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의로워야 한다. (2)
산서분타에서 개방의 거지들을 이끌고 오며 들은 바에 의하면.
만복은 태원이가가 탈상(脫喪), 그러니까 장례를 마칠 때까지 이가장에서 머물며 허드렛일을 할 것이라 했다.
마교의 일도 그렇고 덕근의 일도 그렇고, 무일푼인 거지가 할 수 있는 사과는 몸으로 때우는 것뿐이라나 뭐라나?
물론, 배분으로 치면 소림의 방장이나 무당의 장문인을 끌어와야 간신히 급을 맞출 수 있는 만복에게 허드렛일을 시킬 일은 만무했다.
하나, 그만한 배분의 명숙이 장례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고, 또 이가장에 뿌듯한 일이었다.
뭐, 아무튼.
그런고로 내가 산서분타의 거지들을 굴릴 시간은 사흘 정도였다.
사흘.
사실 좀 짧기는 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데 사람 고치기가 어디 쉬울까?
그나마 정신에 고인 썩은 물을 그럭저럭 퍼내려면 일반적으로 사 주 정도는 주어져야 했다.
그 정도는 있어야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교육 목차들을 차례차례 정석대로 이수시켜 이제 사람이 좀 됐다 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일반적으로 사 주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 인권이 확립돼 있어 헌터들의 훈련 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미래 세상의 기준이었다.
‘이 세계에는 그런 법이 없지.’
게다가 산서분타의 거지들은 징벌적인 이유로 내게 처분이 넘어온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무림인들이라 튼튼하다.’
그럼 그냥 교육량을 여섯 배쯤 늘리면 되는 것이었다.
참 쉽죠?
나와 동기들은 하얀 삼베 두건을 붉은 안료에 적셔 간이 빨간 모자를 만들어 쓴 뒤.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산서분타의 백의개들은 본 교관의 지도와 통제에 따릅니다. 대답은 교관의 복명에 복창할 때만 말을 하고 다른 대답은 악! 으로 통일합니다. 본 교관은 백의개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악귀도 될 수 있고, 지장보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실력을 확인한 데다, 개방의 집법장로와 집법제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현장에서 어물거리는 자들은 없었다.
“본 교관이 지금 보여줄 동작은 팔 벌려 높이뛰기 라는 동작입니다.”
물론, 피티체조 동작을 보고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이냐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분타의 현판 위에 숭의요람(崇義搖籃)이라는 글자는 멋들어지게 써 붙여 놓고 저게 뭐에 써먹을 수 있는 재롱이지?”
“큭큭 겨드랑이를 말리는 비술인가?”
하나, 산서의 여름은 덥고도 습했다.
괜히 사람들이 음식에 식초를 듬뿍 쳐서 먹는 동네가 아니었다.
“대답은 악! 하나뿐이라고 했을 텐데? 전체 엎드린다 실시!”
“…악!”
내공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환경과 산서의 더위.
그리고 여섯 배로 늘린 교육량.
그 셋의 조화가 사흘간 알차게 이어졌는데.
그렇게 연무장에서 구르고 또 구른 정의파 거지들의 모습이 오의파 거지들과 얼추 비슷해지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짧게 혀를 차면서 한마디를 하셨다.
- 쯧. 이제야 좀 거지 태가 나는구나. 나는 거지새끼들이 깨끗한 옷을 찾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사실 저 집단이 생길 때만 해도 나름대로 근본이 넘치는 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파에 밀려 거지가 되고 그렇게 동냥질을 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방에 들어오는 자들이 오의파라면.
정의파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의를 쫓는다는 그 정신에 반해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 가산을 정리하고 개방의 제자가 된 자들이었다.
‘덕근이 놈도 처음에는 그랬겠지. 그런 사람이 그렇게 변하다니. 그러고 보면 타성이라는 게 참 무서워.’
아무튼.
그렇게 사흘이 지나자.
삑삐빅! 삑삐비비빅!
산서분타의 거지 중에 얼굴에 웃음기가 남은 자는 한 놈도 없게 되었는데.
“팔 벌려 높이뛰기를 실시한다. 횟수는 오백 회. 몇 회라고?”
“…오백 회.”
“쉬기 싫은가? 이번 것만 옳게 해내면 쉬는 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작다! 육백 회!”
“유, 육백 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오백 회! 시작!”
삑삐빅! 삑삐비비빅!
사라진 웃음기 만큼 집중력이 떨어진 자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사백구십팔!”
“하나! 둘! 셋!”
“사백구십구!”
“하나! 둘! 셋!”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내게 가장 많이 처맞았던 복철이 놈이었다.
“오, 오ㅂ….”
녀석의 실수는 오늘만 두 번째였는데.
첫 번째는 이를 악물며 ‘악!’ 소리만으로 넘어갔던 거지들이 이번에는 못 참고 노성을 터트렸다.
“복철이 저 개샊!”
“염병할 놈이 만날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우리를 무시하더니!!”
“이보시오 언 소협! 아니지, 언 공자! 아니아니 언 선생님! 내 닷씨는! 닷씨는 안 하겠소! 저 복철이 같은 새끼가 나타나면 분연히 일어나서 개 잡듯이 패겠소!”
“야 이 새끼들아 내가 그래도 사결개였는….”
“이 새끼는 무슨?! 이제 너랑 나랑 똑같은 백의개야, 이 새끼야!!”
그런 거지들을 확인한 제갈설지는 슬며시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용운 님? 아무래도 팔 번 동작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여기선 칠 번을 건너뛰고 팔 번이긴 하지. 근데 나한테 직접 이 훈련을 받아본 건 견학 일정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닌가? 교육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소?”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
뭐, 아무튼.
그렇게 산서분타 거지들은 온몸 비틀기의 순간을 맞았다.
“백의개 전원 뒤로 취침.”
“뒤, 뒤로 취침!”
처음 거지들은 누우라는 말에 그저 행복해했다.
“사, 사흘 만에 드디어 쉬는구나!”
“그 상태에서 머리를 땅에서 뗍니다. 그리고 다리도 땅에서 뗍니다.”
“?”
“그리고 그 자세에서 천 교관의 호각소리에 따라 다리를 좌우로 비틉니다. 실시!”
“시, 실시!”
삑! 삐이빅! 삑삐삑비빅!
하지만 다리를 비틀라는 내 명에 하나둘씩 거품을 물기 시작했는데.
“끄아아악!!”
“…누가. …누가 내 목을 좀 잘라주시오. 목이 너무 아파.”
개중에 몇 명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자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이라는 비겁한 수를 택했다.
“끄르르륵!”
하지만 여기서 정현이 나섰다.
녀석은 그런 자들을 찾아가 코앞에 산서성의 명물인 식초에 함빡 적신 헝겊을 들이댔다.
“크헉!!!!”
“잃어버린 도를 찾는 중입니다. 어찌 정신을 놓으려 하십니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예.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였습니다. 자자, 머리와 다리를 땅에서 떼십시오. 우 소협! 저기 오십이 번 백의개가 머리를 땅에 붙이고 있습니다. 이 헝겊을 가져가서 도를 찾아 주십시오.”
“예!!”
그 모습을 보며 호각을 물고 있던 천장호가 쓰흡 하는 소리를 냈다.
“…저거 도사 아닌데. 아무리 봐도 그냥 화난 청죽관 생도인데 입에서는 귀신같이 도를 찾자는 말이 나오네.”
그때였다.
그렇게 한창 산서분타 거지들의 신음이 태원성내를 수놓는 이때.
“음? 우리가 좀 빨리 왔나?”
“허허. 그런 것 같소이다?”
개방의 방주인 만복과 금 총관을 대동한 외조부님이 산서분타를 찾아왔다.
* * *
등장한 손님들에 교육을 받고 있던 거지들은 이 시간이 잠시라도 멈출까 싶어 희망을 품는 듯했으나.
‘어림도 없지.’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시간을 쪼개어서 하는 교육이오. 방주님도 우리가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 산서분타의 거지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바라실 거요. 교육은 멈추지 않소. 두 분 손님은 내가 맞을 테니, 교육은 제갈 소저가 맡아서 계속 진행하시오.”
“예. 맡겨주세요.”
그렇게 현장 지휘권을 제갈설지에게 넘긴 나는 만복과 외조부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부르시지요. 직접 오셨습니까.”
그런 내 인사에 두 분은 각각 대답을 하셨는데.
“그 굴림을 당하고 나면 어찌되는지 확인차 왔다. 이래저래 할 이야기도 좀 있고.”
“감히 산서금붕의 손주를 음해하려 한 작자들의 면상이 어떠한가 내 눈으로 확인을 하려고 왔는데. 펼쳐진 광경이 제법 볼만은 하구나.”
오면서 나눈 이야기가 있는지 두 분끼리 의견을 교환하시더니.
“산서금붕 어른께서 먼저 말씀을 나누시지요. 오며 말씀드렸듯 제 볼일은 좀 길어질 수밖에 없는지라.”
“그럼. 그리하겠소이다.”
외조부께서 산서분타의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여셨다.
“용운아, 이 할아비랑 좀 걷겠느냐?”
“그러시죠.”
그렇게 걸음을 옮기며 외조부께서는 한 가지 물음을 던져오셨다.
“삼문협의 중요성이야 잘 알 것이고. 마시와 북시를 잠그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그렇게 나온 물음은 기실 이권영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었기에.
내 시선은 잠시 말을 뱉는 외조부의 표정으로 옮겨갔다.
하나 외조부의 표정에는 이권영이 남긴 그늘이 없었다.
‘나름대로 가슴에 묻으신 모양이네.’
그에 나도 질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마시는 장성 밖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과 곡식을 교환하러 오는 산서성 내의 시장이었고.
북시는 아예 장성 밖에 있는 시장으로 북해빙궁의 권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원과 교류를 하는 시장이었다.
답은 어렵지 않았다.
“장성 밖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맞다. 그 혼란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삶이 도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럼 마교라는 작자들이 활개를 치기 좋은 환경이 되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중원사람 관심 밖이라 개방의 눈도 닿지 않는 곳이니, 거기서 힘을 기른 놈들은 이미 장악한 산서를 통해 하북, 섬서, 하남으로 뻗어 내려왔겠지.”
“그랬겠죠.”
실제로 원작의 전개가 그러했기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이 순간.
외조부께서 내 손을 잡아 도닥이시며 입을 여셨다.
“너는 이번에 단순히 이가장을 구한 것이 아니라 천하를 구한 것이다. 이 손이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그렇게 운을 뗀 외조부께서는 만복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마시와 북시에 이가장과 개방이 합작으로 사람을 파견했다는 이야기.
개방의 쇄신 약속과 구체적인 방법은 물론이고 그간 무림맹과는 소 닭 보듯 지내던 태원이가가 연계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연계를 하기로 했고, 봐서 입맹을 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니라.”
그 조치들은 적절했다.
당분간 산서에서는 마교가 준동을 하지 못할 듯했고.
특히 태원이가가 무림맹에 입맹하는 것도 환영할 일이었다.
“그거 괜찮네요.”
“네 생각에도 괜찮아 보이느냐?”
“예. 예전에 백본회라고 맹의 의결기관에 시달린 일이 있는데, 거기에 외조부께서 계신다고 생각하면 든든한데요?”
“뭣이? 어떤 죽일 놈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음.
…이건 나름대로 기밀이라면 기밀인데.
말을 하다 보니 튀어 나왔네.
나는 재빨리 말을 돌리고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을 돌리기는. 영영이가 꼭 그랬거늘. 뭐,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내 알면서도 속아주마.”
“헤헤.”
“그래, 이 할아비에게 부탁할 일이란 게 무엇이냐?”
“소손이 학관에서 계획한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사업? 돈이 필요하면 그냥 내어주마. 얼마면 되느냐?”
“소손이 혼자 쓸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활용이 가능할 것 같고요.”
“무슨 사업이길래?”
그런 외조부에게 나는 원래 산서를 오려고 했던 이유를 입에 올렸고.
“소식지 사업입니다.”
“소식지?”
“예. 이번에 아버지랑 도제께서 오신 이유도 알고 보면 학관에 적을 두고 있는 팽재혁 교수에게 소식을 받아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 보거라.”
이어서 자세한 계획과 가지고 있는 자본금에 대해 말했다.
“…하여 강남은 은휘상단의 전서구망을 이용하고, 위수이북과 하북은 태원상단의 전서구망을 이용해볼까 합니다.”
“괜찮은 사업이로구나?”
“외조부님께 괜찮아 보이면 정말 괜찮은 건데요?”
“글쎄 그렇다니까. 당장에 나부터 받아보고 싶구나. 단순히 생각만 떠올린 것이 아니라 자본금이나 전서구망을 확보해 놓은 것도 대견하고.”
그런데 그 이야기가 일순 옆으로 슬쩍 빠졌다.
“근데 굳이 학관을 가야겠느냐? 그냥 이 할아비 밑에서 상계의 일을 배워보면 어떠하냐?”
진심이 묻어나는 외조부의 음성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은 감사하나 소손은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마교 놈들을 때려잡아야죠. 그러려면 저도 강해져야 하고, 제 동무들도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학관으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런 내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며 걸음을 멈추셨다.
그 잠시가 지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외조부께서는 목에 걸고 계시던 철전이 꿰인 목걸이를 벗어서 내보이셨는데.
“이게 뭡니까?”
“무엇으로 보이느냐?”
돈이라면 썩어날 산서금붕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낡은 철전이라….
“처음 무언가를 팔아 남기신 돈입니까?”
“영민한 녀석. 맞느니라. 그 돈을 처음 손에 쥐게 되었을 때, 네게 증조부가 되시는 내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돈은 천하를 본떠 만들었다. 하늘은 쉬지 않고 흘러 세상을 살피니 둥글고, 땅은 만물을 보듬어 네모나다. 하여 돈은 둥글게 만들고 네모난 구멍을 낸다고 하셨지.”
어느 순간.
그 목걸이를 내 손에 쥐여주시며 입을 여셨다.
“내 천하를 네게 맡기마. 이 할아비는 어떤 순간에도 네 뜻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