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60화 (160/444)

제160화. 나비효과 (5)

윤영 숙부의 깍듯한 인사에 동기들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호인이라 티가 안 날 뿐, 엄밀히 따지면 윤영숙부는 내 아버지인 언정웅에게도 손윗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처럼 깍듯이 예를 표해오면, 어려서부터 소학(小學)이니 삼강오륜이니 하는 것들을 익혀온 후기지수들은 절로 황망한 기분이 들어 안절부절못하게 되기 마련이긴 했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동기들이 민망해하는 정도가 좀 심했다.

용명이와 소릉이 녀석이 대표적으로 그러했고.

“수, 숙부님!”

“이, 이러지 마셔요.”

정현과 제갈 설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영웅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안민당주님. 저희도 용운 님 덕분에 목숨을 구한걸요?”

“맞습니다. 저희는 언 소협의 기지와 협의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자가 붙는다고 하여 영웅이라는 말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니, 그런 말씀은 저희가 듣기엔 민망합니다.”

그런 녀석들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음.’

내 덕에 살았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정작 내게 외숙부 되는 이윤영이 감사를 표해오는 상황이 상당히 민망한 모양이었다.

하나 저 인사는 이윤영이 우리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 이가장이 정무학관에게 하는 것으로 봐야 했다.

‘그러니까 이쪽도 당당하게 받아야 해.’

그러기 위해선 우선 동기들의 기저에 깔린 생각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내가 너희를 구했다면 너희도 나를 구한 거야.”

나는 곧바로 입을 열어 주위를 환기시켰고.

“그리고 이번 일은 나나 용명이 녀석에겐 집안일이었다. 우리보단 남의 일에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너희들이 영웅이고 협객이겠지.”

이어서 녀석들의 입에서 겸양의 말이 나오기 전에 절도를 불어 넣었다.

“또 외숙부의 인사는 이가장의 일원으로서 하시는 인사다. 우리도 정무학관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받아야 해.”

그런 내 말에 동기들의 허리가 반듯하게 섰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윤영 숙부의 인사를 받았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인사가 교환되자.

이윤영이 언정웅의 어깨에 팔을 걸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상을 치르는 중에 상주가 이리 웃었다는 소문이 돌면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나, 헌앙한 조카의 모습을 보니 웃지 않을 수가 없군. 어떤가 언 서방?”

“예?”

“왜, 내가 예전부터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용운이가 사고뭉치 같아도 자라며 다 길을 찾을 거라고.”

기실 그 사고뭉치의 혼은 사라졌고, 원작에서 보인 전(前) 용운이 놈의 행보도 마인이 되는 것이었으니 윤영 숙부의 생각은 완전히 헛다리라 할 수 있었으나.

“예. 작은 처남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아비 노릇을 옳게 해준 기억이 없건만, 언제 이렇게 훌쩍 컸는지.”

“근데 왜 얼굴이 그 모양인가?”

“제 얼굴이 어떻길래 그런 말씀을….”

“기괴하게 일그러진 게 꼭 잘못 구운 못난이 도자기 같네. 울든지 웃든지 하나만 하게. 나만 보기 아까운데, 화공을 불러다 초상을 한 장 그려 영영이에게 보내주고 싶구만.”

“…….”

분위기가 좀 풀리는 것 같아 그냥 그런 것으로 치기로 했다.

- …잘못 구운 도자기? 큽. 크흐흡.

다만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키득거려 오셔서 웃음이 전염될까 혼신의 힘을 다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읏지므시르그요.’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윤영 숙부는 정식으로 부음을 전해오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곧 제단으로 오는 것으로 알고 나는 돌아가도록 하마?”

하나, 일단 언정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게 먼저였다.

나는 시선을 언정웅 쪽으로 돌려 무언의 허락을 구했다.

그런 내 시선에 언정웅은 윤영 숙부가 잘못 구운 도자기 같다고 평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여 왔다.

“다녀오너라. 남은 이야기는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에 관한 것이니 급할 것이 없다. 차차 하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언정웅과의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한 나는 윤영 숙부를 향해 시선을 옮겨 부고에 대한 답을 했다.

“그럼 용모만 단정히 바로잡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오는 중에 후원의 목욕간에 물을 데워놓으라 일러뒀다. 나가면서 시비들을 들여보낼 테니 안내에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럼 이 아비도 제단 근처에 손님상을 내는 곳에 가 있으마. 아, 의형 그리고 노 교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두 분 모두 네 걱정을 많이 하셨다. 특히 노 교수님은 내상을 입으시고도 너를 챙기시더구나.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쪽 일을 다 보고 나면 감사 인사를 드리러 오도록 하거라.”

그렇게 이윤영과 언정웅이 침소를 나갔고.

우리는 이어서 기별을 전해오는 시비들을 따라 목간실로 이동했다.

성별이 다른 제갈설지만 독채에 들어갔고.

다른 녀석들과는 다섯 개의 목간통이 준비된 목욕간에 함께 들어갔는데.

더운물에 몸을 담그자 천장호가 뭔 앓는 소리와 함께 시 한 구절을 읊길래.

“어흐. 청사아아안일도, 도동운우.”

어이가 없어서 내 입이 열렸다.

“…무슨 노인이냐?”

“뜨거운 물로 목욕할 때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목욕도 몇 번 안 해봤을 거 같은 놈이 잘도 원래 소리를 하네.”

“…평생 한 목욕보다 용운 형 따라다닌다고 한 목욕이 더 많긴 하죠. 사실 학관에서 산서로 출발하기 전에 노삼 교수님이 이러시던 게 기억이 나서 따라 해봤습니다.”

“교수님 이야기나 해봐. 내상을 입으셨다는 소리는 뭐야?”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이야기는 내가 제실에 있던 동안 이가장에서 벌어졌던 싸움에 관한 것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된 거예요.”

“아버지랑 무혁 숙부가 오시지 않았으면 정말 아슬아슬했네. 근데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지? 저번에 중영 숙부가 한 말을 돌이켜 보면 처가 일에 나서지 말라고 서신을 보낸 모양이던데. 그런 거 보고 나면 움직이실 분이 아니지 않냐 용명아?”

“저희가 살수에게 습격을 당한 일이 걱정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낙양으로 가셨다가….”

계속해 이어진 이야기를 통해 나는 노삼이 소릉이 녀석을 감싸다가 내상을 입은 일.

그리고 팽무혁과 언정웅이 이 시점에 이가장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익숙한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어쩐지 간질간질해지는 마음을 더운물의 푸근함 속에 묻으며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나비효과도 있을 수 있구나.’

처음 이 몸에 빙의했을 때만 해도 나비효과라 하면 막연히 원작의 사건 배열을 알고 있는 내 이점을 망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노삼의 동행도 그렇고, 언정웅과 팽무혁의 등장도 그렇고.’

하나만 부족했어도 이번 사건이 이렇게 적은 피해로 끝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서의 일이 원전의 흐름을 통째로 비껴간 이상, 그와 같은 일은 언제고 또 일어날 수 있었다.

‘결국 일신의 실력을 기르고 내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수뿐이야.’

그때였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짐을 새기고 있는 그때.

문득 내 뇌리에 근황을 묻지 않은 한 사람의 이름이 스쳤다.

“권영 숙부, 아니 이권영 그 새끼는 어떻게 됐지?”

* * *

목욕을 마친 우리는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제단이 설치됐다는 이가장의 정전(正殿)으로 향했다.

장례는 상당히 후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오면서 들으니 정문 앞에 인근의 주민들이 망자의 명복을 빌게끔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했다.

분향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중원에선 조문을 하러 온 손님에게 답례를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대충 철전 한 개씩만 쥐여줘도 엄청난 금액이 소모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전에 와서 보니 망자들의 관 주변에 얼음까지 놓여 있었다.

‘여름에 얼음이라니.’

거부가 상을 당했을 때나 볼 수 있는 후한 장례였다.

살아 있을 때 잘해줘야지 죽고 나서 장례식을 후하게 열면 뭐 하냐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았다.

‘장례식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무사야 원래 죽음을 짊어진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유가족들은 가족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지지대 삼아 슬픔을 덜고.

살아남은 무사들과 이가장의 일원들은 자신이 이 장원의 일원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헌신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유례없는 참변에도 이가장과 태원상단은 건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칫 헛돈을 쓰는 것처럼 보여도, 기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 이었다.

‘외조부의 성정이 이런 곳에서도 드러나네.’

내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그때였다.

하얀 상복에 지팡이와 조기를 들고 계시던 외조부께서 우리를 발견하고 입을 여셨다.

“이가장을 구한 정무학관의 젊은 영웅들이 망자들을 배웅해 주기 위해 이렇게 걸음까지 해주셨구려. 이 늙은이가 상주로서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오.”

그런 외조부의 음성에.

정전의 좌우로 도열해 있던 다른 상주들과 유가족들이 곡소리를 멈추고 담담히 의복의 양 소매를 붙이며 읍을 해왔다.

그에 윤영 숙부가 감사 인사를 해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장엄함과 전율이 몸을 타고 흘렀지만.

앞서 이윤영의 인사를 받으며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었기에, 나와 다른 동기들은 의젓하게 인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기운들 내십시오.”

그러고 나서 향과 지전을 사르기 위해 제단 앞으로 가니.

사방에 얼음으로 둘러싸인 관이 있었는데, 개중에 족보상으로 막내 외숙부였던 이권영의 관도 있었다.

그 관을 확인하자 조금 전에 목욕간에서 용명이 녀석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권영 숙부는 돌아가셨습니다. 싸움 초반에 금 총관께 그렇게 되시고, 대외적으로는 이가장을 위해 싸우다 가신 것으로 발표가 됐습니다. 이따 제단에 가면 아마 뵐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윤영 숙부가 외조부를 향해 입을 열었고.

“아버님. 소영웅들 덕에 많은 이가장의 일원들이 목숨을 건졌고, 또 이렇듯 망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기운을 차리자마자 방문을 해주었습니다. 장주이신 아버님께서 직접 노고에 대한 답례를 해주셔야 이치에 맞습니다.”

상복을 입은 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그런 윤영 숙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예, 어르신. 안민당주의 말이 옳습니다. 잠시 내실에 들어 소영웅들의 노고를 살펴 주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이가장더러 예를 모른다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그에 못 이기는 척 외조부께서는 조기와 지팡이를 금 총관에게 맡기며 입을 여셨는데.

“그럼 금 총관이 제단을 맡고 있도록 하고, 윤영이는 객들을 모시고 들어오너라.”

자신이 버젓이 있음에도 조기와 지팡이를 금 총관에게 맡기는 외조부의 모습에 큰 외숙인 이중영의 얼굴이 벌게졌으나.

“불만이라도 있느냐?”

돌아온 질문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없습니다.”

그렇게 내실에 들어가니.

이윽고 소담한 상이 따라 들어왔고 외조부는 동기생 한 명 한 명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술을 따라 주셨는데.

내 차례에 이르러서는 질문을 하나 던져 오셨다.

“방금 보니 제단을 보며 골똘히 생각을 하던데? 무슨 생각을 그리하였느냐?”

그에 나는 당시 했던 생각을 솔직하게 전했다.

“권영 숙부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권영이 생각을?”

“예. 지은 죄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고, 그 죽음도 포장이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권영이 이가장을 마교에게 넘겼던 놈이라는 진실을 아는 사람들 끼리는 속으로만 하고 있던 생각을 내가 뱉자.

장엄한 가운데 화기가 돌았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런 가운데 외조부가 나를 향해 입을 여셨다.

“…용운이는 잠시 나를 따르거라. 윤영이는 나 대신 생도들을 대접 좀 하고 있고.”

“예. 아버님.”

나는 앞서 걷기 시작하는 외조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에서 방으로 그 방에서 또 다른 방으로 그렇게 몇 칸의 방을 옮기고 나온 방에서 외조부께서 화병 하나를 당기셨다.

그러자 바닥이 턱하고 내려앉으며 지하실이 나왔는데.

외조부께서는 지하실 아래로 걸음을 옮기며 나를 향해 재차 물음을 던져 오셨다.

“하면, 너라면 어찌했겠느냐?”

“다른 것은 몰라도 제단에 같이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 답을 듣고는 이런 말씀을 해오셨다.

“사실 내 생각이 네 생각과 꼭 같다.”

그에 내 뇌리엔 저게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지하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 소자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아버님께서 이윤영 그 자식에게 이가장을 물려주시려 함을 저는 진즉에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권영이 살아 있었다.

그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 추측을 던져 오셨는데.

- ……? 노인네가 그래도 자식이라고 죽이지는 못하고 저리 둔 것인가?

나는 그런 사부님의 추측에서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았다.

‘…아뇨. 이미 장례가 치러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금 저와 생각이 같다고 하셨고요.’

이미 숨은 거두기로 마음을 먹으시고 여기에 가둬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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