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위기에도 늘어지는 시간을 활용해, 검결지를 하고 있던 왼손을 도장 삼아 면상이든 목덜미든 손바닥이든 하여간에 강시들의 몸뚱이에 지장을 찍듯 인(印)을 찍었다.
팟! 팟! 팟! 팟! 팟!
물론 당장은 인을 찍기만 했을 뿐.
흑마법을 발동한 것은 아니었다.
하여, 인을 찍은 강시든 아직 찍지 않은 강시든 여전히 곽사홍의 방울 소리에 맞춰 움직였고.
나는 계속해서 땅을 구르고 진땀을 빼며 강시들의 틈바구니에서 몸을 비틀어야 했다.
그런 나를 보며 곽사홍은 비웃음을 흘려왔다.
“큭큭큭, 거봐라. 소용없는 짓이라 했잖느냐?”
또 우수에 들린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셨다.
- 용운이 너야 항상 계획이 있는 녀석이니 이번에도 무슨 수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꼭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하느냐? 일전에 해금방주나 하류박 놈들을 상대할 때는 품이 덜 들지 않았더냐?
‘그때는 적 중에 방사가 없기도 했고, 방법이 있기는 한데 내력이 엄청나게 소모됩니다.’
내력을 태워쓰는 흑마법은 수명이 주는 느낌은 안 나서 좋은데 연비가 너무 나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눈앞의 곽사홍.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곽사홍을 만나기 전에 스쳐 지나갔던 노인네.’
범상치 않은 기도를 보인 그 노인네까지 생각하면 품이 좀 들더라도 확실하고 내력 소모가 적은 방법을 택해야 했다.
그게 바로 내가 지금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이유였다.
뭐,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틈틈이 검결지를 뻗어 강시들에게 인을 찍었고.
팟! 팟! 팟! 팟! 팟!
‘곽사홍이 저를 무시하고 있으니, 이게 가장 확실하고 경제적인 방법입니다.’
- 그렇구나…가 아니고! 우측을 조심하거라!
휘릭!
팟! 팟!
사부님께 정리한 생각을 전하면서도 쉬지 않고 인을 찍었다.
팟! 팟! 팟!
그렇게 내가 자신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겹치지 않게 열다섯 구의 강시에 묵묵히 인을 찍어내자.
술사로서의 감이 놈에게 경종을 울린 것일까?
지금까지 알량한 재주를 마음껏 부려보라는 듯 방울만 울려대고 있던 곽사홍이 검초를 펼치며 달려들었다.
“봐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내가 곽사홍을 좁밥 취급한 것은 술사로서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었지, 순수한 무위만 놓고 보면 놈이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저놈의 공격까지 더해지면 지금처럼 인을 찍기는 힘들어.’
나는 안 그래도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을 더 바쁘게 움직였고.
팟! 팟! 팟!
인을 찍지 않은 강시가 두 구 남은 상황에선 약간의 모험을 시도했다.
‘살짝 긁히는 것 정도는 감수한다!’
여유가 있으면 굳이 뛰어들지 않았을 아슬아슬한 틈 사이로, 곡예단이 불이 붙은 고리를 통과하듯 몸을 던졌고.
쌔애- 애애액!!
그 바람에 강시들의 시퍼런 손톱이 코앞을 스치게 된 상황에서 침착하게 몸을 접어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손톱들을 피해낸 뒤.
팟! 팟!
남은 두 구의 강시에도 인을 찍고는, 낙법을 펼치며 땅을 굴렀다.
‘됐다!’
그에 속에서 쾌재가 나왔지만 그걸 입으로 터트릴 새는 없었다.
딸랑딸랑 바둑이처럼 방울을 흔들며 달려온 곽사홍이 나를 향해 검초를 쏟아 냈으니까.
나는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뒤.
“읏차.”
곧바로 회한을 그어 올려 곽사홍의 검을 쳐냈다.
챙!!!
곽사홍은 작정하고 검을 휘두른 것이었고, 나는 무너진 자세에서 되는대로 뻗어낸 검이라 필연적으로 허점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검수의 감이 위험하다 경종을 울려 왔다.
채챙!!
하지만 해볼 만했다.
지금부터 강시들이 주인을 바꿀 테니까.
채채챙!!
나는 오른손으로 바쁘게 곽사홍을 검을 쳐냈다.
그리고 와중에 검결지를 쥐고 있던 왼손을 주먹으로 바꿨다.
척.
그렇게 손가락 끝에 맺혀 있던 흑마법진이 왼손바닥으로 옮겨 왔을 때.
지체 없이 손바닥을 펼치며 입을 열었고.
“동작 그만.”
그에 시뻘겋게 빛나던 스무 구의 강시가 내뿜던 안광이 일순 시커멓게 바뀌더니 우뚝- 멈췄다.
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어느 쪽이 스물한 명이지?”
* * *
내 명에 따라 강시들이 멈추자, 곽사홍은 그야말로 경악을 했다.
“마, 말도 안 되는…. 음공이나 제구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술사를 배제한 것도 아니며, 내가 새겨놓은 주부술을 긁어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나는 회한을 고쳐 쥠과 동시에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곽사홍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말이 왜 안 돼?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도 우두머리가 마음에 안 들거나 더 합당하고 정명한 우두머리 감이 나타나면 갈아치우곤 해. 언데드도 비슷해.”
시체들이란 썩어가는 몸뚱이와 원념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방금 사용한 ‘역적의 낙인’ 같은 흑마법을 사용하면 격이 더 높은 쪽에 붙는다.
‘흑마법사 사회에서는 무례로 치는 행동이긴 하지만. 내가 곽사홍 저 새끼랑 예의 차릴 사이는 아니니까.’
뭐, 아무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언대두? 언가제혼술(彦家制魂術)에 대두술 이라는 주술은 없었는데? …가만 내가 방금 검초를 전개한다고 방울을 흔드는 것을 멈췄던가?”
저 혼자 이상한 결론을 낸 곽사홍이 미친 듯이 좌수에 감긴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
물론 주인을 나로 바꾼 강시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침 호흡도 다 골라졌겠다.
나는 주인을 바꾼 강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휴, 시끄러워. 너희도 시끄럽지? 없애버려!”
그에 스무 구의 강시들이 일제히 곽사홍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물론, 나는 곽사홍처럼 강시들만 부리며 물러나 있지 않았다.
“내가 사람 잘못 봤다고 했지?!”
곧바로 회한을 휘두르며 강시들과 섞여 뛰어들었다.
곽사홍은 그런 우리를 황망하게 봤지만, 멍청하게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놈은 즉시 검에 아지랑이를 칭칭 감더니, 이쪽이 넷이었을 때 휘둘렀던 검강에 준하는 기운을 다시 한번 실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쌔애애액!!!!
썽둥!
그에 어시장에서 생선이 토막 나듯 강시 하나가 썰려 나갔지만.
아직 이쪽에는 열아홉 구의 강시가 있었다.
거기다 나는 곽사홍은 하지 못하는 정밀한 통제가 가능했다.
“사호기랑 십일호기는 각각 좌우로 돌아서 빠져.”
쌔애애액!
부웅!
그런 내 말을 강시가 척척 따르는 모습에.
다시 한번 곽사홍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새, 생강시도 아닌 놈들이 말귀를 알아먹는다고?”
물론 강시라는 존재가 원체 뻣뻣하다 보니, 곽사홍의 손에서 헛방을 유도한 건 처음 딱 한 번 뿐이었다.
쌔애애액!
서걱!
놈이 조심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강시들이 하나 둘 상해가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내가 만든 것도 아니라 아깝지도 않고.’
그렇게 강시들이 상해가는 동안, 착실하게 곽사홍의 내력이 소모되어 놈이 눈에 띄게 지쳤으니까.
“헉. 헉. 크흑.”
덕분에 녀석의 검에 감긴 검붉은 아지랑이가 눈에 띄게 옅어졌을 무렵.
“내가 들어갈 자리니까! 칠호기는 빠져!”
나는 본격적으로 녀석과 검을 섞기 시작했다.
챙! 채챙!!!
그런 내 모습에 곽사홍은 혼몽한 눈으로 온갖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흐억. 이런 건 정파 놈들의 싸움이 아닌….”
“아니라고? 망나니라 그래, 망나니라.”
제가 그렇게 이죽거렸던 나와 전 용운이 놈의 유일한 공통점인 망나니라는 점을 까먹었나 싶더니.
검을 제대로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이런 소리를 했다.
“…헉. 헉. 흐억. 설마 사부님께서 새로 들이신 제자인가? 그건 그거대로 말이 안 되는데?”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열네 구의 강시와 함께 다가갔다.
그리고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이해가 안 가지? 그런데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 곧 뒈질 놈이 그거 이해해서 뭐하게? 부질없다 그거?”
그런 내 모습에서 죽음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강시를 내게 빼앗긴 뒤로 줄곧 당황이 들어차 있던 곽사홍의 얼굴에 일순 침착함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침착함을 찾은 녀석은 나를 향해 승부수를 던져왔다.
“…나를 죽이면 네놈의 손해다. 이권영을 따라왔으면 놈과 같이 이가장으로 간 경 노야를 봤겠지? 직위는 나보다 낮아도 무서운 노인네다. 나를 죽이면 그 노인네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거야.”
별호에 도박 도가 붙는 놈이라 그런가. 깔끔하게 뒈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는데.
뭐라 지껄이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나는 회한을 어깨에 걸고 입을 열었다.
“글쎄. 별로 안 무서운데? 나는 돈을 걸라면 이가장으로 간 네놈 수하들이 다 갈린다는데 걸 거거든.”
“그럼 그때 죽여도 되지 않나? 그리고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생포하는 게 더 큰 공이 된다. 너는 잃을 게 없다 언용운.”
“아냐, 너 같은 놈은 살려두면 꼭 암이 되더라고.”
“너 같은? 다른 교인이 또 잡힌 일이 있나? 암?”
“그런 게 있어.”
살아남을 각을 보고 승부수를 던지긴 했지만, 곽사홍 같은 체급을 가진 마교 놈들의 입에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고문을 해도 입을 다물 것이었고, 되려 달아나거나 중요한 인물을 죽이거나 꾀어내는 등. 하여간에 열 받는 일의 씨앗이 될 뿐이었다.
‘원래 지금 죽을 놈은 아니지만, 어차피 사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뒤틀리기 시작했어. 어쨌거나 애들이랑 합공을 하긴 했으니 그냥 여기서 제거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어깨에 걸고 있던 회한이 다시금 비스듬히 내려오게 했는데.
내 행동에서 살기를 느낀 것인지, 곽사홍은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져왔다.
“내가 죽으면 제실에서 연구 중이던 혈강시들이 폭주할 것이다! 금강시에게 써먹은 지법을 펼치기도 전에 네놈을 찢어발길….”
“응. 다른 방법도 많아.”
하나 나는 곽사홍이 말을 마치도록 두지 않았다.
촤악!!!
그렇게 곽사홍의 머리를 몸에서 떨어뜨린 나는 제실 쪽을 응시했다.
“저기부터 가봐야겠네.”
이가장은 어느 정도 대처를 하고 있을 터였고, 상단전과 하단전에서 동시에 내력을 퍼서 쓴 여파를 다스릴 시간도 필요했다.
“아무 말이나 던진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모르니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