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마공방어학 연구회 (5)
- 네 손속과 세 치 혀가 보기 드물게 참을성을 보인다 싶더니만, 이제 보니 저 심율이라는 말코 놈으로 반간계(叛間計)를 쓰려는 모양이로구나?
나 원 참.
누가 들으면 제자가 아무렇게나 사람을 치는 흑도의 왈패인 줄 알겠습니다.
- 그건 걔들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
- ?
‘뭐, 반간계를 쓰려는 것은 맞습니다.’
반간계는 적의 간자를 역이용하는 계략으로, 쉽게 말해 이중 간첩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방식은 다양했다.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어떤 장소로 끌어낼 수도 있고.’
쭉정이 정보를 중요한 듯 내어줘 헛물을 켜게 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할 수도 있었다.
- 그런데 저 심율이라는 놈을 믿느냐? 대저 반간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되려 네가 해를 입을 수도 있을 텐데?
사부님의 말씀이 맞았다.
간자의 활용도를 높이려면 이쪽의 쓸만한 정보를 내어 주어 마교 놈들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하니.
‘안 믿죠. 늘어놓은 사정이 과장 없는 진실이라고 쳐도 어쨌거나 사문을 배신한 위인 아닙니까?’
- 한데 어찌 반간계를 쓰겠다는 것이냐?
간자가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가면 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하여,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병법서에서도 반간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심율이라는 사람을 믿지는 않죠. 다만, 저자가 제 계획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뿐입니다.’
하여,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당장이야 정체가 들통났다는 당혹감과 내 압박에 떠밀려 제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놓았지만.
장차 생각에 여유가 생겼을 때.
심율이 어느 편에 설지는 지금 이 순간에 달린 것이었다.
‘심율은 공명심이 있는 자, 그리고 가진 공명심에 비해 의지는 좀 약한 사람.’
면접을 위해 곤륜파에서 건네받은 자료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내 눈으로 지켜본 바도 그랬다.
‘그렇다면 일단은 당근부터.’
나는 우선 회한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심율을 향해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런.”
그렇게 운을 뗀 나는 ‘나도 같은 상황에선 그랬을지도 모른다.’, ‘둘이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곤륜파가 너무했다.’ 하는 식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심율의 죄의식을 덜어 주었다.
“저도 망나니 소리를 들어온 사람입니다. 선배님과 달리 저는 정말로 가문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
“…아! 참 그렇지? 자네도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만.”
그리고 넌지시 전(前) 용운이 놈의 행적을 들먹였다.
“저야 어쨌거나 행한 망나니짓이 있으니 다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만, 선배님은 협의를 보이시다 그리되신 건데 참 힘드시고 야속하셨겠군요.”
그러자 내적 친밀도가 상승한 것인지, 심율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더 깊은 속내를 뱉어냈다.
“사문은 야속하고, 마방연의 일은 힘들고. 언 실장 자네는 무섭고, 그렇다고 마교 놈들도 내 말을 믿어주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왜 세상이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한지….”
위로는 이 정도면 되겠다.
이쯤하여 나는 제대로 된 당근을 내밀었다.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기회?”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제가 드리는 정보를 마교에 전달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놈들이 선배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진짜 정보를 드릴 겁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심계를 섞은 정보를 내준다? 나를 반간으로 삼겠다는 거군.”
“예. 그를 통해 마교에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면 큰 공이 될 겁니다.”
그러면서 채찍도 휘둘렀다.
“사실 선배님께 선택권은 없습니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느냐, 마지막 기회를 잡느냐 뿐이죠.”
“…….”
“제가 선배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마교 놈들이 정말 선배님을 믿었다면, 내내 종이만 잘랐다는 소리도 믿었겠지요. 한데 아니었다면서요? 복용하는 약이 정말로 해약인지 아니면 새로운 중독의 시작일지 단언하실 수 있습니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 마교 놈들의 말을 믿습니까?”
그리고 다시금 당근을 내민 뒤.
“삼키신 독은 당장 일상생활이나 내력 운용이 가능한 것을 보면 극독은 아닐 겁니다. 그런 독이라면 이쪽에도 약왕당과 당가가 있습니다. 위험과 오명을 무릅쓰고 마교에 일격을 먹인 영웅이자 협객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검지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그것으로 끝이었다.
심율의 동공이 몽롱해졌고.
“…영웅. 그리고 협객.”
허리춤으로 돌아간 사부님께서는 나를 향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 기사멸조를 행한 놈을 구워삶는 데 지금 시간을 얼마나 쓴 것이냐? 가만 보면 이놈은 강호에 나올 게 아니라 조정에 출사를 했어야 하는데.
* * *
언용운에게 정체가 탄로 난 날부터 시간이 흘러 찾아온 두 번째 접선일.
마교의 정보원은 짐짓 건조한 음성으로 심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언용운을 비롯한 연구생들이 다 미친놈이라느니, 알게 된 정보가 없다는 말만 늘어놓는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요. 물론, 아름다운 이별은 아닐 거요. 도장이 본교의 손을 잡았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테니까. 본교에 외면받고 백도무림에 손가락질받으며 말로를 맞이하고 싶진 않으시겠지?”
그런 정보원의 음성에.
심율은 다시 한번 언용운의 말을 되새겼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 마교 놈들의 말을 믿습니까?’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언용운이 일러준 말을 입에 올렸다.
“따로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알아보시오! 마방연은 기존 백도무림의 연공서열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소! 위아래도 모르고 선배를 마소처럼 부려먹는 선임 연구생이 미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고, 말단이라 정말 허드렛일만 해서 그때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소!”
“그때라는 말이 이번에는 그래도 뭔가 알아 온 것처럼 들리는군요?”
심율은 언용운이 내어준 서류를 내밀었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연구 정보는 아직은 이 정도가 다요. 학관이 느슨해지는 틈은 당장 보이지 않는데, 일단 산악회라는 게 정규화될 조짐이 있소.”
“산악회?”
“교수들과 연구생들이 가까운 산으로 야유를 가는 것인데, 저번에는 당신들을 만나느라 나는 참석을 못 했소만, 필수 인원 몇 명만 남고 모두가 산행을 가는 행사요.”
* * *
그간 연구생들을 갈아…. 아니, 독려한 덕에 학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마대전의 일차 자료 정리는 거의 끝났다.
연구생들은 지도교수님에 따라 부서를 나누어 각각 주제를 잡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딱 맞군.”
내가 챙기던 일이 일정 부분 교수님들에게 넘어갔고, 그동안 ‘마방연의 일상’에 나름대로 적응을 한 연구생들 덕분에 내가 직접 빨간 모자를 쓰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빴다.
‘학교 수업에다가, 청죽관도 챙겨야 하니까.’
교수님들이 연구생들의 과제를 면제해 주셨다고는 하지만, 기말고사는 직접 쳐야 하니 공부를 해야했고.
틈틈이 청죽관의 살림도 살펴야 했다.
뭐, 이건 다른 자치회 간부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나는 심율 선배도 챙겨야 했으니.’
심율의 마음이 우리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긴장을 놓아선 안 되는 사안이었고.
심율을 매개로 마교에 흘리는 정보도 면밀히 검토해야 했다.
너무 고급 정보를 보내면 내 살을 잘라다 바치는 꼴이 되고, 너무 허접한 정보만 보내면 마교가 심율을 쓸모없다 여길 것인지라.
흘릴 정보를 선별하는 것도 상당한 심력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다행인 점은 나 홀로 이 모든 걸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할까요?”
“예,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내겐 덮어 놓고 믿을 만한 사람이 제법 생겼다.
나는 그들 중 내 계획을 좀 더 완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그 덕에 나는 안심하고 적을 올가미에 몰아넣을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준비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때가 이제 무르익었어.’
그간 치밀한 계산하에 흘린 정보가 저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흘러 들어간 정보가 저쪽에서도 맞춰졌을 것이다.
슬슬 행동으로 이어질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보던 서류를 덮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회한을 잡아뽑았다.
스르렁-
당장은 내 계획대로 일이 풀려가고 있는 듯했다.
하나, 막상 일이 터지면 계획이 가장 먼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세상일이라는 게 꼬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꼭 이번 일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많은 계획을 세울 텐데, 만에 하나 일이 꼬였을 때.
그 꼬인 매듭을 잘라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일신의 무위일 터였다.
‘벽을 넘어야 해.’
혈조술을 함께 사용하는 식이라, 한계가 분명한 유사 검강이 아닌 진짜 검강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죽산에서 출발해서 단강구 쪽으로 나오는 등산로를 이용하기로 했으니 다들 참고하세요.”
어느덧 정규화된 산악회의 행사를 치르기 위해 마방연의 교수들과 연구생들이 학관을 떠난 이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한 무리의 흑의인들이 정무학관의 동편에 있는 대나무숲을 통과하고 있었으니.
천마신교 마뇌부 산하의 외부 공작대인 마영대(魔影隊)의 살수 조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탓! 탓! 탓! 탓! 탓! 탓!
정무학관의 동편에는 기숙사가 있었다.
하여, 동편에 있는 대나무숲에는 곳곳에 깔아둔 기물과 대나무들이 진법의 묘리를 갖추고 있었고.
반나절에 한 번씩 그 진법의 묘리를 변경하게 되어 있었지만.
학관 내부에 심어둔 간자인 심율이 단강구 근처의 연락 지점에 파훼법을 적은 종이를 끼워 두었기에.
“정보가 확실하군.”
이 대나무숲은 흑의인들에겐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대나무숲을 통과하자.
[심율이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대나무 숲에서 우리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남은 정보도 믿어도 되겠어.]
[예. 연구동을 지키는 조는 언용운과 제갈설지, 그리고 영환 교수와 모산파의 제자들이라 되어 있습니다. 모산파의 제자들은 빙고가 달린 우 연구동에, 언용운과 제갈설지는 좌 연구동에 있는 것 같습니다.]
[좌 연구동으로 간다.]
흑의인들의 행보에 탄력이 붙었다.
[일남 일녀가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마방연의 업무와 연구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저렇게 될 수밖에 없지, 본교도 그렇게 사람을 혹사하진 않거늘. 아무튼, 잘됐구나. 저항하면 제갈설지는 죽여도 좋다 하였지만, 최선은 납치라고 했다.]
[예. 시작할까요?]
[곧 있으면 수위부에서 진법의 묘리를 교체하는 시각이다. 서둘러야 한다. 미혼산을 피우고 두 연놈의 혈도를 짚어 자루에 넣어와라.]
오랜 시간 훈련을 받고, 실제로도 각계의 요인들을 납치해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 내부자의 조력까지 받자.
[완료했습니다.]
[안가로 간다.]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두 명의 생도를 벌건 대낮에 납치해 올 수 있었는데.
“자루를 벗겨라. 물은 먹여야 한다.”
“예.”
당도한 안가에서 언용운과 제갈설지가 든 자루를 벗기자.
언용운이라고 하기엔, 듣던 것에 비해 외모가 한참 떨어지는 송사견을 닮은 중늙은이가 우두둑 허리를 풀며 입을 열었다.
“이이고, 삭신이야. 이놈의 자식들이 요령이 없나? 승차감이 영 엉망일세.”
그리고 그 옆에서 몸을 일으킨 여생도의 목소리에선 어쩐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노 교수님? 한데 혈도 푸시다가 역용술도 풀리신 모양인데요?”
“뭐 어떻습니까, 총장님.”
“하기는요. 아무튼, 언용운 생도 말이 맞았네요. 용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