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위험하다 (1)
땅굴 입구를 확인한 나는 일단 빠르게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짧은 생각에 들어갔다.
‘…사부님도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들어가 볼 수밖에 없겠는데?’
이건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학관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더 위험했다.
‘저 안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면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으니까.’
당장에 내가 학관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이끌고 온다 쳤을 때.
만에 하나 땅굴이 다 뚫린 상태라면 되려 우리 쪽의 병력을 밖으로 빼는 꼴이 될 터였고.
그렇다고 안에서 대비를 하자니 마교의 두더지들이 어디로 나올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얼마나 뚫었는지, 동시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래서 출구가 몇 개이며 어디로 통하는지. 이걸 모르면 막을 수가 없어.’
자칫 잘못 대처를 했다간?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학관이 보유한 자료들은 물론 당옥기의 개인 연구실과 여타 연구실들이 모두 잿더미가 될 수 있었다.
‘…사부님이 조심하라는 말 뒤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다셨으니. 알아서 잘하면 되겠지.’
사부님.
제가 이렇게 사부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수레를 사용해 흙을 퍼다 나르는 일꾼들을 가늠해 보았는데.
내 눈에 뜨인 일꾼들은 하나같이 보폭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건 품고 있는 내력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증거였다.
‘하기야 고수 반열에 든 자들에게 흙을 나르는 단순한 일을 시킬 리는 만무하지.’
그리고 행동거지가 좀 난잡했다.
“퉤퉤퉤! 고수가 되기도 전에 흙이 몸속에 가득 차서 뒈지겠네!”
마교에 몸과 마음을 바친 자들이 풍기는 특유의 날이 선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에라이! 염병할!!”
그런 단서들을 통해 나는 일꾼들의 출신을 엿볼 수 있었다.
‘마교의 꼬임에 넘어간 흑도인인가?’
얼마 전 마교 놈들의 안가에서 알게 된 놈들과 수룡방과의 결탁 정황도 있었고, 또 비슷한 예를 산서의 산적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했다.
뭐, 아무튼.
나로서는 이래저래 잘된 일이었다.
삼류 무사 정도야, 눈 깜짝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빡!!!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축 늘어지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읏차….”
나는 졸개 놈을 내가 숨어있던 사각지대로 옮긴 후, 아혈을 비롯한 각종 혈을 짚은 뒤.
쉬이 찾을 수 없도록 숨겼다.
이제 남은 일은 재빨리 놈의 것으로 의복을 바꿔 입는 일이었다.
‘…어휴. 이거 소금 낀 것 봐라.’
무림맹주님이 됐든 총장님이 됐든 진심 할증 쳐줘야 한다 진짜.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왕년에 썩어가는 시체들과 동고동락도 했던 나인지라 어려울 것은 없었다.
‘오히려 위장하기에는 좋지.’
나는 바쁘게 상의와 하의를 갈아입은 후, 삼각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는 가리개를 썼다.
그리고 사각지대에서 나와, 졸개 놈이 끌던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
척.
그렇게 나는 막사의 천을 젖히고 땅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땅굴 안의 분위기에 녹아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흐트러진 보폭을 보이며, 주변 이들을 따라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수레를 끌고 가는 다른 놈이 인사를 건네면, 그저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주면 될 뿐이었다.
“수고하라고.”
“수고해.”
그런 연기력에 사이사이 놓인 횃불 외엔 광원이 없는 어두운 환경이 더해진 상황인지라, 당장에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어둠이 눈에 익은 뒤.
안력을 돋우자, 세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좁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폭이 넓어. 입구 근처는 열댓 명, 지금은 대여섯 사람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겠는데?’
인원을 어느 정도 동원할 수 있고, 어떤 목적으로 쓸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이.
‘지지대로 삼은 것은 목재인가?’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내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했다.
지하라 정확한 방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걸음 수로 대략적인 거리는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학관 근처에 다다랐을 거리인데. 거기다 여러 인원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정도의 폭?’
이 땅굴의 목적은 역시 명확했다.
학관 습격.
‘심지어 거의 완성이 됐….’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음?’
이 갈림길엔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수레바퀴 자국이 좌측에 훨씬 진하고 많이 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토대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창 작업 중인 곳이 좌측이라는 거고, 우측은 이미 완공이 되었다는 건가? 거의 완성된 게 아니라?’
가보고 싶은 곳은 우측이었지만, 나는 그 생각을 깔끔히 포기했다.
이 시점부터는 홀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꾼들은 이류나 삼류 흑도 놈들이지만, 어딘가에 마교의 주전력도 분명히 있을 터.
‘있다면 완공된 우측에 최소한 몇이 주둔을 하고 있겠지.’
괜히 여기서 무리를 했다가는 되려 일을 그르칠 수가 있었다.
‘사정은 충분히 파악했다.’
그런 생각에 나는 좌측길을 택했고.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흙더미 앞에 삽을 들고 선 졸개 놈들이 나를 향해 목청을 높여왔다.
“이봐! 빨리빨리 오라고!”
“간다! 가!”
나를 부른 이는 동료 몇과 함께 삽을 들고 흙을 푸고 있었는데.
일이 고되어 그런지 몰라도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아 보였다.
“썅. 진짜 못 해 먹겠네.”
“그러니까. 덥고 탁해서 돌아가시겠어.”
내게 의복을 기증한 녀석도 그랬지만, 저런 푸념이 이곳의 일상인 모양이었다.
삽을 든 놈들은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흙을 퍼서 수레에 담으며 계속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일을 시키려면 영약부터 주고 시키던지.”
“그래도 그 영약이 효과는 확실하더라! 싸움만 나면 뒤에서 떨기나 하던 X밥 새끼가 하루아침에 고수가 되더라니까?! 좀만 참으면….”
“이미 참고 있잖아! 후! 그러고 보니 이게 다 내가 살았던 고향 마을 놈들 때문이야! 고수가 되면, 고작 물건 좀 훔쳤다고 나를 마을에서 쫓아내 흑도 바닥으로 들어서게 만든 마을 놈들을 모조리 도륙을 내버리려니까!”
“크헤헤! 그날이 오면 내가 도와주마! 이래 봬도 내가 하류박이 일감을 나눠주던 시절에 사람깨나 잡은 사람이야!”
…애초에 물건을 안 훔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흑도 놈들이라 그런지, 일반인들과 생각하는 궤 자체가 다른 모양이었다.
주변의 놈들도 도와주겠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게 다 비슷한 부류였다.
하긴, 그런 놈들이니까 마교의 꾐에 넘어가는 거겠지만.
‘이젠 더 듣기도 싫네.’
그런 대화가 한창 이어지지는 사이, 마침내 내 수레에 흙이 가득 찼다.
나는 이만 갱도 밖으로 나가고자 걸음을 돌렸다.
탁! 탁! 탁! 탁! 탁!
그런데 이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의로 싸맨 사내가 표표한 신법으로 나타나더니.
‘뭐지?’
근처에 매달려 있는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댕! 댕! 댕! 댕!
그 신호에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있는 것인지, 흙을 푸던 자들은 일제히 그 신호에 멈춰 섰고.
안쪽에서 흙을 파내고 있던 기술자들도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무슨 일이지? 근데 외길이라 지금 몸을 뺄 수는 없겠는데. ’
하여, 나도 어쩔 수 없이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에 섞여 들어가 섰는데.
그렇게 일꾼들이 모여서자, 흑의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 시찰을 나오셨다. 예비 교인들은 조속히 예를 갖출 준비를 해라.”
마교에서 공자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을 텐데?
‘어쩌면….’
그런 생각이 내 뇌리에 스치는 찰나, 저편에서부터 자박거리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먼저 와서 갱도 안의 일꾼들을 불러 모은 흑의인이 단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 납신다. 교인들과 예비 교인들은 부복하라.”
그 소리에 곧 주위의 있는 이들이 모두 부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따라 했다.
‘부복쯤이야.’
마교 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으면 이딴 것쯤이야 백 번도 할 수 있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부복을 하고 있는지 얼마쯤 되었을까?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발걸음이 지척까지 다가서나 싶더니.
나긋한 음성이 갱도에 울렸다.
“아이고…. 왜 이러고들 계십니까? 이런, 안 그래도 고생하시는 분들인데.”
그 목소리와 뱉는 말만 두고 보면 감히 사특한 자라 단정하기 힘들어 보였고.
예비 교인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어쨌거나 말단 중에 말단인 흑도 놈들에게까지 존댓말을 하는 것은, 가히 학관에 적을 둔 생도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의 바름이었다.
“이분들이 얼마나 귀중한 자원인데, 얼른 일어들 나세요. 얼른.”
그렇게 마교의 공자님 되시는 녀석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놈의 행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눈앞의 사내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낭중마군 송길준.’
원작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했던 마인이었다.
* * *
송길준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놈이 입고 있던 인상착의가, 원작에 표현되었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실눈의 미남자, 행색은 항상 남루하게 하고 다니고, 사람을 접할 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웃는 얼굴로 서글서글한 태도를 보인다. 저건 누가 봐도 송길준이지.’
저놈을 송길준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무엇보다도 의복이었다.
마교의 젊은 마두들은 호사스러운 의복과 장신구를 좋아했다.
강한 힘과 왕처럼 떠받들어지는 환경에 취해 자연히 성정이 오만해지다 보니.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런 성격이 표출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의복이나 장신구인 거지.’
한데 송길준은 떨어진 가죽신에 누더기를 걸치고 떠돌이 의원의 행색을 하고 다녔다.
그저 더 강한 힘과 더 높은 지위를 바라는 다른 마인들과 달리, 놈은 진정한 마도천하를 원하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마신교에 대한 믿음 자체가 남다른 놈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더 또라이 같은 건가?
아무튼 심율 선배가 웬 강호낭중에게 코가 꿰였다길래, 혹시 뒤에 이 새끼가 있는 것인가 싶었는데.
‘정말로 있었네.’
놈은 백도무림으로 치면 대군사라 할 수 있는 마뇌(魔腦)의 제자였다.
그리고 횟수만 따지면 원작 기준으론 주인공 세대를 가장 많이 곤경에 빠지게 한 놈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난 원작에서 전천후로 암약하는 거물을 만난 셈이었다.
‘이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렵겠군.’
본신의 무력도 나와 엇비슷할 테지만, 이 정도 급의 인물이 단신으로 다닐 리가 없었다.
‘사홍이 놈이 달고 다녔던 경 노야 같은 자가 있겠지.’
분명 호위로 제법 급이 높은 이를 붙이고 왔을 게 분명했고.
그게 아니어도 놈들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니,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퇴로도 지금으로선 마땅치 않고.’
내게도 지원군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마저도 일단 갱도를 벗어나야 부르든 말든 할 수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그런저런 생각이 스치는 이때.
송길준은 안쪽에서 흙을 파다 나온 자 중 가장 경륜이 높아 보이는 자를 지목하며 입을 열었다.
“굴착조장님 맞으시죠?”
“예. 그렇습니다.”
“오면서 봤는데, 생각보다 이쪽 길이 좀 돌아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유가 있는지요?”
“역시 공자님은 척 보시면 아시는군요. 너무 큰 암반이 있어서 그걸 깼다간 자칫 지상에서 눈치챌 수도 있기에 부득이 그리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보아하니 이 갱도에 직접 발을 디딘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놈은 뛰어난 눈썰미로 금세 현장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기야 마뇌의 제자 자리를 노름으로 딴 것은 아닐 테지.’
놈은 딱히 긴 설명을 듣지 않고도 이곳에 무엇이 필요한지 바로 이해하는 듯했다.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는 만큼 암석을 녹이는 독과 피독주를 사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준비를 해드리지요.”
“예. 예.”
“다들 잘하고 계시는데 다만 일정이 조금 빠듯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굴착조와 대화를 나눈 송길준은 이번에는 흙을 나르는 일을 하던 흑도 출신 졸개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런 곳에서 작업하신다고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따로 불편한 것은 없으신지요?”
“…예? 제가 감히 어찌.”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함입니다. 가감 없이 말해 보시지요. 다들 편하게 앉으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기 앉도록 하지요.”
“…그렇다면.”
그는 웃는 낯으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개중에는 마두 놈에게 저런 소리를 해도 괜찮을까 싶은 투정 섞인 불만도 있었다.
“소금을 잔뜩 친 밥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만날 그것만 먹으니까 미각이 사라질 지경입니다.”
그는 그것에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되려 그들을 격려하는 듯한 태도를 취할 뿐이었다.
“저런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좋은 술 몇 동이와 돼지를 잡아 왔습니다. 단철장에 부탁해 질 좋은 장비도 마련했고요. 혹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흑도놈 들도 거듭된 송길준의 호의에 녀석이 만만하다 생각을 했는 지.
조금씩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내 수레에 흙을 담으며 고수가 되면 누구를 도륙 내고 어쩌고 하던 이야기를 하던 흑도 놈이 영약에 관해 말한 것은 그때쯤이었다.
“이보시오, 공자님. 근데 주기로 한 영약은 언제 주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