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돌아온 망나니 (8)
강호에서 대종사라 함은 무공을 창시해 문파의 근간을 마련한 개파조사를 일컫는다.
‘대표적으로는 소림의 달마대사나 무당의 삼봉진인.’
즉 진평장주는 내 자질을 그런 사람들에게 견주며, 후세까지 이름을 남길 문파를 개창할 만하다는 평을 한 것이었다.
우직한 성정만큼이나 단호한 표정을 보니, 아첨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진평장주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진평장주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것 같기는 해.’
그의 눈엔 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운등류를 솜처럼 흡수해서 전혀 다른 무공을 내놓은 것으로 보일 테니까 말이다.
하나, 내가 운등류를 파천권법으로 다듬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부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 진평장주라는 자가 심지만 곧은 줄 알았더니, 보는 눈도 조금은 있구나.
한데, 정작 사부님께서 흡족해하셨다.
나는 사부님을 향해 말했다.
‘…근래 제자 놀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신 것 같은데, 그쯤 하십시오. 슬슬 진심으로 부끄러워지는 중입니다.’
- 내가 지금 네 녀석 얼굴에 일부러 금칠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아닌데?
‘……? 파천권법을 다듬어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영락없이 놀리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요?’
- 칠할 쯤은 내 덕이긴 하지. 하나, 떠먹여 주는 것을 제대로 받아먹을 수 있는 것도 자질이다.
‘…….’
- 달마도 벽을 보던 세월이 있었고, 장삼봉도 장군보라 불리던 세월이 있었다. 나도 사부이신 만박두타께 꿀밤을 맞던 시절이 있었느니라. 앞의 두 사람은 몰라도 검을 쥔 나날을 감안하면 네 오성이 결코 나 못지 않으니….
‘…….’
- 자만은 경계해야겠지만. 스스로의 자질을 명확히 보는…. 음? 네 녀석이 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게, 재밌기는 하구나?
그렇게 사부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도 잠시.
나와 진평장주가 합을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여셨다.
“진평장주, 이 일은 비밀에 부칩니다.”
그런 아버지의 음성에, 진평장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명이라면 따르겠습니다. 한데,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큰 도련님의 무재가 뛰어나신 것은 언가의 홍복이기도 하고, 일전의 종친회가 나름대로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사람의 내심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은 말이 더 있으신 것 같은데, 일단 계속해 보시오.”
“여전히 속에는 다른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 도련님의 무재가 뛰어남을 알린다면,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는 사람이 생기지 못할 것입니다.”
진평장주의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종친회에서 마련한 검증회를 통해 나는 어느 정도 실력을 증명했고, 아버지는 위엄을 보이기도 하셨다.
하나, 그 자리를 통해 진주언가가 하나가 되었느냐 하면 그건 좀 애매했다.
‘진평장주의 말마따나 사람 속은 알기가 힘들지.’
뉘우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 자존심 상해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한 자도 있을 수 있었다.
진평장주는 후자에 해당하는 자들이 알아서 마음을 꺾도록, ‘이 정도는 돼야 소가주 자격이 있다.’라는 식으로 내 자질을 알리자는 것이었다.
하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진평장주가 종친회에서 내게 직언할 때 뭐라 하셨소? 어수선한 시절이라 하지 않았소?”
“그랬습니다.”
“그 어수선한 시절에 용운이가 너무 주목을 받고 있소. 강호에서는 본 실력의 삼할을 숨기라는 말이 있지 않소?”
“아.”
“지금까지의 공적도 의심하는 사람이 널렸는데, 굳이 팔불출처럼 용운이의 자질을 널리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예. 큰 도련님의 자질에 놀라는 바람에 제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방계 가문들의 충심을 끌어내는 일을 용운이를 도구 삼아 해결하고 싶지 않소.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겠소?”
“물론입니다. 주제넘은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아니오. 직언 고맙소. 그럼 용운이의 자질에 관한 것은 비밀에 부치도록 합시다.”
“예.”
아버지와 대화를 마친 진평장주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아버지께 포권을 취했다.
“하면 저는 이만 진평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 벌써 가시려고? 좀 쉬시다가 저녁이나 드십시다.”
“아닙니다. 큰 도련님과 겨루면서 느낀 감상을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아하.”
아버지의 권유를 마다한 진평장주 언정균은 나를 향해 깍듯이 포권을 취했다.
“내가 운등류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시작한 일인데, 이거 되레 공부를 하고 가네.”
“아닙니다. 제게도 공부가 됐습니다.”
“곧 정무학관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다시 보는 날까지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군. 건강하게.”
“예. 진평장주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버지를 잘 보필해 주십시오.”
“그리하겠네. 자네의 건승을 기원하지.”
그렇게 진평장주는 본인의 장원으로 떠나갔고, 나는 언동생들에게 돌아가 오후 수련 일정을 소화했다.
굵은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저녁때였다.
“큰 도련님. 식사하러 오십시오.”
나는 찾아온 시비를 따라 가주전으로 향했다.
가주전에 당도하니, 아버지께서 홀로 싱글벙글하시다가 짐짓 표정 관리를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흐흠. 흐흐흠. 대종ㅅ…. 크흠. 커흐흠.”
옆에 계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나를 향해 물으셨다.
“진평장주님이 용운이 네 권법을 봐 주러 왔다 가신 뒤로 온종일 저렇게 비실비실 웃고만 계신다. 용운아, 그 자리에서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내가 언제 온종일 비실거리고 있었다고 그러시오.”
“제가 지금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인가요, 상공?”
“…크흠.”
나는 그런 어머니를 향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를 두고 진평장주께서 칭찬을 좀 하셨는데, 그 일로 그러신 모양이네요.”
“…참나. 그게 그리도 좋으십니까?”
“크흐흠!”
시작된 식사 시간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진평장주와 아버지 사이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끄집어냈다.
“아버지?”
“왜? 양이 적으냐?”
“그게 아니라 아까 진평장주님과 나누시던 말씀 중에 방계 가문들의 충심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말해 보거라.”
“진평장주님은 오늘 뵌 참이니 제외하고. 다른 장로님들의 장원을 제가 한번 들여다보고 오면 어떻습니까?”
내 말에 어머니는 미간을 좁히셨고.
“네가 거기는 뭐 하려고?”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하셨다.
“장로들의 장원을?”
“맹주님이 그러셨듯 제가 감이 좋습니다.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본인들을 몸져눕게 한 제가 직접 댁을 찾으면, 민낯이 어느 정도는 튀어나오지 않겠습니까? 허락해 주시면 병문안이라는 명목으로 찾아볼까 합니다.”
진주를 떠나기 전에 장로라는 양반들이 들어앉은 장원들을 한 번씩은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흔쾌히 내 의견을 받아들여 주셨다.
“그리하거라. 네 말마따나 민낯을 보인다면 내 추가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런 조짐이 없다 하더라도 용운이 네가 병문안을 갔다는 사실만으로 본가의 면이 설 것이다. 기특한 생각을 했구나.”
* * *
그렇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나오자.
식사 자리에 함께 있던 언동생들 중 몇 명이 입을 열었다.
“용운 형은 어떨 때는 불같다가도 이럴 때는 또 얼음 같단 말이지. 저의야 어찌 됐든 병문안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신 것 자체가 신기하네. 언가의 장로라는 양반들은 진평장주 그분만 빼면 영 밥맛이던데.”
“근데 천장호 너, 밥을 세 그릇이나 처먹지 않았나?”
“…소천 형. 비유잖수, 비유. 아무튼 패버리고 싶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을 하신 것 자체가 신기하다 이 말이요.”
“그게 바로 언 소협이십니다. 저는 오늘도 도를 하나 배웠습니다.”
사부님도 한마디를 해오셨다.
- 정현이 녀석은 도를 배웠다 어쩐다 하는데…. 난 거지새끼와 동감이니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작자들 같으니라고.
‘저도 생각 자체는 사부님과 같습니다.’
내 성질대로 하라면야 혈족이고 나발이고 싹 다 족치고 싶었다.
‘하지만, 가문을 운영하는 일은 그런 식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반발심이 들어서 다 떨어져 나갈 테니까요.’
그건 진주언가의 실질적인 전력 약화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또 강호인들의 신뢰를 잃는 길이기도 했다.
‘세인들도 제 혈족들도 등을 돌린 집안이라고 수군거릴 게 불 보듯 뻔하죠.’
마교가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시국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됐다.
꼭 마교가 아니라도 모용세가 같은 곳이나 사파 놈들도 있었다.
- 복잡하구나, 복잡해.
‘복잡할 건 없습니다. 어차피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일인데요. 저는 슬쩍 가서 얼러야 할 집안인지 달래야 할 집안인지만 보고 오면 되는 겁니다.’
아무튼, 아버지께 허락을 얻은 나는 찾아온 이튿날 아침.
다섯 장원을 들여다보는 일을 함께할 사람으로 언용명과 우소릉을 지목했다.
“거기 셋은 너무 티가 나.”
다른 이유는 없었다.
변장까지는 아니지만 불시에 점검하기 위해 가는 것이니 변복 정도는 할 생각이었다.
‘…근데 그러기엔 정현은 너무 꼿꼿해.’
소천이형은 너무 컸고.
천장호는 너무 거지였다.
나는 언용명과 우소릉만 데리고 길을 나섰다.
제일 처음 목적지로 삼은 곳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강장이었다.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한 각 정도는 부지런히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권역이나 민심도 다른 곳이었기에.
나는 목도 축이고 진강장의 분위기도 탐문할 겸 근처에 있는 객잔을 찾았다.
“어서 옵쇼!”
식탁에 행주질을 하다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는 점소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목을 축일 것 좀 내와.”
“잡수실 것은요?”
“그건 필요 없고. 요즘 진강장 분위기는 어때?”
내 질문에 점소이는 난색을 표하며 말을 돌렸다.
“저 같은 놈이 뭘 알겠습니까요.”
“보고 알고 들은 만큼만 말하면 돼.”
말을하며 은자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자 점소이는 은자를 소매 춤에 자연스레 집어넣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진주언가의 망나니 도련님이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본가에 가서 손주 쪽은 도련님에게, 할아버지 쪽은 가주에게 당하고 왔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조용하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용한데?”
“문전성시를 이뤘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뚝 멈췄고, 식객들도 짐을 싸서 나갔습죠? 장원에 들어갔다 나온 의원 말로는 할아버지 쪽이 마음의 병이 깊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이때.
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용모가 단정치 못한 흑도 무리들이 우르르 들이닥치더니.
벌커덕!
가장 앞 열에 서 있던 흑도 놈이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언용운이, 오랜만이다?”
“…티가 난 건 나였나?”
내가 그 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점소이는 나와 흑도 놈들을 번갈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언용운? 무, 무사님께서 언가의 망나니…. 아니, 큰 도련님이셨습니까요?”
우소릉은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가며 나를 바라봤다.
“언 형?”
용명이는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옷에 쓰인 제비연자를 보아하니, 남연방(南燕幇)의 흑도인들 같습니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들인데, 저놈들이 왜? 형님이 지셨던 빚은 아버님께서 갚으셨을 텐데요?”
나는 일단 두 녀석에게 나서지 말라는 손동작을 취했다.
날파리 새끼들이 왜 꼬였는지 확인해 보려는 의도였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긴. 언용운 네가 진 빚을 받으러 왔지.”
“빚은 아버지께서 갚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네가 진주를 떠난 것을 기반으로 계산이 된 거다, 하북권웅의 체면값이 들어갔달까? 돌아왔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너를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우리 꼴이 아주 우스워져요.”
흑도 놈의 말에 사부님께서 헛웃음을 흘렸다.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상대의 무위 수준을 제대로 가늠도 못 하는 녀석이 뒈지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름대로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언용묵 같은 녀석도 덤볐는데. 저런 새끼들이야 눈에 뵈는 게 없는 건 당연하죠.’
점소이가 내가 언용운인줄 모르고 늘어놓은 이야기도 그렇고.
저 흑도 놈도 그렇고.
아직 하북사람들에게는 전(前) 용운이가 익숙한 모양이었다.
‘근데 말로 해서는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저러는지 털어놓지 않겠죠?’
나는 점소이에게 부엌으로 들어가라고 턱짓했다.
그리고 전낭에서 추가로 은자 다섯 냥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집기를 새로 들여야 할 주인장을 위한 배려였다.
나는 우득우득 주먹을 풀며 입을 열었다.
“일단 좀 맞자.”
* * *
빡! 빠악!!
빠아아악!!!!
객잔을 찾아온 날파리들은 허접한 무위를 가진 조무래기들이었다.
가장 앞에서 설치던 녀석이 대충 일류, 나머지는 이류나 삼류에 불과했다.
애초에 뵈는 게 없으니 덤빈 것이다.
때려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커흑. 그냥 언용운, 아니 공자님을 누가 이 근방에서 본 것 같다고 해서 온 것 입니다요. 하북권웅께서 갚으신 금액이 사실 원금 뿐이기도 했고요.”
문제는 어렵지 않게 때려잡은 만큼 이놈들에게 딱히 얻을 게 없다는 거였다.
“나는 잠시 진강장에 다녀올 테니까, 너희는 일단 손들고 있어. 하나라도 없어졌다간 다 뒈지는 거야? 소릉이 네가 보고 있어.”
“예, 언 형.”
하나, 일단은 진강장이 급했다.
나는 일단 남연방 놈들의 처분을 미룬 뒤에, 언용명과 함께 계획대로 진강장에 방문했다.
그렇게 방문한 진강장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용명아. 아까 그 흑도 놈들, 진강장이 배후는 아닌 거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본가에서 하사받은 세간을 압류당한 상태인 데다, 호위무사의 수를 제한받은 상태라 그렇기도 했지만.
일단 이 집의 지주였던 언길회는 정말로 주화입마가 와서 와병 중이었고.
‘언정진. 이 양반이 언길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질적인 소장주 역할을 언용묵이 해왔지.’
대신하여 나를 맞은 소장주 언정진은 애초에 심지가 약한 인물이었다.
“용묵이는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가주님께 말씀 좀 잘 해주십시오. 앞으로 진강장이 본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나, 그럼에도 언용묵은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녀석이었다.
‘내가 원작의 언용운과 다른 행보를 보인 상황에선, 이 녀석이 그 행보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런 생각에 나는 일부러 살기를 날카롭게 세우고 언용묵의 침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침상 위에서 끙끙거리고 있던 용묵이 놈이 귀신을 본 것처럼 누운 상태로 뒷걸음질을 쳤다.
“히익!”
나는 덕분에 생긴 침상 위의 공간에 걸터앉으며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주었다.
“용묵아.”
“예, 예!”
“형이 오다가 객잔에서 웬 잡놈들을 만났거든? 가볍게 주먹다짐도 조금 하고?”
“옛?!”
“혹시 이번 일과 관계있냐?”
“관계없습니다! 저,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진짜입니다!”
“그래? 열심히 하자.”
그 말과 함께 나는 쥐고 있던 언용묵의 어깨를 강하게 주물렀다.
“이번에 배웠잖아? 내가 집안 어른이고 뭐고 신경 쓰는 사람 아니라는 거?”
내 말 한마디에 모골이 송연했는지, 언용묵의 목덜미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망나니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있어.”
“…….”
“나는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아, 아닙니다. 망나니라니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나를 망나니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없다.”
“예? 그게 무슨….”
이 대목에서 나는 언용묵의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때렸다.
녀석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통수를 잡고 끅끅거렸다.
“용묵아, 요지는 내가 뭔 소리를 했냐가 아니다.”
“…….”
“괜한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말을 들으란 말이다. 서로 조용히 지내면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
“새끼야, 대답.”
“네, 네! 그러겠습니다.”
“그래, 그래. 허튼짓하면 뒤지는 거야.”
나는 그 뒤로도 잠깐 용묵이의 어깨를 주물러줬다.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게, 허튼짓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평화롭게 일을 처리한 게 몹시도 뿌듯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