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실마리 (5)
호원단철장 수색 작전의 조는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잠입조와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 근처에서 잠복하는 대기조.’
물론 잠입조는 나 혼자였다.
언동생들이 내 밑에서 구르고 있긴 했지만.
‘사실 소릉이 녀석을 제외하고 모두 명문가의 자제거나 명문의 진산제자 출신이니까.’
잠입조에 넣어 봤자 짐만 될 뿐이었다.
그나마 소릉이 녀석이 몰래 숨어드는 것에 일가견이 있긴 했지만, 녀석도 ‘몰래’ 숨어드는 것에 일가견이 있을 뿐.
어디 섞여 들어가는 것에는 젬병이었다.
‘원체 간도 작은 데다, 산서에서 막내 외숙을 쫓을 때 간단한 연기를 시켜봤는데 진짜 발연기도 그런 발연기가 없었지.’
하여, 잠입조는 나 혼자였고.
대기조는 경혜 사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작전을 중단하라는 신신당부를 하며 꽂은 노삼 교수님.
걸음이 빨라 유사시에 학관과 연락이 가능한 우소릉.
그리고 그런 상황에 무력 지원이 가능한 정현과 남궁윤 이렇게 넷이었다.
“그러니까, 네 이름이….”
“…용구입니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
우리 네 사람은 다시 한번 상황에 대해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한데, 원체 이런 일이 없기 때문인지 다들 묘하게 신이 난 기색이었다.
특히 노삼은 내 꼴과 이름을 듣자마자 배를 잡고 웃었다.
“용궄우흐흐흨! 괴룡 언용운이라 하면 개방이랑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용구가 되니 이렇게 친근할 수가 없구나?!”
“…….”
“이렇게 된 거 용구라는 이름으로 개방에 적을 올리거라! 그럼 보급품으로 바가지도 하나 나올 것이다!”
정현은 그런 노삼을 향해 언제나처럼 입바른 소리를 말했다.
“교수님. 언 소협은 대계를 위해 위험과 번거로움을 자처했는데 어찌 그리 놀리십니까? 그것은 도가 아닙니닿.”
한데, 어째선지 묘하게 빙글거리는 느낌이 있었고.
- 끌끌끌. 다 네 업보니라.
사부님도 웃으셨으며.
이 와중에 남궁윤이 내게 말을 붙이려 했으나.
“용구….”
“궁윤아. 뒤진다 진짜.”
내가 이를 빠득 갈자 남궁윤은 바로 입을 다물었는데.
노삼과 조우하기 전부터 웃고 있던 소릉이 녀석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킥킥거렸다.
“으흨. 으흐흨.”
그에 내 입꼬리가 절로 찌그러지며 귀에 걸렸다.
“소릉아, 많이 재밌나봐?”
“죄송, 죄송해요 언 형. 아니지, 임 형이라고 해야할까욬? 그런데 정말 웃음이 안 멈춰서….”
“아냐, 우리 소릉이가 웃으니까 형도 기분이 좋다. 근데 ‘정말’ 안 멈춘다는 말에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네? 잠깐 이리 와볼래? 내가 딱 멈추게 해줄게.”
“…딸꾹.”
아무튼.
그렇게 나와 네 명의 대기조는 걸음을 옮겼다.
‘원홍이라는 자가 운영하는 업장은 두 곳.’
학관의 무기점 골목에 위치한 상점과 그 상점에 공급할 무기를 벼려내는 단철장.
두 곳 모두 내걸린 현판은 ‘호원단철’이었지만.
내가 잠입하려는 곳은 후자, 그러니까 무기를 벼려내는 현장이었다.
그런 단철장은 대게 근본이 되는 땔감과 철이 나는 곳을 끼고 있어야 했다.
“저긴가 보네.”
하여, 호원단철 또한 학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한수(漢水)의 지류(支流)와 야산을 끼고 있었는데.
“자자, 이쪽과 저쪽 각각 한 분씩 오셔서 이름을 말하고 들어가야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현장을 보고 사부님께서 감탄을 해오셨다.
- 대장간이 생각보다 커 보이는구나? 저 앞에 늘어선 게 다 너 같은 외부 일꾼들 아니냐?
‘엥? 이런 대장간을 처음 보십니까?’
- 내가 대장간에 걸음을 할 일이 뭐가 있느냐?
‘아무리 사부님이셔도 검 날이 상하는 일이 있긴 하셨을 텐데요?’
- 그러기 전에 웬 놈들이 꼭 시비를 걸어와서 제 검을 선물해주고 가던데?
‘…아. 음. 정무학관 앞에 상점을 차린 대장간들은 다 이런 단철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북은 천하의 배꼽과도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무학관의 생도들이 사용하는 무구’라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의 명품과도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황군이 사용하는 병장기를 대는 북직예의 관영 대장간을 제외하면, 막간산(莫干山)에 위치한 장인집단 정도 말고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 곳이거든요.’
뭐, 사부님과의 대화는 여기까지.
너무 늦장을 부리면 일꾼 모집이 끝날 수도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 조심하거라. 알아서 잘하겠지만.
‘예.’
나는 우선 회한을 끌러 정현에게 맡겼다.
“정현. 네가 가지고 있어.”
“…그리하겠습니다!”
“…….”
“남궁윤 너는 왜 남의 칼을 그러고 봐?”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무리하지 말거라.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오고.”
“조심하세요 언형!”
타인의 약력을 기억하는 데 쓰기에 최고의 곡조인 ‘독도는 우리땅’의 곡조를 흥얼거리며 일꾼들의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임용구. 당양현. 스물다섯 무 혼인, 이웃 사는 정팔이 걔는 내 사촌….’
* * *
‘저게 고로(高爐)가 있는 곳이고. 저쪽은 연마장, 이쪽은 흙을 나르는 것을 보니 사철(沙鐵)을 분류하는 곳인가 보네.’
그렇게 대장간에 들어온 나는 각 건물의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한 뒤.
“자자, 일꾼으로 오신 분들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우선 말단 대장장이의 통제에 얌전히 따랐다.
‘우선 일꾼의 눈으로 봐야겠어.’
무언가를 숨길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마교 놈들도 그 기본을 모르지 않을 텐데?’
죽산 일대에서 발견한 안가나 약재창고도 그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한데, 이 대장간은 외부 일꾼을 받고 있었다.
‘일하러 왔다가 실종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인근의 백성들로 실험 같은 것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
일단은 여기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나는 일꾼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자, 안쪽에서 일꾼들이 흙을 이리로 옮겨 올 겁니다. 그럼 여러분은 흙을 저쪽의 둔덕에 쌓으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정해진 위치를 함부로 이탈하지 마십시다! 대장간의 일이라는 게 결국 기술이라 비법 유출에는 선배 야장님들이 용서가 없으시니, 서로 간에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말자고요!”
“예이!”
그렇게 일꾼들의 틈바구니에 스며든 나는 주어진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림인들은 무기값이 올랐다고 난리라던데, 우리는 좋아. 일감이 끊이지 않으니까. 특히 호원단철은 일도 편하고.”
음?
호원단철의 일이 특히 편해?
“그러게 말이야. 딱 일 년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좋겠구만, 그러면 두둑한 은자를 챙겨서 떠난 지 십 년도 더 된 내 고향 당양땅으로 금위환향 할 수 있을 텐데!”
“금의환향 아냐?”
“금위일걸? 금의위 그러니까 황군처럼 멋지게 돌아간다고?”
“비단옷 아니고?”
“에잇! 뭔 상관이야 돈 푼 좀 벌어 고향에 갔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다 나를 좀 더 일꾼들의 틈바구니에 섞이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당양현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소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본디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떠나온 지 십몇 년이 지나면 정작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인연들이 다 끊겨 있기 마련이었다.
“혹시 임정팔이라는 사람을 모르십니까? 저희 사촌형님 되시는데.”
“…어. 가만 있자. 정팔이, 임정팔이.”
그런 사람을 향해.
스스럼없이 내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듯 말을 꺼낸 뒤.
“…모르시면 어떻습니까? 당양현이 코딱지만 한 곳도 아니고, 저희 임가가 다복해서 원체 사람이 많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렇게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임용구입니다. 그냥 용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먼저 허리를 구십 도로 접어 보이면?
“허허허! 그럴까? 나는 왕오라 하네.”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그냥 잡일꾼에서 깍듯이 따르는 동생이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데 마다할 사람이 없지.’
이런 식으로 형님 동생 소리를 터버리면 왕오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내 보증인이 되어준다.
“여기는 용구라고. 내 고향 동생이야.”
“오호. 이 친구가 고향에서 그렇게 날고 기었다던데 정말인가?”
“어휴. 두말하면 잔소리죠.”
“하하하!”
그렇게 나는 처음 온 일꾼 무리가 아닌 이 대장간에서 일을 시작한 지 제법 된 무리로 단박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물으려던 질문을 던졌다.
“한데, 형님들 제가 임노동을 한지 얼마 안 돼서요. 특히나 단철장 일은 처음인데, 아까 형님들 중에 어떤 분이 여기 일이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편한 겁니까?”
그런 내 물음에 잡일꾼들은 저마다 으스대며 입을 열었는데.
“편하지. 대장간 일이라는 게 원래 무거운 쇳가루도 옮겨야 하고, 고로에 땔감 집어넣는 일이랑 이것저것 힘든 일을 시키거든. 근데 여기는 흙만 딱 옮기면 돼.”
“흙 옮기는 것도 다른 대장간은 강에 가서 흙을 푸는 일이랑 거기서 사철을 걸러내는 일도 시키거든. 종일 물살을 헤치면서 흙을 푸다 보면 사흘치 일을 하루에 한 기분이 든다고.”
“맞아, 그래서 골병든다고 다들 기피 하는 곳이지. 근데 여기는 사철 채취 과정은 새로 대야장이 된 양반의 처가 쪽 사람들이 알아서 다해줘.”
그러던 중에 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말이 나왔다.
“처가 쪽 사람이요?”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렇다고 알고 있어. 아무튼 그쪽 식구들이 그 일은 알아서 다 해주고, 딱 걸러진 흙만 치우라 하니 누워서 떡 먹기도 이런 떡 먹기가 없지.”
“거기다 임금도 딱딱 주고!”
“그래 그게 핵심이지 그 뭐냐? 저 아래 있는 십언단철만 해도 몇 달씩 미뤘다가 주기 일쑤라고.”
“그래. 그래서 다른 녀석들한테 소문날까 봐 우리끼리 쉬쉬하는 건데. 왕오 고향 동생이라니까 알려주는 거야.”
“크으! 형님들밖에 없습니다. 저도 입에 자물통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젊은 친구가 여간 싹싹한 게 아니구만. 우리 오래 보자고!”
* * *
그렇게 일꾼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낸 나는 점심시간을 틈타.
“형님들 저는 소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일꾼들의 무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들은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맞추며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부인이 들락날락하는데도 정보가 안 새는 이유가 있었어.’
일단 대장간의 거의 모든 부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다른 대장간도 당연히 하는 일이고.’
내가 최초에 이상하게 여긴 무기값을 저렴하게 받는 것은 기실 대야장의 재량이니, 상재를 타고난 대야장이 있다면 떠올릴 법한 일이었고.
기술 유출을 막고자 일꾼들을 엄히 통제하는 일은 당연했다.
호북의 제철은 철광석이 아니라 채취한 토사에서 사철을 걸러내 만드니, 흙을 옮기는 일도 다른 대장간에서 하는 일이었다.
‘근데 그 모든 게 더해지니 더없이 수상해.’
특히나 이놈의 흙.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데, 원홍의 처가가 알아서 해준다는 흙.
‘가격이 경쟁력이 있으니 장사가 제법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과하게 많은 흙이 나오고 있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흙이 나오는 출처를 향해 은밀히 몸을 옮겼다.
‘경계를 서는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건물 배치가 저쪽으로 향하려는 사람이 야장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게 돼 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여름을 나기 위해 곳곳에 차광막이 처져 있었다.
그 덕에 생성된 응달은 내가 암흑동화를 시전할 수 있게 도왔고.
사악-
공손무결과의 야유 때 나름대로 일보를 내디딘 성취는 내 걸음을 더욱더 가볍고 은밀하게 만들어 주었다.
팟.
파팟.
덕분에 예민해진 기감은 내가 튀는 불꽃과 두드리는 망치 소리까지 이용할 수 있게 도왔다.
깡! 깡! 깡! 깡!
팟!
‘지금!’
그렇게 나는 흙이 실린 수레가 나오는 곳을 향해 접근했는데.
당도한 종착지엔 천으로 된 막이 삥 둘려 있는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막 안에는 땅굴이 있었다.
‘허. 이 새끼들이 등잔 밑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학관 밑으로 통하는 굴을 파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