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80화 (180/444)

제180화. 마공방어학 연구회 (1)

나는 조교수 선배님을 따라 본관에 있는 소회의실을 찾았다.

회의실에는 총장인 경혜 사태를 위시로 행정처장님과 호위부장님, 그리고 사대기숙사의 사감 교수님들이 계셨고.

‘운영위원회의 위원들이시고.’

아울러 강시학을 담당하는 모산파의 영환 교수님.

강호생활백서 수업을 담당하시는 해남파의 정극경 교수님.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자신의 연구실에 놀러 오라고 권하시던 곤륜파의 한영 교수님이 계셨다.

자리한 교수님들의 표정은 향란관의 창량 교수님을 제외하면 모두가 빙그레 웃고 계셨는데.

‘…싸늘하다.’

오늘은 어째선지, 탐탁지 않아 보이는 창량 교수님보다 웃고 있는 다른 교수님들의 표정의 위험하게 느껴졌다.

‘빙그레 웃는 교수들의 미소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뭐, 아무튼.

나는 자리한 교수님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는데.

“생도 언용운. 운영위원회의 부름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조교수 선배님은 어쩐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잔에 찻물을 부어주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경혜 사태께서는 앉으라는 손짓과 함께 입을 여셨다.

“들어요.”

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오늘따라 ‘이거 마시면 나랑 일하는 거다.’ 하는 제안처럼 느껴져서 입을 대지 않았다.

“연무장에서 수련하다 오는 길이라, 차는 몸이 좀 식고 나서 마시겠습니다.”

“그렇군요. 음,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조교 선생에게 우리가 언용운 생도를 부른 이유는 들었나요?”

“예. 마공방어학이라는 과목을 마련하고자, 저를 특별 연구생으로 지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관심이 동하나요?”

그런 경혜 사태의 음성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전해오셨다.

- 에비! 지지! 저런 데 관심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다! 아까 차를 따라주고 나가던 녀석만 해도, 밤에 보면 무부금강시의 혈색이랑 그 녀석이랑 구별이 안 될 것이다.

‘그렇죠. 그렇죠.’

사부님의 말씀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여,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싶었으나.

늘 한참 아래 배분인 나를 존중해 주시는 경혜 사태셨고, 또 다른 교수님들도 있어서 적당한 핑계를 골라 입을 열었다.

“관심이 있긴 하나, 저는 어제 신구대면식을 치른 일학년에 불과 하여….”

한데,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영환 교수님이 입을 여시더니.

“상청검수 일곱을 제압한 일학년이지.”

이어서 제갈민 교수와 팽재혁 교수도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일 학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용(龍)이 따라붙는 별호를 얻은 일학년이고.”

“군호(君號)가 붙은 마두를 상대해본 유일한 일학년이기도 하고.”

이어서 한영 교수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유일한 일학년이 아니라, 유일한 후기지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복마전선의 선봉에 있는 곤륜의 제자들이 이따금 마교의 교인들과 충돌하긴 하나, 지금껏 군호가 붙거나 경 노야라 지칭되었다던 급의 마두를 마주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

이거 뭔가 늪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야 했나?’

하지만 이제 와선 늦었다.

나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뱉었다.

“…그 과목을 정규화하려면 무림사에 있었던 마교와의 사건을 조사 및 수집하고, 단기 계획과 연차 계획을 수립해서 각종 연구도 하고, 그를 토대로 교재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경혜 사태가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여셨는데.

“연구실에 몸을 담은 경험도 없는데, 척하면 척이군요. 어쩜 이리 사람이 똑 부러지는지.”

“그으런가요? 한데, 제가 좀 바쁩니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일학년인 제가 말학이라 일차적인 자료검토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해보세요.”

“아시다시피 자치부회장직을 맡고 있는지라, 청죽관 생도들도 관리해야 하고 또 기숙사 차원에서 행하려는 사업도 이제 막 기지개를 켜려는 형국이라 그걸 챙기고 제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빙그레 웃으시며 내가 할 말을 대신하셨다.

“바쁘지요?”

“…어? 예.”

“하여, 여기 계신 교수님들과 언용운 생도가 수강 신청을 한 교수님들과 의논을 좀 했습니다.”

“무슨 의논을?”

“언용운 생도가 연구실에 몸담는 동안은 필수 과제가 아니라면 면제해 주기로요.”

“…….”

“그리고 일차적인 자료조사를 언용운 생도에게 맡길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제대로 된 마인을 겪어본 유일한 인재이고, 또 언용운 생도가 말했듯 바쁜 사람에게 일 년 차 석학의 업무를 맡겨서야 안 되겠죠. 연구실의 실장을 맡기고자 합니다.”

그렇게 운을 뗀 경혜 사태는 전반적인 연구실의 구성 계획에 대해 말했다.

“일단 신구대면식에 참석한 명숙들에게는 학관의 생각을 공유하고 연구생으로 지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원서를 내라고 말씀드렸고, 참석하지 않은 문파들에는 전서를 보내 두었습니다. 학관에도 곳곳에 방을 붙여 두었고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제가 지휘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예. 지도교수님이 붙겠지만, 실장의 역할도 중요하지요. 쭉 지켜본바 언용운 생도가 권위에 굴할 성정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여러 문파에서 배분이 높은 졸업생들이 연구생으로 오면 지휘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노삼 교수님의 연구실에 그런 사람들을 연구원으로 차곡차곡 들이고 있었더라고요?”

“…….”

“하여, 언용운 생도가 관심이 있다 하면 실장을 맡기고 연구생 선별권도 줄 생각이었습니다.”

이쯤 하여 노삼 교수가 전음을 보내왔다.

[어째 네 녀석답지 않게 시큰둥한데? 마교를 쫓던 일은 네가 해오던 일 아니냐? 계속하려던 일이기도 하고?]

[조금 고민이 되네요?]

[왜 고민이 되느냐? 선별권도 주고 사업비도 크게 책정이 돼 있는데?]

[그래 봐야 실장입니다. 그리고 사공이 많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는데, 심지어 지도교수님이 너무 많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영환 저 친구랑 내가 네 편이고, 총장님도 계시는데. 아무튼, 이건 총장님이 제도 안에서 너랑 청죽관을 키워주려고 본인의 역량을 다하신 결과다. 그리고.]

[그리고?]

[네 녀석이 요즘 내 연구실을 학관 식당의 잔반 처리통 비슷하게 쓰는데….]

[잔반 처리통이라뇨?]

[맞으면서? 아무튼! 계속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어차피 연구실을 연 이상 뭐라도 실적을 내야 해.]

뭐, 듣고 보니 노삼의 말이 맞다 싶었는데.

때마침 내 뇌리에도 이걸 맡아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스쳐 지나갔다.

하여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학관생 광장의 알림판엔 정무학관의 총장 이름으로 작성된 방이 내걸려 있었는데.

언동생이라 지칭되는 무리 중 당옥기가 그 방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마공방어학 연구실에서 연구생을 모집합니다. 뜻있는 생도들의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이거 뭐야? 하연아 뭐 들은 거 없어?”

“없는데? 아까만 해도 없었는데 뭐지?”

“아, 이거 그건가 본데요 누님들? 저희 보충 수련 중에 본관에서 조교수 선배님이 오셔서 용운 형님을 데려가는 바람에 일찍 마쳤다고 했잖습니까?”

“근데?”

“그때 조교수님이 저 마공방어학? 특별 연구생으로 용운 형님이 지목됐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렇지, 소릉 동생?”

“예! 맞아요! 그래서 은 형이 적악여앙이라고 하셨어요.”

“…언 소협에게 그 말을 하셨단 말씀입니까?”

“쪼그려 뛰기를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하여간에 하성이 너는 매를 번다 벌어.”

그에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자연히 이야기가 옆길로 조금 샜는데.

당옥기가 재차 입을 열어 옆으로 샌 이야기를 본궤도에 다시 올렸다.

“…그래서. 다들 지원할 거야?”

그런 당옥기의 음성에, 언동생들이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간 당옥기와 언동생들은 언용운이 산서에서 가져온 일거리를 쳐내야 했다.

“보니까 대학원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아무리 언 공자지만 대학원을 따라가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네? 지금도 평균적으로 두 시진도 못 자는데?”

그리고 근 열흘간 지옥 훈련까지 했다.

그 시간은 산서에 따라갔던 사람과 따라가지 못했던 사람 모두에게 언용운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새삼 상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본관에 불려 갔으니 실장 같은 것을 맡아 오실 것 같은데, 용운 형님이 계시는 연구실은 지옥의 다른 말 아닐까요? 당장 조금 전에 모산파의 두 제자분의 꼴을 다들 보셨어야 했는데.”

“지옥이라는 말은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만, 대학원이란 단어와 언 소협이라는 이름이 같이 놓이니 두려움이 들기는 합니다.”

그에 이른바 언동생이라는 이들이 저마다 몸서리를 치고 있는 그때.

윤국관의 패루에서 걸어 나온 제갈설지가 언동생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옥기 안녕, 하연 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좀 지나갈게요?”

그리고 공지 앞에 놓인 지원서를 서슴없이 들고 떠나갔다.

그에 다시 한번 언동생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그때.

향란관 쪽에서 걸어 나온 남궁윤이 공지사항과 언동생들을 슥 확인하더니.

“…….”

지원서를 챙겨 들고 다시 한번 언동생들을 슥 확인하고는 홀연히 떠나갔다.

근데 남궁윤의 처음 눈빛이 단순히 누군가를 찾는 것으로 이 상황을 파악하는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에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뭐야 방금? 하성이 너 이번에 남궁윤이랑 오래 붙어 있었잖아. 두 번째 눈빛 뭐야 그거?”

“글쎄요. 오역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저 친구랑 검을 섞다가 저 눈빛을 받은 적이 있긴 하거든요? 그때는 말도 같이 하긴 했어서, 그 느낌을 살려서 직역을 해보자면….”

“해보자면?”

“고작 그 정도냐?”

“…….”

그 소리에 은하연과 정현의 손이 동시에 지원서로 향했고.

남은 세 사람의 손도 지원서로 향했다.

* * *

마공방어학 연구회.

줄여서 마방연의 실장 역을 맡기로 한 지 며칠이 지났다.

하여, 학관에서 들어온 지원서와 각 문파에서 보내온 지원서들이 노삼 교수의 연구동에 가득 쌓였는데.

그 서류가 나한테 도착을 못 하고 있었다.

‘내 책상이 비다니. 청죽관의 자치회실에서는 쌓인 일을 모조리 쳐낸 날이 아니면 이런 일이 없었는데.’

모산파의 두 제자와 솔거 거지 삼인방이 돕고는 있었으나.

나름대로 개방 내에서 여러 중역을 거친 복철 말고는, 일 처리 속도가 은하연과 비교 불가였다.

‘어려운 일을 시킨 것도 아닌데.’

결국 선별은 내가 하는 것이었고.

저 치들이 하는 일은 지원서에 적힌 이력 중에 이른바 사마외도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학관의 졸업논문 주제를 정마대전으로 잡았던 사람들에 붉은 안료로 표시해서 넘기는 것뿐이었다.

그게 저렇게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거지들. 거, 빨리 좀 못하나?”

“빨리하다가 실수하면 처맞…. 아니, 보충 수련하는 것 아닙니까요? 꼼꼼히 보느라 그렇습니다.”

“당연히 꼼꼼히 보면서 빨리하라는 말이지.”

그게 어렵나?

‘…일단 은 소저부터 합격을 시켜야겠다.’

뭐, 아무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그때.

“…이 친구가 지원을?”

“곤륜도 비상이 떨어졌지 않겠나? 이 친구는 어차피 그 비상에 동원할 수 없는 친구이니 이리로 보내는 거고?”

모산파의 도사들이 쑥덕거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나는 발걸음을 죽이고 두 도사에게 다가간 뒤에 나직이 입을 열었다.

“거지들보다 서류 보는 속도가 느리시면서 뭔 잡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에 두 도사는 동시에 헛숨을 삼켰다.

“허흑!”

“워! 원시천존!”

하나 개중에 형운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 크흠. 잡담은 아닐세. 곤륜파에서 온 지원자 중에 심율이라는 친구를 우리가 좀 알아서 이야기를 잠시 했네.”

“어떻게 아시고,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곤륜이 복마전선의 선봉에 있다 보니 모산과는 교류가 좀 있는데, 심율 이 친구는 성정이 좀 은둔적인 면모가 있다고 할까?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계속해 보십시오.”

“곤륜은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마교의 교도들과 자잘한 시비가 이는 일이 잦다네. 심율 도장은 운 없게도 그런 시비에서 우수의 힘줄을 잃었지. 그 이후로 어두운 성격이 되었다 알고 있는데, 이리 지원서를 낸 게 신기해서 말이야.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생각이 든 건가?”

- 흐음. 어째 탐탁지 않은 느낌이 드는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뭐, 이런 양반이 지원해 올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 일부러 실장직을 맡은 것이기도 하지만요.’

- 지원비 때문이 아니고?

내가 마방연의 실장을 맡기로 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지원비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마교의 대전략을 책임지는 마뇌(魔腦)라면 이럴 때 간자를 심으려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심율이라.’

도호에서 트로이 목마의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은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