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03화 (203/444)

제203화. 징계위원회 (2)

모용린 교수의 입에서 나온 의결사항에 향란관 생도들은 저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 위원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으신 분 있으십니까?”

하나, 이의가 있냐는 물음에 응하지는 않았다.

‘의결 과정에 참여한 운영위원 중 한 명이 창량이어서 그냥 따르는 건가?’

명분상으로도 맞기는 했다.

향란관 생도들의 준동은 결국 마교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일의 재발을 막고자 실시되는 교육과정은 마방연의 주도로 시행되는 게 맞지.’

정무학관에 설치돼 있는 부서 중 유일하게 마교를 연구하는 곳이 바로 우리 마방연이었으니 말이다.

뭐, 아무튼.

위원회의 권위를 존중한 것인지, 명분에 틈이 없다 여긴 것인지 몰라도 향란관 생도들은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하면,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언용운 생도와 마방연은 조속히 교육계획의 개요를 짜서 학관의 운영위원회에 제출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 위원회는 이것으로 폐회하겠습니다.”

난리통에 열렸던 징계위원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땅. 땅. 땅.

나는 울리는 나무망치 소리를 뒤로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렸던 본관을 빠져나왔다.

한데 그렇게 나와보니 본관 앞 광장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음? 저 파란 무복은 너희 청죽관 생도들 아니냐?

‘…그 옆에는 학관생 식당의 주사 고고를 비롯해서 학관에서 일하는 분들도 계시네요?’

누가 봐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라 나는 곧바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여기서 뭐하십니까?”

그런 내 말에, 가장 먼저 주사 고고께서 쥐고 계신 국자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여셨다.

“학관의 높으신 양반들이 징계 위원횐가 징벌위원횐가 뭔가 하는 걸 열어서 용운 학생을 핍박한다길래, 우리가 볶던 냄비도 내팽개치고 왔지! 아주 손수 밥을 지어 드셔봐야지!”

“암 그렇고말고! 용운 학생은 평소에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깍듯한 것만 봐도 인품에 흠잡을 곳이 없고, 이번에 그 숭악한 놈들이 굴을 파는 것도 모르고 당할 뻔한 것을 구해놨더니 징계라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나 그래!”

나서주신 마음들은 고마웠으나 이런 행동은 징계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심지어 결정이 방금 난 참이라 방문도 나붙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 알고 이러시나 싶었는데.

마침 하성이 놈과 소릉이 녀석이 각기 목을 긁으며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저놈들이 나발을 불고 다녔군.’

그러는 중에 경룡이 형이 입을 열었다.

“하여 어찌 되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잘 해결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해결되었다는 건가? 일말의 불이익이라도 있는 결정이 자네에게 내려졌다면 우리는 집단행동도 불사할걸세! 그것이 청죽관의 정신이니까!”

그런 경룡이 형의 음성에 다른 청죽관 생도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맞네! 우리 모두 다 징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낼 걸세!”

“그게 청죽의 정신이니까!”

참나.

학기 초만 해도 늘어진 오징어같이 의욕이라고는 전혀 없던 양반들이 아주 불이 붙었다.

마교의 습격을 막아낸 일에 일조한 것이 자신감을 북돋아준 모양이었다.

‘보기에도 나쁘지는 않고.’

내 일로 저렇게 역정을 내는 모습들이 고맙기도 했다.

하나, 징계위원회가 나를 소환한 것은 말 그대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기에 다들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해, 나는 징계위원회에서 있던 일 중 나와 관련된 사항을 간략하게 늘어놓았다.

“…경혜 사태께서 그리 소명을 해주셨고, 제 차례에 이르러서는 의장을 맡으셨던 모용린 교수님께서 안건 자체를 기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청죽관 생도들과 함께 달려온 학관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실상 징계위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견학을 하고 온 꼴이니, 주사 고고나 다른 분들은 이만 돌아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 일처럼 이렇게들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야말로 용운 학생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인데. 섭섭하게 그런 말 말고, 오늘부로 식당 있던 자리에 크게 천막을 쳐놓고 다시 운영하기로 했으니까 바쁘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밥은 꼭 챙겨 먹으러 와!”

“꼭 그러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괜찮다네? 우리는 이만 일터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뭉쳐 있던 무리 중 주사 고고를 필두로 한 학관의 일꾼들이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남들이 천하다 여기는 이들에게도 깍듯하더니만, 그런 씀씀이가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하기야 네 녀석은 처음 만났던 날에도 태호 일대의 외로운 넋을 달래 주었더랬지.

그 말씀이 좀 멋쩍어서 무슨 말을 돌려드려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경룡이 형이 헛기침을 해왔다.

“흠흠. 언 부회장 자네를 두고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길래 놀라는 바람에 이리 달려왔는데, 이거 헛심을 쓴 꼴이 되었군. 아, 향란관 생도들은 어찌 되었나?”

한데 말끝에 나온 질문이 나와 함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향란관 생도들에 관한 것이었다.

“남궁정호 교수님은 정직, 여타 향란관 생도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이수를 받으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하여, 우선 의결사항에 대해 담백하게 늘어놓았는데.

그러자 청죽관 생도들의 틈에서 쓴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좀 가볍긴 하구만.”

“좀? 좀이 아니지, 이 사람아. 언 부회장이 기민하게 대처했기 망정이지, 대처를 못했으면 방위 계획이 모조리 무너지고 모두 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고작 교육 이수?”

“이거 또 명문대파 출신이라고 관대한 처분을 내린….”

나는 그런 쓴웃음이 억측으로 번지기 전에 재차 입을 열었다.

“근데 그 교육 편성을 마방연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자 은하연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어 왔다.

“저희요?”

“그렇소. 정확히는 교육 편성은 마방연의 주도하에 하라고 했고, 교관은 나보고 맡으라 하였소. 아마 곧 방문이 나붙을 거요.”

그 되물음에 답을 돌려주자.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아, 그럼 인정이지.”

“향란관 놈들도 드디어 언 부회장의 맛을 보는구나!”

모두가 의욕이 샘솟기라도 한 듯 자진하여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거리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연무장부터 치워야겠군. 하루라도 빨리 징계위원회의 의결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장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야!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닐세!”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가만있자, 모래주머니와 현철 족쇄들을 어디다 옮겨 놨더라?”

그런 와중에 은하연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연무장이랑 모래주머니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급한 게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언 공자?”

“뭘 말하는 거요?”

“대 마교전을 염두에 두고 편성하는 재발 방지 교육이라면 당연히 교육과정에 ‘그것’도 포함하셔야죠.”

“그것?”

“독공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 말이에요.”

폐허 속에서 가장 먼저 구색을 갖춰야 할 건물로 화생방실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마방연이 작성하고 학관의 운영위원회가 승인한 사 주 동안의 교육계획이 향란관의 자치회에 날아들었다.

사실 계획서에 명시된 징계 대상자는 사번대에 속했던 생도들뿐이었으나, 향란관 생도들은 전원이 마방연에서 실시되는 ‘교육’에 응했다.

딱 한 명 ‘미쳤나 봐!’ 소리와 함께 달아난 당옥기를 제외하고.

곤경에 빠진 동료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을 좇은 결과이자, 특유의 자존심의 발호였다.

“언용운이 실시하는 훈련이 그리 악명이 자자하던데 어떠려나?”

“그 녀석이 입사한 이후로 청죽관 방면에서 연일 곡소리가 나긴 했지.”

그런 자존심은 교육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여전했다.

“별거 아닐 거야. 이번에 청죽관 녀석들 덕분에 우리가 목숨을 구한 것은 사실이라 마음에 빚을 하나 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친구들이 나약한 정신으로 나태한 학관 생활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 않나?”

“하기야, 나약한 몸과 정신을 다시 벼리다 보면 절로 곡소리가 나기 마련이긴 하지.”

“그래, 저번에 슬쩍 보아하니 마보나 압보 비슷한 것을 시키던데, 우리야 소싯적에 숱하게 해본 것들일 것이야. 신입생인 언용운 그 친구가 교관이라 우리에게 명을 내리는 지위에 있다는 점만 견뎌내면 되지 않나 싶구만.”

하나 향란관 생도들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은 언용운이 새빨간 모자를 쓰고 단상에 나타나기 전까지였다.

“누가 징계위원회의 결정에서 비롯된 신성한 교육의 현장에서 잡담을 하고 있습니까?! 놀러 왔습니까?”

“…그건.”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향란관의 교육생들은 전시에 준동하여 학관의 모든 구성원을 위험하게 한 일로 이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울러, 생도의 행동 하나하나가 향란관의 명예가 실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이 시간부로 교육생들은 학년도 배분도 잊습니다! 훈련 중에 번호를 외치는 때를 제외하면 악! 이라는 답만 허용하겠습니다. 본 교관도 교육생들을 올빼미라 칭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악.”

“목소리가 작습니다. 향란관, 이것밖에 안 됩니까?”

“악!!!”

“마방연의 부교관들은 향란관 생도들에게 무위에 따른 현철족쇄와 모래주머니를 사지에 채우기 바립니다.”

언용운은 초장부터 향란관의 명예를 들먹여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배분이니 연공이니 하는 관념을 배제하고 자신과 나머지로 상하를 나눠버린 뒤.

“지금부터 본 교관이 보일 구분 동작은 반드시 기억에 새기기 바랍니다.”

누군가 소싯적에 해보았다 주장했던 마보와 압보와는 전혀 다른, 괴이한 체조를 선보였다.

“…이것으로 하나. 이게 바로 온몸 비틀기라는 동작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악!”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올빼미들이 본 교관의 호각소리에 맞춰 직접 온몸을 비틀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최초 삼백 회! 몇 회?”

“악?! 이 아니고 삼, 삼백 회!!”

“오백 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합니다. 하나, 둘, 셋.”

삑! 삐이빅! 삑삐삑삐 삑!

향란관 생도들은 그 체조를 본인의 몸으로 직접 행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몸에 아직 단련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존심이라는 것이 서서히 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 * *

삑삐빅! 삑삐비빅삐빅!

척!

강력한 명분을 쥐고 굴리는 데다가 자치회장인 매진악부터 이를 악물고 참여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향란관 올빼미들은 이렇다 할 반항 없이 첫날 예정된 체력 단련 전반부 과정을 묵묵히 수행해냈다.

‘은휘상단에서 신입표사들을 굴릴 때는 한 놈을 족치고 시작해야 했는데. 명분 대파 출신들이 이런 건 확실히 좋단 말이지.’

나는 향란관 올빼미들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짝짝짝.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

“한식경 쉬겠습니다.”

“끄, 끝이 아니라 쉰다고?”

“방금 사람 말을 한 올빼미가 누구입니까?!”

“…….”

“향란관 올빼미들이 생각 외로 잘 따라와 주었기에, 이번 한 번만 넘어가겠습니다. 부교관들이 나눠주는 소금을 받아 섭취하시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훈련을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답.”

“악!!!”

내 명에 따라 부교관으로 분한 언동생들은 자신이 맡은 열의 생도들에게 소금을 나눠주고 돌아와 내게 보고를 했다.

“언 형! 다 나눠주었어요!”

“저도 다 나눠줬습니다, 용운 형님!”

“빈도도….”

한데, 정현이 보고를 하다 말고 시선을 내 너머로 고정하는 게 보였다.

그에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음? 정현이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저렇게 긴장한 표정을 짓느냐?

그에 나와 사부님의 시선이 동시에 정현이 응시하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 자리엔, 꼿꼿이 선 자세에서 도골(道骨)이 묻어나는 다섯 도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 무당의 말코 놈들인 듯 하구나?

‘그렇네요.’

무당파의 장문인은 이런저런 행사에서 스치듯 몇 번 봤어도, 저 다섯 도사는 초면이었다.

하나, 나는 저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 연배쯤 돼 보이고, 정현이 이렇게 긴장하는 존재에 다섯 명이면.’

무당오협.

실질적으로 무당파를 이끌어가는 명자 배 중에서도 강호에 이름을 크게 떨친 다섯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번에 일어난 난리가 작은 것이 아니었기에, 학관과 협의할 게 있어 들른 모양이었다.

정현은 그들에게 딱히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행동도 못 한 채 굳어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눈을 마주친 김에 정현 대신 포권을 취했다.

“…….”

“…….”

“…….”

“…….”

그러자 그중 네 도사가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딱여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고.

그중 한 도사가 머리를 긁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거, 사형들도 참.”

그제야 정현이 쭈뼛거리며 다가선 도사를 향해 소리없는 인사를 했다.

“그래, 정현아. 오랜만이다. 자네는 소문이 자자한 괴룡이지?”

“예. 어쩌다 보니 그런 별호를 얻었습니다.”

“어쩌다 보니라니, 학관도 우리 무당도 자네와 마방연 덕에 큰 낭패를 면했는데. 나는 명한이라 하네.”

“무당오협의 막내분 되시는군요.”

“나야말로 사형들이랑 어쩌다 묶여서 그리 불리고 있네. 사형들이 사실 참 좋은 분들인데, 정현이 이 녀석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계신지라 저리 쌩하고 가버리신 거라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명한이 정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는구나.”

“…제가 걷고자 하는 도를 먼저 걷는 사람과 함께 있어 그래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 언젠가 무당의 동도들이 네 진심을 알아주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눈인사를 전해왔다.

“꼿꼿한 사손이 어찌 적응은 잘하고 있나 걱정임에도 사문의 결정이 추상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군. 여러모로 고맙네, 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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