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마공방어학 연구회 (2)
한편, 하북땅 진주에 있는 언가장에선 어느덧 정기행사가 된 하북삼협의 친목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본디 이런 행사는 대가(大哥)라 불리는 쪽에서 여는 것이 관례였기에, 어지간하면 팽가장에서 개최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나, 오늘은 언가장의 안주인인 이화부인 이영영이 친정의 일에 대한 감사로 팽무혁과 석금필을 초대했기에, 진주언가에서 개최하게 되었는데.
“아주버님, 석 가주님.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세요.”
이화부인이 마지막으로 시비들과 함께 국과 밥을 내오며 팽무혁과 석금필에게 인사를 하자.
팽무혁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제수씨, 이게 차린 게 없는 거면 세상에 천자 말고는 밥을 챙겨 먹는 이가 없다고 해야겠는데요? 딱 하나 아쉬운 것은 국이 소고기뭇국 같은데 쓰흡 이게 이게….”
그런 팽무혁의 모습에, 언정웅과 석금필은 ‘제발 그것만은’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나. 간이 안 맞으시나요?”
“아니, 소고기가 너무 많아서 말이요.”
“예?”
하지만 두 사람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고기 무(無)국이면 기실 소고기 없이 무만 있어야 하는데, 건더기가 너무 실합니다. 과장 좀 보태서 소가 한 마리 다 들어갔다 싶군요! 크하하!”
하나 팽무혁은 이화부인의 친정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이화부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상가(商家)의 딸다운 말주변으로 팽무혁의 면을 세워주었다.
“아하하, 재밌으셔라. 아주버님의 재치는 천하 으뜸이셔요.”
하나 이대로 두면 기분이 좋아진 팽무혁이 끝도 없이 이상한 농담을 늘어놓을 터였기에 석금필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는데.
“아! 언 가주님께 듣자 하니 직접 부엌에 가서 함께 준비하셨다던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늘 먹던 상에 찬 몇 개 더 내었을 뿐인걸요.”
이화부인의 입에서 조금 정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와서 언정웅을 입을 열었다가.
“…늘 이렇게 먹는다고?”
“아닌가요, 상공?”
“머, 먹었지. 먹었어.”
닫았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시비들을 찾으시고 이야기들 나누셔요.”
그렇게 언정웅의 입을 닫게 만든 이화부인은 팽무혁과 석금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사랑채를 나갔다.
그러자 언정웅이 참고 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후.”
그런 언정웅을 향해 팽무혁이 입을 열었다.
“제수씨가 정웅이 자네에게 묘하게 쌀쌀맞은 거 같은데 혹시 기분 탓인가?”
“실제로 부인이 제게 화가 좀 나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음식을 보는 게 낙양에서 돌아온 이후로 처음입니다. 요즘 제 밥상에는 맨밥에 간장만 오릅니다.”
“…그런.”
“…저런. 근데 자네 처가를 나 혼자 구했나? 자네도 큰 공을 세웠고, 장인께 인정도 받았는데 어떤 연유로?”
그에 언정웅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겠습니까. 용운이를 가문에서 쫓아냈던 일 때문이지요.”
“…아.”
“…음.”
“근데 쌀쌀맞게 대해주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용운이가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왔겠냐며, 아비라는 사람이 울타리 노릇은 못 해줄망정 쫓아냈다면서 우시는데, 맞는 말이라 할 말도 없고 달랠 방도도 없어서 참 힘들었습니다.”
“이보게, 석 동생. 자네 보자기 들고 온 거 있나?”
“미주(美酒)의 병을 감싼 보자기가 있긴 합니다. 한데 그건 왜?”
“그거 좀 정웅이 저 친구한테 주세. 좋아하는 찬거리가 있으면 싸뒀다가, 밥이랑 간장 사이에 놓고 먹게.”
“…아. 그, 여깄습니다 언 가주님.”
“…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쯤하고, 재혁 동생이 보내온 전서나 읽어 주시죠.”
그런 언정웅의 말에 팽무혁은 품에 고이 보관해온 서간을 꺼내 들고 입을 열었다.
“허험, 그럼 읽겠네? 전에 없이 크게 열린 신구대면식에서 모산파가 용운이를 지명했습니다….”
한데, 그러다 말고 욕을 내뱉었다.
“…이런 쌍놈의 호랑말코 같은 작자들을 보았나?!”
“의형?”
“어찌 그러십니까?”
“상청검수 일곱이 용운이 상대로 나섰다고 돼 있네.”
“예? 하나도 아니고 일곱이요?”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하나, 팽무혁의 입에서 욕이 나온 순간은 처음뿐이었다.
잘못 본 거 아니냐는 언정웅과 석금필의 말에 다시 서간으로 눈을 돌렸다가, 대결의 결과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기 정확하게 일곱이라 돼 있네. 상청검수 일곱이서 퇴마북두진을 펼쳤다가…. 용운이에게 파훼를 당하고 개같이 처맞았다?”
그렇게 팽무혁의 낭독이 물이 흐르듯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 장단에 맞추어 언정웅의 입꼬리가 팔랑팔랑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하여 정무학관의 운영위는 마공방어학 연구회를 설립했고, 언용운을 실장으로 삼았다!”
팽무혁의 낭독이 끝났을 때.
석금필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언 가주님. 상청검수들에게 괴룡이라는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도 모자라, 그 나이에 연구실의 실장이라뇨? 허허. 맨밥과 간장만 드시면 어떻습니까? 용운이가 이렇게 승승장구를 하는걸요? 용명이도 황보세가를 권으로 눌렀고요!”
“흐흠, 흐흐흥.”
팽무혁도 이어서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 밥과 간장 사이에 다른 찬이 들어오는 날도 머지않았구만. 강시종의 맥의 복원에 내로라하는 동기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용’소리를 따냈는데, 호적에 복귀시키면 되겠지.”
“…하. 근데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작은 아버님이 장로원을 장악하고 계시는지라. 그래도 명분은 섰으니 순리대로 될 것입니다. 이런, 너무 용운이 이야기만 했군요. 호열이와 소천이의 승리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용운이에 비하면 달 아래 반딧불이 같은 성과이나,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
한데, 팽무혁의 표정이 짐짓 무거워졌다.
그에 언정웅이 입을 열었으니.
“의형은 소천이 이야기가 나오니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도의 종가 자리를 두고 씨름해온 모용세가를 꺾었다는데 뿌듯하지 않으신지요?”
“아비로서는 뿌듯한 일이나 가주로서는 걱정이군.”
“흠. 모용세가의 행보를 우려하시는군요.”
하북삼협이 자식들의 이야기에서 천하 걱정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맞네. 마교가 고개를 쳐들었다는데, 잇속과 가문의 위신을 챙기려는 행보가 심히 우려가 되는구만. 이런 짓거리에 어울리다니?! 모용세가가 위치한 요령은 북해빙궁의 산물이 들어오는 길목 중 하나 아닌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저희 세대 때 팽 가주님이 모용 가주님을 꺾자, 모용세가에서 빙궁에서 오는 산물의 검속을 강화하는 식으로 골을 부린 적이 있었지요?”
“예. 심히 우려가 되긴 합니다. 당시야 산서가 멀쩡해서 하북만 좀 곤란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장인이 계신 산서가 어지럽고 북시가 마비된 상황이니, 한철과 빙정의 수급난이 천하 곳곳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 *
어째선지 재학생 중에는 우리 연구실에 지원서를 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뭐지?’
하기야, 나부터도 대학원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으니 그런 이유일 것이다.
뭐, 그래도 주인공 세대들은 천장호를 빼놓고 다 지원서를 냈다.
나는 그중 소천이 형을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모두 합격을 시켰고.
이어서 곧바로 면접을 실시했다.
가장 먼저 면접실에 불려온 사람은 은하연이었다.
그녀는 준비해온 전지를 넘길 준비를 하며 입을 열었는데.
“시작할까요?”
“됐소.”
내 말에 와락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왜요? 저 또 탈락이에요? 언 공자, 진짜 그러지 마요. 그러는 거 아니에요?”
“진정하시오. 노삼 교수님이랑 영환 교수님도 계시는 자리요.”
“아니! 교수님이 계시니까 더 면접을 제대로 봐줘야죠!”
“아니, 말을 좀 끝까지 들으시오. 합격이오.”
“아?”
“지금 바로 옆 방에 가서 개판 치고 있는 거지랑 헤매고 있는 도사들을 닦달하면서 체계 좀 잡고 계시오.”
다음은 제갈설지였다.
녀석은 산서행에 따라와서 마인들을 접해본 후기지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연구나 기획 쪽에 활용하기에 알맞은 탁월한 두뇌를 가졌기에, 이미 뽑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봐온 게 있는데, 능력을 증명한 녀석을 안 뽑을 이유가 있나.’
다만, 은하연의 사례를 참고해서 할 말을 해볼 기회를 주니.
“존경하는 교수님들 그리고 용운 님. 저는 산서에서 마교도를 실제로 보기도 했고, 강시들과도 싸워봤어요. 학업 성적도 우수하죠. 이 연구에 저만한 적임자가 있을까요?”
제 포부를 당차게 말하고, 합격을 받아갔다.
제갈설지 다음은 정현이었다.
“노삼 교수님, 영환 교수님. 그리고 언 소협. 저는 무당의 정현입니다.”
한데, 녀석은 다 아는 제 이름을 굳이 소개할 때부터 싸하다 싶더니, 장광설을 늘어놓으려 했다.
“예로부터 많은 편찬작업물에는 거울 감(鑑)자를 썼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비추어보자는 뜻입니다. 그에따라 제 지원동기를 말하기에 앞서 산서에서 있었던 일부터 돌아보면….”
“합격.”
나는 급히 말을 끊고 녀석을 옆방으로 보냈다.
그렇게 당옥기, 용명이, 소릉이에 이어 하성이까지 옆방으로 보내고 나자, 남궁윤의 차례가 되었다.
한데, 면접실에 들어선 녀석은 하라는 자기소개는 하지 않고.
[합격하려면 무릎부터 꿇어야 하는 건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전음을 보내왔다.
“?”
“?”
“궁윤아, 뭐 잘못 먹었니? 오늘 점심 중에 숙주 무침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숙주가 잘 쉬긴 하지. 상한 거 먹었어?”
“…숙주 무침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이름은 윤이다. 남궁이 성이고.”
“그걸 누가 모릅니까? 저는 지금 연구실의 실장으로 앉아 있는 겁니다. 연구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시를 받으면 남궁 ‘윤’ 지원생은 다 따질 겁니까?”
“…궁윤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니, 좋습니다.”
그렇게 나는 일단 지원한 주인공 세대들과 언동생들을 합격시켰다.
그리고 한층 빨라진 속도로 외부 지원자들을 선별해 합격 통보를 전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1차 합격 통지를 받은 외부 지원자들이 각지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대상으로도 나는 면접을 실시했다.
“언 공자? 심율 지원자가 정문에 도착했대요.”
외부 지원자들의 경우는 적을 두고 있는 지방과 정무학관의 거리가 천차만별이었기에, 재학생처럼 날을 정해놓고 면접을 할 수는 없었다.
“알겠소. 소릉아.”
“예, 언 형.”
“너는 가서 노삼 교수님이랑 한영 교수님 모셔오고. 하성이 너는 응접실에 면접 볼 준비 좀 해놔.”
“옙!”
하여, 도착하는 순서대로 면접을 실시하여 합격시킬 사람은 합격시키고 돌려보낼 사람은 돌려보냈는데.
“그리고 은 소저는 심율 지원자의 압박 면접용 자료 좀 찾아와 주시오. 저기 있는 서랍 어디 있을 거….”
“그건 여기 있어요.”
“역시 척하면 척이군. 아무튼 고맙소.”
“근데, 밖에 지금 정현 도장이 기존의 최종 합격자들을 ‘교육’하고 있잖아요? 중지시킬까요? 면접자랑 교육 시간이 겹친 게 처음이라 어찌할지 물어요.”
“그게 어때서?”
“…….”
“굳이 그럴 것 없소. 봐 두는 게 좋지. 그럼 은 소저는 내 업무 좀 잠깐 맡아주시고. …제갈 소저는 본인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군. 그러면 당옥기.”
“캬악! 그러면 당옥기는 뭐야? 뭔가 열 받는데?”
“면접 내용을 받아 적을 서기가 필요하다. 네 필체가 깔끔해서 부른 건데 싫으면 남궁….”
“나를….”
“내 필체가 한 깔끔하기는 하지! 알았어! 할게!”
곤륜산이 청해성 끝자락에 붙어 있어, 중원 천하의 최서단에 있는 문파가 곤륜파였기에.
일찍이 내가 눈여겨 보아두었던 곤륜의 심율 도장은 합격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저는 연구실의 실장인 언용운입니다. 한영 교수님은 아실 거고, 이쪽은 노삼 교수님입니다.”
“곤륜파의 심율입니다.”
한영 교수님은 곤륜파 출신이셨다.
하여 심율의 신분 확인과 면접관의 질문의 당위성을 판단하고자 참석하신 것이었고.
면접의 시작은 노삼 교수님이 하셨다.
“심율 지원자는 왜 연구에 지원했나?”
“저는 마인에게 부상을 당해 검을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과 곤륜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활용하여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돕기 위해 이렇게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만. 각파에 공문을 보낼 때 고지했지만, 우리 연구실의 실장은 보다시피 강호의 배분이 자네보다 낮고 나이도 젊네. 여기 있는 언용운 실장 지휘에 따를 수 있겠나.”
“예. 물론입니다.”
“하면, 지금부터 면접 진행을 언용운 생도가 하겠네.”
그리고 주요 질문은 내가 하게 되었는데.
“…야근도 문제없다고 하셨고.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이르러 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지원서에 보면 부상 이후로는 대외활동도, 도관 내의 활동도 적혀있지 않은데, 그 공백 기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왼손으로 검을 드실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제 성정이 모난 바가 있어 그저 방에서만 지냈습니다.”
“지금부터는요?”
“예?”
“오면서 연무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지원자보다 먼저 합격한 합격자들입니다.”
“옛?”
“저희 연구실은 단순히 탁상에서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틈틈이 심신 단련도 하고 있습니다. 열외는 없습니다. 아니 어색한 좌수로 검을 다루실 수 있게 되시려면 되레 다른 연구생들보다 혹독한 단련을 하게 될 듯합니다만.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엇, 예.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한영 교수님 앞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예? 아, 예.”
“그럼 합격입니다.”
그런 내 모습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는 의아해하셨다.
- 저 심율이라는 말코놈 말이다.
‘예.’
- 지원서를 봤을 때 너도 탐탁지 않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랬지요?’
- 흠. 대답 자체는 그럴싸했다만, 내가 보기엔 꼭 연구가 하고 싶다는 느낌보다는 합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처럼 보였는데. 너는 의혹이 다 풀린 것이냐?
‘아뇨. 저도 사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여전히 의혹을 가지고 있죠.’
- 한데 왜 합격을 시킨 것이냐?
그런 사부님의 말씀에 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을 전했다.
‘왜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의심 단계일 뿐입니다.
우선은 딴짓할 여유가 없도록 굴리면 그만이고.
‘그러다 진심으로 부상을 딛고 재기하려는 마음이 있으신 것이 확인되면 응원할 겁니다.’
- 흠, 그러면 진심이 아니라면?
‘뭘 그런 걸 물으십니까?’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뒤지게 패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