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194화 (194/444)

제194화. 위험하다 (3)

호원단철장의 내실.

본디 이곳은 대야장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감히 멸마라는 별호를 가져다 쓰는 찢어 죽일 경혜 그 비구니와 개방의 노삼, 화산의 창량과 검후 모용린이 요주의 인물이고.’

하나, 오늘은 낭중마군 송길준이 단강구 일대의 지도와 정무 학관의 건물 배치도를 펼치고서 그 위에 바둑돌을 놓아보고 있었다.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작자들은 팽재혁과 제갈민 그리고 해남파의 정극경 정도? 다른 교수들은 학구파라 본교 내사들의 상대가 아니고, 수위부라는 곳은 기실 별 볼 일 없는 자들….’

마지막으로 놓을 하얀돌 한 개를 쥐고 송길준은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마방연인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흠. 이 마방연이라는 곳엔 명문 대파의 후계자로 꼽히는 후기지수들이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단 말이지?’

게다가 ‘마공 방어’라는 기치를 세우며 상징성까지 갖췄으니, 천마신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먹잇감이었다.

‘싹 죽여 없앨 수만 있다면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겠지.’

한데, 마냥 먹잇감으로 치기엔 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평화에 찌든 기존의 정파 놈들은 보통 소속된 파벌과 자신의 이익만 우선시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강호에서 보여준 게 있었다.

하여 대충 계산이 섰다.

한데, 이놈들은 쉬이 계산이 서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예상이 안 되는 것이다.

‘사대 기숙사의 인원이 골고루 섞여 있는 것은 물론이오. 사실상 흑도인으로 봐야 하는 우사인의 아들에 상계(商界)의 자녀, 남궁세가의 적장자가 삐걱거림 없이 움직이는 조직이라니.’

백번 양보해 구심점이 될 만한 녀석이 나와 그렇게 뭉칠 수 있다 치자.

그렇더라도 보통 후기지수들의 경거망동을 막고자 이중 삼중으로 행동에 제약이 걸려 있어야 마땅했다.

‘그게 저놈들이 부르짖어온 정도라는 것인데.’

한데, 저 마방연이라는 곳엔 그런 제약도 걸려 있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송길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걸렸다.

‘공손무결과 제갈혜를 필두로 한 무림맹의 인사들도 큼지막한 고기를 던져주고 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는데,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나를 고민하게 하는구만.’

특히나 구심점으로 여겨지는 언용운이 끼어들 때마다, 천마신교의 계획은 어그러지거나 본래 상책(上策)이었던 계획이 중책(中策)의 길로 들어섰다.

산서의 일이 그랬고, 심율의 일이 그랬다.

“…언용운. 언용운이라.”

너는 이 판국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그렇게 송길준이 마지막 하얀 돌을 계속해 만지작거리며, 언용운의 이름을 되뇌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공자님. 접니다.”

내실 밖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인기척을 내왔다.

“좌내사이십니까?”

“예.”

목소리의 주인은 송길준이 기거하는 낭중궁의 좌내사였다.

군호를 받은 마교의 후기지수들은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하는 내사라는 직책의 마두가 한 명씩 따라붙었는데.

마뇌부는 다른 왕부를 이따금 직접 지휘하기도 하는 부서였기에 송길준에게는 두 명의 내사가 붙어 다녔다.

그중 좌내사는 오늘부터 이곳 호원단철의 인력을 총괄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본디 좌내사는 내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사람을 들이지 않건만. 이러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겼군.’

송길준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그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온 노마두는 깎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의 사색 시간을 방해하여 송구합니다. 하나, 당장 아셔야 하는 일이겠기에 이 늙은이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 늙은이가 예비 교인의 인원을 파악하는 중, 인원이 한 명이 비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탈주를 했다고요? 흑도 출신의 예비 교인들중 감히 그런 행동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자는 없을 텐데요?”

“저도 그리 생각을 하고 혹시나 싶어 일대를 뒤져보니, 점혈을 당한 채로 숨겨져 있던 자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요.”

좌내사는 송길준을 향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음. 이건 외부 일꾼이 임금을 받아간 장부로군요? 용구라는 자가 임금을 받아 가지 않았다, 라.”

“임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쉬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요. 알아보니 용구라는 자는 본인을 당양현 출신이라 했다 하였고, 점혈을 당했던 예비 교인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상태입니다.”

“하하. 이거 정파 놈들의 염탐꾼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용케도 등잔 밑을 살펴보았군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계획을 중단하고 철수를 해야 할까요?”

하나, 송길준은 좌내사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노마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강행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염탐꾼이라는 자의 행태가 참으로 미숙하지 않습니까?”

“…음.”

“임금을 받아가지 않은 것도 그렇고, 점혈을 당한 자가 무언가를 봤을 수도 있는데 내버려 두고 간 것도 그렇고요. 당양현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마 제갈세가를 통해 신분을 구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운을 뗀 송길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풋내가 풀풀 나는군요. 이거 아무래도 마방연의 솜씨인 모양입니다.”

“마방연이면 그 언용운이라는 놈이 이끈다는 핏덩이 집단 말씀입니까?”

“예. 제갈세가를 통해 그럴싸한 신분을 구한 것은 소무후라 불리는 제갈설지일 것이고, 여기까지 잠입할 실력은 있으나 뒤처리가 상당히 어수선한 것을 보면 다녀간 녀석은 아마 우소릉이라는 자 같군요.”

“우소릉이라. 아비답지 않게 간이 작다는 그 녀석이군요.”

“예. 파놓은 굴을 보고 놀란 토끼처럼 바로 학관으로 줄행랑을 친 모양입니다. 하니, 본교가 땅굴을 판 이유를 온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송길준은 잠시 비소(誹笑)를 머금었다.

‘언용운이라는 녀석이 홀로 괴왕부의 대계를 망칠 정도로 난 놈이라 해도 손발이 되는 자들이 이래서야.’

그리고 눈으로 호선을 그으며 입을 열었다.

“작전은 강행합니다. 다만 방법을 바꿔야겠습니다. 공격 시기도 당길 것입니다. 좌내사께서는 지금 당장 모든 교인에게 비상을 거시고, 대주급 인사들을 모두 이리로 불러 모아 주세요.”

“존명.”

그렇게 명을 내린 송길준은 여태 쥐고 있던 바둑돌 한 알을 부숴버렸다.

* * *

나는 송길준이 준비했다는 술과 고기가 날라져 오느라 어수선한 틈을 타서 적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대기조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교수님!”

“우리 용구가 왔구….”

그런 나를 향해 노삼 교수님은 너스레를 떨려 하셨지만.

“언 형! 무슨 피가 그렇게?!”

“일단 내 피는 아니다, 소릉아.”

피를 한 말은 뒤집어쓴 것 같은 내 꼴을 보고 미간을 좁히셨다.

“남의 피라도 무슨 일이 있으니 그리 뒤집어썼겠지, 우리를 부르지 않길래 별일 없는 줄 알았는데? 인석아 일이 터졌으면 불렀어야지!”

남궁윤과 정현도 저마다 검에 손을 가져가며 눈을 빛냈다.

“너무 별일이라 부를 상황조차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남궁윤, 당장 검을 뽑을 상황은 아니다.”

“…알았다.”

“정현은 내 검을 돌려주고.”

“여기 있습니다, 언 소협.”

그렇게 내 허리춤으로 돌아온 사부님이 물음을 던져오셨다.

- 대관절 뭔 짓을 하고 왔길래 꼴이 그 지경이 난 것이냐?

하나, 지금은 그 질문에 답을 드릴 여유가 없었다.

이래저래 생각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단 모두의 궁금함을 일축했다.

“말하면 긴데,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학관으로 가시죠.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역용에 사용한 면구를 찢어 던진 뒤.

비영파천보를 사용해 땅을 박차며 우소릉에게 명을 내렸다.

“소릉이 너는 우리랑 걸음 맞출 필요 없이 먼저 가서 마방연이랑 청죽관에 비상 좀 걸고, 은 소저한테 총장님 좀 모셔오라고 전해.”

“예!”

그렇게 학관으로 돌아온 나는 마방연의 지도 교수님들과 청죽관 간부들을 모아놓고 긴급 보고를 시작했다.

“그럼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운을 뗀 사람은 아까부터 답답한 얼굴을 하고 있던 노삼이었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냐? 꼴은 왜 그렇게 된 거고?!”

“마교 놈들이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 미친놈들이 두더지를 삶아 먹었나? 그래서 놈들이 구덩이에 숨겨 놓은 것을 빼내다가 그 꼴이 된 것이냐? 뭘 숨겨놨길래?”

“뭘 숨기려고 구덩이를 좀 판 게 아니라, 학관 밑까지 이어지는 굴을 파고 있었습니다.”

“땅굴?”

“예.”

“여기까지?”

“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벌린 노삼은 혹시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두 번이나 확인했다.

말은 노삼이 했어도 다른 참석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허.”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서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그 설명이 끝났을 때.

몇몇 언동생들은 혀를 내둘러 왔지만.

“와, 언용운 쟤는 그러니까 마두에게도 사기를 친 거지? 그것도 놈들의 소굴에서? 미쳤나 봐 진짜. 간도 크다.”

“제가 봤을 땐 간이 큰 정도가 아니라 그냥 오장육부가 다 간으로 된 것 같습니다. 용운 형님은.”

경혜 사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언용운 생도.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중단하고 돌아오기로 저와 약속했을 텐데요?!”

“이 경우엔 확인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총장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은 사실이니 벌은 추후에 달게 받겠습니다.”

“…하. 벌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틈바구니에 언용운 생도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

“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즉시 다른 교수들과 빈니가 선제공격을 하면 될까요?”

그런 총장님의 음성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한편에 앉아있던 정극경 교수님께서도 한마디를 보탰다.

“총장님, 침착하십시오. 그래서야 저희 쪽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 학관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우선은 인근에 있는 무당파와 제갈세가 그리고 다른 백도 방파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 바로 거지들을 시키도록 하지.”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조치긴 한데, 무작정 지원만 기다리자는 건가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적을 발밑에 두고요? 심지어 땅굴의 갈래를 더 늘릴지도 모르는데요?”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듣는다면, 총장님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내 계획은 그와 조금 달랐다.

“외람된 말씀인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제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조금 전의 보고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제가 일부러 다녀간 흔적을 그쪽에 남기고 왔습니다.”

그런 내 말에 노삼이 눈을 키우며 입을 열었다.

“…왜? 우리가 놈들의 술수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놈들이 몰라야 유리한 것이 아니냐?”

“보통은 그렇습니다. 다만, 적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방금까지 답이 나왔던가요?”

그런 내 말에 은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죠. 한데, 언 공자께서 흔적을 남겨두고 오셨다면 놈들도 서두를 수밖에 없겠네요. 어쨌거나 들켰으니까요?”

“맞소. 그래서 언제인지 알 것 같다고 한 것이오. 아마 놈들이 작전을 강행하기로 결론을 낸다면 이르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아침 전에는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정현도 한마디를 보탰다.

“병서에도 적이 원치 않는 때에 싸우라는 말을 했습니다. 허, 그 정신없는 순간에 생각을 거기까지 하셨군요.”

그런 상황에서 나는 계속해 입을 열었다.

“제가 보고 온 바로는 놈들의 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낭중마군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놈이었습니다. 그리고 굵은 계책 속에 작은 계책을 숨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가와 약재 창고를 내주더라도 땅굴을 숨기려 한 것처럼요.”

다분히 원작의 지식을 끌어다 쓴 해석이었지만, 보고 온 사람이 나뿐이니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더해, 한편에서 홀로 ‘땅굴’과 ‘작은 계책’을 중얼거리고 있던 제갈설지가 입을 열며 내 생각에 힘을 보태주었다.

“용운 님? 혹시 그 땅굴의 벽을 지지하고 있던 지지대의 소재를 보셨나요? 목재였지요? 만약 목재였다면 병력 이동으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땅굴이라는 게 결국 그만큼의 공간을 파버리는 거라….”

“지지대를 다 태워버리면 땅이 내려앉지.”

제갈설지와 내 말에 경악이 들어찬 좌중.

“학관의 외벽과 그 주변의 기관지식이 모두 엉망이 되는 것을 상정하고 사람 중심으로 방위 계획을 새로 짜야 합니다.”

나는 그 경악을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

“적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아는 상황이니 모두가 합심한다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 두더지 새끼들이 뒤질라고.

어디 남의 나와바리에 땅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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