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뺨을 때려 주시네 (1)
내게 이권영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외조부는 지하실 밖으로 걸음을 돌리셨다.
나는 그 걸음을 묵묵히 따랐고.
“소자는 그저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 했을 뿐입니다!”
이권영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 방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외조부께서 나직한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여셨다.
“어디 보자. 지은 죄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고, 그 죽음도 포장이 됐다 하였더냐?”
“…….”
“그리고 다른 망자들을 기리는 제단에 함께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하였지?”
“…소손이 외조부님의 뜻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으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전혀 주제넘은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내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아니지. 되려 내 심중을 정확하게 꿰뚫었느니라.”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지하실을 벗어나게 되었는데.
외조부는 화병을 제자리로 돌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닫고 나서야 남은 말을 이어 내셨다.
“용운이 네 말이 다 맞느니라. 어찌 제 욕심을 위해 이가장을 팔아넘긴 권영이를 목숨을 던진 자들의 제단에 함께 두겠느냐?”
“…….”
“녀석은 기실 죽을 자격조차 없다 해야 할 것이다. 제가 아는 것을 다 실토하고, 또 제 잘못을 일말의 후회라도 하고 난 뒤에야 그 자격이 생기는 것이니까. 다만, 남은 사람들이 겪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리 포장을 해두었다. 정말 같은 제단에 둔 것도 아니고 다른 날 다른 시에 숨을 거둘 것이니, 망자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그런 외조부의 음성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혀를 내둘러오셨다.
- …용운이 네 말마따나 정말로 목숨을 거두겠다는 전제하에 이권영을 살려둔 것이로구나? 허. 자식의 일이 되면 저렇게까지 모질어지기 쉽지 않을 것인데, 간장(肝腸)이 한철로 이루어진 위인이로다.
사부님의 말에 일견 동감하는 바였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언정웅과 시간을 보내고 온 탓일까?
아니면 일순 떨리는 듯했던 외조부의 손을 봐서일까?
내 입에서는 어째선지 짧은 위로가 튀어나왔다.
“괜찮으십니까?”
그런 내 말에 일순 외조부의 동공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제단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네가 될 수도 있었거늘, 지금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하나 외조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추상같은 말을 뱉어내셨다.
“괜찮다마다. 내 일전에 중영이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너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기억하고 있겠지만, 권영이가 나를 죽이려 한 것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하나 다른 식솔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지하에 있는 자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외숙부라 생각하지 말아라.”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외조부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너를 이리 데리고 온 이유는 용운이 네가 내 심중을 꿰뚫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도움을 받고자 함이니라.”
“도움 말씀이십니까?”
“내 권영이 녀석이 마교에 관한 정보를 토설케 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저리 가둬두고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있었으나, 결국 마교라는 족속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니 권영이 녀석이 입을 열더라도 어떤 말이 쓸모가 있고 어떤 말이 쓸모가 없는지 알 재간이 없구나.”
“심문을 도와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오냐. 이번 일을 살펴보니 우리 중에 마교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용운이 너인 모양이더구나? 그간 남몰래 홀로 마교를 쫓고 있었다지?”
“……?”
내가 눈을 붙이고 있는 동안 어떤 이야기가 오갔길래 결론이 저렇게 났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닌가?’
어쨌거나 이 시점에선 내가 마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 속한다는 건 사실이었고.
오해를 정정하기엔 마교를 어찌 그리 잘 아느냐에 대한 질문이 돌아오면 할 말이 없었다.
하여, 나는 그런 것으로 하기로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예. 제가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붙이기로 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예. 남은 일은 윤영 숙부와 둘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이번 일을 돕는 조건입니다.”
사부님은 외조부더러 간장이 한철로 이루어진 사람 같다고 했다.
하나,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추상같은 태도를 계속 유지하시는 듯했지만.’
내가 건넨 짧은 위로에 떨리던 동공만 봐도 그러했고.
이권영의 숨을 거두게 할 것이라는 말을 할 때 살짝 떨려왔던 손끝을 봐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외조부가 한 말도 뇌리에 스쳤다.
‘괜찮지는 않지. 하나 괜찮아야 하느니라.’
나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외조부님께서는 이만 이 일에서 손을 떼 주십시오.”
그런 내 말에.
외조부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가만히 눈만 깜빡이더니.
“…어릴 적에 영영이 그것이 아비가 상심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다가와 손을 끌곤 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구만.”
어느 순간.
고개를 주억여 오셨다.
“알겠다. 내 윤영이를 이리 보내도록 하마.”
* * *
외조부가 윤영 숙부와 동기들이 있는 정전의 내실로 돌아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달칵-
답지 않게 무거운 표정을 한 윤영 숙부가 내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후. 아버님께서 따로 너를 보자고 하시길래 짐작은 했는데, 역시 네게도 권영이의 일을 전하셨구나. 놀라진 않았느냐?”
“제가 좀 간이 큽니다.”
“하기야. 내심에 뜻이 있었다 해도 가문의 비급을 빼낸 간덩이가 작다고 할 수는 없지.”
“…….”
“뭐, 그건 그렇고. 아버님의 생각은 어디까지 들었느냐?”
“마교에 대해 다 털어놓게 하고 나서 막내 숙부를 자결시킬 것이라는 대목까지 들었습니다.”
“다 들었구나. 나는 반대했다. 무림맹으로 보내자고 했는데 설득이 안 되더구나. 이후에는 아버님이 직접 맡으실 일이 아니니 꼭 하셔야겠으면 내가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쇠고집이시라 방법이 없었다. 너는 어찌 설득을 하였느냐?”
“…그건 어쩌다 보니라고 밖에는 설명을 못 하겠는데요?”
“하기야, 그게 뭐가 중요할까. 아무튼 잘했다. 네가 나보다 낫다.”
나와 윤영 숙부는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권영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챙겼다.
“그럼 들어갈까요?”
“그러자꾸나.”
그리고 화병을 당겨 나타난 지하실로 윤영 숙부와 함께 들어갔다.
드르륵-
그렇게 이쪽에서 인기척이 나자.
다시금 이권영이 악다구니를 질러오기 시작했는데.
“아버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외조부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확인하자.
사지가 결박되어 벽에 묶여 있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미간을 와락 구기며 짜증을 내왔다.
“…아버님이 아니고 이윤영? 그리고 언용운? 비웃으러 왔느냐? 아버님도 참 작정하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시는군.”
그런 이권영을 향해 나는 기도를 살짝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준비한 물품 중 곽사홍의 수급이 들어 있는 함을 열었다.
“귀도마군 곽사홍은 이렇게 목 없는 귀신이 되었고, 밖에 저희 아버님과 도제라 불리시는 하북팽가의 가주님이 와계십니다. 마교 놈들이 구해주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거라면 단념하십시오.”
“…….”
내가 보인 기도와 준비해온 곽사홍의 수급에 이권영은 흠칫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 말을 이었다.
“단념하시고 마교와 무슨 말이 오갔는지, 혹 넘긴 이권이 있는지 이번 일이 원만히 수습되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일이 이렇게 되었으나, 이가장은 막내 숙부께서 나고 자란….”
그렇게 심문을 하는 중에 그래도 이권영이라고 부르는 건 시비를 거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존칭을 사용했는데.
되려 그게 이권영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인지 놈이 갑자기 악다구니를 질러왔다.
“누가 막내 숙부냐! 내가 막내 숙부면 이윤영 저놈보다 아래라는 것이냐?! 이 망나니 놈이!”
그런데 이때.
윤영 숙부의 눈에 불길이 이는가 싶더니.
이권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따귀를 후려쳤다.
짝!!!!!!!!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윤영 숙부의 손이 시뻘게졌고, 이권영은 입술이 터졌는데.
“감히 누구보고 망나니라는 것이냐? 권영이 네 놈이 망나니면 망나니지, 용운이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는데!”
이권영은 퉤! 하고 입에 고인 피를 뱉더니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감히 나를 쳐? 허, 이윤영이가 아주 살판이 나셨구만?!”
“그래, 네 덕분에 나는 아주 살판이 났다! 형님도 아버님의 신임을 완전히 잃으셨고, 너는 이 꼴이 났으니 이제 이가장이 내게 굴러들어오게 되었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야!”
“이제야 이윤영이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그놈의 본색은! 내 본색은 항상 똑같았다! 내가 언제 이런 걸 바랐다고! 내 바람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부터 쭉 같았다! 형님과 네가 나를 덜 미워하게 되어서, 우리 남매가 좀 더 우애 있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하나, 사람이 호인이라 그런가?
윤영 숙부의 눈에 일었던 불길은 그래 오래 타오르지 못했다.
“…그냥 그것만을 바랐을 뿐인데. 이가장의 장주 자리고 태원상단의 상단주 자리고 나는 한 번도 바란 적 없는데,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났는지 모르겠다.”
한데, 그런 윤영 숙부의 말이 오히려 목에 걸린 가시같이 느껴졌던 모양인지.
이권영의 입에서 자조 섞인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화도 제대로 못 내는 등신. 나는 너의 그런 점이 너무 싫었다. 사람을 소인배로 만들어 버리거든.”
그리고 그런 자조는 윤영 숙부의 입이 다시 열리게 만들었다.
“…그래 권영이 네 말마따나 모두 내 탓일지도 모르겠구나.”
“…….”
“…차라리 내게만 살수를 보내지 그랬느냐.”
이가장의 장주 자리나 태원상단의 상단주 자리 같은 명성과 지위뿐 아니라 목숨도 내어 줄 수 있었다는 윤영 숙부의 말에 이권영은 무어라 답을 하려 했다.
“그건….”
하나 막상 말을 뱉어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
“…….”
두 사람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구태여 나도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에 무거운 정적이 제법 오래 흘렀는데.
어느 순간 이권영이 그 정적을 헤집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맞춰왔다.
“용운아.”
“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리 무언가 단호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모르니 잘 들어라.”
“말씀하십시오.”
“놈들과는 이가장을 장악하면 북시(北市)와 마시(馬市)를 더 이상 풀어놓지 말자는 말을 했다. 그를 통해 삼문협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기로 했지. 향후의 계획에 관해 나눈 말은 그것뿐….”
그때였다.
이권영이 마교와 나눈 이야기에 관해 입을 연 그때.
갑자기 이권영의 얼굴에 핏대가 잔뜩 서더니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궈, 권영아? 용운아! 권영이가 왜 이러는 것이냐?”
그에 한 가지 가능성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더니.’
마교 놈들에게 금제 같은 것을 당한 건가?
하나, 당장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주술적인 금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였다.
“혹시 고독(蠱毒)을 삼키셨습니까?!”
고독은 벌레에 주술이나 독 등을 주입하며 만드는 것으로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대체로 고독을 삼킨 사람이 고독을 건넨 사람의 통제를 벗어났을 때 고통을 주거나 생명을 앗는 식으로 발현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질문에 이권영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윤영 숙부는 내게 해법을 물었다.
“용운아!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제가 알기론 몸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기 이전에 내력으로 태우는 것과 삼킨 고독에 딱 맞는 해약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경우엔 손쓸 도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윤영 숙부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없다고? …정녕 없단 말이냐?!”
그런 윤영 숙부를 보며 이권영은 쓴웃음을 보였는데.
“…정말 사람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쿨럭.”
그 웃음 끝에 평생 아껴왔던 형님 소리를 윤영 숙부에게 전해왔다.
“…형님은 사람이 좋은 게 너무 탈이오.”
“…….”
“상인이라는 게 사람이 좋아서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때로는 끊을 것은 끊고 가야 하는 법이지. 배신한 놈 같은 거 일일이 신경 써서는 앞으로 갈 수가 없어.”
“권영아….”
“…질투했소. 나보다 잘난 형님이 모든 걸 가져갈까 봐. 또 두려웠소. 평생 보낸 시기와 멸시가 눈덩이가 되어 돌아올까 봐. 그런 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구만.”
말을 이어가는 이권영의 낯빛이 시시각각 파리해지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말을 짜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 남은 말이 많은지 이권영은 말을 뱉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부인과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소. 제세당을 부탁하오. 그리고 용운아.”
“말씀하십시오.”
“변명 같겠지만, 너희 형제를 말려들게 할 생각은 정말 없었다.”
“…….”
“못난 놈이 감당하지도 못할 욕심을 내다 불똥이 그리로 튀었구나. 그러고 보니 네 어머니 영영이한테도 어린 시절에 잘못했던 일들이 많은데 그 일들을 사과하고 싶….”
하나, 하던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각혈하더니.
“쿨럭,”
“권영아!”
“내가 한 일들이 용서받지 못할 건 잘 알고 있소. 그래도 아버님께 죄송했다는 말은 전하….”
결국, 하려던 말을 모두 맺지 못한 채 말을 멈췄다.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권영아!!!!”
윤영 숙부는 내가 옆에 있는 것도 잊고 이권영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했다.
‘정작 외조부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못 하고 가다니.’
이권영의 죄 자체는 죽어 마땅했고, 본인도 용서를 받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죄송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마 외조부도 산서니 천하니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아버지로 돌아가라 하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을 터였다.
하나, 그 순간은 이제 영원히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사실 이가든 언가든 한걸음쯤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교 놈들은 사람 기분을 참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