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뭐가 이렇게 많아? (2)
우리가 맞닥뜨렸던 마인의 대다수는 경혜 사태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촤악!!
촤아악!!!!
그에, 이 자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향란관의 무복을 입고 있는 남궁윤밖에 없게 되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경혜 사태는 피를 뒤집어쓰신 와중에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려 빙그레 웃으셨는데.
“정 교수님, 그리고 우리 마방연의 생도들. 다들 달려온다고 고생 많았습….”
그런 사태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흠칫거리는 녀석들이 나왔다.
그에 경혜 사태가 본인의 의복을 내려다보며 입을 여셨다.
“…아.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지요?”
기실 뒤집어쓰신 피보다 그전에 보여주신 살벌한 무위와 일말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 손속이 더 영향을 주었을 테지만.
‘생각해보니 피를 뒤집어쓰고 사람 좋게 웃는 모습도 다른 녀석들의 눈엔 기괴하게 보이긴 했겠네.’
그에 나는 지니고 다니던 손수건을 꺼내 경혜 사태께 내밀었다.
“총장님, 여기.”
“아, 고마워요.”
그리고 이곳의 상황에 관해 물었다.
“노삼 교수님은요?”
“저 너머에 계십니다. 끝이 나는가 싶던 상황에, 이 자들이 도망치길래 따라온 것이니. 슬슬 그쪽도 정리되었을 겁니다.”
경혜와 노삼 두 사람은 각각 아미파와 개방의 현판이나 다름없는 고수들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곳에 똬리를 튼 마인들을 소탕하는 데 소요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음. 주둔하고 있던 마인의 수가 예상보다 적었나 보군요?”
“예. 당초 언용운 생도와 제가 이야기한 것은 마군급 인사가 지휘를 할 것이라 보고, 마방연에서 연구한 과거 마교의 직제를 바탕으로 최소한 두 개 이상의 공작대가 동원되었을 것이라 보았잖아요?”
“예.”
“…어디 보자, 여기 이자들까지 포함해서 일곱 개 조 정도 밖에 안됐어요.”
“무력대 하나에 좀 못 미치는 숫자군요.”
그런 우리의 대화에.
별호가 풍찬검객일 정도로 강호의 사정에 이골이 난 정극경 교수님이 입을 여셨고.
“하면, 마교도 일단 지원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안가가 노출되면 보통 버리는 게 수순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경계와 방어 태세를 갖추고 가까운 개방과 무림맹의 지타에 연락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빈니도 정 교수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 의견에 따라 우리는 생도들을 나눴다.
“선임 연구생 중에 언동생들은 나를 따르고, 나머지 생도들은 정 교수님 지휘에 따르고 있어라.”
대부분의 생도는 원활한 경계와 방어 태세를 갖추기 위해 계단식 차밭의 중턱에 정극경 교수와 남겨두었고.
몇몇 녀석들만 데리고 경혜 사태가 넘어온 언덕을 지나니.
마침 마지막 흑의인의 멱을 비틀고 있던 노삼이 우리를 보고 입을 열었다.
“다들 왔느냐? 아! 총장님!”
“예, 노 교수님.”
“따라간 놈들은 어찌 됐습니까? 그놈들 중에 한 새끼가 저를 보고 저렇게 생겨 먹은 게 언용운일리 없다고 지껄였던 새끼 아닙니까? 내 인물이 어때서? 언가 녀석이나 나나 별반 차이도 없구만!”
그런 노삼의 음성에 사부님을 필두로 언동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 저 거지새끼가 양심이 없구나. 아, 그러니까 거지인가?
“노 교수님이 오늘 많이 힘드셨던 걸까?”
“그러게요 누님? 용운 형님이 심성이 뒤틀려서 그렇지 외모는 교수님이 들이대실 게 아닌데. 안 그래, 우 동생?”
“면경을 안 보시나 봐요.”
“면경을 보시긴 하지 않겠습니까?”
“정현! 소릉이 말은 비유잖아, 비유!”
“…아. 한데 당소저. 요즘 왜 이렇게 화가 많으십니까? 그러면 몸에 안 좋습니다. 너무 그러시지 마십시오. 오늘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 소협은 다 생각이 있으셔서….”
“캬악!!! 너 때문이야 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혜 사태께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여셨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달린 것은 차이가 없긴 하지요. 아무튼 그 치들은 지장보살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 * *
마교의 공작대나 무력대는 기본적으로 여덟 조로 운용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중 일곱 조를 전멸시켰으니, 사실상 대 하나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큰 성과야.’
지금은 마교도 백도 무림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 살살 찔러보며, 여러 지역에 거점을 만드는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 정무학관을 염두에 두고 만든 안가를 밝혀내고, 공작대 하나를 전멸시킨 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었다.
‘운이 좋으면 사홍이 놈처럼 천마신교에서 마군(魔君)이라 불리는 놈 중 하나를 잡아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사실 사홍이 놈의 경우가 다 된 밥이라 생각했는지 조심성이 없었던 거였다.
‘그쯤 되는 고위 간부를 이 시점에 쉽게 끌어내기는 쉽지 않지.’
하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뭐가 더 있다.’
최초에 심율에게 약을 건넨 녀석은 원작에서 마교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마뇌의 제자인 ‘낭중마군’이라 불리던 녀석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 녀석이 움직였고, 백도 무림의 요람 근처에 안가를 마련했다.
이런 일은 한 개 공작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 떠나서 정말 일개 대만 동원 됐다 쳐도 그 인원만 팔구십 명이야.’
명확하게 드러난 인원만 그 정도에 끄나풀까지 돌린다?
‘막말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갈 테니, 꿀단지나 보고를 위한 장부라도 어디 묻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하에 나는 언동생들과 함께 마인들의 시신을 검시하는 일과 주변 수색을 시작했는데.
“음?”
경혜 사태에게 썰려 나간 놈들은 내버려 두고, 노삼의 손에 절명한 놈들만 검시를 시작한 당옥기 앞에 옮겨주고 나니.
은하연이 보이지 않았다.
“은 소저는 어디 갔냐?”
“하연이? 하연이는 집안에 뭐가 있을 것 같다고 그리로 갔어.”
하기야.
돈이고 장부고 자주 꺼내 쓰는 것들은 집 안에 있는 게 맞긴 했다.
하여, 나도 안가로 걸음을 옮겼는데.
경혜 사태와 노삼의 싸움이 시작됐던 곳이라 안쪽이 엉망진창인 와중에, 은하연이 이쪽저쪽 벽을 두드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음. 보통 이런 데 숨겨진 공간을 만드는데? 이걸 여는 기관이 뭐지?”
그런 은하연을 향해 내가 입을 열었다.
“은 소저, 여기서 살 거요?”
“예? 아뇨?”
“근데 뭔 살 집을 고르듯이 두들겨보고 있소? 나와보시오.”
나는 그런 은하연을 향해 옆으로 비켜보라는 손짓을 한 뒤.
파천의 내력을 실은 발길질로 은하연이 두드리고 있던 벽을 있는 힘껏 까부쉈다.
쾅!!!!!!
그에 석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먼지와 함께 은하연의 말마따나 은밀한 공간이 나왔는데.
“!”
“!”
한 편에는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 하나 놓여 있었고.
맞은 편에는 여러 개의 나무 상자가 올려져 있는 선반 아래에 큰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상자와 항아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은하연의 걸음은 자연히 책장 쪽으로 향했는데.
“어, 이건 돈이나 물건이 드나드는 치부책인데요?”
오늘따라 그녀의 말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소?”
“예, 한번 살펴볼게요.”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반 아래 놓인 항아리에는 훼손이 거의 없는 통용 은자가 수북이 들어 있었고.
‘뭐가 이렇게 많아?’
다른 상자에는 각각 금원보와 은원보 그리고 지도 같은 것이 들어 있었으니까.
“언 공자, 여기 이거 뭔가 발견한 거 같은데요?”
“오, 그렇소?”
“예. 출납기록을 외부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엉뚱한 이름을 써놓은 것 같은데, 여기 보시면 화호(火虎)라고 되어 있는…. 언 공자?”
- 거, 하연이가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 좀 들어줘라!
‘다 듣고 있었습니다.’
- 침이나 닦거라!
쓰흡.
“…흠흠. 이쪽에는 공작금이 있군. 하여, 화오가 뭐가 어떻다는 거요?”
“화오가 아니라 화호요.”
- 다 듣고 있기는?!
“그래 화호. 화호라고 했소만?”
“…예. 아무튼, 제가 상단의 일을 볼 적에 강남의 암시장과 엮였던 일이 제 손을 거친 적이 있는데, 그때 화호라는 이름을 봤거든요? 이제 저 화호라는 글자를 반대되는 글자로 바꾸면….”
“화수용호(火水龍虎). 수룡(水龍)? 수룡방?”
수룡방이면 장강수로채로 묶이는 수적의 한곳이자, 흑도에서 가장 큰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사도련의 일원이었다.
“예, 맞아요! 물론 다른 화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좀 공교롭지 않나요?”
“확실히 공교롭기는 하군. 마교 놈들의 손이 거기까지 미친 건가?”
“이 화호가 수룡방이 맞다면, 알든 모르든 접촉한 것만은 사실이겠죠?”
그때였다.
은하연과 내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벽이 무너지며 난 굉음을 듣고 경혜 사태와 언동생들이 달려왔다.
“큰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인가요?”
“언 형?!”
그런 경혜 사태를 향해 나는 발견한 것들에 관해 고했다.
“이쪽은 마교 놈들이 사용하려던 공작금과 독약인 듯 보이고, 이쪽은 치부책인데 여기서 은 소저가 뭔가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 내 말에 경혜 사태는 고개를 주억이며 한마디 말씀을 하시더니.
“비밀공간엔 딱 치부책만 있었군요? 이런 시국에 은덩이라도 좀 있었으면 마방연에서 쓰게 하였을 텐데.”
“음? 아, 예.”
“치부책은 잘 챙기세요. 나머지는 학관에 돌아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리고 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가셨다.
그런 경혜 사태의 음성에 정현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선반에 공작금이 있는 게 보입니다만? 치부책만 있어서 아쉽다는 총장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런 정현의 모습에 은하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방연에서 알아서 하라는 말씀이네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면 마방연까지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뜯어 가니까요. 이런 시국에는 마방연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어.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답답아! 안 되니까 모르는 척하신 거잖아!!”
“옥기 누님, 참으십쇼. 그래서 용운 형님. 그럼 이제 치부책도 찾았으니 다 끝난 겁니까? 이것들만 챙겨서 기숙사로 가면 되는 거죠?”
“아니?”
“예?”
“너희 아까 산에 짐 풀어 놓고 왔잖아. 이제 그거 찾으러 가야지.”
* * *
안가가 있던 일대에 여러 조치를 해놓고 학관으로 돌아오자, 여러 일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획득한 치부책을 마방연에서 필사하여 분석을 시작해야 했고.
마교와 엮인 일이었기에 무림맹의 수뇌부에 은밀히 이 일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심율의 처우를 결정하는 일도 있었다.
“선배님은 무림맹으로 가게 되실 겁니다.”
“그런가?”
“예. 약왕 어르신께서 선배님을 살펴봐 주기로 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제안할 때, 협객이니 영웅이니 하는 말을 제가 했던 것 같은데, 마두급을 잡은 건 아니라서 그건 좀 어렵겠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닐세. 처음 자네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진심으로 했네만, 자네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보고 내 생각이 얼마나 알량했는지 알게 되었네.”
“…….”
“그리고 마교 놈들의 마수가 점점 커져 생도를 납치하는 계획이 실행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역용을 한 교수님들이셨지만요.”
“그렇지. 근데 내가 자네에게 발각이 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다른 생도들이 납치당했을 수도 있었잖나?”
“그건 그렇죠.”
“맹에 가서 따로 죄를 고할 생각이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자네에게 이 말은 꼭 해야겠네.”
“무슨 말씀을?”
“더 늦기 전에 나를 늪에서 건져줘서 고맙네.”
그렇게 심율을 무림맹으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쪽 일을 전서로 접한 무림맹주님이 부리나케 학관을 찾아오셨다.
“이제 괴룡이라 불린다지?”
“예. 뭐 그런 허명을 얻었습니다.”
“하, 그 광경을 봤어야 했는데. 사실 대면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산서에서 일어났던 사태의 마무리를 해야 했고, 이후에도 짬을 내려고 해도 맹의 대응 체계나 분타와 지타들의 태세를 챙기느라 바빠서 원. 이렇게 일이 터진 후에야 일 핑계로 와보는구만.”
“저도 맹주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한데 바쁘신 것 같아서, 저를 보러 오실 구실을 만들어 드리려고 이렇게 마교 놈들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하하하. 자네는 참 말을 잘해. 뭐, 그렇게 말해주니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조금 가시는구만.”
“그런 것으로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따로 다 적어 놓을 테니, 여유 있으실 때 베풀어 주시면 됩니다.”
“하하. 뭐, 그건 그러기로 하고. 그럼 잠시 무림맹주와 마방연의 실장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
“안가에서 나온 치부책에 관한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