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63화 (163/444)

제163화. 뺨을 때려 주시네 (3)

산서분타주가 정치질을 걸어오는 것 아니냐는 내 추측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노삼은 인상을 구기더니 상에 차려져 있던 술병을 들어 입안으로 부어 넣었다.

“크윽.”

그러는 사이 용명이 녀석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이야기란 말입니까? 투서? 형님의 자질? 해명이 붙어보자는 거라니 그건 또 뭐고요?”

녀석의 질문에 팽무혁이 노삼을 향해 입을 열었고.

“노 선배. 일단 그 서간을 애들에게 보여 주십시다.”

노삼은 ‘씁’ 하는 소리와 함께 쥐고 있던 서간을 내게 넘겼다.

그에 우소릉, 정현, 언용명, 제갈설지, 천장호.

다섯 개의 머리통이 내 근처에 옹기종기 모인 가운데 나는 서간을 펼쳤다.

『산서분타의 젊은 거지들이 노삼 교육 장로님께 알립니다.

본 분타는 이번에 이가장에서 일어난 소란의 수습을 돕기 위하여 파발조와 전서구를 띄우는 과정에서, 노 장로님께서 항룡장을 언용운 생도에게 전수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 장로님 나름의 복안으로 부여된 권한을 사용하신 것이겠으나.

언용운 생도의 행적에 관한 정보가 상반된 것이 많고, 그 상반된 정보 중 한쪽이 품행이 심히 불량함을 담고 있다는 점.

이가장이 습격을 당하는 동안 언용운 생도의 행적이 묘연했다는 점.

노 장로님께서 정의파의 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 일이 극히 드물며 외인에게 항룡장을 전수해준 적이 없으시다는 점.

열거한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각종 낭설에 젊은 거지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동요하고 있습니다.

지난 소란으로 이가장이 상중이고, 노 장로께서도 심신이 고단할 줄은 압니다만.

이 동요가 길어지면 집법당에 투서를 넣고 다른 분타의 형제들에게 통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부득불 이리 전서를 보내오니.

조속히 언용운 생도를 대동하고 분타에 왕림하시어 해명해 주시든지.

여의치 않다면 다른 방식으로 정의파의 젊은 거지들을 납득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서간의 내용은 여기까지.

아래로는 오복, 계춘, 복철 같은 젊은 거지들의 수결과 산서분타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뭐, 요약하면 자신들은 언용운이 항룡장을 가르쳐도 될 만한 그릇인지 모르겠으니, 데려와서 증명을 하든 조용히 넘어가고 싶으면 정치적인 양보를 하든 둘 중에 하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서간의 내용에.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허리춤의 사부님이셨다.

- 거지새끼들이 거지 같은 짓을 했구나. 노삼이나 천장호는 좀 뻔뻔해서 그렇지 밉지는 않았는데, 정의파라는 놈들은 옷만 멀끔했지 정작 속이 시커먼 새끼들이었구나.

다음은 천장호였다.

“…어우. 막상 서간을 보니까 등줄기에 땀이 다 나네. 이, 이 양반들이 밥 잘 얻어 처먹고 왜 붓으로 똥을 싸놨지?”

그런 천장호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왜. 완벽한데?”

“예?”

“전부 당신들 탓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개방의 산서분타는 마교의 조짐을 무시한 것이 사실이니 책이 있는데도 정작 그 일은 소란 정도로 낮추어 말해놨고.”

“…….”

“반대로 우리 쪽의 일은 큰일인 듯 적어놨는데, 그러면서도 동요 같은 말을 써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았네? 그중에서도 꽃은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납득을 시켜달라는 마지막 문장이야. 크으. 완벽하다 완벽해.”

그에 천장호가 더듬더듬 사과의 말을 뱉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너 산서분타의 간자야?”

“아뇨!”

“그런데 네가 왜 죄송해?”

그런 천장호의 말에 어울려 주고 있으니.

정현이 ‘잠깐잠깐.’을 외치더니 물음을 던져왔는데.

“두 분의 말씀은 지금 이 서간에 적힌 말이 제대로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보안을 위해 개방의 방도들만 읽을 수 있는 암어 같은 것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여기 적어 놓은 말들이 산서 분타 거지들의 진심이라는 겁니까?”

그러는 중에 흥분하여 표현이 조금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귀도마군과 경 노야 그 노마두의 암계에 흐른 피가 일대에 아직 그대로인데! 연일 구슬픈 곡소리가 들려오는 이때 어떻게 개방의 제자가 협잡질을….”

본인이 그 사실을 깨닫고 노삼과 천장호를 향해 사과를 해왔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천 소협. 개방 전체를 욕 보인 것이 아닙니다. 저로서는 마교인들의 패악을 실제로 확인한 분들이 이런 일을 획책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만 실언을….”

그런 정현의 사과에 우리 쪽의 두 거지는 침울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고.

“…아니다. 정현이 네 말에 틀림이 없다.”

“도장이 만날 하는 말마따나 이건 정말로 도가 아니죠.”

정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원시천존. 숲에 불씨가 떨어지는 것을 뻔히 봤으면서 어찌 눈앞의 나무에 집착을 하는 것인지….”

제갈설지가 실소를 흘리며 한마디를 보탰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근데 이건 나무도 보지 않고, 그 나무에 매여 있는 밥그릇만 살피는 모양새네요. 심지어 경 노야 그 노마두도 놓친 판국인데.”

그 바람에 잠시 간의 정적이 찾아 들었다.

그 정적을 깬 사람은 용명이 녀석과 우소릉이었다.

“이보게, 장호. 하여 그 해명이 붙어보자는 말이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린가?”

“맞아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질문을 받은 사람은 천장호였지만.

녀석이 여러모로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개방도들은 원래 그렇게들 해결을 많이 봐.”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소릉아, 생각을 해봐라. 그 젊은 제자라는 놈들이 입을 모아 내 자질이 의심된다지 않냐. 거기 가서 저는 사실 예의도 바르고 가진 거라곤 의협심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면 저런 실례가 많았습니다,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이럴까?”

“…아, 아니요.”

“하오나 형님. 교수님과 함께 오라는 것을 보면….”

“용명아. 너도 생각을 좀 해라. 한창 상중인 이가장에서 노삼 교수님이 나를 데리고 산서분타에 해명을 하러 가실 분이 아니잖아? 이건 그냥 답을 정해 놓은 거지, 그 구실로 교수님더러 산서분타에 와서 정의파 쪽에 유리하게 정리 좀 하고 가시라는 거잖아.”

내 말에 틈이 없어 보이자 용명이 녀석은 잠시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노삼 교수님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집법당이라는 곳에 투서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일단 들어가 봐야 한다. 개방은 다른 문파들과 달리 방규가 몇 개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가정한 세세한 규약이 있고 그렇지가 않아. 그냥 일이 터지면 방도들의 의견을 들어서 그때그때 결정을 한다.”

“…그래서 형님이 정치질이라고 하신 것이군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말 거라. 다른 장로나 분타주들에게는 따로 말을 안 했지만 방주님께는 말씀을 드려놨고 하니, 네 형님에게 불똥이 튀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그때였다.

그런 내 말에 동기들이 저마다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주억이는 그때.

팽무혁이 입을 열었다.

“치질이나 걸릴 놈들 같으니. 하여, 용운이 네 생각은 어떠냐?”

팽무혁의 말에 나는 뭐 그런 것을 묻냐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해명하러 가야죠.”

그러자 노삼이 고개를 가로젓고 나섰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이건 내 실책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주먹이 울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울고 싶은 놈의 뺨을 때려 주시네.

‘다 뒈졌다, 이 새끼들.’

* * *

개방의 산서분타.

덕근의 방에서 산서분타에 적을 둔 간부들이 이가장에서 싸준 제사 음식을 집어 먹고 있는데.

웬 거지 하나가 기별을 해왔다.

“분타주님. 오복입니다.”

오복은 삼결개로 산서분타 파발조의 조장이자, 덕근의 주도하에 작성된 서간을 노삼에게 전하러 갔던 거지였다.

그런 오복의 등장에 모여 있던 거지들이 먹던 음식을 내려놓았고.

이어서 덕근의 입이 열렸다.

“들어와라.”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전달은 잘했느냐? 반응이 어떻더냐?”

“열불을 내죠, 뭐. 근데 정말로 노 장로가 분타주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겠습니까?”

“움직일 것이다. 노삼 그자는 남들이 하고 싶어 하는 후개 자리도 마다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교육 장로를 하러 간 자다. 제자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자야. 제자들에게 불똥이 튈 일은 어지간해선 하지 않아.”

그런 덕근의 말에 타구조라 불리는 폭력조의 조장을 맡은 계춘이라는 거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하기야, 노마두랑 싸우다가도 그 제자놈이 위험하니까 앞뒤 안 재고 그냥 몸을 던지던데요?”

그런 계춘의 말에 덕근은 희망 사항을 입에 올렸다.

“그래. 그런 위인이니까 올 거다.”

하나,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태원 일대를 마교 놈들이 제집 안방으로 만드는 동안 산서분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덕근 본인이 엄중한 문책을 당할 것은 물론이고, 정의파의 꼴이 아주 우스워질 터였다.

하지만 노삼이 입을 맞춰주고 이가장에서 산서분타가 세운 공을 조금만 부풀려주면?

그럭저럭 마교라는 이름을 방패막이로 삼아 면피할 수 있을 터였다.

‘앞의 일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진즉 수상함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제때 달려와 큰 힘이 되었다.’

보고서에 써넣기 딱 좋은 문장이었고.

이후에 대처나 무림맹과의 협조 과정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덕근과 정의파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뭐, 달려가 도운 것은 사실이니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아니었다.

‘천장호가 달려와 귀띔해준 덕이긴 하지만.’

그렇게 덕근의 생각이 계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노삼이 움직여 주겠냐는 말을 해왔던 오복이 재차 부정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만약에 해명한답시고 노 장로님이랑 언용운이라는 친구가 이리로 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오복의 말에 그리던 푸른 미래가 끊긴 덕근이 미간을 와락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네놈들이 증명해야지! 노삼 본인도 아니고 그깟 언용운이 겁나는 것이냐?!”

“그깟 놈이라기엔 그 천장호도 못 듣는 당금수석 소리에, 이번에는 마두 놈의 목을 따왔다고 하잖습니까? 애초에 노 장로가 항룡장을 가르쳐 준 것 자체가 오성이 대단한 놈이라는 거고요.”

그런 오복의 말에.

허리춤에 매듭이 네 개가 잡힌 거지 복철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멍청아. 당금수석은 무위보다는 이걸로 결정되는 거야. 그리고 마두를 벤 일은 눈으로 보지도 않았는데 어찌 믿냐? 하북권웅에 그 생도 놈들이 막바지에 잔뜩 몰려갔으니 합공이라도 했겠지. 마지막에 목만 썰어도 따긴 딴 거 아니냐?”

“그러려나요?”

“그리고 그 언용운이라는 녀석의 행보를 보면 영락없는 검수더만? 이리로 해명을 하러 오면 검을 내려놓고 항룡장을 보여야 한다. 항룡장이야 노 장로가 망해가는 청죽관의 당금수석 인재를 끌어올 명목으로 몇 수 가르쳐 준 정도겠지.”

그렇게 복철의 추측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그때.

누군가가 산서분타의 대문을 두들겨오는가 싶더니.

쿵! 쿵! 쿵!

이결개 하나가 급히 달려와 입을 열었다.

“노 장로가 왔습니다! 근데….”

“역시 왔구나! 봐라, 내가 뭐라고 했느냐?”

“…근데 언용운 생도도 함께 왔습니다.”

그러자마자 우악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어쩐지 심사가 뒤틀려 보이는 쩌렁한 젊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쿵! 쿵! 쿵!

“서간 보고 왔으니 빨리빨리 문 엽시다!”

딱 기다리던 답이 아님에 덕근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나, 일단 왔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눈앞에서 언용운이 곤란해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이야기가 쉬울 수도 있었다.

덕근은 복철을 응시했고.

복철은 자신만 믿으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다른 조장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대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문을 열어라.”

그에 건조해 보이는 표정의 노삼과 인상을 쓰고 있는 언용운이 안으로 들어왔는데.

언용운은 들어서자마자 차고 있던 검을 노삼에게 맡기더니 마당 한가운데에서 어깨를 풀며 입을 열었다.

“덤벼.”

그런 언용운을 향해 복철은 훈계하듯 입을 열었다.

“예의가 없군.”

하나 그런 훈계는 먹히지 않았다.

언용운은 허리에 끼우고 온 서간을 꺼내 보이며 비소를 날려오더니.

“이딴 서간을 보내는 것은 예의가 있는 거고?”

저자의 왈패처럼 손가락을 까딱여 왔다.

“오늘 해명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면 이거 그대로 백본회로 들고 가 줄 테니까 어느 쪽이 옳은지 증명하자고.”

격장지계가 섞인 전형적인 도발이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있으나 복철도 개방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거지였다.

저런 얕은수에 평정을 잃지 않….

“오복. 네가 먼저 나가라.”

“옙.”

쌔애애애액!!!

빡!

…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제대로 된 항룡장이 언용운의 손에서 펼쳐져 나왔고.

단 두 합 만에 오복이 하늘을 날았다.

쾅!!!

그리고 내벽에 처박혔다.

“다음.”

복철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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