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21화 (221/444)

제221화. 호원단철 (2)

대장간 인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학관의 운영위원회 앞으로 문의를 넣었다.

『문의하신 일을 논의 하기 위해 운영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니.

청죽관의 자치회장, 자치부회장, 총무부장은 유시(酉時)까지 본관의 소회의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찾은 본관의 소회의실.

정무학관의 운영위원직을 맡고 계신 교수들과 마주 볼 수 있도록 세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경룡이 형, 나 그리고 은 소저.

우리가 순서대로 착석하자, 경혜사태께서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호원단철장은 아직 불하할 준비가 안 됐어요.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니 청죽관에서도 알아봤겠지만, 단강구 인근의 사업권은 준비가 되었을 때 내어주는 게 원칙이에요. 한데, 호원단철은 야장 그리고 일꾼들과 불화가 있어서 아직도 정상화가 안 됐어요.”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해결을 보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돌아온 질문엔 은하연이 답했다.

“청죽관의 총무부장 은하연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일꾼들이 밀린 임금부터 내줘야 삽을 뜨겠다고 하는데, 학관은 마교의 침입 때 피해를 입은 건물들을 재건하느라 여유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는지요?”

“그렇긴 하지요. 이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요시설이라도 공사를 끝내려고 교직원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개강을 미뤄야 할 판이니까요.”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께서 물어 오셨다.

- 방학 기간에 너는 진주도 갔다가, 파양호도 갔다가 매듭지은 일만 몇 개인데. 정무학관쯤 되는 곳이 쥐톨만 한 대장간 하나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것이냐?

‘쥐톨이요? 처음 보셨을 때 대장간 규모를 보고 화들짝 놀라셨지 않습니까?’

- 그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느니라! 그리고 애초에 비유이지 않느냐 비유!

‘사부님도 저랑 같이 보셨지 않습니까? 학관은 마교의 습격으로 불타거나 무너진 건물들을 동시에 재건하느라 인적, 물적 여유가 없습니다.’

하여, 호원단철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려면 대장간이 새 주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점포와 야철장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춰야 했다.

‘근데 일꾼들이 돈을 먼저 줘야 일을 하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거죠.’

학관 입장에서 호원단철은 우선순위에 속하는 급한 사안이 아닌데다, 애초에 인력이 부족해 챙길 사람도 없으니.

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사부님께 답을 드리고 있는 사이, 은하연은 운영위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결국 돈과 인력 문제 아닌지요? 저희 쪽에서 일꾼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겠습니다. 감독도 하고요. 그러면 되는 일 아닌가요?”

은하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옆에서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크흑.”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경룡이 형이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 느그 형은 왜 또 저러는 것이냐?

나도 궁금했던 터라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또 왜요. 대학원생 선배님들이 어찌나 반질거리게 닦아 놨는지 눈에 들어갈 먼지라고는 티끌만큼도 없구만.”

“학관도 쩔쩔매는 돈 문제를 우리 청죽관이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서 그만….”

한데, 향란관의 사감 교수 창량이 입을 열어 경룡이 형의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건 법도가 아니다.”

그렇게 운을 뗀 창량은 경혜 사태를 응시하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은 잘못된 선례를 남기면 장차 학관의 행정업무들이 마비될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인수 의사를 밝힌 다른 입찰자도 있지 않습니까?”

말 자체는 맞는 말들이라 경혜 사태께서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그사이 나는 은하연을 향해 슬쩍 물었다.

“…다른 입찰자?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은데?”

“제가 말을 안 했으니까요.”

“왜 그랬소?”

“얼마를 부르든 저희가 더 높이 부르면 되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언 공자는 다른 것도 챙길 게 많은 사람이잖아요?”

“…….”

은하연이 은연중에 거부의 배포를 내비친 와중에 창량의 이야기가 끝났다.

은하연은 주변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창량 교수님께서 무엇을 염려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공정해야 할 입찰 과정이 내정자가 있는 것처럼 비출 수 있다는 말씀 아니신지요? 그게 저희라면, 더욱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돌 수도 있고요.”

“정확하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일꾼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부분은 차용증의 형식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을지요? 서류를 꾸리고 정확하게 장부를 기입해서, 공고를 할 때 투명하게 고지하는 겁니다. 만약 다른 입찰자가 호원단철을 인수한다면, 그 금액을 저희에게 갚으라 하면 되는 것이고요.”

크.

누가 총무부장 시켰는지 모르겠는데 참 똑 부러지지 않습니까?

- …양심이 있으면 그 친구비라는 것이나 그만 받고 그런 말을 하거라.

‘양심이 있으니까 받는 겁니다.’

- ?

‘다른 입찰자는 알 필요도 없다는 말 못 들으셨습니까? 지금도 보십쇼. 말은 다른 입찰자가 인수하면 갚으라고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럴 리는 절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습니까? 준다는 걸 안 받으면 오히려 은 소저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 …말을 말자. 말을 말아.

* * *

은하연의 제안이 괜찮았던 모양인지, 교수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행정처장 임태옥은 미간을 좁히며 우려를 표했다.

“일꾼들의 불만은 은하연 생도의 말대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야장들이오이다.”

행정처를 담당하고 있는 분이라, 다른 교수들보다 호원단철의 사정을 잘 아는 모양이었다.

하여 나도 물었다.

“야장들이 어떻게 문제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야장들에겐 봉급의 성격으로 일 년 혹은 몇 년 치 선대를 주고 적을 두는 게 보통인데.”

“그렇죠?”

“호원단철에 적을 둔 야장들이 재계약 조건으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고 있소이다. 통상의 서너 배에 달하는 대금을 바라고 있으니….”

한 푼 두 푼도 아니고 그 정도나?

어쩐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 또한 돈 문제이긴 한데, 청죽관이 호원단철을 인수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수익을 남기기 위함일 텐데…. 괜찮겠소이까?”

그에 내 입이 저절로 열렸는데.

“그거야말로 해결을 해야겠네요. 제가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창량이 손가락으로 나를 콕 찝어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단철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말릴 명분이 없으니 말리지 않으마. 하나 네 녀석이 즐겨 쓰는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 즐겨 쓰는 방식이라시면 정확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주먹 말이다, 주먹.”

그런 창량의 말에 잠자코 있던 노삼이 목청을 높였다.

“창량아. 우리 용운이를 여즉 망나니 취급을 하는 거냐? 저번에는 향란관 생도들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니만 벌써 까먹은 거야? 저 녀석 이번에 복권도 됐다!”

“노삼 교수님. 운영위원회의 회의 중입니다.”

“아, 표현을 조심해 달라고. 알았다. 까먹으신 겁니까 창량 교수님?”

“…별개의 사안입니다. 그리고 복권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용운이 저 녀석이 무력으로 야장들을 휘어잡아 단철장을 불하받으면 천하 사람들이 저 녀석 보고 뭐라 하겠습니까?”

“…….”

“마냥 오냐오냐하시는 게 참된 교육이 아닙니다. 간신히 망나니 꼬리표를 떼어내고 가문에 복귀한 녀석 아닙니까?”

처음에는 창량의 말이 딴죽을 거는 것처럼 들렸다.

하나, 다 듣고 보니 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제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창량 교수님?”

“…걱정은 무슨. 당금수석이면 학관의 얼굴인데 먹칠을 할까 봐 그러는 거다.”

…낯선 사감교수에게서 어쩐지 익숙한 궁윤이의 냄새가 나는 거 같네.

뭐, 애초에 먹고 사는 문제를 두고 무력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일을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신경 쓰겠습니다.”

* * *

야장들의 요구가 심하긴 했다.

분명 뭐가 있는 것이다.

호원단철장에 가볼 생각이었지만, 사안을 다방면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노 교수님. 호원단철이랑 관련 있어 보이는 정보는 모두 모아서 저한테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려울 것은 없지, 거지들 시켜서 알아본 다음 복철이 편에 들려 보내도록 하마. 너는 바로 단철장을 들여다보러 갈 것이냐?”

“바로는 아니고 분위기를 보려면 역용이랑 변복을 좀 해야죠.”

“푸흡. 그럼 우리 용구를 또 볼 수 있는 것이냐? 단강제일객잔으로 갈 것이지? 같이 가자!”

“…….”

그렇게 거지 혹을 하나 붙이고 단강제일객잔으로 돌아온 나는 역용을 위해 당옥기를 불렀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니.

금세 도구를 챙겨온 녀석이 내 앞에 앉아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크흐흫. 나한테 또 아가씨라고 하고 싶었니 용구야?”

“…흐지므르.”

“햬쥐매래에.”

인고의 시간 끝에 변장을 마친 나는 호원단철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단철장.

마교를 염두에 둬야 했던 첫 번째 방문 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단철장은 전반적으로 어수선했고 감시자도 없었다.

나는 사부님이 들어계신 회한을 근처의 평상 아래 숨겼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어허.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데 왜들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모르겠소!”

왜 이렇게나 사람들이 모여있나 싶었는데, 일꾼들이 단상에 선 젊은 야장을 상대로 성토를 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원홍 부자 시절에 미리 받은 선대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말이오!”

“옳소!”

“우리 야장들이라고 그렇게 풍족할 리가 있겠소? 그래도 우리가 끼닛거리는 챙겨드리고 있잖소, 식구들 것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다들!”

“그 조금만이 언제부터입니까?! 학관에서 하자는 대로 삽을 떴으면 벌써 이 단철장이 새 주인을 찾아 임금 지불이 끝났겠습니다!”

“그렇소! 이쪽은 아픈 노모가 있소. 끼닛거리도 끼닛거리지만 은자가 필요하단 말이오!”

제법 팽팽하게 논쟁이 지속되는 듯 보였으나.

조금 더 지켜보니 어느 쪽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예끼!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그러시오?! 정 그러면 연판장(連判狀)에서 이름을 빼시오! 물론 밀린 임금은 줄 수 없소!”

“…….”

“지금 정무 학관이 벌이고 있는 공사가 몇 갠데?! 몸만 병신 되고 임금은 떼먹히기 딱 좋은 상황이란 말이오! 모두를 생각해서 이러고 있는 거니 얼굴 붉힐 일은 자제를 합시다! 저쪽에서 끼닛거리나 받아들 가시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여있던 일꾼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야장이 가리킨 곳으로 이동했다.

젊은 야장은 짐짓 뿌듯한 표정으로 정반대 편에 있는 단철장의 건물로 향했다.

나는 빠르게 사부님을 챙겼다.

-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

‘야장 쪽이 좋겠습니다. 저쪽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네요.’

그리고 야장 쪽의 뒤를 쫓았다.

놈의 뒤에 따라붙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술 냄새가 좀 나는데?’

한데, 어쩐지 술 냄새가 난다 싶더니.

젊은 야장이 안으로 들어간 방실의 벽에 귀를 대보니 술판이 한창이었다.

“딱 좋았는데 불러내고 말이야! 그래서 이야기는 잘했는가?”

“예, 대인! 아마 더 이상 징징거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세상에 딱한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도 사정이 있지 않나! 언용운이 단철장을 인수하면 좋은 시절이 완전히 끝난단 말이야. 아니 그런가!”

“그렇습니다, 대인!”

“태원상단에 은휘상단까지 뒷배로 끼고 있는 놈이야. 본인의 명성은 계속 치솟고 있고, 그런 놈이 단강구에 무기 점포를 내면 경쟁이 되겠나? 그놈 혼자 다 해 먹겠지! 그렇게 되면 야장들이 아주 힘들어지는 거야! 나나 다른 형님들이야 쇠 두드리다가 돈을 만지게 된 사람들이라 자네들 사정을 이해해주고…. 음? 잔이 비었군. 내 술 한잔 받아!”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했더라?”

“이해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우리야 다 이해를 해주고 이렇게 술도 한잔하고 그렇지만, 세가에서 나고 자란 샌님들이 자네들을 사람 취급이나 하겠….”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방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쾅!!!

그리고 술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자들의 면상을 쓱 훑은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술을 주고받고 있던 두 놈의 멱살을 동시에 틀어쥐었다.

“약속했는데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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