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04화 (204/444)

제204화. 어디로 (1)

우리와 인사를 나눈 명한 도사는 앞서 자리를 떠난 네 도사를 쫓아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새 멀리도 가셨군. 사형들! 같이 갑시다!”

정현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무당과 정현.’

하루아침에 풀릴 관계는 아니었다.

태사숙조 배분에 해당하는 태허자를 발고한 정현의 행동은, 객관적으로 보면 의로운 행동이었다.

하나, 무당파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그저 옳은 일로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식이 너무 정현다웠으니까.’

발고를 당한 사람은 태허자 하나였지만.

조금만 삐딱선을 타고 보면, 정현 혼자만 고고하고 다른 사람들은 싸잡아 썩은 물로 취급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무림인들이 가장 무거운 죄라 생각하는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영역에 걸쳐 있어.’

행동 자체는 의로웠기에 정현 본인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정현을 무당으로 거둬준 태영자가 책임을 지고 폐관에 들어갔고, 동시에 도우들의 신뢰를 잃었다.

하여, 정현의 도호 앞에 ‘무당의 수치’라는 말이 따라다니게 된 것이었다.

‘운혁 같은 녀석이 사문에 먹칠을 했다며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게 된 이유지.’

이건 아무리 나라도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도망치는 송길준을 쫓을 때, 조우했던 지원군이 제갈세가 쪽 사람이 아니라 무당파의 도사들이었다면 분위기가 좀 달랐을까?’

…아니, 마교의 잔당을 앞에 둔 상황에서 불협화음이 났을 수도 있었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나, 정현이라면 자신의 방식으로 사문과의 엉킨 실타래를 언제고 풀어낼 수 있을 터였다.

‘정현은 정현이니까.’

나라는 존재가 끼어드는 바람에 원작과 궤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하나 무당과 정현의 갈등은 사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한 도사의 말처럼 정현의 진심을 다른 도사들이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와 의를 찾는 녀석이라면 무당파 도사들의 마음을 돌려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정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명한 도장의 말처럼 다들 네 진심을 알아주는 날이 있을 거다.”

그런 내 말에 정현은 멍한 표정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언 소협.”

그렇게 정현을 다독이고 나니, 부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다른 언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 역시 정현과 무당파의 사정을 알고 있다 보니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처져 있었다.

나는 처진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리 정현 도장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거 같으니까, 향란관 올빼미들이나 더 힘차게 굴려볼까?”

* * *

원래도 바쁜 나와 언동생들이었지만.

마교의 학관 습격이라는 광풍이 쓸고 지나간 이후로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향란관 생도들의 재발 방지 교육을 무엇보다도 우선했지만.

삑! 삐이빅! 삑삐삑삐 삑!

그건 사 주 동안 진행하는 교육이었기에 그야말로 일상이 되었고.

그 외에도 닥친 일이 산더미같이 많았다.

“용운 님. 낭중마군과 흑선마군의 관계를 이렇게 분류하면 될까요?”

그중에 하나는 마방연의 이름으로 이번 사태를 분석한 보고서를 꾸리는 일이었다.

제갈설지가 한몫을 담당해주고 있었지만.

그녀가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정보가 전혀 없는 마교의 세부사정을 추론할 수는 없는 일이라, 결국은 마교를 아는 내 손을 거쳐야 했다.

“이 정도로 상하관계는 아닐 거요. 낭중궁이 소속돼 있는 마뇌부가 소폭 우위를 점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협력 관계 같은 느낌이었소.”

나는 시점과 정황을 고려하여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적절히 풀었고, 제갈설지는 그걸 정리해 적었다.

“아하. 하면 그 송길준이라는 자도 난처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지.”

“그나저나 호원단철장의 잠입으로 참 여러 정보를 캐오셨네요.”

“…….”

“코앞에서 마군급 마두들이 사람을 죽여대는 현장에서, 그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시다니. 존경스럽네요, 진짜.”

“…금칠은 그쯤하고 일합시다, 일.”

“금칠 아닌데요.”

거기다 마방연의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청죽관의 재건축에 관한 일도 챙겨야 했다.

“언 공자. 이거, 이거, 그리고 이것 좀 봐주시면 돼요.”

“이게 행정처에서 추가로 보내달라고 한 것들이오?”

“예. 일단은요.”

청죽관을 재건축하는 일은 애초에 추진하고 있던 사업이라 행정처에서 요구한 견적서나 건축계획 같은 것을 제출하는 것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건물 자체는 공짜로 올리게 되었는데….’

그 대가로 다른 일거리가 돌아왔다.

청죽관의 자금으로 진행하려던 사업이 학관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하게 되면서, 대금을 치러 놓은 자재들을 증명하는 서류를 꾸려야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건 다 맞게 돼 있는 것 같은데, 여기 목재 대금을 결제한 상단주의 수결이 빠진 것 같소만?”

“아, 그건 받으러 간 사람이 아직 안 왔어요. 그래서 ‘일단은’이라고 한 거고요.”

한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살피던 중에 문득 내 머릿속에 한가지 고민거리가 떠올랐다.

“…흠.”

그 고민거리를 생각하느라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으니 은하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은 소저가 꾸린 서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럼요?”

“기숙사를 새로 올리는 일에 들어가는 자금을 학관에서 부담해 주기로 하면서 당초에 거기 쓰려고 했던 자금이 남았잖소?”

“아, 그 자금을 어디다 쓰면 좋을지 고민하고 계셨군요? 그건 저도 한번 생각을 해봤는데….”

“괜찮은 용처가 떠올랐소?”

“호원단철장 어떠신가요?”

호원단철장.

내가 잠입했던 곳이자, 마교 놈들이 학관을 습격하는데 전진 기지로 활용했던 대장간이었다.

‘호원단철은 지금 원주인인 원홍 내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시설은 학관 측에 압류가 된 상황이지.’

지금이야 다들 학관 일만으로도 바빠서 방치되어 있지만.

학관의 정비가 얼추 끝나면 새로운 주인을 선정하는 과정이 행해질 터였는데.

은하연은 그걸 우리가 인수하자는 거였다.

“…대장간이라.”

“괜찮지 않나요? 예전부터 확 하나 인수해 버릴까 보다, 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잖아요?”

인근의 무기점과 대장장이들이 단합해서 하도 눈탱이를 쳐대길래, 이따금 그런 소리를 하기는 했었다.

“아마, 지금 분위기에서는 따내고 자시고도 없이 저희가 인수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큰 공을 세웠으니까?”

“예. 거기다 학관도 이리저리 목돈이 나가는 상황인데, 저희가 호원단철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 숨통이 좀 트이니 반갑기도 할 거고요?”

“확실히 지금이 적기긴 하겠구려.”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자, 은하연이 숨을 뱉지도 않고 속사를 하듯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예. 단순히 청죽관 생도들이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어요. 요즘 천하에 언 공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던데, 언 공자가 사용하는 검이라고 선전하면 아마 언 공자가 삼학년이 되시기 전에 투자 비용은 다 뽑고도 남을걸요? 소식지 사업이랑 연계하면 파급력은 더 커지겠죠.”

“거, 진정 좀 하시오. 눈동자가 동전 모양으로 바뀐 줄 알았소.”

“아, 제가 잠시 흥분했네요. 아무튼 괜찮지 않나요?”

“그런 것 같소. 진행 시키시오.”

“흐. 근데 이것까지 추진하면 진짜 당분간은 잠자는 시간을 더 줄여야겠네요?”

“그러게 말이오. 이러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는 혀를 차 오셨다.

- 쯧쯧. 스스로들 일을 늘리고 앉아 있으면서?!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너희 둘만큼은 일 많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되느니라. 천하의 일벌레 같은 것들….

그처럼 마방연의 실장이나 청죽관의 간부, 혹은 교관으로서 해야 하는 일도 일이었지만.

생도로서 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공부.’

사대 기숙사를 포함하여 학관의 시설 중 삼 할 정도가 잿더미가 된 상황이었기에.

대다수의 수강 과목은 생도들의 동의를 받아 중간고사 성적으로 기말고사 성적을 갈음한다는 공문과 함께 종강을 선언했다.

하나, 그럼에도 수업 강행을 선언한 지독한 교수님들이 계셨다.

“마인들이 사대 기숙사를 훼손한 사태는 참담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비극임이 분명하나, 이런 환경이야말로 우리 강호생활백서 수업에는 알맞은 교보재라 하겠죠. 모두 교재를 폅시다.”

대표적으로는 정극경 교수님이셨는데.

일부러 폐허가 된 현장에 석판을 가져다 놓고 수업을 시작하는 교수님의 행동에 당옥기가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정 교수님은 가만 보면 마교 놈들보다 더 지독한 것 같아.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강행할 수가 있지?”

그런 당옥기의 말에 정현은 정론을 꺼내놓았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환경이기에 강호생활백서 수업과는 알맞다고요. 빈도가 보기에도 확실히 강호에서 살아남는 수업과 이 환경은 맥이….”

“캭!”

그에 당옥기의 미간에 핏대가 서는 이때.

은하연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옥기야, 참아. 정현 도장에게 힘을 뺄 게 아니야. 오늘 ‘그거’ 하는 날이잖아?”

“아, 맞다. ‘그거’ 하는 날이지 참? 그래. 이 분함은 거기서 풀겠어.”

뭔 짝짝꿍이 저렇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이 바로 향란관 올빼미들에게 화생방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준비됐지 옥기?!”

“물론이지 하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은 소저, 당옥기. 듣자 하니 무슨 분풀이를 하는 장이나 사람을 못살게 구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재발 방지 교육은 엄연한 수업의 현장이고 교육장은 신성한 공간이오.”

그러자 하성이 녀석이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고.

“쓰흡. 참 옳은 말씀이긴 한데, 용운 형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을까요?”

곁에 있던 소릉이 녀석이 고개를 끄덕여 댔다.

“그건 은 형 말씀이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이것들이 많이 컸네. 일로 와. 일로 안 와?”

“혀, 형님. 지금 엄연히 수업 중입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당옥기가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됐고, 이따 보자 향란관. 아주 눈물 콧물을 다 빼주마.”

…항상 생각하는 건데.

쟤는 본인이 향란관 소속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 거 같다.

* * *

한편, 하북땅 진주에서는 하북삼협이 밥 한 끼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학관이 마교에 습격받았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잘 막아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중이었다.

하여, 본디 세 사람이 모이는 날엔 좋은 술이 함께 따라와 상에 올라왔으나.

사태가 사태인 만큼 금일 모임은 맨정신에 이루어졌다.

“자, 그럼 오늘은 이쯤 하지. 아까 이야기한 대로 내가 북쪽과 모용세가가 있는 동쪽을 주시할 테니 정웅이 자네는 처가와 연계해서 서쪽을, 석 가주 자네는 남쪽과 육로를 통해 들어오는 소식들을 신경 써 주도록 하게.”

“예, 의형.”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임 자체도 정말로 밥 한술씩만 뜨고는 파하게 되었는데.

손님들이 떠난다는 소식에 안채에서 나온 이화 부인이 짐짓 섭섭한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버님, 석 가주님. 벌써 가시렵니까?”

“아, 제수씨. 정웅이에게 들었겠지만, 마교 놈들이 학관을 습격해서요.”

“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간덩이를 가진 놈들이면 하북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제수씨 음식 솜씨를 더 누리고 싶지만, 빨리 가서 소의 주둥이에 칼을 좀 물려야겠습니다.”

하나 이 와중에도 팽무혁의 ‘재치’는 멈추지 않았다.

“…소의 주둥이에 칼을 물리신다고요?”

“검문소를 설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부인.”

“…아. 아하하. 아주버님도 참.”

그에 이화 부인이 입을 가리고 호호 웃고 있는 가운데.

석씨세가의 가주 석금필이 부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 댁 큰 아드님이 또 한 건을 해냈습니다. 부인, 용운이 녀석이 글쎄 마두를 제 손으로 베어내고 학관을 지켜냈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에 언정웅의 입꼬리가 주책없이 비실거렸는데.

이때, 이화 부인이 서글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찌 그리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는가 싶어서 마음이 미어집니다. 누구한테 인정을 받으려고 저러나 싶고 그렇습니다.”

“…….”

팔랑거리던 언정웅의 입꼬리가 우뚝 멈추는 순간이었고.

팽무혁과 석금필으로서는 황급히 자리를 떠야 함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허허. 그, 그럼 나는 이만. 제수씨 잘 먹고 갑니다. 또 보세, 정웅.”

“…저, 저도 이만.”

그렇게 손님으로 온 두 사람이 떠나가고 나자, 이화 부인의 얼굴에 남아 있던 일말의 온기가 걷히고 냉랭함이 찾아들었다.

“상공.”

“…말씀하시오, 부인.”

“용운이에게 집에 한 번 들르라는 서신은 쓰셨는지요?”

“…내 손으로 쫓아내고 아직 복권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집으로 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소. 그건 법도가 아니오.”

“그러니까 애초에 제가! …후. 그건 상공의 사정이시지요?”

“…….”

“호적에서 파였다 하나 배 아파 낳은 자식임이 틀림없는데, 어미가 밥 한 끼 먹이겠다는 게 어찌 법도에 어긋난답니까? 하면, 소첩이 지금 즉시 용운이가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쓰겠소. 서신. 지금 바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