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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188화 (188/444)

제188화. 실마리 (2)

대군사 제갈혜의 예측대로 인근에 다른 거점이 있고, 거기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확실히 마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밖에 없지.’

회수하려고 들거나, 우리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파괴를 하려고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군사님께서 놈들이 움직이는 시점을 인위적으로 당기기 위해서 일종의 허허실실의 계책을 쓰셨군.’

맹주 직속 타격대와 대군사부의 인력으론 어차피 인근을 완벽히 틀어막고 뒤지지는 못한다.

하니, 그냥 한편에 집중해 그편에서 발견되면 발견이 되는 거고.

잘못 짚었어도 반대편에서 마교 놈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계곡같이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목에 공손무결 같은 사람을 배치해두면 되는 거지.’

저쪽이 안 움직이면 그리 중요한 거점은 아니라는 것이니 천천히 찾아도 되는 거고.

뭐,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놈들이 움직였으니까.’

녀석들이 향하는 거점에 뭔가 있기는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나는 재빨리 불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피워 놓은 화톳불에 흙을 차 넣어 꺼버린 뒤.

끌러 두었던 회한을 허리에 차고, 공손무결의 청홍검은 주인에게 던져주었다.

휙.

그러자 탁! 하고 청홍검을 받아 든 공손무결이 입을 열었는데.

“가보세.”

그런 공손무결의 음성에 허리춤으로 돌아온 사부님께선 역정을 내오셨다.

- 가긴 어딜 가! 이 공손가 놈이?! 용운이 녀석에게 휴식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듯하여 좋게 봤더니만? 이래서야 말짱 꽝 아닌가?! 에이이잉!!

한데, 공손무결도 조금 찔리는 모양인지.

“…크흠. 정말 쉬자고 생각했네. 자네도 알다시피 대군사님이 앉아서 천 리를 보시는 분이라는 소리를 듣는 분이잖나?”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해왔다.

“하루쯤 쉰다는 생각으로 목만 지키고 있어 달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는데. 마교의 거점이 우리 쪽에 있을 줄이야.”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요?”

“그래? 한데 왜 귀가 간지러운지 모르겠군. 아무튼 가보도록 하세.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니 검은 뽑고 걸음은 조심조심.”

나와 공손무결은 차분히 경신술을 일으켜, 풀숲을 가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근데요, 사부님.’

- ?

‘제자가 삽질을 하고 있으면 좀 잡아주시질 않고요?’

- 안 잡아줬다고? 내가 그간 누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면서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그렇게 말하였거늘!

‘…아. 그러긴 하셨네요?’

- 그래! 네놈이 마방연의 일을 한다고 귓등으로도 안 들어 놓고는?! 그리고 그리 삽질도 아니었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방금의 순간이 너를 다녀간 것이니라!

‘아하.’

- …그 아하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울화가 치미는구나! 내 몸만 있었어도, 통한의 꿀밤을 먹여주었을 건데! 내 몸이 이러니 네 녀석 스스로 한 대 쥐어박거라!!

‘…잘 못 들었습니다?’

- ?

정신이 혼탁한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부님의 음성이 잘 안 들리지?

- 에라이!

* * *

그렇게 앞서 산을 달리는 마교 놈들의 걸음을 쫓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놈들도 이쪽의 수색법에 허허실실의 묘리가 담겨 있음을 모르고 들어 온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정말로 풀숲에 숨어있던 매복 인원이 공손무결과 나를 향해 살초를 펼쳐왔다.

“꼬리가 붙었습니다!”

“죽어라!!”

하나, 애초에 이럴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을 했고.

저쪽의 총원이 다해서 열둘 정도인지라.

매복 인원이 두 명뿐 이었다.

하여,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나와 공손무결은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각자 가까운 상대를 향해 검초를 펼쳤는데.

쌔애애애애액!!

촤악!

늘어지는 시간 속에 빙그르르 몸을 틀어 매복조 중 한 명을 양단하고 나니, 이미 공손무결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명의 매복조는 무리 없이 처리했다.

“발각된 것 같구만.”

“그러게요.”

하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사이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수풀에서 걸어 나왔으니까.

“본교의 대계를 망친 무지몽매한 불신자들이 얕은 술수를 부려 놓았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어서 아홉 명의 흑의인들이 여기저기에서 휙휙 튀어나왔는데.

“무림맹주가 친히 와 계실 줄은 몰랐는데?”

그런 녀석들을 향해 나는 비웃음을 돌려주었다.

“그것도 몰랐으면서 무지몽매하다는 소리를 지껄이냐? 사냥개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대가리 돌아가는 걸 보니 닭이네! 닭.”

“…….”

“시커먼 게 오골계냐? 됐고! 야! 너네 주인 어디 있어? 어차피 너희는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닭대가리들이잖아? 주인 데려와 주인!”

“너는 언용운인가 보군. 들은 대로 생긴 것과 다르게 입이 더럽구나.”

“응. 너희 속보다는 깨끗해.”

그러자 대장 격의 사내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됐다. 전원, 형제들의 원수를 갚는다. 무림맹주 공손무결의 몸에 흉한 생채기 하나라도 새겨주면 우리 육조의 승리다.”

그런 사내의 음성에 열 명의 흑의인이 둘과 여덟으로 나뉘더니.

나를 견제하기 위해 떨어져 나온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동시에 공손무결을 향해 검초를 펼쳐 들어갔다.

쌔애애애액!!!!

하나,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공손무결의 검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한테 오는 적만 잘 상대하고 있으면 돼.’

그렇게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짓쳐들어오는 흑의인 중 한 명의 검은 쳐내고.

챙!!

다른 놈의 어깻죽지에는 파천맹진의 초식을 찔러넣어 회한 모양의 구멍을 뚫어 줬는데.

사실 저놈들의 목표는 지껄인 말과 달리, 무림맹주가 아닌 나였던 모양이었다.

준동하지 않는 내 모습에.

오골계 소리를 들은 대장격이 못마땅하다는 소리를 내나 싶더니.

“쳇!”

공손무결에게 달려드는가 싶었던 흑의인 중 여섯 명이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심하게!”

그에 공손무결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새어 나왔지만.

나는 늘어지는 시간 속에 침착하게 윤영 숙부가 선물로 주신 용안목 팔지를 뜯어낸 뒤.

투둑-

마교 놈들의 얼굴을 향해 날려 보냈다.

탄지신통으로 대표되는 투척술을 제대로 익힌 것은 아니었고.

팔찌에 독 같은 것을 발라 놓은 것도 아니었다.

팅! 팅! 팅! 팅! 팅! 팅!

팅! 팅!

하여, 내 행동 자체는 살상력을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약간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어나라!”

그렇게 벌어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놈들이 우르르 나타나기 전에 저승으로 보낸 매복조에 시체 지배술을 걸 수 있었고.

크어어어!!

푹!

푸푹! 푹!!!

그 바람에 애꿎은 시체에 날붙이를 박아 넣은 흑의인들의 목에.

“!”

“!?”

회한을 휘둘러 낼 수 있었다.

촤아아악!!!!

그리고 그 틈을 타 쇄도한 공손무결의 검이 사방에 피로 이루어진 포말을 만들어 냈다.

촤악! 촤악!!!

촤아아악!!!

순식간.

그야말로 순식간에 열 명의 흑의인이 한 명만 남게 되었고.

남은 한 명도 우수를 잃은 상태라, 가만히 내버려 둬도 과다출혈로 명을 달리할 운명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주인님 모시고 오라고 했잖아. 진짜 닭대가리니?”

녀석은 내 비웃음에 답을 하는 대신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에, 나와 공손무결은 암기를 경계하며 검세를 가다듬었는데.

놈은 꺼내든 물건을 우그려 쇠공처럼 만들어 버리더니.

근처에 떨어져 있는 검을 들고 제 목덜미에 혈선을 그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그렇게 잠시간의 난리통이 끝났다.

공손무결은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그게 모산파의 노 선배들을 주화입마에 빠지게 했다는 복원된 자네 가문의 강시술인가 보구만? 아, 사령술이라고 해야 하나?”

“예? 아, 예.”

“직접 보니 그 노인네들이 충격을 받을 만도 하구만. 그건 그렇고 방금 자결한 사내가 우그러뜨린 게 내 눈에는 열쇠로 보였는데 맞나?”

“맞네요. 이거 열쇠 맞습니다.”

“…근처에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한번 찾아보도록 하세.”

그렇게 공손무결과 나는 인근의 지형을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형과 지물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위장해놓은 동굴이 있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열쇠 구멍이 달린 철문을 발견했다.

한데, 이 문이라는 게 평범한 철문이 아니라 한철을 덧대놓은 문이었다.

“흠. 이 문은 어떻게 열어야 잘 열었다고 소문이 날까? 요즘 한철 값이 비싸져서 힘으로 열긴 좀 그런데.”

“맹주님. 잠시만 나와 보시겠습니까?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알았네만. 자네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하지만 해볼 만했다.

내겐 혈조술이 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검지에 피를 내서 열쇠 구멍에 가져다 댄 뒤.

스으으윽-

구멍에 딱 맞는 모양의 혈약(血钥), 그러니까 피로 된 열쇠를 만들어 돌렸다.

철커덩-

그에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있을 리가. 있군? 뭘 어떻게 한 건가? 그냥 손가락을 대고 돌린 거 같았는데?”

공손무결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열쇠 구멍을 이리저리 보고 자기도 나처럼 손가락을 넣어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물음을 한마디 말로 일축했다.

“비전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는 각종 약재가 있었는데.

“시큼한게 이쪽은 독약이고, 이건 해약인가? 흠 이건 고독을 만드는 항아리 같고.”

“이쪽은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데 쓰는 약재들이네요.”

개중에 영약으로 분류되는 약재가 있었다.

“이 상자는 영초 같은데? 킁킁. 음? 이 병 몇 개는 담천약수이구만?”

“오, 정말이네요? 저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특유의 향이 기억납니다.”

“흠. 담천약수는 천축과 맞닿은 땅에서 나는 것인데, 수룡방도 그렇고 확실히 이 녀석들이 강남에서 뭔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아무튼, 이 상자는 자네가 갖게.”

“잘 먹겠습… 이 아니고. 주셔도 됩니까?”

그런 내 말에, 공손무결이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도 그렇고, 저번 일도 그렇고. 무림맹 차원에서 보탬이 되어주고 싶은데, 백본회에 그런 안건을 올려봐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치부하거나, 조그만 상이나 주려 하겠지. 그것도 장학금 같은 애매한 형태로 전달해서 정작 이번 일과 전혀 관계없는 생도가 수혜자가 될 가능성도 있고.”

그렇게 운을 뗀 공손무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도 되네. 대군사님이 탈 없이 처리해 주시겠지.”

그런 공손무결의 음성에 나는 상자를 덥석 들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본인이 알아서 하신다고 해놓고 대군사님한테 물 흐르듯 일을 미루시네.’

그러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콧방귀를 끼셨다.

- 지는?

‘제가 뭘요?’

- 말을 말자, 말을 말아.

* * *

언용운과 공손무결이 안가와 끄나풀들에게 각종 약재를 공급하던 창고를 찾아낸 시점으로부터 며칠 뒤.

호북의 남단에 열린 시장에서 호객을 하고 있던 강호낭중에게 장돌뱅이치고 눈가에 귀기가 어린 사내가 다가와 속삭임을 건넸다.

“…명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런 사내의 음성에 강호낭중은 펼쳐놓은 돗자리와 의(醫)자가 적힌 깃대를 챙겨 들고 입을 열었는데.

“그래요? 그런 환자가 있으면 내가 직접 가봐야지. 어디요? 앞장을 서시오!”

그런 강호낭중의 어조는 곁에 붙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뀌어 나왔다.

“그래. 어떻게 됐다고?”

그런 강호낭중의 음성에 장돌뱅이는 방금 전한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늘어놓았다.

“살아남은 육조가 인근을 수색하던 무림맹주 그리고 언용운과 마주쳐 마영대 전멸. 안가와 약재창고가 노출됐고, 물자가 놈들에게 들어갔습니다.”

하나, 강호낭중의 얼굴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언용운. 이 이름이 자꾸만 끼어 들어온단 말이지? 그 녀석의 솜씨인지 대군사라는 여자의 솜씨인지 몰라도 아무튼 제법 하는구만. 뭐, 기왕에 안가가 털렸으면 화끈하게 거기까지 내주는 게 맞지. 그래야 놈들이 안심하고 등잔 밑을 소홀히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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