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나비효과 (2)
원한이 깊으면 서리가 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본디 한(恨)이라는 것은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혈강시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원념은 평범한 망자들이 지니는 한의 수준을 초월했다.
으드드드-
하여, 나는 녹음(綠陰)이 우거지는 여름날에 오한에 들게 되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호통을 내질러 오셨던 사부님은 이내 곧 한숨을 내쉬어 오셨다.
- 어휴, 용운이 너를 누가 말리겠느냐. 늘 그렇듯 자신은 있으니까 저 원념 덩어리를 흡수하겠다고 한 것이겠지만….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는 달달 떨려오는 이를 으득 깨물며 사부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다다.”
- 네 얼굴에 낀 서리랑 고드름이 생긴 머리칼은 하나도 자연스럽지가 않느니라라라!
그렇게 심통을 내오신 사부님께서는 한마디를 더 전해오셨다.
- 방술에 있어서는 네 재주를 인정하긴 한다만, 혼을 몸에 흡수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니더냐? 나 때만 해도 네 녀석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말이다.
뭐, 사부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방술이나 주술 쪽으로는 사실상 문외한이신데, 또 혼백에 말라붙은 피 냄새는 가늠하실 수 있으시니.’
사부님이 보기엔 원념이 지독하게 압축된 덩어리를 내가 무식하게 삼키려는 것으로 비출 터였다.
‘보통 저런 것과 함부로 접촉하면 자칫 원념에 사로잡힌 광인이 될 수 있지.’
거기다 사부님을 회한 속에 들어가게 한 전례도 있으니.
하나뿐인 제자가 걱정되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한기가 나와주지 않으면 사실 그게 더 곤란했다.
‘그럼 지금 하는 짓이 말짱 헛수고가 될 테니까.’
그리고 사부님이 보시기엔 위험해 보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기실 식은 죽을 먹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몸 상태가 그때랑은 천지 차이야.’
그간 파천신공을 수련하며 튼튼해진 혈맥은 스미는 한기에 피부에 서리가 끼고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생기는 와중에도 내력이 원활하게 돌 수 있도록 버텨 주었고.
그 혈맥 위를 달리고 있는 내력 속에는 얼마 전 약왕 어르신께 받아먹은 중려환에서 흡수한 한기에 저항하는 극양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사부님의 혼을 받아들였을 때랑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지.’
그런 세세한 사정을 사부님께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느니 계획을 먼저 실천하고 멀쩡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쪽이 백번 나았다.
나는 하단전에서 뽑아낸 내력을 아귀 구슬을 때려 박은 가슴께까지 끌어 올린 뒤.
곧바로 쌈을 싸듯 아귀 구슬을 휘어 감으며 바닥에 깔고 앉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끼에에에엑!!!
그러자 끔찍한 귀곡성이 내 안에서 요동을 침과 동시에 뽑아 올린 내력에 아귀 구슬이 머금고 있던 한(恨)이 옮겨왔는데.
‘상단전으로!’
나는 그 기운을 주천을 시켜 하단전에 넣지 않고 상단전까지 끌어올린 뒤.
자문(刺文)의 술을 발동하여 쐐기처럼 벼려내 상단전 속에 새겨 넣고자 마음먹은 술식을 꾹꾹 눌러 새기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그에 머릿속을 인두로 지지는 듯한 격통이 뒤따랐지만.
영혼에 새겨져 있는 내 특이 체질은 까무러쳐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
나는 그 정신력을 바탕으로 상단전에 한땀 한땀 계속해 술식을 눌러 새겼다.
‘이제 한가운데에 점 하나만 더 찍으면 완성이다!’
그리하여 술식이 완성되자.
딱딱 부딪히던 턱과 머릿속의 격통이 우뚝 멎었는데.
‘오?’
피의 수레바퀴 혹은 혈륜(血輪)이라 부르는 술식이 완벽하게 그려졌음에도, 아직 약간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원념은 혈륜에 쪽 빨린 순선한 기운이.
‘이게 웬 덤이지?’
나는 곧바로 대주천을 통해 그 기운까지 알뜰하게 갈무리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단전 안으로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은 내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담천약수나 금침대법을 받았을 때처럼 혈맥이 씻겨나가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상쾌한 기분 속에 중얼거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운이 좋군.’
내가 그렇게 눈을 뜨자 사부님께서 곧바로 한마디를 건네 오셨는데.
- …어떻게 생각대로 되었느냐?
“아뇨.”
- 아, 아니라고?
“생각 이상으로 잘됐습니다.”
건네 오신 물음에 답을 돌려 드리니 되려 길길이 날뛰어 오셨다.
- 이제 보니 나를 놀린 것이로구나?! 예끼 이 녀석아, 사부를 놀리느냐!
“예? 저는 그냥 사실을 말씀드린 것인데요? 그냥 사부님께서 하나뿐인 제자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시다가 지레 놀라신 것을 제게 뒤집어씌우지 마십시오.”
- …딱히 걱정한 적은 없느니라! 아무튼 혀가 낭창거리는 것을 보니 내가 아는 네 놈이 맞구나.
“……?”
그렇게 주고받던 대화는 자연히 내가 원념이 깃든 피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로 넘어갔다.
- 정신은 멀쩡한 것 같고,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한데 내력 증진의 효험을 본 것이더냐?
“예. 약간의 내력 증진이 있었습니다. 체내의 노폐물도 씻겨나간 것 같고요.”
- 흐음. 핏물에 서린 원념이 상당히 깊어 보이기에 귀기(鬼氣) 같은 것이 깃드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영산에서 자란 영약 같은 효험이 있던 모양이로구나?
“아뇨. 사부님의 예상도 맞습니다.”
- …응? 맞다고?
“예. 방금은 생각 이상으로 얻은 효험에 대해 말씀드린 것이고. 귀기는….”
이건 보여드리는 게 빠르지.
나는 곧바로 회한을 뽑아 든 뒤.
왼 검지를 콕 찔러 상처를 냈다.
그리고 상단전에 새겨놓은 혈륜을 발동시켜, 상처에서 배어 나온 핏방울을 매개로 자그마한 사람의 형상을 빚어냈다.
브으!!
혈륜을 새기며 사용할 수 있게 된 혈조술 중 블러드골렘 소환술을 시전한 것이었는데.
- 음? 이건 또 듣도 보도 못한 것이로고? 이게 무슨 주술이냐?
‘…쓰흡. 다른 혈조술을 보여드릴 걸 그랬나?’
막상 저걸 여기식으로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데, 그런 내 말문을 사부님께서 직접 터 주셨다.
- 피로 병마용(兵馬俑)을 빚은 것이냐? 그럼 혈용(血俑)?
대저 용(俑)이란 죽은 사람과 함께 부장하는 상을 말하는 것이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 * *
- 혈용이가 귀엽긴 하던데 그게 쓸모가 있는 방술이냐? 어디 조그만 쥐구멍 같은 데나 들여보낼 때 유용할까 영 쓸모가….
“…맛보기로 보여드린다고 그렇게 쓴 거지 크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도 쓸 수 있고요.”
왜 혈용이 기를 죽이시고 그러세요?
혈조술은 활용할 방도가 혈용을 만들어 내는 것 외에도 다양했다.
또 피라는 매개를 추가로 사용하는 만큼 일반적인 사출계 흑마법에 비해 연비도 좋은 편이었다.
하여, 시간이 있으면 더 많은 사용법을 사부님께 보여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가장으로 마교의 군세가 몰려간 상황이니 태평하게 그러고 있을 새가 없었다.
나는 데리고 들어왔던 두 구의 강시와 함께 지하실에서 나왔다.
‘강시를 다룰 수 있다는 걸 숨길 수 있으면 숨기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중에 조사관 같은 양반들이 곽사홍을 어떻게 잡았냐는 질문이 돌아오면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남은 강시들을 다 이끌고 이가장의 싸움에 합류하는 게 맞았다.
그때였다.
내가 그렇게 다른 강시들도 모조리 이끌고 이가장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은 그때.
탓! 탓! 탓! 탓! 탓!
제실 밖에서 누군가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잡히더니.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늙은 목소리가 황망함을 토해내는 것이 들려왔다.
“…고, 공자님?”
당연히 나를 부르는 소리는 아니었다.
“공자님! 어찌 이런 일이?”
들려오는 공자님 소리는 곽사홍을 향하고 있었다.
‘군세를 이끌고 간 노인네인가?’
제실에 나 있는 봉창의 틈으로 슬쩍 얼굴을 확인해보니.
코가 깨지고 왼팔이 축 늘어져서 그렇지, 곽사홍이 경 노야라고 불렀던 그 노인네가 맞았다.
‘이가장 쪽은 저희가 이긴 모양인데요 사부님?’
- 그렇구나? 이끌고 간 병력은 간데없고 저 혼자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저 꼴로.
그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데 다행 중에 불행도 있었다.
‘곽사홍이 지껄인 말 중 하나는 정확하게 맞을지도 모르겠네.’
놈이 마지막 순간에 지껄인 말 중엔 경 노야라는 노인네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거라는 말이 있었다.
‘…문도 한 개고. 저 노인네가 이쪽으로 오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꼴인데. 그냥 갈 리는 없겠지?’
원작을 떠올려보면 별호에 마군(魔君)이 붙는 놈들은 마교 내부에서 다음 대의 호교법왕 자리, 나아가 소교주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는 자들이었다.
하여 지근거리에서 마군들을 모시는 심복들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호교법왕 혹은 소교주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이라 그 충성심이 상당했다.
‘복수심에 불타지 않더라도 혈강시라도 확인을 해보러 올 거고.’
그러니 싸움은 피할 수가 없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경 노야라 불리는 노인네의 걸음이 제실을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까 스치며 느꼈던 기도는 거의 노삼 교수님에 버금가는 느낌이었는데….’
그렇다면 최소한 화경에 준하는 고수라는 것이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곽사홍과 싸울 때 내력을 아끼긴 했지만.
화경의 고수와 지금의 나 사이엔 바위와 계란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저 꼴로 도망을 왔으면 이쪽으로 오는 우리 측의 추격조도 분명히 있을 거야.’
정현, 제갈설지 그리고 용명이 녀석을 보내놨으니.
마교 놈들의 근거지가 제실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것이다.
이가장의 싸움이 승리로 끝났다면 당연히 지원군이 올 터였다.
‘지원이 온다는 전제하에,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낸다면.’
대등까지는 아니어도 한 방을 먹이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거기에 허장성세를 조금 섞는다면?’
저 노인네도 쫓기는 와중이었으니 분명 혼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이쪽엔 열네 구의 강시도 있고.’
방금 얻은 혈조술도 있었으니까.
나는 관 안에 들어가 있으라는 명을 내려놓은 금강시들을 향해 상단전에서 자아낸 내력을 흘려보낸 뒤.
‘얘들아, 준비해라.’
경 노야의 걸음이 제실 바로 앞에 이르렀을 때.
지체없이 명령을 내렸다.
“공격!!”
그에 애초에 나와 있던 두 구의 강시가 쾅! 하고 문을 박차며 경 노야에게 달려들었고.
크아아아!!!
다른 강시들도 재차 관을 박차고 나와 경 노야를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스르렁!!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회한을 뽑아 들고 튀어 나가 제실이라는 독에 갇힌 쥐의 형세를 벗어났다.
그러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경 노야라는 노인네가 강렬한 장력을 뿜어내 가장 먼저 달려든 강시의 몸뚱이에 손바닥 모양의 구멍을 내는 광경이었는데.
퍼엉!!!
간신히 제실이라는 독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몸을 뺄 틈이 보이지 않았다.
등을 잘못 보이면 나도 저렇게 구멍이 난 강시와 같은 꼴이 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내뺐다간 되려 뒤를 잡혀 꼼짝없이 그대로 맞아 죽기 십상이었다.
‘활로는 오히려 앞에 있다.’
정면으로 부딪쳐야 삶과 죽음을 가르는 한 끗의 틈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침착하게 남은 열세 구의 강시를 조종하여 경 노야를 둘러싸는 듯한 대형을 취했다.
“둘러싸!”
그런 나를 발견한 경 노야는 잠시 얼빠진 소리를 뱉나 싶더니.
“…네 놈이 그 언용운이라는 놈인가 보구나. …그런데 강시를 부릴 줄 알았어? 언제부터? 허. 이제 보니 공자님께선 네놈이 숨기고 있던 수를 간과하셨다가 이렇게 되신 모양이구나.”
이내 미친듯한 광소를 토해냈다.
“허허허허허. 망나니 놈 하나 때문에 귀도궁의 대계가 무너질 줄이야!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구나!”
“남의 집안 망하게 하려고 했으면 당신 집구석도 망할 각오를 했어야지. 그런 각오도 없었나?”
“네 놈을 때려죽여 공자님의 저승길을 배웅할 것이다.”
“그냥 스스로를 때려죽이고 영감이 따라가지 그래? 사홍이 녀석도 어색한 나보다는 수발들어줄 영감이 오길 기다리고 있을걸?”
“갈!!!!!!”
경 노야는 내 도발에 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려왔다.
나는 곧바로 비영파천보를 시전하며 옆으로 튀면서 자연스럽게 강시들을 방패로 삼았고.
펑!!!!!
그 바람에 또 하나의 강시가 터져나가는 사이.
슥-
회한으로 왼 손바닥을 살짝 그어냈다.
그리고 뚝뚝 흐르는 피를 회한에 흩뿌린 뒤.
검사와 혈조술을 동시에 일으켰다.
그에 묵빛 검사와 핏빛 아지랑이가 동시에 휘감긴 회한은 강렬한 기운이 넘실거리게 되었는데.
‘곽사홍 그 놈도 강시들이 훈련된 병사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고 토끼 눈을 했으니 저 영감도 예상하지 못할 거야.’
그런 회한을 단단히 움켜쥔 나는 강시들을 움직여 틈을 만들어 그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이호랑 삼호는 좌우로 빠져.’
그리고 늘어지는 시간을 이용해, 한치만 어긋나도 오체 중 어느 한 곳이 터져나갈 것 같은 경 노야의 간격 안으로 뛰어 들어가 회한을 찔러냈다.
“!”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예상치 못한 강도로 들어온 공격에 경 노야는 기함을 토하며 몸을 틀었다.
하나, 무너진 자세에서도 물러날 것을 종용하듯 제법 매서운 일장을 내질러 왔다.
쌔액!!!
그러나 이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왼쪽 가슴으로 향하는 일장을 살짝 틀어 어깨로 받아낸 뒤.
빡!!!!!!
그 반동까지 알뜰하게 이용하여 찌르고 들어갔던 회한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
나름대로 육참골단의 각오였기에 이렇게 된 이상 경 노야도 아무런 피해 없이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오체중 어느 한 곳은 내놓아야 했다.
그는 곧바로 왼팔을 포기하듯 회한의 날에 던져 넣었고.
촤악!!!!!!!
그러자마자 다급히 걸음을 물렸다.
나도 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걸음을 물리며 다시금 강시들을 앞에 세운 뒤.
입가에 번져 나온 피를 닦으며 피식 웃었다.
“쿨럭. 축 늘어진 왼팔이 거추장스러워 보여서 잘라 드렸는데 어떻게 좀 가벼워지셨나?”
이게 바로 내가 찾은 단 하나의 활로.
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