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08화 (208/444)

제208화. 돌아온 망나니 (3)

장로원을 언급하며 압박을 했으나, 언정웅도 나도 꿈쩍하지 않자 언길회가 씩씩거리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후회하지 않겠소?”

아버지는 그런 언길회를 향해 긴말 없이 축객령을 내렸다.

“보시다시피 집을 찾은 객이 많아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떠나라는 말이었고.

언길회를 더는 웃어른이 아닌, 진주언가의 많은 분가 중 하나로 취급하겠다는 의지였다.

그 사실을 눈치챈 어머니도 빙그레 웃으시며 언길회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작은 아버님, 아까 기름 냄새가 나서 오셨다 하셨는데, 이를 어쩌지요? 아이들이 먹성이 좋아 볶거나 튀긴 음식이 없습니다. 식은밥이 좀 있긴 한데 싸드릴까요?”

그에 얼굴이 벌게진 언길회가 곁에 서 있던 두 장로에게 노성을 냈다.

“다들 가세!”

그리고 소맷자락을 신경질적으로 펄럭이며 진주언가를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사부님께서 웃으셨다.

- 끌끌끌. 찬밥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말을 저리 고아하게 하다니. 챙겨 주겠다는데 욕도 못 할 것이고. 용운이 네 녀석의 사람 먹이는 솜씨가 어디서 왔나 했더니, 모전자전이었구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구경하고 있던 언동생들도 내 쪽으로 달려와 한마디씩을 해왔는데.

가장 먼저 천장호가 취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크으! 역시 용운 형! 이 형님은 위건 아래건 수틀리면 그냥 거침이 없으시지!”

“…저는 언 형이 주먹까지 뻗어내실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근데 작은할아버지뻘인 분께 저래도 괜찮은 건가요? 정현 도장?”

“언 소협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분이지 않습니까, 우 소협. 그르다고 생각되면 누구라도 막아서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가문을 나올 각오도 하는 분인 것을요.”

“알죠. 제 말은 그래서 괜찮은 거냐고요.”

“단편적으로 보면 장유유서의 도리를 범한 듯하여도, 제가 보기엔 엉킨 매듭을 단칼에 내리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가주님의 표정부터 좀 후련해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런 도(道)도 있음을 배웁니다.”

그러던 중에 뇌가 청순한 소천이 형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근데 정현 너랑 무당파도 비슷한 거 아니냐? 그럼 오늘 배운 도를 써먹어 버려.”

그에 내가 한마디를 하려는데.

“소천이 형.”

그러기 전에 팽소진이 이마를 싸쥐며 입을 열었다.

“돼지 너는 생각을 좀 하고 말해. 비슷하긴 뭐가 비슷해. 언가는 세가고 무당은 문파인데, 어른들이 나잇값 못한다는 거 말고는 완전히 다르지.”

“아.”

“아는 무슨. 이해도 못 했으면서? 아무튼 정현아…. 그, 돼지가 생각이 좀 없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

“아닙니다. 팽 소협께선 순수하게 악의 없이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얘가 조금 모자라지만 심성은 착해. 그나저나 진강장주를 저렇게 보내도 되나 모르겠네? 언가는 장로원이랑 종친회와의 관계가 좀 복잡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는 중에 언정웅이 팽소진을 불렀다.

“소진아.”

“예?”

“네가 함께 온 소협들을 좀 챙겨주겠느냐? 보시다시피 집안일이 좀 생겼구나.”

“그렇게 할게요, 숙부.”

“용운이랑 용명이는 나를 따르거라. 가주전으로 좀 가자. 부인도 가주전으로 갑시다.”

“예, 상공.”

“맹주님도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방금의 이야기도 좀 해야겠고, 못다 한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 * *

가주전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어머니께 말을 걸었다.

“…어머니? 본의 아니게 또 소자가 걱정거리를 늘린 듯합니다.”

“아니다. 솔직히 시원했느니라.”

그런 내 말에 어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시더니, 아버지를 응시하셨다.

“그나저나 상공?”

“말씀하시오, 부인.”

“작은 아버님을 찍어누르실 줄이야. 너무도 상공답지 않으신 일이라, 소첩이 얼떨떨합니다?”

“…크흠. 천하가 어지러운데 언가의 결집을 훼방 놓으시는 작은아버님과 장로들을 그냥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은 줄곧 하고 있었소.”

“예. 말 그대로 생각만 하고 계셨었지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길래 칼을 빼 드셨습니까? 용운이가 면전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니 마음이 쓰이시던가요?”

“…큼. 마음이 쓰이기는 무슨. 부인께서 실없는 말씀을 하시는구려.”

“푸흡. 이따가 저녁상에는 상공께서 좋아하시는 양고기를 잔뜩 넣은 양육포막를 올려야겠네요.”

“…큼. 크흠.”

어쩐지 조금 풀어진 듯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류.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민망하셨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셨다.

그리고 앞에 앉은 공손무결을 응시하며 화제를 돌렸다.

“송구합니다. 가문이 하나가 되어 맹에 힘을 실어드려도 모자란 시국인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나저나 맹주께서는 자칫 제 역성을 들어주신 것으로 비칠 수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역성이라니요. 우환을 만들려는 자들이 누구인데요. 애초에 제가 걸음을 한 이유가 하북과 요동의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그게 오늘 나서신 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의 되물음에 공손무결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였다.

“진강장주가 모용세가와 교감을 나눈 것을 가주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저와 마찰을 겪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 진강장인지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교감은 단순한 친목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군사부의 분석에 따르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공유가 여러 차례 이루어진 동맹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흠.”

“이번에 빙궁에서 나온 산물들의 값이 폭등한 사태에서 확인된 바 있지만, 모용세가는 천하의 안정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모용세가와 진강장의 동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까지 듣고 나자,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작게는 진주언가의 장악.”

그러자 공손무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작게는, 이라. 어째서 진주언가가 작다고 말하는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동맹은 둘이 하는 것인데, 진주언가의 장악은 진강장주 쪽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호오. 그럼 그 뒤에 남은 말을 더해보겠나?”

그런 공손무결의 말에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말했다.

“모용세가가 원하는 것이 튀어나와야 하겠지요. 아마도 하북 팽가의 고립, 아니 고사를 바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동맹의 이익이 일치합니다. 하북팽가가 무너지기만 하면, 모용세가는 도(刀)의 종가라는 명분과 하북의 북편까지 세력 확장을 할 수 있게 될 테고….”

“진주언가는 북편 땅을 모용세가에 좀 떼어 주더라도, 애초에 팽가라는 호랑이가 없어지니 하북언가로 이름을 바꿔도 될 정도의 세를 누리게 되겠지.”

공손무결은 쭉 듣고 있다가 마지막 말을 가로채더니, 아버지를 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그나저나 대군사님이 데려다 쓰고 싶다고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던데 척하면 척입니다. 토씨만 다르지 대군사님이 제게 하신 말씀을 용운이 이 녀석이 그대로 하는군요. 가히 천하를 지탱할 동량이라 하겠습니다.”

“허허, 뭐 그런 말씀을….”

나에 대한 칭찬이 듣기 좋으셨는지 아버지의 입꼬리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하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언가의 가주로서 잘 알고 있었기에, 이내 표정을 고쳐잡으셨다.

“…큼. 그나저나 팽가가 무너지며 얻게 되는 이익이 어찌 저희 가문의 이익이 될 수 있겠습니까. 휘말릴 민초들이나 무림인들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니까요?”

“…흠.”

“그런고로 제가 하북에 온 이유와 가주님과 진강장주님의 갈등과 맥이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한데 가주님.”

“말씀하십시오.”

“진강장주가 마지막에 말한 검증이라는 게 결국 용운이가 언가에 돌아올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라는 것일 텐데. 강시종의 맥을 복원한 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결국 내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백본회랑 사정이 비슷합니다. 거기서도 표결권이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눈 가리고 아웅을 해버리면 충분한 공도 한순간에 별거 아닌 것이 되곤 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하면?”

“제 생각에는 언가권을 증명해 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용운이 이 녀석이 어린 시절 권사의 길에 뜻을 두지 않았음을 장로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귀결된 이야기 속에 아버지는 나를 향해 물었다.

“언가권은 기억하고 있느냐?”

아, 언가권.

그거….

전혀 모르는데요?

* * *

씩씩거리며 진강장으로 돌아온 언길회는 장로 자격을 가진 다른 분가들에 연통을 넣어 장로 회의를 소집했다.

“망나니 녀석이 진주로 돌아왔다지요?”

“그렇답디다. 복권도 되지 못한 녀석이 무슨 낯으로 진주에 왔는지.”

“말씀 중에 죄송한데 망나니라는 말은 이제 거둬야 하는 것 아니겠소? 마교를 쫓고자 일부러 그런 것이라지 않소? 우리 언가의 숙원중 하나였던 강시종의 맥도 복원을 했다고 하고.”

“흥! 정균이 자네는 오늘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구먼, 일언반구도 없이 언가 전체에 먹칠하는 바람에 입은 손해는 어쩔 것인가? 그리고 숙원은 무슨 숙원! 시체 만지는 잡기 따위로 무슨 좋은 소리를 듣겠다고.”

모인 장로들을 바라보며 언길회는 생각했다.

‘잘됐구만.’

장로원이 언길회의 손에 들어온 지 오래였지만.

그렇다고 장로원이 그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당한 일을 늘어놓으면 내 뜻대로 움직여 주겠지.’

개인적으로는 개망신을 당하고 온 참이었지만, 진강장의 대업에는 나쁘지 않았다.

언길회는 비릿한 미소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금일 이리 다른 장로 여러분들을 모신 이유는, 이 사람이 언가에서 쫓겨난 용운이 녀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녀석을 위로하러 갔다가 참담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오.”

그리고 자신이 본가에 가서 벌인 행패는 쏙 빼놓고, 당한 일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뭐 그런 일들이 있었소. 팽가는 깍듯이 형님 대접을 하면서, 정작 제 작은 아비는 이리 핍박하는구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오.”

그러자, 이따금 입바른 소리를 해 반골 취급을 받는 진평장주 언정균이 턱을 감쌌다.

“가주님이 정말로 그렇게 나오셨단 말입니까?”

“여기 두 분이 이 늙은이와 함께 계셨으니 물어보시오. 내 말에 틀린 바가 있는지.”

다른 장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허, 용운이 녀석이 돌아왔다는 말이 제 귀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망나니 녀석이 일을 칠 줄 알았습니다.”

“가만히 계실 것입니까? 어르신께 그런 망신을 주고 가주 직권을 내세워 장로원의 권위를 훼손하다니, 용운이 녀석을 다시 찍어내야 합니다!”

“종친회를 소집하여 검증회를 여시지요. 그리고 장로들이 직접 참가합시다! 그 망종은 흠씬 두들겨 맞아도 정신을 차릴까 말까 한 위인입니다!”

“옳습니다. 일석이조로 언 가주와 이화 부인에게도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회장의 분위기가 달궈져 가는 와중, 언길회의 친손자인 언용묵이 주위를 향해 예의 바르게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그 자리에 나서고 싶습니다.”

그런 언용묵의 음성에 여러 장로가 반색했다.

“호오. 용묵이 너도?”

“괴룡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겁이 나지 않느냐?”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저 기개를 보이고 싶을 뿐입니다.”

“인물이야! 인물이로세! ”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진강장의 사랑채에서 언길회가 언용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용묵이 네가 나서며 회의가 아주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긴 했다만, 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느니라. 녀석이 괴룡 소리를 노름으로 딴 것은 아닐 것이다. 자칫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느니라.”

“그렇겠지요. 한데 그 이름을 헌납한 자들이 모산파의 도사들 아닙니까?”

“계속해 보거라.”

“강시종의 맥을 복원한 것은 사실이겠지요. 하나 무위에 관한 이야기는 글쎄요? 할아버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용운 형…. 아니, 언용운이 그 자식이 제게 처맞고 어느 순간부터 슬슬 피해 다녔다는 것을요. 그 모습은 절대로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오류였다.

들려오는 소식이 너무도 대단한데, 언용묵이 직접 겪고 보아온 언용운이라는 인물은 완전히 하찮았던 것에서 발생하는 괴리에서 기인한 오류.

“하나, 이 할애비가 직접 본 바로도 용운이 녀석의 기세과 전혀 달라진 것으로 보였느니라, 초절정에 들었다는 소문도 있지 않으냐.”

물론, 언용묵은 제 할아버지만큼이나 교활한 자였다.

“그러니까 할아버님께서 판을 제 쪽에 유리하게 짜주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분가에서 내세운 권사나 장로님들이 먼저 나가고 마지막에 제가 나가는 거지요.”

“앞에서 그 야생마 같은 놈의 힘을 다 빼놓고 나면 용묵이 네 녀석이 올라타겠다는 것이냐?”

“예. 그전에 녀석이 포기를 하면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기개를 보인 것이고요.”

“껄껄껄. 이런 앙큼한 녀석을 보았나!”

두 사람은, 언용운을 몰아넣을 계략을 짜며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다.

* * *

아버지는 장로원에서 검증회를 실시하려면 두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하셨다.

우선 본인들끼리 뜻을 모아야 하고.

그 뒤에 종친회를 따로 소집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린다고 하셨지.’

그동안 나는 언가권을 상기해 보기로 했다.

‘나로서는 상기가 아니라 처음 배우는 거지만.’

하여 어른들이 남은 말씀을 나누시는 동안 언윤각으로 돌아와 용명이 녀석과 마주 섰는데.

용명이 녀석이 하라는 기수식은 취하지 않고 죽상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괜히 제가 본가에 오자고 해서 형님이 고초를 겪으시는 것 같습니다.”

“됐다. 언젠가는 겪었어야 했을 일이야.”

모용세가가 물밑에서 헛짓거리하고 있었음이 밝혀진 이상 잘된 일이기도 했다.

언제고 발목을 잡을 진강장 놈들도 밟아주고, 겸사겸사 모용세가의 암계도 깨부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일석이조였다.

‘아버지도 세가 운영이 더 편해지실 테니…. 그럼 일석삼조인가?’

“그렇게 저를 배려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 때문인 게….”

“야, 됐고. 수련이나 하자.”

“예. 하면 제가 초식을 하나씩 보여드려 보겠습니다. 보시면 생각이 날 겁니다.”

“아니,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나한테 초식을 써봐.”

“예?”

“그 검증회라는 게 얌전하게 초식을 기억하고 있는지 검사 맡는 자리가 아니잖아? 싸우는 자리 아냐?”

“맞습니다.”

“그러니까 써보라고.”

내 말에 용명이 녀석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예의 바르게 기수식을 취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하나 이후에 녀석이 질러내기 시작한 권기는, 결코 예의가 바르지 않았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빽빽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주먹들.

속도는 바람처럼 빨랐지만, 그 무게는 바위처럼 무거웠다.

붕-!!

용명이 녀석이 주먹을 지를 때마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들렸다.

위력이 상당하다는 건, 맞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멍하게 맞았다가는, 턱이 돌아가고 내장이 진탕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해볼 만한데?’

기실 언가권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회피하며 동작이 눈에 익으니 해볼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비영파천보가 있었고.

항룡장을 배우며 익힌 초근접거리에서 권장으로 이루어지는 싸움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으니까.

휙! 휙! 휙! 휙! 휙!

늘어지는 시간 속에 용명이 녀석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나는, 발견한 틈에 일권을 밀어 넣었다.

펑!!!

그에 용명이 녀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걸음을 물렸다.

“방금 그 움직임은… 권당갈력(拳當竭力)…?”

뭔데 그게.

“앞의 동작은 항룡장에 기반을 두고 계신 것 같았지만, 적어도 마지막에 하신 동작만큼은 완벽했습니다! 아버님 앞에서 다 잊어버렸다고 하시길래, 아주 놓으신 줄 알았는데 기억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언가권의 동작 하나를 완벽히 소화해낸 모양이었다.

“…혹시 따로 언가권을 수련해 오신 겁니까?”

“아니, 그냥 너와 맨손으로 합을 섞다 보니 묘리가 떠올랐을 뿐이다.”

“묘리요?”

“그래 안 맞고, 개 패면 된다는 묘리가.”

“…….”

-…묘리라길래 뭔 소리를 하나 했는데, 참으로 고상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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