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17화 (217/444)

제217화. 하오문의 뜻이오? (2)

“사도련주를 만나보고 싶소. 도와주실 수 있겠소?”

사도련주를 만나는 게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이라 말한 것은 에둘러 전한 만류였던 모양이다.

내가 사도련주를 만나고 싶다고 다시 한번 말하자 춘앵이 아미를 좁혔다.

“…대협께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천녀는 이해가 가지 않네요.”

상석에 앉아있던 검후 교수님도 고개를 갸웃했다.

“대행수님과 동감이네. 언 실장,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나는 우선 검후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장강을 거슬러 오르면, 당장에야 무탈하게 학관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나, 이건 그야말로 임시변통을 위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춘앵을 향해 물었다.

“내가 보기엔 하오문은 일단 내가 변을 당하는 일을 막고, 이후에 사도련주를 어떻게든 설득해볼 모양인데. 맞소?”

“…맞아요.”

“이 일이 알려지면 어쨌거나 하오문이 사도련주의 뜻을 거스른 꼴이 되오. 그렇게 된다면, 백광호가 본인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희생양으로 하오문을 택할 수도 있소.”

사도련과 같은 상황에 놓인 집단이 결속을 다지는 법은 외부의 적을 만드는 방식도 있지만, 내부에서 공공의 적을 만드는 방식도 있다.

지금 하오문의 행동은 그중 후자에 딱 들어맞았다.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지, 춘앵은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오문은 사도련의 눈과 귀입니다. 본인의 눈을 스스로 파내는 일은….”

하나,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물론 하오문은 사도련의 눈과 귀이고, 또 굵은 자금줄이기도 하니 가벼운 홍역으로 지나가겠지. 하지만 최소한 춘앵 대행수 그대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오?”

짐짓 태연한 척을 하던 춘앵의 표정에 금이 간 것은 이때였다.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대협은 못 속이겠네요. 하나, 신경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머님께 이 일에 관해 건의할 때부터 각오한 바입니다. 하오문의 형제자매들의 안위를 지키고 대협께 은혜를 갚을 수만 있다면 저는 괜찮아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내 말에, 춘앵은 고민이 되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검후에게 물었다.

“교수님, 언제나 저희 곁에 계셔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오문도 계속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여기 춘앵 대행수가 책임을 지게 된다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겠지요. 아니면 아예 다른 생도들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습니다.”

“…….”

“저희가 무사하자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도 괜찮은 것입니까?”

내 말에 검후는 물론이고 언동생들도 말문이 막힌 듯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정적이 흘렀는데.

정현이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원시천존. 역시 언 소협의 말씀에는 도기(道氣)가 흐르는 듯합니다. 하여 그 좋은 방법이라는 게 사도련주와 대화를 해보시겠다는 것입니까?”

정현은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생각이 다른 언동생들도 있었다.

개방에서 주워들은 게 있는 천장호가 그랬다.

“용운 형. 녹림왕을 생각하시고 사도련주를 만나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도중광 그 양반은 처음 발을 디디기를 산적질로 들여서 그렇지, 사람 자체는 괜찮다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반면 백광호는 잔악한 자라고 정평이 나 있는 인간입니다!”

산서행에도 따라갔던 녀석인지라, 와중에 만났던 녹림왕을 보고 내가 사도련주를 오판할까 봐 걱정인 모양이었다.

이어서 은하연도 입을 열었다.

“사도련주가 되기 전에 백광호는 동정호 일대를 세력권으로 한 악주검벌의 벌주였어요. 저희 은휘상단과도 악연이 많아서 잘 알아요. 동정총호(洞庭冢虎). 동정호에 웅크린 호랑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닌 의뭉스러운 자에요.”

언용명과 팽소천도 한마디씩을 했다.

“조금 전에 춘앵 대행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정사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사안입니다. 형님께서는 혼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봐도 얘네들 말이 맞는 것 같다!”

소릉이 녀석은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말은 언 형이랑 정현 도장의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은 누님이랑 다른 분들 말도 일리가 있고. 으아, 어렵네요.”

달아오른 분위기에 후끈해진 객실.

나는 손바닥을 내보여 갑론을박을 하는 입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애초에 잔악하기만 해선 절대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소.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도 그런데, 사도련쯤 되면 잔악함만으론 절대로 련주가 될 수 없지. 아니 그렇소?”

“…그건 그렇죠.”

“그런 작자라면 전임 련주를 따랐다는 좌군을 살려두지도 않았겠지. 오롯이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게 내 결론인데…. 아니오?”

마지막 말은 춘앵을 보며 했다.

춘앵은 여태 깨물고 있던 입술을 떼며 물었다.

“…만난다고 칠게요. 대협께서는 사도련주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거래를 할 거요.”

“거래요? 무엇으로….”

“그전에 뭐 하나만 더 물읍시다. 사도련주의 신표가 어쩌다 사라진 것이오?”

내 말에 춘앵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사도련주의 신표가 분실된 경위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련주직을 두고 신임련주 백광호의 악주검벌과 소련주의 파양흑도회가 피터지는 싸움을 벌였어요. 한데, 생각보다 피해가 크자 백광호가 소련주 쪽에 제안을 했죠.”

“살려 주겠다고 하기라도 했나?”

“예. 련주직 계승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사도련의 총회에서 분명히 밝히면, 소련주는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해서?”

“소련주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본거지인 파양호로 돌아가려 했죠. 한데 소련주를 태우고 있던 배가 파양호에서 침몰했어요.”

“신임 련주의 소행이겠군.”

“파양호는 형태가 꼭 호리병처럼 생겨서 목이 좁아지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침몰했다는데, 파양흑도회에게 놀이터나 다름없던 곳에서 침몰했다는 게 석연치 않기는 하죠. 아무튼 파양호에서 실종된 소련주와 함께 사도련의 신표는 사라졌어요.”

그런 춘앵의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 하연이 녀석 말대로 의뭉스러운 자로구나? 흑과 백을 떠나 무인으로서 최소한의 신의가 없거늘…. 그런 자와 어떻게 거래를 하려는 것이냐?

이 순간.

은하연이 나를 향해 물었다.

“언 공자께서 갑자기 신표에 관해 대행수께 물어보시는 것은…. 사도련주의 신표가 어디 있는지 아시거나 알 방도가 있으신 거군요?”

은하연의 말에 춘앵은 눈을 키웠다.

“신표가 어디 있는지 아신다고요? 그거라면 신임 련주가 가장 바라는 물건이긴 한데. 대협께서 그걸 어떻게?!”

춘앵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답했다.

“내겐 귀신의 말을 들어볼 방도가 있소.”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귀신의 말은 사부님 정도 되는 격을 갖춘 혼이 아니면 그야말로 단편적인 것만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혼은 ‘살고 싶다.’라는 말이나 ‘내가 왜 죽어야 하냐?’는 말만 중얼거리는 존재였다.

사도련주의 신표가 있는 곳은 전적으로 원작을 읽은 덕에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 괴룡이라는 별호.

상청검수 일곱을 홀로 거꾸러뜨렸다는 실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믿게 했다.

“앗! 대협께는 언가의 사령술이 있으셨지요. 참?!”

“괴룡! 이 형이 참 별호가 괴룡이셨지?! 하북에서 사람 두들겨 패는 거만 봐서 깜빡했네!”

그에 열띤 토론을 하던 조금 전과 달리.

자리한 사람들의 의견은 신표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계획대로만 되면 사도련이 맥없이 마교에 넘어가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거고….’

겸사겸사 뜯어낼 수 있는 것도 있겠지?

- …이 녀석 이거, 무슨 생각을 하길래 입꼬리가 그렇게 뒤틀리느냐?!

* * *

해가 진 파양호.

수백 척의 소선이 호위하듯 둘러싼 가운데, 주변을 대낮처럼 밝힐 정도로 많은 등이 달린 커다란 대선이 유유히 호수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대선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호화스러운 선실 안에선, 사도련의 신임련주 백광호와 우군총사 순우욱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민머리에서 시작된 화상흔이 목덜미까지 이어져 있는 사내 순우욱이 질문을 하자.

“련주님. 좌군을 그대로 두실 것입니까?”

옆통수에 화상흔이 있는 사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우군 총사께서 신표를 빨리 찾아 줘야 내가 좌군을 말리든 말든 하지 않겠나?”

그가 바로 사도련주 백광호였다.

백광호의 말에 순우욱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저는 하오문의 경고가 걸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좌군 총사의 대책 없는 낙관론보다 목 문주가 정사대전이 일어날 거라고 한 말이 일리가 있게 느껴집니다.”

“뭐, 사도련 전체를 두고 보면 그 할망구의 말이 일리가 있기는 있지.”

“…한데 왜 좌군을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까?”

“련에서 간사직을 맡고 있는 다른 방회들을 찍어누를 권위를 갖지 못하면 어차피 우리 악주검벌은 죽게 돼 있어. 그런데 신표는 안 보이고? 그렇다면 좌군의 의견 쪽에 걸어보는 게 맞지 않나?”

백광호의 말에 순우욱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보였다.

“천마신교 쪽과 연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쪽에서 우군총사 쪽에 줄을 대려 하던가?”

“직접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수룡방이 무너지면서 넘어온 놈 중에 천마신교 이야기를 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장강수로채의 말석이었던 수룡방이 약진한 이유라면서요.”

그런 순우욱의 말에 백광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순우 총사.”

“예.”

“백도 놈들이 위선자라면 천마신교 그놈들은 미친놈들이야. 예로부터 미친놈들은 상종하지 않는 거라고 했어.”

“그리 보고 계셨군요.”

“그래. 그리고 백도 놈들과 우리가 물과 기름이라면 그놈들은 우리를 빨아 먹을 수 있는 솜이다.”

“…음. 속하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른 방파 놈들은 어차피 말을 해봐야 저희 마음대로 할 놈들이니, 우리 악주검벌 만큼은 엄히 단속하도록 해.”

말을 마친 백광호는 순우욱을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이 술 한잔 받고. 내일은 잘 좀 뒤져봐.”

그런데 이때.

내실 밖에서 졸개 하나가 입을 열었다.

“련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백광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로? 누가?”

“신호를 보내길래 확인해보니 하오문주의 수양따님이셨습니다. 지금 뵙기를 청하고 계십니다.”

“하오문주의 수양딸이면 봐야지. 들여보내.”

“한데, 호위무사도 함께 들어와도 되냐고 하십니다.”

“그 할망구 수양딸 중에 정확히 누군데?”

“태호 지부의 춘앵이랍니다.”

“그 여자는 무공을 모르니 겁이 나겠지. 그냥 들여보내.”

* * *

사도련주를 만나보기로 뜻을 모은 우리는 장강을 거슬러 파양호로 향했다.

노련한 뱃사공들과 하오문의 도움으로 파양호까지 이르는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이 수로만 따라 내려가면 파양호의 수역에 들어가는 거예요. 한데, 이 작전 정말로 실행에 옮겨도 괜찮으실지요?”

“괜찮으니. 빨리 갑시다. 개학 일정 맞추려면 빠듯하오.”

“예. 대협. 그럼 수역에 진입할게요.”

파양호에 이르러서도 이렇다 할 일은 없었다.

언동생들은 중간에 몇 가지 일을 맡겨 따로 하선시켰고.

나는 춘앵과 함께 파양호를 수놓고 있는 악주검벌의 선단을 향해 등롱에 검은 천을 감았다 뗐다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도련주가 타고 있다는 배를 호위하듯 늘어서 있는 소선들이 문이 열리듯 갈렸고.

흑도 놈 몇 명이 우리 배로 건너와 신원조회를 해갔다.

상주부에서 사도련주가 기다리고 있다는 내실까지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음?”

춘앵을 따라 내가 내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도련주가 나를 향해 쥐고 있던 술잔을 던진 것이다.

마구잡이로 던진 것은 아니었고, 내력을 실어서.

쌔애애액!!

팽이처럼 회전하며 날아드는 술잔.

‘이건 그냥 맞아 줬다간 머리가 깨진다.’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기에.

나는 주저 없이 날아드는 술잔을 향해 파천 권법을 내질렀다.

팟!

물론 주먹은 편 채였다.

그에 내 손아귀에 착 달라붙듯 술잔이 감겼다.

그러자, 일순 선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더니.

백광호가 미간을 구기며 옆에 놓인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기녀의 호위무사나 하고 있을 얼굴이 아니라서 시험해 본 건데, 아예 무공이 우리 쪽 사람이 아닌데?”

그런 백광호를 향해 나는 포권을 취했다.

“춘앵 대행수와 작은 연이 있어, 그 연에 기대어 사도련주님을 만나 뵙기를 청했습니다. 언용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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