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54화 (154/444)

제154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곽사홍을 이승에서 쫓아낸 나는 강시들을 앞세워 제실 안으로 들어갔다.

- 개판이구나.

그렇게 들어간 제실은 사부님의 말씀처럼 엉망이었다.

“예. 개판이네요.”

강시들이 아무렇게나 관을 박차고 튀어나와서 그런지 관뚜껑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고.

개중에 몇 개는 정면의 위패단으로 날아갔는지 떨어진 위패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으며.

관뚜껑끼리 부딪쳐 조각난 파편과 그로 인해 생긴 분진들도 바닥에 자욱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데, 원인제공을 한 녀석이 이승을 떠나버렸다.

“이런 줄 알았으면 청소를 시키고 죽일 걸 잘못했네.”

나는 아쉬운 대로 앞에 늘어선 강시 중 일호기라 명명한 녀석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얌전히 좀 나올 것이지!”

빡!!!

그런 내 말에 일호기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크어?

콩! 콩! 거리던 발걸음을 제 나름 죽여 보였다.

내 말을 얌전히 뛰라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너희가 무슨 죄가 있겠니.”

한숨을 내쉰 나는 강시들을 향해 제대로 된 명령을 내렸다.

“자기 관뚜껑 찾아서 들어가 있어!”

본디 강시술은 이역만리 전장에서 죽은 시신을 먼 곳에 있는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강시의 특성상 해가 뜬 낮에는 움직일 수가 없었고, 수십 수백의 시신을 대낮에 안치할 공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 강시들은 자신의 관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니는 게 보통이었기에, 이번에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움직였다.

크어!

그렇게 강시들이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널브러진 관뚜껑이 치워졌고, 콩콩거리는 걸음에 분진이 흩어졌는데.

“음?”

드러난 제실 바닥에서 나는 말라붙은 갈색 흔적을 발견했다.

“얼마 안 됐네.”

곽사홍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는 바람에 눈치를 못 챘는데.

그러고 보니 제실에 비릿한 혈향이 내려앉아 있었다.

제실에서 피를 보는 것은 금기시되는 행동이었고.

내가 빼앗아서 부리고 있는 금강시는 여러 약재와 뜨거운 모래 그리고 극음의 한기를 통해 피부와 근골을 강화하여 만드는 것이라 피와는 무관했다.

‘곽사홍이 살아남을 확률을 올려보기 위해 던진 아무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뭐가 있나?’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핏자국에 손을 대 보았다.

그런 나를 향해 사부님께서 질문을 던져오셨다.

- 무얼 하려는 것이냐?

‘사혼(死魂)이랑 접촉을 해보려고요.’

- 시신이 없는데도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냐?

‘조건이 좀 필요하긴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음, 억울한 죽음이면 가능한데. 이런 곳에서 곽사홍 같은 놈에게 죽어 나간 사람이면 조건이 맞을 것도 같네요.’

사부님처럼 격이 높은 혼이 아니면, 본디 사혼이라는 것은 죽기 전에 했던 가장 강렬한 생각만 울부짖는 존재라 이런 식의 탐문은 보통 내력만 낭비하는 일이었으나.

이 핏자국을 남긴 사람이 혈강시를 만드는 데 희생됐다면 그 울부짖음과 원한이 강렬할 게 분명했다.

‘혈강시는 만드는 방법이 끔찍하니까.’

혈강시는 사람의 피에 강시를 절여서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아무 피나 있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고, 순수하고 원한이 섞인 피가 필요했다.

순수한 피는 동남동녀에게서 얻어야 했고.

‘그 피에 원한을 심으면서 강시를 절일 정도로 많은 피를 모으려면….’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피를 빼내는 방식으로 서서히 죽여야 했다.

방법이 끔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부님의 질문에 답을 해드린 나는, 강시들 중 관을 찾아 들어간 녀석들에게 할애하던 내력을 끊었다.

그리고 바닥의 핏자국에 정신을 집중하며 상단전에서 짜낸 내력으로 언령을 뱉어냈다.

“망자는 내 부름에 응하라.”

그런 부름에 시퍼런 불꽃이 화륵 피어나며, 인화(燐火) 그러니까 도깨비불이라 부르는 녀석이 허공에 발화했는데.

“에게?”

어째 그 불꽃의 크기가 너무 작다 싶더니.

- 은자!!!!

곽사홍에게 떼인 돈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웬걸 은자 타령을 해왔다.

“잘못짚었나?”

그에, 내가 ‘텄다 텄어.’를 외치며 불꽃을 흩어 버리려는 그때.

불꽃이 묘한 방향으로 일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부님, 인화가 지금 바닥 쪽으로 슬쩍 일렁거리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렇구나?

“문 쪽이야 바람이 통하니까 일렁거리는 게 맞는데, 바닥 쪽으로 일렁거리는 거면….”

- 바닥 아래 공간이 있는 모양이구나?

나와 사부님은 곧바로 제실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바닥재로 사용된 돌이 설록암이라 부수는 건 품이 너무 많이 들겠고, 바닥을 여는 기관을 찾아야겠는데요?”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 위패도 좀 이상합니다. 저쪽으로 관뚜껑이 날아갔는지 주변의 위패는 다 쓰러져 있는데, 딱 한 개가 그대로네요?”

- 하기야 물건인 위패가 천근추를 익혔을 리는 없으니 수상하긴 하구나.

“에이. 엄밀히 따지면 사부님 같은 물건도 있으니, 천근추를 익힌 물건 자체는 있을 수도 있죠.”

- ?

‘?’

아무튼, 그렇게 수상한 위패를 발견한 나는 그 앞으로 걸음을 옮겨 위패의 작동 원리를 가늠한 뒤.

“확실히 재질부터 다른 건 목재인데 이것만 한철인데요? 흠. 관뚜껑이 저 방향에서 날아왔을 텐데, 안 쓰러졌으면 미는 게 아니라 당기는 건가?”

달칵-

가늠한 방법대로 잡아당겨 보았다.

쿠쿵!

드드득! 드드드드득!

그러자 바닥의 판석 중 내가 서 있던 부분이 덜덜거리는가 싶더니, 결대로 내려앉으며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변모했다.

“……!”

나는 관뚜껑이 박살 나 관에 들어가지 못한 강시 두 구를 앞세워 곧바로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계단 안은 일정한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 있었기에 따로 불을 밝힐 필요는 없었는데.

야명주 덕분에 확인할 수 있는 벽엔 진(秦)나라의 이신, 한(漢)나라의 이광, 당(唐) 태종 이세민 등 이가의 위인들이 그려져 있었고.

함정 같은 것은 없었다.

- 만들기는 이가(李家)의 사람들이 만든 듯하구나?

“그러게요? 아무래도 산에 불이 나면 위패나 족자 같은 걸 옮겨둘 목적으로 만든 모양입니다.”

그 벽화를 통해 나와 사부님은 지하의 공간 자체는 마교가 아닌 이가의 사람들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마교 놈들의 손을 탄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근데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이 쇠 비린내 비슷한 냄새는 아무래도 곽사홍 때문인 듯하네요.”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인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비릿한 피냄새가 진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피냄새를 신경쓰며 조심조심 통로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어느 순간 아귀가 정확하게 맞물린 철문이 나왔고.

끼기긱-

그 철문을 밀어젖히자.

제법 트인 공간과 함께 혈향이 코를 찔러 들어오는 가운데 옥(玉)을 재료로 쓴 관 하나가 보였다.

- 저기 놓인 관이 피비린내의 근원이구나.

“혈강시들이 폭주한다는 말은 역시 사실이 아니었네요.”

관이 한 개니 혈강시도 한 구일 터였고, 얌전히 뚜껑이 덮여 있는 것을 보니 폭주도 하지 않았다.

“…그럼 연구 중이었다는 것만 진실인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한 나는 조심스럽게 옥관을 열었다.

“역시 완성이 안 됐네요.”

예상대로 혈강시의 폭주는 없었다.

폭주도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흡수가 삼 할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귀와 눈을 밀랍으로 막아 핏물에 담가놓은 강시는 완성과는 거리가 많이 먼 상태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회한으로 지하실 바닥에 마법진을 하나 그린 뒤.

슥- 슥-

스스슥-

회한을 허리춤에 다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옥관을 향해 큰절 두 번을 올렸다.

그런 나를 보며 허리춤으로 옮겨간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해오셨다.

- 무얼 하려는 것이냐?

“이미 완성된 혈강시가 있었다면 무림맹이나 영환 교수님께 넘기려고 했는데, 상태를 보니 미완성이라 피를 계속해서 갈아주지 않으면 강시는 썩어버릴 겁니다. 근데 제가 원한이 담긴 피를 만들어 공급할 수도, 그렇다고 마교 놈들에게 돌려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 하여?

‘그런데 또 그냥 썩게 두기에는 그간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이 너무 개죽음같이 느껴져서, 제가 흡수할 생각입니다. 그전에 희생된 사람들한테 나름대로 예를 표하는 중이고요.’

- …저걸 흡수한다고?

‘옙. 지켜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렇게 사부님의 질문에 답을 드리며 두 번의 절을 마친 나는 상단전에서 내력을 자아내 양손에 감은 뒤.

합장하듯 붙였다가 떼어냈다.

우우웅-

그에 손안에서 시커먼 아귀 구슬이 생겨났는데.

나는 그 구슬을 옥관 위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 * *

한편 짙은 피비린내는 이가장에서도 나고 있었다.

제갈설지, 언용명과 함께 도착한 정현은 강제로 열린 듯한 이가장의 대문과 그 앞에 늘어 서 있는 시신들을 보고 심부가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으나.

챙! 챙!! 채채챙!!!

안에서 들려오는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에 역설적으로 희망을 품고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문턱을 넘어서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쌔애애애액!

꽝! 꽝! 꽈광쾅!!!

이가의 선산에서 군세를 이끌고 출발한 노마두와 격렬하게 장력을 교환하는 노삼이 있었고.

쌔액!

팟!

특유의 보법과 쾌검으로 노삼과 노마두의 싸움을 다른 흑의 군졸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는 우소릉이 보였으며.

그 뒤편엔 앞마당에서 다른 소원으로 향하려면 거쳐야 하는 다리 위에서 분투하고 있는 산서분타주 덕근과 천장호도 보였다.

‘교수님부터!’

정현은 제갈설지, 언용명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뒤.

두 사람과 합심하여 노마두를 공격했다.

그에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날아든 공격에 노마두가 뻗어내던 권장을 거두며 걸음을 물렸고.

“늙은 거지의 제자들인가?”

그 덕에 잠시 숨돌릴 틈이 생기자 노삼이 입을 열었다.

“언가 놈은 어쩌고 너희만 왔느냐?”

“…….”

그런 노삼의 물음에 정현은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을 느꼈고.

“…그것이.”

언용명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 것인지 말을 저는 와중.

제갈설지가 똑 부러지게 선산에서 보고 온 상황을 전달했다.

“선산에 마두가 하나 더 있어요. 아직 초절정의 벽을 넘지는 못한 수준의 고수였는데, 저희가 합공을 하는 와중에 선산에 있는 제실에서 강시가 나왔어요.”

“합공? 나도 그렇고 산서금붕 어르신도 그렇고 위험하면 돌아오라 하지 않았더냐?!”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아무튼, 용운 님을 도우러 가야 해요. 본인은 강시학개론 만점자라며 혼자 버텨낼 재간이 있다고 하셨지만….”

그때였다.

제갈설지의 말이 이어지고 있는 그때.

걸음을 물렸던 노마두가 비웃음을 터트려왔다.

“큽. 강시학개론 만점?”

그리고 덕근과 천장호 너머에 있는 소원 방면에서 폭죽 하나가 쏘아져 올라왔다.

피융! 펑!!!

그에 노삼이 이를 빠득 갈며 입을 열었다.

“…당장 그리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보다시피 여력이 없다. 언가 녀석이 너희를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있으니까 보냈을 것이고. 다 떠나서 이가장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보냈을 것이야.”

분위기가 짐짓 무거워졌지만 노삼은 그치지 않고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 폭죽이 올라온 방향을 가리켰다.

“이럴 게 아니라 너희는 당장 폭죽이 올라온 곳으로 가라. 저 폭죽은 금 총관이 위급할 때 쏘아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 노삼의 말에 선산에서 달려온 세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급히 폭죽이 올라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정원에는 세 사람이 일전에 진성채에서 확인한 바 있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괴인 두 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금 총관이 보였다.

크아!

크아아아!!!

정현은 그중에 금 총관의 뒤를 노리는 녀석에게 검초를 펼치며 달려들었고.

그런 정현을 쫓아 언용명과 제갈설지가 각각 권과 검을 뻗어냈다.

꽝!!!

덕분에 사지에서 벗어난 금총관도 크게 검을 휘둘렀다.

꽝!!!!!

그에 두 명이 괴인이 좌우로 날아가 벽에 박혔고.

잠시 간의 여유가 생긴 금 총관이 호흡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노 교수님이 계신 곳도 위험함을 알면서도 여기서 제가 죽으면 무공을 모르는 객들과 장주님이 계신 후원이 위험질 것 같아 부득불 폭죽을 쏘아 올렸는데,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다들이라고 하기엔 선산에 홀로 남은 언용운이 있었다.

하나 화제가 다른 곳으로 흐르기 전에 제갈설지가 입을 열었다.

“예. 저희가 좌측으로 날아간 놈을 맡을 테니, 금 총관님께서 우측으로 날아간 놈을 맡아주세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 놈을 이미 없애고 다른 한 놈을 쫓아 왔다가 괴인 둘을 동시에 만나 이리됐긴 했는데, 하나도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말씀하셨듯 초반에는 검강에 가까운 공격을 쏟아 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정현은 이리로 뛰어오던 도중에 눈을 글썽거리던 제갈설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갈소저도 속을 끓이고 있으면서 저리도 냉정하게 상황을 풀어 가는구나.’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순간.

고쳐 쥐어진 정현의 송문검에 진한 아지랑이가 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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