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마공방어학 연구회 (4)
언용운이 휴일에 무당산 등산을 추진한 이유는 심율을 비롯한 외부 지원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노삼 교수님과 거지 셋, 영환 교수님과 모산파의 두 연구생 선배님들은 연구실을 지키기로 하셨고. 언용운 생도를 비롯하여 불참 의사를 표한 연구생들 외에 다른 인원은 이상 없습니다. 출발하면 되겠습니다. 총장님, 정극경 교수님, 한영 교수님.”
“그럴까요?”
하지만 행사 자체는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는데.
“명산이에요. 참으로 명산입니다.”
“하하하. 총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본관에서 창을 열면 보이는 산이 무당산 아닙니까? 발을 디딘 일도 많으시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무당산에 오를 때면 늘 무당파와 협의를 할 일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거나 경신술을 일으켜 급히 달려 올라가니, 주위의 풍경을 찬찬히 눈에 담을 일이 없었는데, 향화객들이 사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참으로 좋습니다.”
“느리게 걸으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지요. 저도 곤륜에서 정무학관으로 건너와 교수 일을 한 지 오래되었는데, 오늘은 무당산이 좀 새롭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한영 교수님의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언용운 생도 덕분에 이런 시간을 다 가져보는군요. 참 좋네요.”
“동감입니다. 참 좋은 시간입니다. 제 개인 연구실의 대학원생들과도 이런 시간을 이따금 추진해 봐야겠습니다.”
단출한 차림으로 행사에 참여한 교수님들의 반응이 온탕이라면.
어깨에 각각 자기 몸만 한 짐을 짊어 메고 팔다리엔 무위에 따라 모레 주머니나 쇳덩이를 차고 산을 오르고 있는 연구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탕이었다.
“휴일만 기다렸는데. 휴일만 기다렸는데. 휴일만 기다렸는데.”
“…죽여줘.”
이런 산행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외부 지원 연구생들은 그야말로 죽는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이 겪어본다고 느는 것은 아니어서, 이른바 언동생이라는 녀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으아아. 언 형은 대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시길래 이런 끔찍한 행사를 떠올려 내시는 걸까요?”
“카악!!! 그러니까! 근데 그래놓고 지는 정작 어디로 내뺐어! 이 사기꾼!”
“본인만 쏙 빠지다니 용운 형님께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앓는 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었다.
“내뺐다니요. 언 소협께서 그러실 리가 있습니까? 정말로 피치 못한 사정이 생기셨거나 따로 안배한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요.”
“…….”
“…….”
“…….”
“그리고 기왕지사 시작한 산행입니다. 그렇게 악만 쓰고 계시면 세상천지가 악으로 물드는 법입니다. 공자께서는 즐기는 자를 따를 자가 없다 하셨고, 불가에서는 부처의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부처로….”
묵묵히 산행단의 전후를 오가며, 악을 쓰고 있는 연구생들을 독려(?)하는 정현이 있었고.
“나는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어. 시키는 언용운보다 옆에서 거드는 정현이 밉다는.”
“동감입니다, 옥기 누님.”
“저, 저도요.”
“너희는 당가의 친구야.”
또 자체적으로 불이 붙은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먼저 불이 붙은 사람은 남궁윤이었다.
“대오를 꼭 지켜야 하는가?”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가요, 남궁 소협?”
“맞다. 언용운이 남긴 말이 없나?”
“글쎄요? 딱히 말씀은 없으셨는데요? 그건 왜 묻죠?”
“언용운이 산을 그냥 오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게다가 녀석은 선착순? 뭐, 그런 것을 선호하지 않나?”
은하연에게 들은 말이 없다는 답을 들은 남궁윤은 곧바로 교수님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들은 그런 남궁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이내 곧 남궁윤의 걸음이 성큼성큼 커지기 시작했다.
“용운 님이면 몰라도 다른 사람한테 뒤처지는 건 못 참는데?”
그러자 제갈설지의 눈에도 불이 켜졌고.
“…남궁 형은 힘이 남아도시나 봐요.”
“걔도 걔지만 설지 저거 눈 돌아간 것 좀 봐. 쟤는 왜 저럴까? 죽마고우지만 저럴 때마다 무섭다니까?”
“어떻게 보면 용운 형님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불이 붙은 두 사람이 치고 나가자.
은하연의 입에서도 불같은 노성이 뿜어져 나왔다.
“청죽관! 윤국과 향란에게 뒤처질 건가요?! 해검지까지 속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선착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경혜, 정극경, 한영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청춘이군요.”
“쇠도 씹어먹을 나이 아닙니까.”
“좋을 때입니다.”
뭐, 아무튼.
그렇게 연구생들은 종착지로 삼은 해검지를 향해 달려갔는데.
우르르 도달한 산행의 끝에는 해검지를 지키고 있는 무당파의 도사 말고 조금 이질적인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혼자서 쪼그려 뛰기를 하고 있는 팽소천이 있었다.
“하나 둘 셋. 사천팔백오십이. 하나 둘 셋. 사천팔백오십삼.”
그에 은하연의 등쌀에 가장 먼저 도착해, 숨을 먼저 고른 우소릉이 입을 열었다.
“…저, 저희 여기서 무슨 수련 같은 거 하나요?”
“응? 아닐걸?”
“근데, 왜 쪼그려 뛰기를…?”
“아, 이건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근손실이 날까 봐 하고 있던 건데?”
그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들이 터져 나왔는데.
“…놀라라.”
“아니, 심심하다고 뭔 저런 걸 하고 있어? 간 떨어질 뻔했네.”
그런 한숨들을 헤집으며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소천 형님이 근데 여기서 왜 나오세요? 쪼그려 뛰기를 사천 개 넘게 하셨으면 반나절은 그러고 계신 거 아닙니까? ”
“어? 용운이가 주말에 할 일 없냐길래, 없다고 했더니 자기랑 일하나 하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동트기 전에 같이 산에 올라왔다가, 녀석은 내려가고 나는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해검지에 도착한 사람들 확인 도장 좀 찍어 주라던데?”
팽소천의 말에 정현이나 남궁윤 같은 사람은 ‘역시.’ 소리를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나,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시 한번 헛숨을 집어삼키며 팔을 쓸었다.
산을 오르며 흐른 땀이 순식간에 식을 정도로 오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그럼 언 실장은 새벽같이 여기를 올라왔다 갔다는 건가? 지독한 위인 같으니.”
“강요는 아니라더니. 역시 불참하면 안 되는 거였어. 이런 안배를 해놓다니.”
“…한데, 안 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언 실장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본인도 참석을 안 해놓고 설마 뭐라 하겠냐며 슬그머니 돌아간 녀석도 몇 있는데?”
하나 그러면서도 손목에 도장을 찍기 위해 저마다 팔을 걷어붙였다.
* * *
그날 저녁, 나는 손목에 도장을 받은 연구생과 받지 못한 연구생을 파악했다.
그리고 찾아온 이튿날 아침.
“실장은 실망했습니다.”
간밤의 파악을 토대로 산행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믿었는데 이렇게 참석률이 저조할 줄이야.”
그런 내 말에 슬프고도 위험한 예감을 느낀 것일까?
연무장에 모인 불참자 중 몇몇은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조심스럽게 항변을 해왔다.
“…가, 강요는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한데, 그게 빠져도 좋다는 말은 아니지 않나요?”
그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검집 속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오셨지만.
- …내 제자지만 참.
나는 그런 사부님을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저도 맡은 자리가 많아 일이 많다 보니,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불참했습니다. 하나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보였습니다.”
‘빠져도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는 내 말은 궤변이었지만.
새벽같이 무당산에 기어 올라간 내 행동이 그 궤변을 이치에 맞게 만들었으니까.
그에 할 말을 잃은 불참자들은 정(情)에 의한 호소를 해왔다.
“…너, 너무 피곤해서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습니다. 말도 쉬어줘야 달리는 것입니다, 실장님.”
“여러분은 평범한 말이 아닙니다. 마방연은 마교의 위협을 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적토마로 대표되는 천리마처럼 달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 실장은 간밤의 고민 끝에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지금껏 봉인해 두었던 부피 체조.
그러니까 현대식으로 말하면 버피 체조를 꺼내 들었다.
“아니 부(不)에 지칠 피(疲), 지금부터 제가 시범을 보일 이 ‘부피 체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체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오늘처럼 연무장에 모이시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럼 숙달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나는 구분 동작으로 체조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팔굽혀펴기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개구리처럼 제자리 도약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호각을 입에 물었다.
삑삑 삐빅 삐삐빅!!
“하나앜!!!!”
버피 체조는 쪼그려 뻗치기와 팔굽혀펴기, 그리고 개구리처럼 뛰는 동작이 합쳐진 그야말로 악마의 체조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내력을 엄금한 상황에서 제대로 하면,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팔이 갈대처럼 나풀거리고, 나중엔 허벅지가 녹을 것 같아지지.’
그런고로 호각이 불리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불참자들의 팔과 다리가 너덜거리고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흐억.”
“…커흐흑”
나는 그런 불참자 중 심율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 저것 봐라?’
그런데 심율이 혼몽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팔을 굽혔다 펴는 동작에서 다쳤다던 우수로 땅을 미는 것이 보였다.
그에 내 머릿속에서 딱 한 가지 풀리지 않았던 의문, 곤륜의 도사가 어쩌다 마교의 끄나풀이 되었는지가 철컥하고 풀렸다.
나는 입꼬리를 뒤틀어 올리며 심율에게 다가간 뒤.
전음을 건넸다.
[방금 오른손을 사용하던데요?]
“!”
* * *
나는 보충 수련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심율을 데리고 생활관으로 향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심율 정도만 되어도 고독을 모르고 삼킬 리는 없다.’
삼켰어도 바로 눈치를 채고 태웠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심율이 마교의 끄나풀 노릇을 해줄 이유가 사라지고.
‘원작의 수법을 고려해보면 해약이 필요한 독 같은 것을 먹였겠지?’
작은 외숙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렇게 생활관에 도착한 나는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회한을 뽑아 든 뒤.
서걱-
혈조술을 덧씌운 유사검강으로 내 책상의 한쪽 모서리를 두부처럼 베어내고.
“지금부터 이 방은 진실의 방이 됩니다. 거짓을 말씀하시거나 허튼짓을 하시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제 저는 약령시에서 마교의 끄나풀로 보이는 자와 접선하는 선배님을 보았고. 오늘은 우수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교가 오른손을 고쳐준 겁니까?”
내 말에 심율은 둘러댈 말을 뱉으려 했다.
“그, 그건….”
하나, 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실의 방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 딱 감이 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 번은 기회를 주는 사람입니다. 지내면서 제 성정을 아시게 됐을 텐데요? 자, 지금부터 셋을 세겠습니다. 셋.”
“…….”
“둘.”
“…….”
“하나!”
쌔애애액!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심율은 정말로 내 검이 자비 없이 휘둘러지려 하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마, 맞네! 하지만, 학관이나 백도 무림에 해악을 끼치는 일은 아직 하지 않았네! 어, 어제도….”
그렇게 운을 뗀 심율은 접촉한 마교인에게 넘긴 정보가 아무것도 없음을 호소했다.
“그래서 뭘 알아 오라던가요?”
“…연구생으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해달라 했네.”
내 질문에 따라 놈들에게 받은 지령에 관해 말을 하더니.
우수를 다친 일부터 마교의 인물을 재차 접촉한 일까지 본인의 신세 한탄에 들어갔다.
심율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마방연의 인물들과 연구 자료 파악과 학교 방비가 흐트러질 시기라.’
심율이 본디 마교의 인물이 아닌지라, 기실 아는 것이 얼마 없었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강호낭중 행세를 하는 놈이면 마뇌의 제자인 그놈인가? 역시 마뇌부가 개입을 했나?’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아마도 유력 세가 출신 후기지수 몇의 암살 혹은 납치일 것이다.
‘손이 귀한 세가의 혈통이 죽거나 납치되면?’
백도무림 전체로 치면 그저 몇 명의 후기지수를 잃는 것일 뿐이나, 세가의 입장에선 청천벽력이 되니.
‘남궁윤을 아끼던 남궁욱만 봐도 답이 나오지.’
백도 무림의 균열이 절로 가속화될 터.
그렇게 되면 마교가 노릴 틈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머리 좀 쓰셨구만.’
끄나풀로 심율 같은 사람을 고른 것도 그랬다.
누가 곤륜의 도사를, 그것도 마교에게 손을 잃은 사람을 간자로 활용할 거라고 의심을 하겠는가?
‘나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지.’
뭐, 아무튼.
대략적인 견적이 나왔다.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정보를 그쪽에 전달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