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77화 (177/444)

제177화. 신구대면식 (2)

언용운이 강시의 통제권을 되찾자, 이른바 무림명숙이라는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눈을 키웠다.

“!”

“!?”

그리고 연무장의 좌우로 설치된 좌석에 앉아 있던 생도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모산의 상청 검수들이 발동한 진법을 언용운이 해제한 건가?”

“그, 그런가 본데?”

“그치만 모산 쪽은 일곱이고 언용운은 한 명이잖나?”

“수도 수지만 저쪽은 그냥 모산의 제자도 아니고 우도본산의 자랑이라는 상청검수들이야. 그런 상청검수들을 이끄는 사람은 모산제일기재라 불리는 형운 선배님이고.”

“…이, 이보게 무길, 내가 방술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순수하게 묻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

산서행에 따라갔다가 수백 구의 강시를 단번에 줄 끊긴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던 언용운의 진면목을 두 눈으로 목도한 몇몇 생도를 제외하면.

“젠장! 믿고 있었습니다!!”

“…믿고 있기는? 장호 자네, 조금 전만 해도 상청검수 일곱은 형님도 무리인 것 같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산서까지 따라갔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아니, 나는 그때 이가장에만 있었잖나. 고래부터 십만이면 백만이라고 쓰듯이, 이야기에 과장을 좀 한 줄 알았지.”

좌중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당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사실 당황스러운 사람으로 치면 형운이 으뜸이었다.

‘…북두퇴마진이 깨졌어?’

아니.

형운 앞에서 킬킬거리고 있는 언용운의 행태로 미루어 짐작건대, 애초에 놈이 일부러 당해준 것 같기도 했다.

‘뭐지?’

모산파에 입산하자마자 천재 소리를 들었던 형운이었고.

정무학관에 입관해서는 숱한 대파의 후기지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용(龍) 소리를 따냈던 형운이었다.

그리고 서른 줄에 접어든 지금은 검술과 방술 양쪽 다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검보다는 방술에 재능이 치우친 영환을 밀어내고 모산제일기재 소리를 듣는 형운이었다.

그런 형운이었지만.

언용운이 어떤 주술로 강시들의 통제권을 되찾아 갔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여,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장문인과 장로가 있는 단상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송청자와 송양자도 형운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인지.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장문인과 장로님도 당황하셨나?’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모산파가 자랑하는 북두퇴마진이 깨진 것은 근 육십 년 내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단 한 명의 방사에게 깨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전무후무한 일일지도 몰랐다.

‘…지금. 이 판에서 물러선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때였다.

그렇게 형운이 송청자와 송양자의 얼굴에서 당혹감을 읽어내고, 검을 거두고 연무장에서 내려가는 것을 떠올리던 그때.

형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한 송양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그런 송양자의 모습에.

형운은 대면식이 시작되기 직전 송양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판은 계획대로 마련되었구나. 이제 가서 모산의 상청검수가 어떤 존재인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키기만 하면 된다.”

“…괜찮겠습니까?”

“괜찮겠습니까? 무엇을 걱정하기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냐?”

“말씀을 꺼내기 송구스럽습니다만, 어제 연회장에서의 일을 상기해 보십시오. 장로님께서도 언용운이 어떤 방술을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형운의 물음에 송양자는 수염을 쓸며 웃었다.

“그랬지. 하여 내가 그 점까지 고려하여 판 자체를 강시만 무력화시키면 되도록 짜놓지 않았느냐? 북두퇴마진이 시전된 상황에서 너는 홀로 강시의 통제권을 지켜낼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니까! 형운이 너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가 없느니라. 압도적으로 우리가 유리한 것이다. 끌끌. 언용운이라는 놈도 방술에 천재성이 있는지 몰라도, 그런 심계가 숨어 있는 것도 모르고 넙죽 내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멍청한지고.”

“…….”

“하기야 천재성이 있기는 한 녀석이니, 되려 우도본산이라 불리는 본파의 강시술이 궁금했겠지.”

그런 송양자를 향해 형운은 만에 하나를 가정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녀석이 그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북두퇴마진의 주박에 나름대로 대처해낸다면요?”

“그렇다면 검초를 펼치며 본격적인 합격진으로 들어가거라. 검초를 상대하면서 일곱 구의 강시를 움직이는 집중력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야.”

“신입생을 상대로 상청검수 일곱이 덤비면 되레 모산의 명성이 더럽혀지는 게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전에서 강시술을 사용하는 공부라는 식으로 포장하면 그만인 일이다. 이기기만 하면 그 명분에 힘이 실릴 것이야. 어쭙잖은 생각이란 버려라. 상청검수가 나선 이상 패배는 있어선 안 된다.”

그 대화를 나누었을 때.

형운도 패배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기는 것은 당연한데, 상청검수들이 신입생들을 상대로 나서도 되냐는 생각뿐이었다.

하나, 이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대제자들이 했던 말처럼, 이 녀석은 분위기가 다르다.’

하나, 상청검수가 나선 이상 패배는 안 된다는 송양자의 말이 형운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형운은 마음속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불안감을 내리누르며 검초를 전개하기 위한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 * *

형운을 필두로 한 모산파의 일곱 도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하나, 이내 상청검수를 상징하는 새카만 사인칠성검을 위협적으로 곧추세우고 검세를 펼치기 위한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일곱 명의 도사들을 응시하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얌전히 패배를 인정할 기회를 드렸는데 이렇게 나와버리네.’

그러자 우수에 들린 사부님도 한마디를 해오셨다.

- 멍청한 놈들 아니냐. 고대부터 방술을 파왔다는 놈들이 감이 딱 안 오나? 나는 방술에 문외한이었지만 네 녀석의 방술을 처음 본 순간 궤가 다르다고 생각했거늘.

상청검수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셨는데.

사실 나는 저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긴 했다.

‘자기들이 익힌 방식만 진리인 줄 아는 거죠.’

꼬락서니를 보니, 내가 움직이면서 강시들을 통제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는데.

이 시대의 강시술사들의 고정관념이 그러했다.

수업에서 그리 배웠고, 사홍이 놈도 깜짝 놀랐었다.

‘상청검수가 신입생에게 패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거고요.’

뭐, 아무튼.

나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오히려 좋지.’

잘못하면 강시가 상할 수도 있었고.

한 집안은 아니라 엄격하게 적용하긴 그렇지만, 백도무림 전체가 한 집안이라 치면 상청 검수들은 윗 배분의 인물이었다.

하여, 내 쪽에서 먼저 물리학 수업을 개최하기엔 이후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쪽을 그만 파실 생각이 드셨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기다려드린 건데. 기어이 수강 신청을 해버리시네.’

윗 배분의 검수 일곱이 신입생을 상대로 검초를 펼친다?

지금부터 연무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모조리 정당한 일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뒤틀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숨겨내며 기수식을 취했다.

사악-

그러자, 이내 곧 복사꽃 내음이 연무장에 풍기는가 싶더니.

모산파 특유의 환술이 섞인 검초가 펼쳐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길이 녀석 때만 해도 녀석이 수십 명으로 늘어난 환영이 펼쳐지는 정도였는데.’

나름대로 완숙의 경지에 오른 일곱명의 검수가 모산의 검을 펼치니.

팟! 팟!

파파팟!

그야말로 연무장에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도화 꽃잎을 가장한 검기들이 흩날려 왔다.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그에 객석에선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저 높이 단상에서도 경혜 사태께서 보기 드물게 언성을 높이는 소리와 어떤 늙은 개구리가 꾸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로님! 그리고 장문인! 지금 상청검수들이 공격할 태세를 보이는 것 아닙니까?! 언용운 생도는 신입생입니다! 상청검수 일곱이 검초를 펼치다니요?!”

“허허. 총장님, 진정하시지요. 이건 실전에서 강시술을 제압하려는 공부의 일례입니다. 강시술을 상대하는 자들은 본디 술사를 노리기 마련이니까요.”

“그게 무슨 궤변이십니까?! 당장….”

“상청검수 일곱이니까 오히려 힘 조절을 할 것입니다.”

하나, 그네들의 우려와 기대와 다르게 모산의 검과 내 정신 면역 능력은 완전한 상하 관계에 놓여 있었다.

’가짜는 흐릿하게 보인다.’

무길이 때와 같았다.

상청검수라고 다르지 않았다.

물론, 검초 자체는 무길이 녀석과 비할 바 없이 매서웠고.

쌔액!!!

쌔액! 쌔애애애애액!!!

그 매서운 검세를 일곱 명이 보여내니, 마냥 덮어놓고 무시해도 좋을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내게는 일곱 구의 강시와 놈들의 고정관념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으니까.’

나는 모산파의 도사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몰아치는 공격 속에 강시들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한 구의 강시만 움직였다.

크어!

그리고 검초를 쳐내는 데 집중했다.

챙! 챙!

채채챙! 채챙!

그런 내 모습에 상청검수들의 얼굴엔 놀라움과 안도감이 반반씩 섞여 드러났다.

모르긴 몰라도 ‘그래도 한 구의 강시는 통제하는구나.’ 하는 놀라움과 ‘그래 봐야 한 구다.’ 하는 안도감으로 보였는데.

놈들의 얼굴에 그렇게 일말의 안도가 스쳤을 때.

나는 놈들의 진로에 여섯 구의 강시를 끼워 넣었다.

크어어어어!!!

“!”

그리고 그 바람에 순간적으로 보법을 잘못 밟은 도사 하나를 노리고 비영파천보를 시전한 뒤.

반사적으로 강시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던 도사 놈의 정수리를 검면으로 있는 힘껏 후려쳤다.

빡!!!!!!!

“컥?!”

그것으로 끝이었다.

처음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늘어섰던 것을 상기해보면, 모산파의 진법은 최소한 일곱은 있어야 제대로 펼쳐지는 것인지 예기가 눈에 띄게 무뎌졌다.

빠악!!

“꺼흑!?”

그렇게 무뎌진 합격진은 강시들을 앞세운 내가 다른 도사들을 더 쉽게 궁지에 몰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일곱 구나 되는 강시를 조종하면서 지금과 같은 움직임을 어떻게?!”

“어떻게, 라.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는데 패배의 귀신들이 몸에 붙은 사람들은 어차피 말을 해줘도 이해를 못 합니다.”

“패배의 귀신?”

“예, 선배님들 몸에 잔뜩 붙어있네요. 이놈들은 특이한 게 좀 두들겨 맞아야 나갑니다.”

“뭐라…?”

빠악! 빠악!!!

빠아아아악!

그렇게 최초의 일곱이었던 상청검수가 차례차례 줄어, 연무장 위에 사인칠성검을 든 검수는 이제 형운 딱 한 명만 남았다.

그러자, 끝까지 전세를 뒤집어보려 발버둥을 치던 형운도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시했는지.

치켜들고 있던 새카만 날의 검을 내리고 아까 내놓았어야 할 답을 내놓았다.

“…졌다.”

그에 행정처장 임태옥이 입을 열었고.

“모산파 출신 졸업생들과 청죽관 언용운 생도의 신구대면식의 승자는 언용운 생도외다!”

생도들이 앉아 있는 객석에서 고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언용운!!!”

“이게 당금수석이지!!!”

그런데 청죽관을 제외한 다른 기숙사가 있는 방면에선 왜 환호성이 터져 나오나 쭉 살펴보니.

‘운매랑 윤국은 그렇다 쳐도 향란관 쪽에서는 왜 나와?’

선배들이 갈궜는지 제일 빨리 조용해지긴 했지만.

행사 자체가 신구대면식이라, 신입생이라는 내 처지에 향란관 녀석들을 포함해서 다른 기숙사의 신입생도들 까지도 이입한 모양이었다.

‘이 와중에 표정이 안 좋은 것은 모산파의 신입생뿐인가?’

뭐, 명숙들이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환호는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여, 어느 순간 환호성이 뚝 하고 멈췄는데.

그렇게 찾아온 고요 속에서 화산파의 장문인인 성민자가 감탄이 섞인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허. 지금껏 형운에게서 괴룡이라는 별호를 가져간 사람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그 이름의 주인이 바뀐 것 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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