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뺨을 때려 주시네 (5)
내 말이 뼈를 때리긴 한 모양인지 나를 둘러싼 젊은 정의파 거지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긴 한 모양이네.’
하나, 녀석들이 그 일말의 양심에서 비롯된 가책을 느끼기도 전에, 산서분타주 덕근의 입이 열렸다.
“언용운! 네 녀석이 노 장로님께 항룡장을 전수받았다고 해서 산서분타의 계주와 조장들의 윗사람인 것이 아니다!”
첫마디가 저렇기에.
무슨 소리를 하나 팔짱을 끼고 들어보니.
“입바른 소리는 네 아랫것에게나 해라! 어찌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이 판국에 정치질을 벌여오는 양반답게 내 말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곡해하고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결개 복철과 타구조를 향해 불호령을 쏟아냈다.
“복 계주! 그리고 타구조!”
“예! 분타주님!”
“정신을 차려라! 그 서간에 수결한 순간, 우리 산서분타는 호랑이의 등에 타게 되었다. 뭘 그렇게 주춤하고 있느냐! 이미 물은 엎질러졌음을 모르겠냐?!”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춤거리고 있지 말고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덕근의 불호령에 복철이 이를 악물며 다른 아홉 명의 거지들에게 명을 내렸다.
“타구합벽진을 펼친다! 방금 날아간 녀석의 자리는 계춘!”
“예!”
“네가 메우고, 네 자리는 내가 맡는다! 준비해!”
그에 타구조를 이루는 거지 중 봉을 쥔 네 명의 이결개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공연히 땅을 때려대며 나를 중심 삼아 시계방향으로 슬금슬금 돌기 시작했다.
딱! 딱! 딱! 딱!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흘렸다.
‘마교 놈들도 마교 놈들이지만, 산서분타주 같은 인간들도 진짜 문젠데.’
썩은 귤이 주변의 귤을 멍들게 하듯, 저런 자들이 천하 곳곳에 있으니 주변인들이 타성에 젖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태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교가 비집고 올라올 틈이 생기는 거고.’
뭐,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어.’
지금 내가 내디뎌야 할 한 걸음은 이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산서분타의 간부들이 제기한 얼토당토않은 트집을 해소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거지들에게 부끄러움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척.
나는 왼 손바닥을 앞으로 뻗고 오른 주먹을 허리에 붙여 항룡장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 열 명의 거지들이 펼치기 시작한 타구합벽진을 가늠했다.
‘상당히 안정적인 개판이네.’
개를 때려잡는 진법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거지들이 보이는 행태는 척 보기엔 난장판에 가까웠다.
딱! 딱! 딱! 딱!
봉을 쥔 거지 넷이 여전히 땅을 때려 찍으며 빙빙 돌아대는데.
그 와중에 봉을 들지 않은 거지 중 두 놈은 연신 앓는 소리를 내며 곱사등이 같은 걸음을 보였고.
“아그그그그.”
“아이고 배야.”
또 다른 거지 둘은 분타가 떠나가라 엉엉 울어 댔으며.
“흐허허허헝. 어머니이이이.”
“꺼이! 꺼이! 꺼이이이!!”
이 와중에.
계춘이라는 삼결개는 취한 듯이 비틀거렸다.
“딸꾹!”
그러는 와중에 사결개 복철이 들개처럼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질서가 있다.’
척 보기에는 난잡해 보이기 그지없었지만, 제법 오묘한 법칙이 거지들의 보법에서 묻어났다.
‘취한 듯이 비틀거리는 계춘이라는 거지가 익힌 무공은 취팔선.’
이른바 취권이었고.
사결개 복철이 익힌 무공은 제비처럼 날랜 신법과 주먹을 자랑하는 소요권이라는 쾌권.
나름대로 이름난 무공을 익힌 두 거지와 끙끙 앓고 엉엉 우는 거지들은 그 자체로 변초이자 환초였다.
‘심지어 허리춤의 매듭까지 현혹의 일부구나.’
하지만 나는 현혹되지 않았다.
소요권을 사용하는 복철이나 취팔선의 움직임을 보이는 계춘에게 자연스럽게 눈이 갔으나.
‘놈들이 아니라 봉을 든 이결개들부터 처리해야 해.’
봉이라는 게 날이 붙어 있지 않아 우스워 보여도, 어디를 쥐느냐에 따라 사정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또 회전을 이용해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해낼 수도 있었다.
‘그 장점을 살려 여럿이서 동시에 휘두르면 그 자체로 내 진로를 막는 창살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허리춤의 매듭이 적은 거지들은 무기를 들었구나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내버려 뒀다간 불의의 일격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매듭이 많은 거지에게 눈이 가도록 유도를 하고 있지만 내 눈은 못 속이지.’
하나, 봉을 든 이결개를 노린다는 티를 내선 안 됐다.
대저 천하에 이름을 새긴 합격진 이라는 것들은 파훼가 됐다 싶으면, 능수능란하게 파훼점을 수복해 내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지.’
하여 나는 내심으론 봉을 든 이결개들을 노리면서도.
정작 비영파천보를 펼치는 걸음은 타구합벽진이 유도하는 대로 복철의 빠른 걸음을 쫓았다.
팟!
내 나름의 유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휙!
어느 순간.
복철이 쑥 꺼지듯 다른 거지들 틈으로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그 빈 자리에 이결개들이 휘두른 봉들이 날아들었다.
부웅!
부우웅!
이결개들은 각각 네 방위를 비스듬히 점하고 있었다.
하여, 녀석들이 휘두른 봉은 자연스럽게 정(井)자 모양을 형성했고.
부웅!
부우웅!
덕분에 나는 자칫 잘못하면 봉으로 이루어진 귀틀에 끼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될 판국에 이르렀으나.
‘금강시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닐 때에 비하면 이 정도 틈은 벌판이나 다름없지.’
기실 이 순간 자체가 내가 의도한 바였다.
나는 늘어지는 시간 속에 땅을 박차 수직으로 도약했다.
팟!
그리고 허공에서 아래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장법인 비룡재천을 시전하여 다른 거지를 견제했다.
쌔애애애액!!
꽝! 꽝! 꽝!!!!
그러는 동안 애꿎은 허공을 후리고 지나가게 된 네 자루의 봉이 한점에서 만나 십(十)자 모양을 이루었는데.
이 순간.
나는 파천의 내력을 다리에 모았다.
‘누른다!’
그리고 교차하는 봉대를 눌러 밟았다.
이른바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이었다.
그 천근추를 실은 오른발이 땅을 밟으니 그 자체로 진각이 되었고.
쾅!!!!
함께 밟힌 봉을 따라 파천의 내력이 옮겨갔다.
그렇게 옮겨간 파천의 기운과 이결개들이 봉에 싣는 기운이 봉안에서 충돌했는데.
웅우웅!!!!!!!!!
이결개들이 사용하는 봉이란 것이 신목(神木)으로 분류되는 나무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갈가리 갈라져 버렸다.
쩍! 쩍!!
쩌적!! 쩍!!!
나는 봉을 잃은 이결개들을 향해 전력으로 비영파천보를 펼치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쌔애애애액!!
그런 내 속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이결개 두 놈은 가슴팍을 내어주고 남북으로 날아가 박혔고.
꽝! 꽝!!!
남은 두 명의 이결개는 그 사이 삼결개들이 지원을 왔기에 간신히 몸을 빼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바람에 정작 삼결개 중 두 명이 내 항룡장을 맞고 각각 동서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쾅!! 쾅!!!!!
그렇게 네 명의 거지가 삽시간에 연무장을 이탈했다.
물론, 저쪽은 아직도 여섯이 남아있으니 여전히 다대일의 싸움이었지만.
저벅.
내가 한발을 다가서면 놈들이 두 발을 물릴 정도로 타구합벽진은 완전히 깨어졌다.
나는 연무장에 남아 있는 거지들을 향해 비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엿 됐다 싶지?”
* * *
산서분타의 연무장에서 언용운이 거지들을 때려잡고 있는 이때.
한 거지가 그 광경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노삼이었다.
‘언가놈 저거는 진짜 싸우는 거 하나는 타고났군.’
타구합벽진이야 본디 인해전술이 합쳐져야 빛을 발했다.
하여 최소 인원인 열 명으로 시전하면 파훼하기 아주 버거운 합격진은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쉽지도 않지.’
게다가 그 과정이 대단했다.
싸움에 감각이 좀 있는 자가 타구합벽진을 상대하다 보면 누구라도 봉잡이들이 간격을 조절해옴을 눈치채기 마련이었지만.
‘언가놈은 처음부터 그걸 깨닫고 봉잡이들을 유인했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단박에 네 개의 봉을 처리한 솜씨도 칭찬해 줄만 했다.
‘간도크지.’
막상 내력이 실린 봉이 날아드는 판국이 되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쳐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인데.
‘그걸 그런 식으로 처리를 할 줄이야.’
하나, 노삼은 무엇보다도 언용운의 마음가짐에 감탄하고 있었다.
‘…혹여나 심마에 사로잡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마교의 발호로 언용운의 외가는 풍비박산이 날 뻔했다.
그 와중에 외조부도 죽을 뻔했고, 언용운 본인도 죽을 뻔했다.
자업자득이라 하나 막내 외숙은 실제로 난리 통에 죽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산서분타에서 개짓거리를 해왔으니.
‘노기가 차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런 노기는 젊은 무인을 좀먹을 수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노기는 삐뚤어진 살심으로 발현되기에 십상이니.’
언용운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서 데려오기는 했으나, 노삼은 많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제 보니 괜한 걱정인 듯했다.
‘…눈동자는 펄펄 끓고 있는 녀석이.’
싸움 도중에 내리는 판단에는 냉정함이 있었다.
걸음걸음은 묵직했으며, 내지르는 권장에는 절제가 묻어났다.
‘손속에 사정을 절묘하게 두는구나.’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팬다고나 할까?
물론 방금 덜미가 잡혀서 뺨을 맞기 시작한 복철과 여기저기 처박힌 아홉 거지들이 이런 노삼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세상에 이런 손속의 사정이 어디 있냐고 항의를 해왔을 것이다.
짝!!
“어떻게 이 정도면 증명이 됐습니까?”
짝!!!!
“힌헝한댜.”
“예? 힌? 뭐라고요 잘 안 들리는데요?”
“인졍한….”
짜악!!!!
“예? 뭐라고요?”
“…졔성.”
뭐, 아무튼.
그렇게 복철의 뺨에 불이 번쩍이는 동안.
노삼은 언용운을 향한 걱정을 내려놓고 녀석이 했던 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언가 녀석. 기왕 일어난 일을 탓을 하는 건 아니나 그로 인해 마교가 고개를 쳐들었고, 애먼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하였지.’
그 말은 노삼을 돌아보게 했다.
‘정의파가 곪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분란을 피한다고 덮어놓고 지낸 세월이 부끄럽구나.’
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방칙은 의를 숭상하라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게 의를 숭상하는 일이었다.
‘이제라도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한다.’
그에 노삼의 내심에 굳은 의지가 섰는데.
때마침 덕근이라는 이름의 썩은 살이 연무장 아래로 내려오더니.
“그만! 언용운은 손속을 멈춰라!”
“충분히 해명이 된 것입니까?”
언용운을 향해 썩은 내를 풍겨오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상대가 잘못됐다.”
“……?”
“마두와 대적할 실력이면, 우리 분타의 계주와 타구조는 당연히 쉽게 제압할 수 있어야지.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 네 녀석의 실력을 가늠해 볼 것이다.”
그런 덕근의 행태에 노삼의 목에 곧바로 핏대가 섰다.
“덕근이 이놈! 이 호서배 같은 놈아!!”
“뭣이?”
지금까지는 언용운이 알아서 잘 싸우고 있는 데다.
해명하라는 서간의 내용이 절차적으로는 최소한의 일리가 있었고, 또 정의파의 체면도 신경이 쓰여서 가만히 있었으나.
산서분타주 덕근이 저렇게까지 민낯을 드러내면 더는 지켜만 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보시오 노 장로! 지금 나보고 호서배라고 했소?! 나는 그래도 그대를 꼬박꼬박 말 끝마다 님자를 붙여가며 존중했거늘. 뭐, 호서배?!”
“그래 내가 잘못했다. 여우와 쥐새끼들한테 오늘 중으로 사과를 해야겠다. 네놈이랑 같이 뒀다는 걸 알면 천하의 여우와 쥐들이 나를 물어뜯으러 올 테니까. 정정하마, 이 부마배 새끼야.”
“부마배에?! 마교에 붙어먹는 자라고? 이 더러운 송사견아! 말 다 했느냐?!”
“덜했다, 이 새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그 말을 끝으로 노삼은 덕근을 향해 몸을 던지려 했다.
그런데 이때.
꼬질꼬질한 손 하나가 노삼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어떤 거지새끼가 나를 막으려 드냐?! 덕근이 새끼랑 같이 뒈지기 싫으…가 아니고. 엥? 방주님이 아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