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93화 (193/444)

제193화. 위험하다 (2)

맡겨 놓은 듯 영약을 내놓으라는 흑도 놈의 말.

“음, 영약이요?”

“거, 아까 힘내 달라 하시던데, 애초에 영약부터 줬으면 우리가 힘을 내지 않았겠소?”

어조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송길준쯤 되는 마두(魔頭)가 듣기에는 상당히 거북한 말이었다.

하나 놈은 그런 질문조차도 사람 좋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하. 확실히 그렇기는 했겠습니다.”

한데, 흑도 놈은 그 모습이 탐탁지 않았는지 언성을 높이고 나섰다.

“그렇기는 했겠습니다가 아니지요! 애초에 영약도 주고 또 고수로 만들어 주겠다 해서 하던 수적질을 관두고 입교를 한 것인데! 그건 뒷전으로 미루고 맨날천날 흙이나 옮기고 있으니 원!”

그에 송길준의 곁에선 흑의인이 이를 빠득 갈며 한 걸음을 나서려 했으나.

“이 작자들이….”

송길준이 손을 뻗어 그것을 말렸다.

한데, 그런 행동이 더욱 더 얕잡아 보이는 빌미를 제공한 것인지.

다른 흑도 놈들도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맞소! 순서가 거꾸로요!”

“옳소!”

그에 송길준은 가장 먼저 입을 연 흑도 놈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싱긋 웃었다.

“음. 하하.”

언뜻 보기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놈의 진면목을 아는 내겐 초승달처럼 접힌 눈이 제법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렇군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언성을 높였던 흑도 놈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동조하는 주변 사람들 덕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보무도 당당하게 송길준의 앞에 와 앉았다.

“흥, 자세한 이야기는 무슨. 그냥 주기로 약속한 것을 달라는 건데.”

“일에 순서가 있어 그리한 것일 뿐. 분명히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수로 거듭나는 것이 본교의 앞날에도 이득이니까요.”

“앞날이고 나중이고 그런 말만 반복되니 문제인 거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말만 할 셈인지, 원.”

흑도의 말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마군’이라 불리는 마교의 공자이지, 떠돌이 약장수 같은 게 아니었다.

하나 송길준은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그 말을 모두 받아주었다.

앞으로 나선 흑도 놈이 역린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시겠지만 작업이 끝물입니다.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약속한 대로 지급이 될….”

“그런 말은 그쯤 하시오. 이래서는 천마신교도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우는 별것 없는 곳이구나 생각하지 않겠소? 그리고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오.”

“…….”

“마도 천하가 올 것이니 어쩌니, 해서 믿고 들어왔더니, 이건….”

흑도 놈은 자신의 말을 끝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송길준이 어느새 소매 춤에서 뽑아 든 단검으로 흑도 놈의 손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놈은 얼굴에 튀긴 피도 닦지 않은 채, 웃는 낯으로 계속해 말을 뱉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은 저를 잘 모르겠군요.”

물론, 말만 뱉은 것은 아니었다.

놈은 한마디 말을 뱉어낼 때마다 앞에 앉은 흑도의 손을 다시 한번 찍었다.

푹.

“끄아아아악!”

“제가 싫어하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푹.

“하나는 제 말을 중간에 자르는 것이고.”

“끄아아아!”

푹.

“다른 하나는 그런 자가 이처럼 악다구니를 쓰는 것입니다.”

“크, 크흐흑….”

푹.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마지막은, 본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을 뱉은 송길준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흑도 놈을 걷어찼다.

퍽!!

널브러진 흑도 놈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하나, 지금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걸 본능으로 느꼈는지 소리 없이 몸만 뒤틀었다.

“흡. 흐흑….”

송길준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는데.

“근데 이분께서 말씀하기를,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하니…. 저로서는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때로는 말을 이어내는 것보다 듣는 이가 알아서 상상하게 하는 것이 더한 공포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가, 굴착조장님이 길을 예정보다 돌아서 냈기 때문만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에 주위의 흑도들이 하나같이 겁에 질렸는데.

그러자 송길준의 눈이, 다시 한번 호선을 그렸다.

“아무래도 다들 갱도 밖으로 좀 따라 나오셔야겠습니다.”

* * *

송길준의 진면목을 확인한 흑도 놈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갱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왜 따라 나오라고 하는 걸까?”

“난들 알아? 멍청한 놈들이 왜 공자님의 성질을 긁어서.”

“지도 오늘 아침만 해도 개 같다고 불평해 놓고는?”

반기를 들 듯 웅성거리던 때가 언제냐는 듯한 태세 전환이었는데.

나로서는 이래저래 잘된 일이었다.

‘송길준의 눈썰미가 예사는 아니더란 말이지.’

놈은 슬쩍 본 것만으로도 갱도 안의 사정을 파악했었다.

‘어쩌면 정체가 들통났을 수도 있었어.’

공을 들인 역용에 갱도 안이라는 환경, 그리고 내 연기력이 더해지며 그 순간에 꼬리가 밟히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내게 집중이 되었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몰라.’

근데 흑도 놈들이 어그로를 대차게 끌어준 덕분에 그 순간을 넘겼다.

‘이렇게 우르르 밖으로 나가게 된 상황도 반길 일이지.’

호원단철에서 몸을 빼려면 우선 갱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송길준의 눈썰미를 제쳐 놓더라도, 놈의 등장으로 일대의 경계가 강화됐을 것이다.

한데, 이렇게 떼를 지어 나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탁 트인 곳으로 나가서 어떻게든 몸을 빼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흑도인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갱도 밖으로 걸어 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쨍-

어둑한 갱도에서 나와 갑자기 마주한 태양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는데.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이 혀를 차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쯧. 낭중, 자네는 너무 세상을 열심히 살아. 내사 영감들이 어련히 알아서 안 챙길까? 굳이 땀내 나는 곳에 왜 기어들어 가는지 나는 이해를 못 하겠네.”

송길준에게 저렇게 격 없이 반말을 하는 자가 있다고?

나는 햇빛에 적응한 눈동자를 살짝 굴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면을 주시했다.

그곳엔 거의 소천이 형만 한 덩치의 사내가 두 자루 도끼를 베개 삼아 누워있었다.

‘저 덩치에 도끼, 낭중마군을 대하는 태도, 입고 있는 의복의 소매 춤에 새겨진 화려한 소용돌이 문양. 저놈은… 혹시 흑선마군 만우인가?’

문득 머릿속에 든 추측이었지만, 나는 가능하면 그 추측이 맞지 않길 바랐다.

‘맞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은 것일 테니까.’

하나,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만 보면 낭중 자네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도 다 헛소리 아냐?”

“하하하. 만 형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아둔해서 몸이 고생하는 편이지요. 사부님께도 혼이 많이 납니다.”

송길준의 입에서 ‘만 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럼 만우가 맞다는 건데, 이거 일 났군.’

또다시 늘어난 변수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저 두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은….’

마교가 마군급 인사 둘을 동원해 공격을 시도한다는 것이었고.

그건 놈들의 공격 규모를 최소한 두 배 이상으로 잡아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몸을 빼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기도 하지.’

두 명의 마군이라면 휘하에 상당수의 전력을 끌고 왔을 것이다.

지금 대놓고 도망을 쳤다간, 단철장을 무사히 빠져나가기가 어려워 보였다.

‘여차하면 그 희박한 가능성을 좇아봐야겠지만, 일단은 흑도 놈들 속에 섞여 틈을 좀 봐야겠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마인의 대화는 계속해 이어졌다.

“그런데, 뭘 그렇게 많이 달고 나왔어?”

“아, 입교 예정인 교우들의 본교를 향한 신뢰가 조금 부족하신 것 같아서요.”

“뭐라?”

한데, 송길준의 마지막 말에.

팔자 좋게 누워서 다리를 까딱이고 있던 흑선마군 만우가 미간을 좁히며 몸을 일으키더니.

“신뢰가 부족해? 낭중 자네는 말을 좀 돌려서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내 곧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바꿔 말하면 감히 본교를 얕잡아 봤다는 건가?!”

문답무용으로 땅을 박차 이쪽으로 치달았다.

“너지?”

“!”

그리고 송길준에게 단검으로 손을 찍혔던 흑도 놈을 도끼로 단숨에 갈라버렸다.

촤악!!!!!

그런 만우의 행동에.

피를 뒤집어쓴 흑도인들이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나 대놓고 도망치지는 못했다.

등을 보였다간 가장 먼저 죽게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제 이야기를 듣고 움직이시지 않고요.”

송길준은 그런 상황을 관조하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송길준의 음성에 만우는 태연히 턱을 긁으며 되물었다.

“이 새끼 아니야?”

자신이 틀렸다면 다른 놈을 쪼개겠다는 심산으로 보였는데.

그런 만우의 눈에선 딱히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을 모기나 파리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는데.

“아? 전부 다 그렇다는 건가?”

그러면서 당장 눈앞에 있는 모든 이를 갈라버릴 태세를 보였다.

하나, 다행히 송길준이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만우를 멈췄다.

“그 자가 맞기는 합니다.”

“거봐! 내가 딱 감이 왔다니까?!”

“…나 원 참. 제 말에 따라 주시는 조건으로 함께 온 것 아닙니까?”

“아, 지금부터는 그렇게 할게. 근데 다 죽일 게 아니라면 뭐 이렇게 많이 끌고 나온 거야?”

“본교에 대한 마음가짐을 확인하는 시간을 좀 가지려고 했는데. 만 형 때문에 다들 겁을 집어먹으셨지 않습니까?”

“아, 미안하다니까?”

“만 형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예비 교인들은 일단 도열을 해주시겠습니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지만, 동작은 빨랐다.

흑도인들은 일사불란하게 도열을 마쳤는데.

나는 대략 중간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일이 어떤 순서로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앞과 뒤는 피해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아무튼 그렇게 흑도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송길준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 문답은, 결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본교에 입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질문은 딱 한 가지였는데.

“처, 천마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 뭐냐? 아! 받들고자! 예! 그러고 싶어서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그저 상황만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그 질문에 무슨 답을 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렸기 때문이다.

“만 형. 이분은 언제고 배교할 사람입니다.”

“그래?”

촤악!!!

특히 문제였던 것은 답이 무엇인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소, 솔직히 말해서 고수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강함을 쫓는 것은 천마신교의 교인이라면 항상 품고 살아야 하는 마음이지요. 좋습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분은 앞으로 나서주십시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내놓아도 누군가는 살고.

“저도 영약을 준다고 해서 고수가 되고 싶어서 입교를 결심했습니다!”

“만 형.”

“어.”

촤악!!!!!!

누군가는 죽었기 때문이다.

‘…신념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미친놈이잖아.’

상황이 이쯤 되니 도열하고 있던 흑도들이 제정신이 아니게 된 것도 당연했다.

눈앞의 상황에 벌벌 떨며, 그들의 생사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을 더욱 두려워했다.

이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낭중이라는 공자님은 마음을 읽나 본데.”

“벼,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천마님을 받들어 모신다고 생각하면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나는 속으로 비소를 흘렸다.

‘송길준이 눈썰미가 좋긴 했지만,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게 있을 리 있나.’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자들에게는 정말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송길준은 그를 통해 공포심과 경외감을 심으려는 거겠지.’

더해서 본보기로 몇 명쯤은 죽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저 옆에서 만우가 사람 하나를 쪼개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슬슬 내 순번이 다가온다는 건데.’

송길준이 갱도 안에서 조금만 서두르자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꾼을 많이 죽일 생각은 없을 터였다.

‘많아 봤자 다섯 정도일 거 같은데.’

한데, 내 순번이 올 때까지 죽어 나자빠진 자가 딱 넷에 그쳤고.

“다음 분은 앞으로 나서 주십시오.”

“…….”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겁에 질린 흑도 졸개의 걸음을 흉내 내며 주섬주섬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정리했던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것도, 싸움을 거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하책이다.’

생사를 걸고 싸우며 대기조를 기다린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놈들이 데려온 병력을 짐작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를 동반하는 방식을 택해선 안 됐다.

이 두 사람의 등장으로 상황이 내 예상을 벗어나게 됐으니, 그에 맞춘 새로운 해법이 필요했다.

‘답은 간단하다. 송길준이 생각한 숫자를, 어떻게든 채우는 거지.’

송길준이 갱도 안에 들어와 인원 수를 확인하고, 흑도들과 말을 나눈 것은 분명 철저한 계산 아래 이뤄진 일일 터였다.

계산이 틀어지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놈의 성정을 미뤄보았을 때.

만우를 움직여 송길준이 잡아 놓은 본보기의 숫자를 채워버리면 내게는 질문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후.’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도열한 흑도 놈들을 지나치는 순간 발생하는 사각을 이용해 혈조술을 시전해 붉은빛 침(針)을 만들어 쏘아냈다.

픽-

핏방울은 빠르게 날아가 내가 점찍어둔 흑도에 날아가 꽂혔다.

일전에 하류박에서 사람을 잡아봤느니 뭐니 했던 죽어 마땅한 놈이었는데.

“아앗!”

침을 맞은 흑도 놈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단상 위의 만우가 득달같이 뛰쳐나와 도끼를 휘둘렀고.

촤악!!!!

나는 일부러 혼비백산 하는 척 엉덩방아를 찧으며 겁에 질린 척을 했다.

“아이고!”

그러자, 송길준이 짐짓 노기 섞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 형! 그래서야 예비교인들이 본교를 도살자들의 집단인 줄 알겠습니다!”

“…나는 그냥 본교를 향한 마음가짐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누가 저런 새된 소리를 지르나 싶어서.”

만우의 멋쩍은 웃음에 송길준은 고개를 저었지만, 기실 그도 만우의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만우가 죽인 이의 숫자는, 모두 그의 계산 범위에 들어있을 테니까.

“됐습니다. 행사는 이쯤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

놈은 못 이기는 척 행사중단을 선언했다.

“방금 그분도 마음에 배교의 싹이 있긴 했습니다만, 이러다 진짜 생사람을 잡겠습니다!”

“……”

“만 형은 잠깐 저를 좀 따라주시고, 대주(隊主)는 상황 정리하고 예비 교인들께 술이랑 고기를 내어주도록 하게.”

“…끙.”

“존명.”

그에 여기저기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의 방안을 떠올려냈다고는 하지만, 실패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다음 작전에 돌입해야 했을 테니까.

“휴우.”

한데 그렇게 숨을 돌리고 나자.

한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낭중마군이 짠 판이라면…. 녀석의 좋은 머리를 되레 이용해볼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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