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뺨을 때려 주시네 (4)
산서성의 최북단에는 장성(長城)이 있었다.
그 장성의 관문부터 태원까지 자를 대고 선을 그으면 삼분지 일 정도에 해당하는 위치에 마시(馬市)라 부르는 시장이 있었다.
마시는 장성 이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허가받은 자들이 말이나 양을 가져와 곡식이나 생필품으로 바꿔 가는 시장이었는데.
이 마시를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행렬이 있었다.
그 행렬은 멀리서 보기엔 영락없이 귀하신 분의 행차인가 싶은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교(駕轎)라 하여 가마꾼만 수십 명이 들러붙는 거대한 가마에 여덟 명의 가마꾼이 짊어지는 팔인교까지.
두 대의 위엄있는 가마를 중심으로 호위하듯 늘어선 무리가 일백이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한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전혀 귀하신 분의 행차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괴하기 그지없는 행렬이었다.
딸랑! 딸랑!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스산한 연기를 뿜는 향로를 들고 딸랑딸랑 종을 울리는 방사였고.
쿵! 쿵! 쿵!
가마를 짊어 멘 가마꾼들을 제외하면 뒤에 늘어선 무리 전원이 본인들의 관을 짊어진 시퍼런 강시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망자들의 행렬이었던 것이다.
이 근방에는 장성이 있었고 또 탄광이 있었다.
본디 죽어 나가는 자들이 많았고 그네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도사나 방사를 고용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강시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퍽 새로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구경할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인근의 민가들은 강시들을 인도하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옴이 붙을까 황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한데 그 기괴한 행렬을 향해 오히려 다가서는 자가 있었으니.
왼팔이 잘려나간 초췌한 몰골의 노인.
경 노야였다.
경 노야는 그 기괴한 행렬 앞에 다가선 즉시 부복했다.
그리고 이마를 땅에 찧으며 입을 열었다.
“괴왕부의 주인을 뵙습니다.”
그에 맨 앞에서 걷고 있던 방사가 종을 흔드는 방식을 바꿨다.
딸딸랑!
딸딸랑!!
그에 강시들이 우뚝 멈췄고.
두 대의 가마 중 뒤쪽에 있던 팔인교의 문이 열렸는데.
그러자마자 두 명의 가마꾼이 재빨리 문 앞에 엎드려 발판을 만들었다.
사람으로 된 발판을 지르밟으며 가마 밖으로 나온 사람은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흐음?”
아마 이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면 불티나게 팔려나갈 미인도가 될 것도 같았으나.
정작 그녀를 화폭에 담고자 하는 화공은 없을 것 같았다.
여인에게 묻어나는 귀기(鬼氣)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을 테니까.
뭐, 아무튼.
그렇게 가마에서 내린 여인은 자박자박 경 노야를 향해 걸어왔고.
고개를 들지 않고도 걸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본 경 노야는 재차 입을 열었다.
“마옥군주를 뵙습니다.”
그런 경 노야를 향해 마옥군주라 지칭되는 여인은 과장되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을 던졌다.
“경 노야가 우리를 맞이하기로 한 곳은 이곳이 아니었을 텐데요?”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뒤편의 가교를 향해 말을 전했다.
“스승님, 경 노야가 왔네요? 그런데 사랑하는 우리 사제랑 왼팔은 어디에다 두고 왔는지 없고, 일이 그렇게 되었다는데요?”
그런 마옥군주의 음성에.
가교의 창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괴왕부에서 유일하게 경 노야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노인.
“경균.”
역천괴마 구천서가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을 뱉어냈다.
“…지금 나더러 가마를 돌리라는 것이냐?”
역천괴마의 음성에.
경 노야는 다시 한번 이마를 땅에 찧으며 입을 열었다.
“송구스럽게도 그러하옵니다.”
“…어디까지 돌리면 되겠느냐.”
“지금 이가장엔 광풍투개 말고도 하북권웅과 도제가 와 있습니다. 저의 늙고 아둔한 머리로는 최소한 북시, 어쩌면 그 이북까지는 돌리셔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마옥군주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허. 스승님과 나를 부를 정도로 진척되었던 일이 하루아침에 그리되었다고요?”
엎드려 부복하고 있는 경 노야의 머리를 지근지근 밟으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내가 맡겠다고 한 일을! 가져가서 말아 먹었으면! 응당 합당한 변명거리가 있으시겠지요?!”
지르밟아오는 흙발에도 경 노야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산서금붕에게 걸어두었던 저주가 풀리면서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귀도마군은 그 일의 배후에 언용운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제 늙은 머리로도 그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언용운? 우리 왕부에 제 가문의 비급을 가져다 바친 언가의 장남? 그 병신 팔푼이 같은 망나니를 말하는 건가요?”
“…예. 그런 줄 알았으나, 그 녀석이 강시를 부릴 줄 알았습니다. 다른 해괴한 재주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운을 뗀 경 노야는 자신이 본 언용운에 관해 상세히 털어놓으려 했다.
역천괴마 본인이나 가능한 방울 없이 강시를 부리는 술법.
본연의 무위를 순간적으로 몇 단계나 건너뛰며 보여낸 검고도 붉었던 검강.
묘하게 천마검결의 향이 느껴지던 검술.
하나 마옥군주의 발에 내력이 실리며 입이 막혔고.
“아하하하하.”
“컼!”
“신교의 대업이 늦어지고 귀왕부의 입지가 진흙에 처박히게 생겼는데, 그 변명이 언용운이 실은 망나니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한 놈에게 당했다? 이보세요, 경 노야. 나를 웃기려고 그런 거면 성공했네요?”
그녀의 발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갔을 때는 곽사홍에 관한 이야기부터 털어놓아야 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경 노야 당신이 아니라 사홍이 그 녀석이 직접 와서 해야 할 텐데요?”
“귀도마군께서는 언용운에게 당해 귀천하셨습니다.”
“큽. 크흐흐흐흡. 아까부터 언용운! 언용운! 스승님, 이 늙은이가 정신이 완전히 나갔나 본데요?! 하긴, 나를 두고 사홍이 녀석 밑으로 기어 들어갈 때부터 좀 모자란 사람인 것 같기는 했지.”
그러고 나자 경 노야의 속에도 절로 쓴웃음이 맺히고 말았다.
‘…하기야. 나라도 믿지 못할 것이다.’
천마신교에서 발톱의 때만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언용운.
그놈 하나 때문에 다 된 밥이나 다름없었던 이가장의 일이 엎어졌다고 하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경 노야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나 이미 죽기를 각오한 몸이었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한번 언용운에 대해 고하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역천괴마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쯤 하거라. 나름대로 우리 왕부에 공이 많았던 늙은이다. 북시 이북까지 가마를 돌리려면 바쁘겠구나. …태원의 일이야 차차 확인을 해보면 알 일이고, 늦어진 대계는 다른 방면으로 타격을 입히면 당겨질 것이니.”
살아 있는 경 노야에게 공이 많았던 늙은이라 하였으니 당장 자결하라는 말이었다.
마옥군주는 경 노야의 머리를 밟고 있던 발을 거두었고.
경 노야는 무릎을 꿇은 채로 허리를 세웠다.
“신교불패!”
그리고 한마디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권기를 감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친 뒤.
“쿨럭.”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
그런 경 노야를 툭툭 차며 마옥군주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 이거 제가 가져도 되죠?”
가교의 창은 별말 없이 닫혔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마옥군주의 턱짓에 경 노야의 시체가 강시들이 메고 있던 관 중 한 곳으로 옮겨졌고.
딸랑! 딸딸랑!
다시금 울려 퍼지기 시작한 종소리에 두 대의 가마와 강시들의 걸음이 방향을 바꿨다.
* * *
오복이라는 거지를 단 두 방에 날려버리자.
몇 계단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산서분타의 거지 간부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들어찼다.
하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다고 여기는 것인지.
저들끼리 전음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허리춤에 네 개의 매듭이 잡힌 거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정말 항룡장을 익혔군. 우선 해명을 요구하기 전에 제대로 소개부터 하지. 나는 사결개 복철이다.”
사결개는 이른바 계주라 불리는 자로, 분타나 지타에서 운영하는 하급 조직인 ‘조’의 조장들을 통솔하는 요직이었다.
젊은 나이에 사결개 자리를 꿰찼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개방 내에서 될성부른 후기지수로 꼽히는 자라는 것을 의미했다.
‘대표적으로 천장호도 사결개지.’
물론 같은 사결개라도 천장호와 복철은 그 결이 좀 달랐다.
천장호가 눈치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해서 그렇지 사람 자체는 정직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녀석인 반면.
“항룡장이 개방의 제자가 아닌 자에게 전수가 불가능한 무공은 아니나, 비인부전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가장이 습격을 당하는 날, 가장 먼저 달려와야 했을 너는 정작 이가장에 보이지 않았다. 당시 너는 어디에 있었지?”
복철이란 녀석은 말투는 공손했으되 말속에선 어떤 꿍꿍이가 묻어났다.
“외가의 선산에 있는 제실에서 곽사홍이라는 마두 놈과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두 놈을 상대할만한 실력이 있었다는 거겠지? 그 일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이쪽에선 나와 타구조가 동시에 나서겠다.”
타구조는 삼결개 둘과 이결개 여덟, 총 열 명으로 이루어진 조로, 개방의 분타나 지타에 있는 여러 부서 중 폭력을 담당하는 조직이었는데.
사결개 복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복철 본인을 포함한 열한 명의 거지들이 앞으로 나서며 각자 권, 장, 봉을 세워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니까 결국 비인부전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꺼낸 이유는 자신들의 다구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놈들이 한없이 작아 보여.’
생사를 넘나들었던 곽사홍, 경 노야와의 싸움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눈앞의 거지들이 내 눈에는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은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도 한몫하고.’
이 순간에도 정치적인 수를 놓는 놈들이 산서금붕의 외손자에게 살초를 펼칠 리가 만무했다.
‘기껏해야 흠씬 두들겨 패주는 정도를 생각하겠지.’
그딴 정신머리로 날 대적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고.
나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까딱였고.
그러자 열한 명의 거지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족쳐!!”
나는 그런 녀석들을 향해 한마디 말을 날린 뒤.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
비영파천보를 시전하여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 달려드니 삽시간에 거리가 좁아졌는데.
그래도 사결개라고 복철이라는 거지 놈이 남들보다 몇 발 먼저 빠르게 다가와 제비처럼 날랜 주먹을 뻗어왔다.
“흥! 네놈이 받아들여 놓고 이제 와서 부끄러움이니 어쩌니 딴소리하지 마라!”
나는 복철의 주먹을 여유롭게 쳐낸 뒤.
그 틈을 타 내 뒤를 잡으려던 이결개 녀석에게 신룡파미를 먹여주었다.
꽝!!!
그에 최초에 열한 명이었던 거지가 열 명으로 줄었고.
거지들의 동작이 조심스러워졌다.
그사이 숨을 돌린 나는 녀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리 지어 덤비는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 거지새끼야.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러고 밥그릇이나 지킬 궁리를 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는 거지.”
그런 나를 향해 복철은 권장을 뻗어오며 생사람 잡지 말라는 듯 눈을 부라려 왔다.
“그게 왜 우리 탓이냐?! 외숙부가 돌아가셔서 화가 난 것은 알겠는데 애먼 거지 잡지 마라!”
팍! 팍! 퍽! 팍! 팍!
나는 복철과 다른 거지들의 공격을 쳐내며 생각했다.
‘이권영의 죽음?’
그 죽음을 남몰래 슬퍼하는 외조부님과 윤영 숙부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나였지만.
이권영의 죽음 그 자체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
전생에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나였다.
그런 산전수전 중엔 당연히 계획대로 되었던 일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일이 많았고, 그러는 중엔 당연히 바라지 않던 죽음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누군가가 죽고 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기왕 일어난 일을 탓하는 게 아니야. 사람이 살다 보면 타성에 젖을 수도 있지. 거지라고 다를까.”
“…….”
“근데 그러다 마교의 벌레 놈들이 네 놈들의 구역이라는 곳에 알을 깠잖아. 그래서 애먼 사람들이 죽었고. 그러면 좀 부끄러워해야지.”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이놈들의 정신머리가 완전히 틀려먹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정신머리를 뜯어고쳐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