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14화 (214/444)

제214화. 제갈설지의 서신 (1)

‘언용묵은 이쯤 하면 됐나.’

정신적 지주였던 언길회가 단번에 십 년은 더 늙어 숨만 붙어 있는 상황이었고.

권사의 자존심인 우수가 꺾인 상황이었으니.

녀석을 더 밟아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나, 몸이든 마음이든 더 망가뜨렸다가는 마교 놈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터였다.

‘물에 빠진 사람은 원래 지푸라기라도 쥐려 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너무 절망 속으로 밀어 넣어선 안 됐다.

이제부터라도 얌전히 엎드리면 그래도 진강장이라는 장원은 남는다는 희망과 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지금의 상태가 딱 좋았다.

‘진강장이 허울은 유지해 줘야 하기도 하고.’

이곳에 오면서 마주친 남연방의 흑도 놈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놈들의 주장대로 남연방과 나 사이에 계산이 남아 있다 치자.

그렇더라도, 결국 그런 놈들이 대낮에 설치고 돌아다니는 것은 결국 진강장이 힘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진주언가에 내분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돈 것도 한몫한 것 같지만.’

아무튼 언용묵은 단속을 했다.

이후의 진강장 관리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었다.

“조카님, 살펴 가십시오. 용묵이가 언감생심 허튼 생각을 품지 않도록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가주님께 노여움을 푸시라는 말씀을 꼭 좀 전해 주십시오.”

소장주의 배웅 속에 진강장을 나선 나는 우소릉을 남겨두고 온 객잔으로 향했다.

다른 장로들도 살펴보러 가야 했으나.

일단 남연방과의 남은 계산을 치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음?”

한데, 객잔으로 돌아와 보니.

벌을 서고 있던 흑도 놈들의 자리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험악하게 생긴 새끼가 원래 제일 왼쪽에 있지 않았냐? 왜 두 칸씩 당겨져 있…. 두 놈은 뻗어 있네?”

그러자 우소릉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좀 우습게 봤나 봐요. 언 형이 진강장 쪽으로 멀어지시니까 저기 두 분이 반항을 하시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막 선동하고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도요. 제가 우습게 보이는 건 괜찮긴 했는데, 언 형이 맡기고 가셨는데 그냥 둘 수가 없어서.”

“그래서?”

“언 형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해보고 그대로 했어요.”

그런 소릉이 녀석의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쯧쯧. 저 소릉이 녀석마저 슬슬 누구 물이 들어가는구나.

‘?’

- ?

사부님의 말을 못 들은 척한 나는 우소릉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잘했다. 정현이 있었으면 고리타분한 소리를 했을 수도 있겠는데, 세상엔 백 마디 말보다 뺨 한 대가 잘 먹히는 놈들이 분명히 있어.”

그리고 흑도 놈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뒤.

길 안내를 할 한 놈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놈의 뺨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짝! 짝! 짝! 짝! 짝!

그리고 남긴 한 놈의 멱살을 틀어쥐며 입을 열었다.

“아까 네가 그랬지?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꼴이 아주 우스워진다고?”

“켁!”

“그 말만큼은 맞는 말이야. 만만하다 싶으면 덤비고 쥐어짜려 드는 놈들이 네 놈들이니까.”

이런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나와 진주언가를 우습게 여기고 오만 놈들이 다 달려들 것이다.

‘내 이름 앞에 붙곤 하는 망나니 소리가 본인들 잘못이라 생각하는 부모님께서 그런 놈들을 어찌 대하실지도 예상이 간다.’

나는 쥐고 있던 흑도 놈의 멱살을 거칠게 놓으며 내 할 말을 뱉었다.

“남연방으로 안내해.”

* * *

도착한 남연방의 본거지.

쾅!

내가 대문을 박참과 동시에 안내역을 맡았던 흑도 놈을 안으로 던져 넣자.

건물 안에 들어 있던 날파리 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어?! 이거 장견 형님 아냐?”

“장견 형이 당했다!!!”

“뭣이? 진주 땅에서 우리 남연방을 건드리다니 어떤 새끼가 그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그리고 그 틈을 가르며 오른 눈가에 큼지막한 복점이 있는 땅딸막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아이고. 진주언가의 공자님들 아니십니까?”

나는 등장한 사내를 빠르게 가늠해 보았다.

‘이놈이 방주인가 보네.’

정권에 굳은살이 박인 것을 보니 권사로 보였고.

걸음걸이나 풍기는 기도가 대충 고수 반열에는 들어간 자 같았다.

점박이를 호위하듯 붙어선 두 놈도 진주 정도 되는 땅에 붙어 있는 흑도 치곤 잔뼈가 굵어 보였다.

‘이놈들이 괜히 진주 땅에서 자신들을 건드리냐는 말을 한 건 아니었군.’

저 정도면 제법 씨알이 굵은 흑도들이라 할 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용명이가 전음으로 내 추측이 맞음을 알려왔다.

[저자가 남연방주 단경배입니다. 쌍권탁천(雙拳濁天)이라는 별호를 가진 자인데, 고리로 돈이나 쌀을 빌려주고 갚지 않으면 기둥뿌리는 물론이요, 처자식도 앗아가는 놈입니다.]

[아버지 성정에 잘도 그런 놈의 사업장을 진주 땅에 남겨두셨네. 내가 저놈에게 빚을 져서 그랬던 건가?]

[그것도 한몫하긴 했을 겁니다만….]

[쩝.]

[일 자체를 교묘하게 하는 놈입니다. 고리대금업이 불법인 것은 아닌 데다가, 사람을 대가로 빼앗을 때는 혼담을 넣는 식으로 처리를 합니다. 사도련에도 가입해 있는 놈들이기도 하고요.]

용명이와 전음을 나누고 있으니.

단경배가 손을 싹싹 비비며 입을 열었다.

“한데, 어쩐 일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다 오셨습니까?”

제 쪽에서 먼저 사람을 보내놓고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 내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비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냐니? 장견인지 장닭인지 하는 놈을 보낸 사람이 누군데? 계산이 잘못됐다면서?”

“허허허. 계산에 차질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차질이 있길래?”

내가 되묻자 단경배는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늘어서 있던 놈 중 세 놈이 남연방의 내실로 들어가더니 책걸상과 서류 몇 장을 가져와 나와 단경배 사이에 놓았다.

“일단 앉으시죠.”

무슨 주장을 어떻게 하나 일단 들어나 보자 싶어서, 나는 놈의 앞에 앉았다.

“이게 용운 공자님께서 제게 돈을 빌려 가신 차용증서입니다. 그리고 이건 하북권웅께서 돈을 갚으셨다는 증서이지요.”

“근데?”

“이 두 번째 서류를 잘 보시면, 진주언가가 공자님께 내린 엄벌을 인정하며 원금으로 갈음한다고 돼 있지 않습니까? 이게 공자님께서 복권이 되신 지금은 조금 해석의 여지가 있지 않겠는지요?”

“…….”

“물론 수하 놈들이 모지란 놈들이 많은지라, 전달 방식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절대로 이 서류로 공자님을 괴롭히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도 인연이니. 진강장이 관리하던 점포 중 몇 개를 저희 남연방이 불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려 했을 뿐입니다. 헤헤”

단경배의 주장을 다 들은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계산에 차질이 있네.”

“공자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지요?”

“어. 이 시점에 이야기를 나누려면 치료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빠졌잖아?”

“치료비요? 다친 제 수하 놈의 치료비를 챙겨주시려는 겁니까?”

“뭔 개소리야. 당연히 내 치료비지.”

“제 수하 놈들이 공자님들을 다치게라도 했습니까?”

“마음이 크게 다쳤어, 마음이.”

“……?”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장견이라 불리던 자를 가리켰다.

“이봐, 단 방주. 저 장닭인가 하는 놈 얼굴을 봐봐.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놈을 댓바람부터 보내니까 내가 놀라 안 놀라?”

“…….”

“그리고 자네도 면경을 좀 봐봐. 그 커다란 점하며 군웅할거가 일어난 이목구비 하며, 내가 속이 안 좋아. 막 토가 나올 것 같고 그래.”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사업하는 사람이 머리가 그렇게 안 좋나? 기억력이 없어? 마음이 크게 다쳤으니 치료비를 받아야겠다고 이야기했잖아?”

“…….”

“마음의 병이라는 게 참 치료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누렇고 허옇고 딱딱한 금창약이 많이 필요해. 남연장의 기둥뿌리를 좀 뽑아가면 대충 계산이 맞을 것 같은데…. 어떻게, 얌전히 넘길래?”

내 말에 단경배는 이를 갈며 헛웃음을 흘렸다.

“허. 농담이 좀 심하십니다, 공자님?”

나도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 같나? 나 자네한테 고릿돈 빌려 쓰던 그 언용운이 아닌데?”

그러면서 말했다.

“귀 없어? 나에 관한 풍문 못 들었나보지?”

이 말은 사실 미끼였다.

본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자들이 허장성세를 부리기 위해 풍문 같은 것을 내세우는 법.

나는 나를 내세우는 것으로 소인배의 행동을 보인 것이었는데.

“제가 알던 용운 공자님이 맞으시군요.”

단경배는 내가 던진 미끼를 콱 물었다.

“그런 풍문과 강짜에 겁을 집어먹을 간덩이로는 이런 사업 못 하지요.”

놈은 힐끔 용명이 녀석으로 눈길을 주는가 싶더니.

“어찌 허명을 좀 얻으셔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셨나 본데, 불초 단가가 오늘 옛날 생각이 떠오르게 해드리겠습니다!”

나를 인질로 잡을 심산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휙!

하나 내가 더 빨랐다.

나는 앉은 상태에서 뒤로 누움과 동시에 녀석과 나 사이에 놓인 책상을 걷어 찼다.

그 바람에 단경배의 손은 애꿎은 책상을 갈랐다.

빠직!!

그것을 신호로 난전이 시작됐다.

물론, 난전이라 한 것은 남연방의 졸개 놈들이 떼지어 덤벼들어 난전이라 한 것이었다.

내겐 우소릉과 언용명이 있었다.

“언 형! 이쪽 분들은 제가 맡을게요.”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형님!”

녀석들이 졸개를 상대하고 있는 사이 나는 단경배만 신경 쓰면 됐다.

쌍권탁천.

양 주먹에 당하면 하늘이 흐려진다는 놈의 별호처럼, 단경배의 권법은 흑도바닥에서 구르며 쌓은 매서움이 있었다.

쌔애액!

하나, 딱 그 정도였다.

애초에 내 상대가 아니기도 했지만, 땅딸막한 놈의 사지가 제 발목을 잡았다.

휘리릭!

팍팍!

“짧아. 창 같은 걸 배워보지, 그랬어?”

“크윽?!”

나는 놀리듯 녀석의 주먹을 막고 쳐낸 뒤.

방학 동안 벼려낸 파천권법으로 녀석의 복부를 난타했다.

퍽! 퍽!

퍼퍼퍼퍽! 퍼퍼퍽!!

그에, 단경배가 검붉은 선지를 토했다.

“쿨럭!”

나는 그것까지 피해냈다.

그리고 놈의 멱을 틀어쥐며 말했다.

“치료비. 내놓을래 어쩔래?”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이제 와서 주긴 뭘 줘.

감히 진주 땅에서 언가의 장남을 겁박하고 먼저 주먹을 날렸으니, 어차피 다 토해내야 할 건데?

“오늘 진주 땅에서 남연방은 사라진다. 그리고….”

“……?”

“오른 눈에 있는 점 아까부터 거슬렸어. 균형이 안 맞아, 균형이.”

빠악!!!!!!!!!!!

* * *

남연방을 박살 낸 나는 놈들의 악행과 수법을 정리한 서류를 꾸렸다.

“종이에 피 안 튀게 콧구멍 딱 막고, 정자로 똑바로 써라.”

이어서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할 금창약을 두둑이 챙겨낸 뒤.

“다, 다 썼습니다.”

“돌려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돌려줘도 이 정도는 남는 거 확실하지?”

“옙! 확실합니다! 제가 제 재산을 모르겠습니까.”

“알았어. 그럼 나도 선물을 하나 줄게.”

“예?”

그렇게 챙길 것을 챙긴 나는 남연방도들을 손수 보듬어 가며 고자혈을 찍어주었다.

“끄어어어어억?!”

“그나저나 우리 보준이는 잘 사나 모르겠네.”

남연방의 남은 재물의 처리나, 방도들을 관아에 넘기는 일은 내가 할 필요가 없었다.

뒷일은 사람을 시켜 감 총관을 불러와 맡겼다.

그 뒤에 나는 다시 장로들의 장원에 병문안을 가는 일에 복귀했다.

다른 장로들의 장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대세가 바뀌었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다른 남은 네 장원을 돌아보는 일을 마치고 진주언가에 복귀하니.

가장 먼저 천장호와 정현이 나를 반겼다.

“역시 용운 형, 눈을 뗐다 하면 일에 휘말려 계시지.”

“가주님께 듣자 하니 남연방이라는 자들이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었던데, 의를 바로 세우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들 수련은 열심히 했어? 나 없다고 천장호 저거 뺀질거린 건 아니지?”

“그건 걱정 마라. 내가 시켰다.”

“어휴, 말도 마쇼. 진짜 용운 형에게 시달리는 게 낫지. 소천형은 말이 안 통해. 다음부턴 이렇게 남길 거면 그냥 나도 데려가쇼.”

그리고 부모님도 가주전에서 나와 나를 맞아 주셨다.

“다친 곳들은 없느냐?”

어머니는 이리저리 우리 몸을 살펴보셨고.

아버지는 짧은 격려를 해주셨는데.

“고생했다.”

그와 같이 말씀하시며 서신 하나를 건네주셨다.

“학관에서 서신이 왔더구나.”

언동생들과 함께 언윤각으로 돌아와 그 서신을 살펴보니.

발신인이 제갈설지였다.

『용운 님께.

항상 마방연은 똑같아요….

진주에 따라갈 것을 그랬네요.

북경에 들를 일은 없겠지요?

향유가 인기인데 이국에서 온.

황하 이남에서는 너무 비싸요.

마라호초탄을 보내 달라는….』

서신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형님, 무슨 이야기들이 적혀있습니까?”

“복철, 계춘, 오복. 마방연 소속 거지 이야기랑 학관에 남은 모산파의 선배님들 이야기?”

그리고 추신으로 본인이 성취를 조금 본 거 같다는 말과 나와 겨뤄보려면 여전히 정현부터 상대해야 하냐는 물음이 적혀 있었다.

한데, 그런 서신의 내용이 내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그에 사부님께서 물어 오셨다.

- 그냥 안부 편지 같은데 표정이 왜 그러느냐?

‘중간중간 서신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제갈 소저가 문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래도 그냥 안부 편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아무래도 암호문인 듯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