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돌아온 망나니 (7)
성대한 잔치와 함께 종친회가 막을 내리자, 진주언가를 찾았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돌아갔다.
그중에는 내게 운등류를 알려 주겠다고 한 진평장주도 있었다.
“가주님 내외께서도 허락을 해주셨고, 자네도 의지가 있으니 나는 잠시 진평장으로 돌아가서 장원 단속과 채비를 해서 수일 내로 다시 오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하나, 모든 손님이 떠나는 와중에 공손무결만은 진주언가에 남았다.
기본적으론 진강장 수색에서 나온 서류들을 아버지와 함께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주전에만 계셨던 것은 아니셨다.
그는 틈틈이 팽소진의 수련을 감독했다.
“소진아. 거기선 더 뻗어야지.”
그러면서 이따금 나와 언동생들의 성취도 살펴주셨다
“용운이 자네는 잘하고 있어서 지금 단계에서는 달리 할 말이 없군. 아, 진평장주님의 권각술을 익힌다면서?”
“진평장주님이 댁에 가셔서 아직 시작은 안 했는데, 그러기로 했습니다.”
“잘했네. 경쾌한 권법이 자네가 사용하는 보법과 어울릴 것 같기도 하지만, 자네랑 비슷한 시기의 나를 떠올려 보면 검술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걸세.”
“그렇습니까?”
“내 경우엔 이것저것 해보는 게 도움이 됐네. 단, 이래저래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데…. 그거야 누구보다도 잘하는 후기지수가 자네이니. 타격대의 대원들이 자네 반만 닮아도 좋겠구만.”
내게는 덕담과 함께 심신의 조화와 익힌 무공들의 균형을 신경 쓰라는 조언을 했다.
언동생들과는 직접적으로 합을 섞기도 했다.
휘리릭!
챙! 챙강!!
“우소릉. 방금은 왜 멈칫했나.”
“…어. 맹주님께서 쉽게 막으실 것 같아서요.”
“상대가 자네보다 한참 위의 고수라 하더라도 일단 검을 들고 마주 선 이상 그렇게 겁을 내서는 안 되네.”
“…네.”
“멈춘다는 판단은 좋았네.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다음 동작을 뻗어내야 한다는 것만 유념하게.”
“네!”
우소릉에게는 꾸지람과 격려를 섞은 조언을 했고.
채챙!!
“소천이 자네는 젊은 시절의 팽 선배를 보는 것 같군. 다만 투로가 너무 정직해.”
“음?”
“뭔 소린지 잘 모르겠으면, 언용운 이 친구가 검증회에서 싸우던 모습을 한번 상기해 보도록 하게.”
“아!”
소천이 형에게는 직관적인 조언을 건넸다.
펑! 펑!
퍼퍼퍼펑!!!
바쁘게 권장을 교환하고 있던 언용명과 천장호 쪽은 쭉 지켜보시다가, 한마디씩 건네셨다.
“용명이 자네는 조금 여유를 갖게. 차분한 성정을 가지고는 속에 조바심이 가득하군. 형님이 너무 앞서 나가서 그런가?”
“조바심까지는…. 그저 형님과 진주언가가 갈 길에 누가 되지 말자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조바심일세.”
“…….”
“그리고 천장호.”
“저런 생각 저는 추호도 한 적이 없는데요?”
“자네는 좀 하게, 조바심을 좀 내야 해.”
정현에게는 별말이 없었는데.
입으로는 아무 말이 없었어도 검초 속에 할 말을 녹여낸 모양이었다.
채챙!
채채채채챙!
지도 대련이 끝난 직후 정현이 선 자리에서 한참이나 상념에 잠겨있던 모습이 그 방증이었다.
“…….”
그렇게 닷새 정도 되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공손무결과 팽소진도 하북팽가가 있는 보정 땅으로 가기 위해 진주언가의 대문가에 섰다.
“살펴 가십시오 맹주님.”
“예, 가주님. 나눈 이야기들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아, 부인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접을 너무 잘 받고 갑니다.”
“변변찮았습니다. 언제든 또 들러 주십시오.”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공손무결의 시선은 우리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함께하면 좋겠으나,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구만. 또 볼일이 있을 걸세.”
나는 언동생들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예. 다시 뵙는 그 날까지 보중하십시오.”
“그래 남은 방학 기간을 알차게 보내길 바라네.”
그렇게 공손무결이 인사를 끝내자.
팽소진이 우리 부모님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숙부, 숙모. 건강하세요.”
“오냐. 의형께 안부 전해주거라.”
“소진이 너도 건강해라.”
“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그. 고마워.”
“검을 쥐어보라고 맹주님께 소개해 드린 거 말씀입니까?”
“응. 여기 온 첫날에 네가 나보고 확실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그랬는데, 그 말이 딱 맞더라.”
검을 쥐라는 권유에 대한 감사는 이전에도 받은 바 있었다.
하나, 막 제자가 됐던 당시보다 어느 정도 성취를 본 지금 팽소진이 느끼는 감회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뭐가 더 있습니까?”
“하북에 오면서도 사실 부모님 얼굴을 어찌 뵙나, 좀 걱정이었는데. 숙부랑 숙모 그리고 너를 보니까 뭔가 나도 용기가 생기네.”
하기야 팽무혁과 팽소진 간에는 아직 풀어야 할 매듭이 남아 있었다.
‘산서에서 만났던 무혁 백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소진 누님이 저렇게 먼저 다가가기만 하면 잘 풀리겠지.’
잘된 일이었다.
원작에서 겪었을 마음고생을 하지 않게 된 팽소진 개인에게도, 장차 팽소진이라는 검수가 필요해질 천하에도.
다만, 부모님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니 좀 멋쩍었다.
나는 어색함을 줄이고자 빚으로 달아 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맨입으로 고맙다고 하시지 말고 나중에 다 갚으세요. 달아 놓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감동적일 뻔했는데 거기서 빚쟁이 같은 소리를 하느냐. 에라이….
‘제자를 무슨 노랑이 취급을 하십니까? 저도 간질거려서 저런 말을 한 겁니다, 사부님.’
- 그럼 빈말이라는 이야기냐? 정말로? 완전히 순수하게?
‘반 정도는 진심이긴….’
- 반? 정말로 그것밖에 안 된다고?
‘…칠할?’
- 에라이.
그렇게 공손무결과 팽소진은 진주언가를 떠났다.
떠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팽소천을 향해 물었다.
“근데 소천이 형은 왜 안 가?”
“…부모님과 누님이 말씀을 나누실 때 내가 있으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울 것 같아서.”
한데 소천이 형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왔다.
“음?”
“예?”
“허?”
“응?”
“뭣?”
그에 남은 언동생들이 경악했고.
팽소천은 나를 향해 물었다.
“반응들이 왜 그러냐? 아, 방금 그 말 축객령이었나? 나도 그냥 갈까?”
“아니, 가라고 한 말은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물은 건데. 형 입에서 나온 대답이 너무 놀라워서 그렇지.”
“놀라? 왜?”
그 물음에 답하자 소천이 형은 미간을 좁혔고.
천장호는 길길이 날뛰면서 팽소천의 상태를 살폈다.
“왜라니! 소천 형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러지! 어디 머리 크게 박았수? 아니면 뭐 총명탕같은 거 드셨나?”
그 바람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는 사이.
히히힝!!
멀찍이서 달려온 마차가 대문 근처에서 멈췄다.
멈춘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진평장주였다.
“음? 이 사람이 올지 어찌 아시고 다들 나와 계십니까?”
무뚝뚝한 진평장주가 착각을 하는 모습은 우습기 그지없었다.
하나, 그와 별개로 단내나는 나날의 시작이기도 했다.
* * *
천하를 도도히 가로지르는 장강.
남직예 땅에는 그 장강의 북안을 끼고 발달한 아름다운 도시 안경(安慶)이 있었다.
안경은 장강을 끼고 발달한 요지라, 고대로부터 수운은 물론이고 군사적 요충지로도 주목받는 곳이었다.
하나, 강호인들이 안경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다름 아닌 천하제일세가라는 말이었다.
챙!!!!!!!!!!
천하제일세가 남궁세가.
세인들이 부르고, 구성원들이 자부하기를 천하 무가 중 으뜸을 주저치 않는 남궁세가, 그 자존심만큼이나 높이 쌓인 담장 안에 있는 연무장.
이 연무장에선 남궁윤이 별호처럼 불렸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하제일 후기지수.’
한때는 그 이름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고 자란 세가부터가 천하제일가문 소리를 듣는 남궁가였다.
그중에서도 적장자로 태어난 게 남궁윤이었고.
단순히 피만 진한 것이 아니라 천재성도 갖추고 있었다.
몇 번이고 천하제일검을 배출한 그 남궁세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몇 없을 정도로 남궁윤의 성취는 빨랐다.
‘…그 말에 취해 목을 꼿꼿이 하고 있는 동안 언용운은 정말로 가슴에 천하를 품었다.’
치미는 부끄러움에.
남궁윤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진주가 있는 하북 방면으로 옮겨갔다.
그런 남궁윤에게서 일곱 걸음쯤 떨어진 곳에는 은하성이 엎어져 있었다.
“흐억. 헉. 흐어억.”
눈앞의 장강을 넘어 관도를 따라 내려가면 닿을 수 있는 고향 땅 휘주를 두고,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은하성은 자신에게서 눈을 떼는 남궁윤을 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재수 없는 새끼. 아주 한눈까지 파네. 빌어먹을.’
하나, 남궁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은하성은 알고 있었다.
‘용운 형님.’
하여, 재수 없는 새끼라는 말은 남궁윤을 향한 것이었으나, 빌어먹을이라는 말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저 괴물 같은 남궁윤보다 앞서 있는 게 용운 형님이다.’
은하성은 까드득 이를 물었다.
그리고 쥐고 있는 검을 지지대 삼아 녹초가 된 몸을 일으켰다.
* * *
“…마지막으로 격표백산이네. 본가의 격표백산은 두 다리가 땅에 붙어 있어야 제 위력을 낸다만, 운등류는 한발을 뗀 상태나 몸을 띄운 상태에서도 이 초식의 위력을 살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네. 그 끝에 초식과 내력의 운용법에 변형을 주었지.”
사부님은 물론이고 노삼 교수님도 인정한 것이 내 오성이었다.
아울러 항룡장과 형의 일부가 닮은 초식이 제법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 보겠네.”
휙!
휘휙! 팍!
‘음. 비룡재천이랑 비슷한데?’
덕분에 진평장주가 일러주는 초식을 익히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인데, 이번에도 한 번 보고 이해를 했나?”
“예. 왼손은 언제든 수세를 취할 수 있도록 풀어 놓는다. 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볍게, 주먹은 허리에 붙이는 게 아니라 시위를 당기듯 이렇게. 아닙니까?”
“맞네.”
“한데 왜 표정이 그러십니까?”
“…자네의 습득이 너무 빨라서 내가 좀 놀랐다네. 초식 자체는 이제 가르칠 것이 없네. 이제 숙달과 실전성을 기르기 위해 대련을 해보는 것이 필요한데,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겠나?”
“대련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되면 진평장에 연락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하기야. 우리 운등류가 그렇게 쉬운 무공은 아니지. 그렇지 않나?”
“예. 뭐.”
“대련을 통한 숙달은 자네 뜻대로 하도록 하지.”
다만, 운등류라는 유파를 내 몸에 딱 맞는 옷으로 만드는 것에는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습니까, 사부님?’
- 예상대로 파천 신공과 잘 어울릴 것 같구나. 버릴 것은 버리고 다듬을 것은 다듬어야겠지만.
그 뒤로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새벽같이 눈을 떠서 다른 언동생들과 늘 해오던 오금희(五禽戱)와 체력단련을 실시했고.
“기상!”
“기사아아앙!!!”
“…괜히 왔어! 거지새끼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용운 형을 따라왔지?!”
어머님이 챙겨주시는 끼니를 먹어가며, 사부님과 함께 운등류의 초식들을 파천신공에 맞게 다듬어 냈다.
- 방금 초식은 도약이 필요한데 이는 위력이 부족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파천신공과 네 내력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싶구나?
‘그렇죠? 저도 그냥 권장을 있는 대로 쏟아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렀다.
그리하여 어느덧 방학 기간의 삼 분의 이가 훌쩍 지난 시점.
나는 그동안 다듬어 낸 운등류, 아니 파천권법을 선보이기 위해 다시 한번 진평장주와 만나기로 했다.
내가 숙달한 운등류를 보인다는 말에 아버지도 참석하셨다.
“어서오십시오, 진평장주.”
“가주님을 뵙습니다.”
다시금 진주언가를 찾은 진평장주는 어째선지 뿌듯한 기색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흠흠. 초식의 습득이 워낙 빨라서, 나를 다시 찾기까지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만?”
내 숙달이 늦었다는 책망이라기보다는, 운등류가 그리 쉬운 유파가 아니라는 것 자체가 기꺼운 모양이었다.
“제가 사용하는 심법에 딱 맞게 이래저래 조금 바꿔보다 보니 시일이 좀 걸렸습니다.”
“운등류에 변형을 가했다고? 가주님께서 혹 도와주셨습니까?”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무공을 다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조금 걱정이 되지만 일단 연무장으로 가보세.”
그렇게 진편장주는 뿌듯함 반, 우려 반.
두 감정이 공존하는 얼굴로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자네가 먼저 들어오겠나?”
“예.”
그 두 가지 감정은 대련이 시작되자 곧바로 걷혀나갔다.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땅을 박차며 쏟아내기 시작한 파천권법에, 진평장주는 말 그대로 당황했다.
“?!”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이 아는 초식이라 생각했는데, 투로가 전혀 다른 방향과 세기로 진행되고 있었으니.
펑! 펑!
퍼퍼퍼펑!!
생전 처음 보는 권법을 마주하는 것보다도 이쪽이 훨씬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당황 속에 진평장주는 내게 일격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빠악!!!
“컥!”
아버지와 나는 다섯 보쯤 날아 연무장에 널브러진 진평장주를 향해 달려갔다.
“진평장주? 괜찮소?”
“괜찮습니까 장로님?”
진평장주는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이건 운등류가 아니야.”
그리고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큰 도련님이 아무래도 대종사가 될 자질을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