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71화 (171/444)

제171화. 우물 안 개구리 (3)

누군가가 던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말로 운을 뗀 모산파 제자들의 이의 제기는 계속해 이어졌다.

“교수님, 과제 면제는 백번 양보해 그럴 만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가산점이나 기말고사 면제는 조금 과한 듯싶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죽이거나 납치하려고 염병을 떨던 마교 놈들을 보다가, 먹칠좀 해보겠다고 쫑알거리는 녀석들을 보니까 가소롭고 귀엽고 뭐 그렇네.’

하여, 나는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것도 만점으로 면제면 전체 석차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저희 수업을 듣지 않는 다른 생도들도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저희 과목의 강의 계획서를 보시면 강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또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평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언용운 생도가 운 좋게 강시 몇 구를 노획한 일이 그 평가 기준을 어떻게 충족시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산서행에 따라왔던 녀석들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특히나 성적에 가장 민감한 제갈설지와 도에 민감한 정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운 좋게 노획? 진짜 기가 차네요. 정작 제가 가만히 있는데, 만점이니 다른 생도의 불만이니 하는 것도 의도가 보이고요.”

“학관에도 산서의 소식이 어느 정도는 전해진 듯한데, 어찌 도를 탐구하는 도사들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하나, 나는 모산파의 제자들이 하는 행동이 이해되긴 했다.

‘정무학관은 백도무림의 축소판 같은 곳이니까.’

남하하는 길에 소집된 백본회를 떠올리며 우물 안 개구리들이라는 소리를 했는데.

그 백본회가 윗물이라면 정무학관은 아랫물이었다.

‘윗물의 개구리들도 헛발질하는 시점에서 아랫물의 개구리들이 위기를 느낄 리가 없지.’

물론 이해가 된다고 두고 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여, 내 뇌리에 갈 길이 멀다는 생각과 저 새끼들을 어떻게 골려줄까 하는 고민이 동시에 스치는 그때.

- 이번에도 저 말코 놈들이 원흉인 것인가?

사부님의 음성이 울려와 상념을 걷어내니.

모산파의 제자 중에서 특히나 눈에 익은 녀석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우선 언용운 생도가 가져온 강시들의 상태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강시와 관련된 일은 저희 모산을 통하는 것이 관례인데, 언용운 생도는 독단으로 운송해 왔습니다. 운송 과정에서 소홀함이 있다면 되려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 저 무길인가 하는 놈은 학습 능력이 없나? 그렇게 처맞고도 이런 일을 벌여?

그런 사부님의 음성에 나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몇 번 겪어본 결과 무길이 놈은 타고난 재능에 비해 공명심과 욕심이 비대한 녀석이었다.

‘무길이 놈의 성정 자체는 이런 일을 충분히 벌일 말한 놈이긴 하지.’

하지만 이 경우엔 모산파의 다른 제자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했다.

‘다른 제자들이 두 번이나 망신을 당한 무길이 놈을 따를 이유가 없으니까.’

이건 저 녀석들 뒤에 다른 누가 있는 것이었다.

‘운매관이랑 윤국관 생도가 있는 것을 보면 향란관의 간부들은 아니고 모산파의 본산 쪽인가?’

그런데 이 순간.

학자 기질이 강해 성정이 온화하기로 유명한 영환 교수가 보기 드물게 언성을 높이고 나섰다.

“정당한 이의 제기인가 하여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생트집을 잡고 있구나! 무부금강시를 어떻게 운 좋게 노획하는가?! 자네들이 정녕 내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맞나?!”

그런 영환의 음성에 무길은 흠칫하는가 싶더니.

재빨리 주위를 살피고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교수님, 이건….”

그리고는 영환을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전음을 보내는 모양이었는데.

그런 녀석의 행동 자체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방증이었고.

이어져 나온 영환 교수의 음성도 내 추측이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듣기 싫다! 정무학관의 이름 아래 있는 이상 나는 숱한 교수 중 한 명의 교수일 뿐이고, 너희도 그저 한 명의 생도일 뿐이다!”

딱 본산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반응이었다.

‘내가 언가의 강시종을 복원했다는 소리가 모산의 본산에 들어갔나 본데?’

아까도 말했지만 정무학관은 백도무림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유사시 애들 일이라고 취급하기가 좋았다.

하여 때때로 사문이나 가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생도들이 움직일 때가 있었는데.

‘마침 뜨거운 감자가 된 나를 망신 주고, 강시술은 모산이라는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모양인가?’

모산의 제자들이 딱 그런 이유로 움직인 것 같았다.

‘누가 당해 준대?’

그에 내 머릿속에선 어떻게 엿을 먹여야 그 엿이 저 친구들의 배후까지 전해질까에 관한 판단이 들어섰다.

나는 곧바로 영환 교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외람되지만 제가 저 친구들과 이야기를 좀 나눠도 될까요?”

“나는 괜찮네만 이런 생트집에 굳이 어울려 줄 필요가 없….”

뭐, 방법은 간단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겠다.

“어머니이! 챙겨주고도 욕먹는다고, 그냥 진주언가로 보내도 됐을 강시들을 괜히 기증한다고 해서 제가 이런 꼴을 당합니다!”

짐짓 나라 잃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북편을 향해 목 놓아 어머니를 부르짖어 피해 사실을 공고히 한 뒤.

모산의 제자들의 이의 제기에 순순히 어울려주기만 하면 됐다.

“…그랬으면 가문의 어른들께 어머니와 아버지의 면이 조금 더 서실 것이고, 그러면 이 망나니 놈이 복권되는 날도 가까워졌을 텐데. 백도 무림 전체의 강시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기로 했다가 제가 이런 취급을 받습니다.”

“…….”

“이 기막히고 코 막히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기는 하나, 취지가 취지인 만큼 저 친구들의 이의 제기를 그냥 받아 주려고요.”

그렇게 운을 뗀 나는 곧바로 무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려 했는데.

무길이 놈은 내가 때리는 줄 알았는지 흠칫했다.

“!”

에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징징 우는 주먹과 웅웅 우는 회한을 제쳐두는 건데 안 때리지.

나는 그런 녀석의 어깨를 당겨 강시가 실린 마차로 향했다.

그러면서 첫 마디를 소곤거렸고.

“그래서 무좀아.”

“내 도호는 무길이다!”

“…대가리에 호도가 든 것 같은 녀석이 도호를 따지기는. 무좀이나 무길이나.”

“뭣?”

“작게 말했는데 들렸냐 무좀아?”

“무길이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냐.”

다음 마디는 주변이 떠나가라 뱉어냈다.

“그러니까 너희가 확인하고 싶은 게 강시를 실어 오는 과정에서 관리 소홀이 없었는지, 내가 가진 강시에 관한 지식이 개론 수업에서 만점을 받을 만한지, 그리고 운 좋게 강시를 노획한 일이 대수로운 일인지. 이렇게 세 개 맞지?”

그리고 마차 앞에 다다라선 무길의 어깨에 걸고 있던 어깨동무를 풀며 입을 열었다.

“이 마차엔 네 구, 앞의 마차엔 세 구씩 실려 있는데 일단 여기부터 확인해봐.”

그런 내 말에 무길은 씩씩거리며 마차의 문을 열더니, 용감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 관뚜껑 하나를 열어젖혔다.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물음을 던졌다.

“어때?”

“…얼음도 그렇고, 관리도 양호해 보이는군.”

그리고 녀석이 대답하느라 긴장을 놓은 틈을 놓치지 않고 오면서 왼손에 그린 마법진을 발동시켜 강시를 일으켜 세웠다.

크아아아!!

그에 뚜껑이 열려 있던 강시는 곧바로, 뚜껑이 덮여 있던 강시는 관뚜껑을 박차며 몸을 세웠고.

쾅! 쾅! 쾅!

크아아아아!!!!

무길은 경기를 일으키듯 뒷걸음질을 치다,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내리며 흙밭을 굴렀다.

“엄마!!!”

그렇게 무길이 어머니를 찾는 사이, 영환 교수가 눈을 튀어나올 것 같이 뜨며 입을 열었다.

“지, 지금 종이나 방울 없이 강시를 일으켜 세운 건가?”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뒤.

영환과 비슷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산파의 제자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가 확인하고 싶다는 세 가지 중에 두 가지는 해결 된 거 같은데? 이제 저거 운 좋게 노획해볼 사람?”

* * *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산파의 제자 중 강시를 노획하겠다고 나서는 자는 없었고.

영환 교수만이 얼빠진 표정으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론상으로 가능이야 하다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론이었는데 어떻게?”

나는 그런 영환 교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가문의 비전임은 둘째치고, 학술적인 문제로 넘어가야 하니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조금 힘들겠는데요? 그리고 강시들도 여기까지 보관은 잘해왔으나, 여름날에 이렇게 둘 건 아니고요. 빙고로 옮겨야 합니다.”

“아. 그, 그건 그렇지.”

“예. 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찬찬히 이야기하기로 하시죠.”

“그래! 찬찬히! 찬찬히 꼭 이야기하도록 하세!”

“물론 그 전에 방금의 소동에 관한 소소한 합의 같은 것이 있어야 하겠지만요.”

“…….”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자.

영환은 모산파 제자들에게 도끼눈을 뜨더니.

“…너희는 나중에 보자!”

본인 연구실의 조교들을 시켜 강시가 실린 마차들을 옮기게 함과 동시에, 다른 수강생들에게 금일 수업 종료를 알렸다.

“금일 강시학개론 수업은 여기 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신 생도들은 오늘 언용운 생도가 보여준 무구(巫具) 없이 강시를 일으키는 법에 대해 수상록을 적어 내도록 하고. 조교 선생들은 강시를 내 연구동 뒤편에 있는 석빙고로 옮기도록 하세요.”

그사이 나는 솔거 거지 삼인방 중 발이 빠르다던 오복이 놈을 불러 일 하나를 시켰다.

“오복. 너는 단강구 지타에 가서 방금 본 거 그대로 소문 좀 내.”

“예이!”

어떤 늙은이가 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열 좀 받을 거다.

그리고 은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는데.

“은 소저는….”

내 입에서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은하연이 내 생각을 읽고 답을 해왔다.

“마음의 상처? 금창약?”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고 있는 사이, 강시학개론 수강생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 당옥기가 이쪽으로 달려와 입을 열었다.

“뭔데? 방금 그거 뭔데? 수업 시간에 분명 무구 없이 강시를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배웠는데?! 무슨 사기를 친 건데?”

“옥기야, 말 좀 예쁘게 해. 용운 님께 사기가 뭐니?”

“얘는 또 뭐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설지 얘는 또 언용운 네 대변인이 돼서 돌아왔어?”

한데, 이쪽저쪽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의 눈자위를 보니 놀려먹고 싶어졌다.

“안알랴줌.”

“캬악!!”

그런 나를 향해 당옥기 말고도 생도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는데.

그중 필두는 하성이 녀석이었다.

“형님, 그 산서에서 있었던 일들부터 쭉 이야기 좀 해보십쇼. 궁금해 죽겠습니다.”

나는 그런 하성이 녀석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총장님이 출석을 인정해 주셔서 다들 지금 한가하지?”

“옙!”

“그럼 다들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보자.”

“예?”

“청죽관 일동. 연무장 앞으로 갓!”

* * *

한편.

같은 시각 무림맹에선 한쪽에선 장문인이나 가주 배분들이 마교를 두고 한창 갑론을박을 하고, 다른 한쪽에선 재경 업무나 행사 업무를 담당하는 장로 배분의 명숙들이 여러 사안을 두고 이해득실을 줄다리기하는 협상이 한창이었는데.

몸값을 높이기 위해 첫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기로 정한 모산파의 행사 장로 송양자가 정무학관이 있는 방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용운이라는 놈만 여기서 기를 꺾어 놓고 넘어가면 딱 좋겠는데, 영환이 녀석이 벽창호라 아이들에게 맡겨 놨더니, 이거 영 신경이 쓰이는구만.”

그에 곁에서 시위하던 상청검수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언용운이 무길 사질과 인연이 고약하게 엮이긴 했으나 그래 봐야 신입생입니다. 장로님께서 그렇게 신경을 쓰실 일입니까?”

“일이 그렇지가 않다. 산서에서 벌어진 일들은 애석하나, 마교 놈들이 강시를 동원해준 덕분에 우리에겐 기회가 되었다. 조금 전에 입맹했을 때 우리를 대하는 백본회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부터 보거라.”

“그건 그렇습니다.”

“여러 지원을 약속받을 기회고, 속가 문파와 업장을 확장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 기회를 발판으로 삼으면 모산이 구파에 어울리니 어쩌니 하는 소리들이 쏙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한데 그거랑 언용운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인석아, 이 기회가 온 것은 우리가 마교 놈들이 부리는 강시에 대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항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주언가가 끼면 일이 피곤해진다.”

“그렇습니까?”

“이번 일만 해도 보아라. 강시에 관한 일인데, 감히 우리를 건너뛰고 제 놈 혼자의 판단으로 강시들을 장사를 지내버리고 선별해서 내려온다고 통보를 해왔다지 않느냐?! 그건 우리를 물 먹이는 일이야!”

“하오나 천하의 강시가 다 저희 사문의 일이라는 것은 너무 광오한….”

“어허. 하나도 광오하지 않다! 강시 하면 모산 밖에 없다는 인식을 굳혀야 한다! 이럴 게 아니라, 이번 회의가 끝나고 모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히 학관을 들려 놈의 싹수를 밟아 놔야겠다.”

“…정당한 사유 없이 그러시기는 힘드실 텐데요?”

“사유가 왜 없느냐?! 곧 있으면 학관에 신구대면식이 있지 않으냐? 내 그 일정을 구실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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