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16화 (216/444)

제216화. 하오문의 뜻이오? (1)

정체를 밝힌 춘앵은 나와 검후를 번갈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자리를 옮기시는 게 어떨는지요?”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자.

검후가 나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하오문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하오문이라기보다는 춘앵이라는 사람과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검후 교수님이 묻는 것은, 구구절절한 인연의 내용보다는 춘앵을 믿어도 되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 생각을 바로 전했다.

[따라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하오문이 사도련에 적을 두고 있는 곳임을 모르지는 않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 가능성도 있네.]

검후의 우려도 일리는 있었다.

나 역시 춘앵과의 인연이 과연 하오문이 사도련의 뜻을 거스를 정도인가 하는 의문은 있었다.

하나, 상황이 춘앵을 믿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입니다. 하오문은 사도련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춘앵이 저희 앞에 나타난 시점에서 이미 저희는 노출된 것 아니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래.]

실익도 있었다.

춘앵이 정확히 하오문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사도련의 내부자였다.

이쪽엔 개방이 있긴 했지만, 사도련 내부의 이야기는 거지들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닌들 알 재간이 없었다.

[거기다 조용히 저희를 따르거나 습격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믿어볼 만합니다. 최소한 먼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일 테니까요.]

내 주장을 다 들은 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춘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앞장서시오.”

우리는 춘앵의 안내에 따라 호화루(湖花樓)로 옮겨갔다.

호화루.

호객을 하던 춘앵에게 내가 소매를 붙들렸던 곳이었다.

“이쪽으로.”

안내에 따라 호화루의 전각 중 한 곳으로 들어가서 죽립과 행장들을 내려놓자.

춘앵이 소매를 붙여 보이며 깍듯이 인사를 건네왔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천하에 이름을 떨친 여걸이신 모용 교수님과 젊은 고수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천녀, 하오문의 대행수로 태호 지부를 총괄하고 있는 춘앵이라 합니다.”

춘앵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턱을 매만졌다.

‘대행수?’

당대 하오문주는 목염약이라는 여걸이었다.

그녀는 문도 중에 자질이 보인다 싶은 사람을 수양딸과 아들로 삼았다.

그들이 맡는 직책이 대행수였다.

일행 중, 무당산에 틀어박혀 있어서 세상사를 모르는 정현과 그냥 뭘 잘 모르는 소천이 형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

“…….”

하나, 하오문의 대행수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후부터가 그랬다.

“하오문주님의 따님이셨습니까?”

“예. 어머님께서 아둔한 저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그렇지, 개방의 방도로 귀동냥을 해온 천장호도 그랬다.

“이보게, 용명이. 용운 형은 하오문의 대행수와 언제 연을 쌓은 건가? 뭐 아는 거 없나?”

“망나니를 자처하던 시절에야 하북 일대의 기루에 형님의 외상값이 없는 곳이 없긴 했네만, 솔직히 잘은 모르겠네.”

은하연은 춘앵을 향해 직접 질문을 던졌다.

“언 공자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이신지요?”

은하연의 질문에.

춘앵은 짐짓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더니.

“달 밝은 밤 아래 천녀가 언 대협의 소매를 끌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긴한 밤을 나누었지요. 그나저나….”

마지막 말은 나를 보며 마쳤다.

“제가 신분을 밝힌바 없는 데도, 제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계시다니. 대협은 진정 죄 많은 풍류 공자이십니다.”

처음에는 뭔 말을 저렇게 시작하나 싶어 듣고만 있었는데.

다 듣고 보니 나를 놀려먹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길 안내 좀 해달라는 내 부탁에 그대가 삯을 받고 따라나섰던 일을 뭔 그렇게 말을 하시오?”

그런 나를 향해 춘앵은 혀를 빼꼼 내밀어 보였다.

“곧 죽어도 넉 냥 밖에 안 주시겠다던 순간의 복수에요. 자다가도 한 번씩 생각이 나더라고요.”

하나, 장난이 과하면 무례가 됨을 모르지 않는지.

이내 주변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해보이며 사과했다.

“은인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천녀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언 대협과의 인연은….”

그렇게 운을 뗀 춘앵은 나를 처음 만났던 날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북의 유명한 망나니가 남직예에 이르렀다는 소식에 제가 인물됨을 확인해보고자 직접 나섰더랬지요.”

“…어쩐지 다른 사람을 붙여줘도 상관없다는 데도, 본인이 길잡이를 자처하더니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퇴기촌으로 향하게 된 이야기와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였으나, 퇴기촌에서 태어난 천녀도 오랜만에 방문하면 코를 싸쥐는 그곳에서 낯빛 하나 바뀌지 않는 대협의 모습에 세간의 풍문이 잘못되었음을 알았고.”

“…….”

“정말로 퇴기들에게 골고루 약재를 나눠주셨다는 것과, 그 일대의 원혼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주셨다는 사실을 후에 확인하고는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춘앵의 말에 가장 먼저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위령제를 지내는 것이야 보긴 했다만, 그에 앞서 다른 기특한 짓도 했던 모양이구나.

이어서 검후도 대견하다는 듯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작은 인연이라더니.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 한 사람만 구해도 의를 행했다 할 것인데. 그러한 일들을 행하고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그러하고. 자네는 알면 알수록 사람이 진국이구만.”

이어서 정현이 도를 찾았다.

“실로 그러합니다. 검후 교수님의 말씀과 언 소협의 행동에서 활인의 도를 다시 한번 배웁니다.”

“근데 그때면 언 형이 막 진주언가에서 쫓겨나셨을 때라 주머니 사정도 어려울 때 아닌가요?”

우소릉은 언용명과 팽소천을 번갈아 응시하며 물었고.

언용명과 팽소천은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분명히 내가 한 일들이 맞기는 한데….’

나로서는 사부님을 찾고자 행했던 일이기에 좀 멋쩍었다.

‘당시에는 퇴기들도 나도 이득인 일인데 위선이면 뭐 어떠냐는 생각으로 했는데…. 이 녀석들이랑 정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좀 멋쩍네.’

나는 공의 일부를 은하연에게 돌렸다.

“주머니 사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약재들은 여기 은 소저가 돈도 받지 않고 그냥 준 거요.”

하나, 정작 은하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쓰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언 공자가 그 약재를 좋은 곳에 쓴 일은 알고 있었는데, 그 일로 대행수님과 인연이 닿았군요.”

“큼.”

그에 나는 아예 화두를 돌리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그쯤하고…. 지금 더 급한 이야기가 있지 않소?”

내 말에 춘앵은 빙그레 웃었다.

“저와 접선을 하셨으니 더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우선 사도련의 사정에 대해 말씀을 드릴게요.”

* * *

춘앵의 입에서 나온 사도련 지도부의 상황은 이랬다.

‘련주가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흑도의 련주 교체 과정인 만큼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당연히 피 튀기는 싸움이 동반되었고.

그러는 중에 련주의 신표가 분실되었다.

그 결과 직위 계승 싸움에서 이기긴 했어도, 현 련주의 지지기반과 권위가 약해졌다.

“…사도련의 지도부 조직은 련주 아래 좌군과 우군으로 나뉘는데, 이중 우군은 현 련주인 백광호를 예전부터 따르던 이들입니다. 그에 반해 좌군은 전 련주를 지지하던 자들 중 숙청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이에요.”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공을 세워야 하는 자들이군.”

“정확해요, 언 대협. 하여 현 련주의 권위를 세울 방안을 두고 우군은 잃어버린 신표를 찾는 일에 주력하자 했고요.”

“좌군은 기약 없는 수색을 하는 것보다 당장 실적을 낼 수 있는 방도를 택했군.”

“예. 무림맹이 해금방을 토벌한 일과 장강 일대에서 수로채를 압박한 일을 빌미로 삼아 정무학관의 생도 중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경고하자고 했어요.”

“그게 나고.”

“예.”

하기야, 당금 수석이다 괴룡이다 이름이 너무 알려지긴 했다.

장악은 아니라도 잠입은 해있을 테니 마교의 입김이 개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잘못했다가는 정사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짓거리 아니오? 전력도 약해졌다면서?”

“그렇긴 하지요. 하오문도 그렇게 경고를 했습니다. 한데….”

“한데?”

“사실 좌군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어도 신임 련주 입장에서는 크게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이 일로 백도 무림이 들끓는다 칠게요?”

“그러시오.”

“신임 련주 입장에선 좌군을 전 련주의 잔당 취급하면 그만이에요. 수괴들을 내놓으면 본인의 권위는 살고 들끓던 백도무림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보는 모양이에요. 마교라는 새로운 적이 백도 무림 앞에 나타난 시국이니까요.”

충분히 일어날 법한 가능성을 갖춘 예측.

이쯤하여 나는 춘앵을 향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한데, 대행수는 왜 이걸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거요? 이게 대행수의 뜻이요, 아니면 하오문의 뜻이오?”

“하오문의 뜻이에요.”

“하오문은 사도련 소속인데? 내가 퇴기들에게 약재 좀 챙겨준 건 소저나 남직예의 하오문도들에게는…. 뭐, 그래. 감동이었다 칩시다. 그래도 하오문 전체가 사도련의 지도부와 반목한다는 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소만?”

“날카로우시네요. 저희는 언 대협이 표적이 된 사안을 좀 다르게 봐서요.”

“어떻게 말이요?”

“다른 생도면 몰라도 언 대협이 참살을 당한다면 하북삼협 만큼은 무림맹에서 탈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도련과 싸움을 시작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

“정무학관의 총장님이 그 싸움에 가세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보고, 광풍투개와 개방이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봐요. 자금은 태원이가에서 댈 것이고.”

말을 잇던 춘앵은 이 대목에선 은하연을 응시했다.

“은휘상단도 거들 가능성이 있지요. 저기 계신 은 소저가 휘말리시면 무조건이겠고요. 이게 최소한으로 잡은 건데, 이 정도만 되어도 무림맹은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거에요. 심지어 무림맹주가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갈 때 바래다줄 정도로 아끼는 후기지수인데요. 정사대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 또한 충분히 일어날 법한 가능성이었다.

나는 하오문이 왜 나서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사이 춘앵은 남은 말을 뱉었다.

“무엇보다도 저희는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집합이에요. 정사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답니다.”

“하여, 어떻게 돕겠다는 거요?”

“애초에 무림맹의 군사부에 첩보를 넣은 게 저희예요. 좌군과 뜻을 같이하는 수로채의 흑도들이 장강의 물길을 잘 안다고 하나, 그 수적들을 피해가며 살아가는 어부들과 사공들만 할까요? 저희가 호북까지 모셔다드릴게요.”

“…흠.”

“혹 못 미더우시다면, 여기 계시면서 확인을 해보셔도 좋아요. 제갈혜 대군사님과 어머님 사이에 이야기가 오간 끝에 결정된 일이에요.”

춘앵과 하오문이 못 미더워 선뜻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에겐 분명히 나를 지킬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고민을 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이건 미봉책이다.’

원작의 사도련은 큰 존재감을 뽐내지 않다가, 어느 순간 수로채와 함께 마교에 장악당해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당장에야 안전하게 학관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게 정말 안전한 게 아니야.’

하오문이든 대군사님이든.

이들은 보모처럼 언제나 나를 쫓아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사대전의 단초와 마교의 사도 장악이라는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사도련주를 만나고 싶다면 만날 방도가 있소?”

“…편법을 쓰면 만나게 해드릴 수는 있긴 한데, 호랑이 굴에 직접 들어가시겠다고요?”

맞아,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지.

하지만 해볼 만해.

잃어버린 사도련주의 신표.

어디 있는지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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