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회한 (3)
내가 잠시 사부님을 골려드리고 있던 그때.
독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탁장명이 달려왔다.
“아버님! 공자님! 밤새 사당에 계셨습니까?!”
탁종건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언 공자의 검을 새로 벼려드리기로 했다.”
“그, 그러셨습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버님!”
“준비를 해라.”
“예! 바로 고로에 불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는 아니 된다.”
“예?”
“공자께서 여기 오실 때, 만고의 손님과 함께 오셨다고 하더구나.”
듣던 중 만고의 손님이 뭔 소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곧바로 알아듣는 탁장명을 보니, 만년한철을 이르는 야장들의 은어인 모양이었다.
“엇! 하면 준비할 게 좀 많은데요?”
“당연한 소리를 뭘 입 아프게 중얼거리고 있느냐? 굉청탄(轟靑炭)은 있을 것이고, 통암목(通巖木)을 구해오거라. 홍가철방은 부호들의 장식용 검을 많이 만드니 거기 가면 있을 것이다!”
“…….”
“검지(劍池)의 진흙과 물도 충분히 퍼오고. 아! 사람도 필요하겠지. 담금질을 시작하면 며칠은 쉼 없이 두드려야 할 것이다. 스물? 아니, 서른 명은 있어야겠구나! 봉규랑 우식이를 비롯해서 당분간 쉬기로 한 야장들이랑 견습 도제들도 내일까지 불러오너라!”
의욕이 활활 타는듯한 탁종건 이었으나, 탁장명은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께서 물어 오셨다.
- 어제만 해도 아들 쪽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고, 아비가 호통을 치더니만? 오늘은 온도가 정반대인 듯하구나?
‘자세히 보면 정반대는 아닙니다.’
- 음?
‘탁장명의 표정을 보십쇼. 싫은 게 아니라 난처한 모양새 아닙니까?’
-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사부님은 어제 쭉 사당에 계셔서 제대로는 못 보셨는데. 탁가철방이 형편이 많이 어렵더라고요.’
- 돈 문제라는 게로구나.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탁가철방에 투자한다는 측면에서도 흔쾌히 내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애병인 회한을 새롭게 벼리는 일이었다.
‘은하연에게 받아온 전표를 내놓지 못할 이유가 없지.’
문제는 이걸 대놓고 주면 자존심 강한 탁종건이 은혜를 갚기 위한 일에 대가를 받을 수 없다고 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탁장명도 죄송하니 어쩌니 할 것 같고.’
하여, 나는 뒷짐을 쥐는 척 전낭을 열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은하연에게 받아온 전표 중 한 장을 꺼낸 뒤.
금나수의 수법을 응용하여 탁장명의 손에 은밀히 쥐여 주며 전음을 보냈다.
[선대(先貸)라고 생각하고 쓰세요.]
“!”
그에 탁장명이 마른침을 삼키며 나를 응시했다.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딱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전표로 오가는 금액은 적을 수가 없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탁가철방이 내 휘하에만 들어오면 결국에 다 돌아올 건데. 별걱정을 다 해주시네.’
물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고른 뒤, 다시금 전음을 보냈다.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지만, 대야장 어르신의 성정과 탁가철방의 사정을 알 것 같습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회한 탓인지 몰라도, 저는 탁가철방의 사정이 남 일 같지가 않군요.]
우리가 남입니까?
[듣기로는 검 한 자루를 벼리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일도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제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학관에 돌아가 봐야 하니까요.]
“…….”
[부족함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정 걸린다 싶으시면, 필요한 곳과 동원되는 분들의 일당 등에 쓰시고 나서 나중에 거슬러서 돌려주세요. 아, 저희 의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부인도 좀 챙기시고요.]
그러자 탁장명이 건네받은 전표를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예, 아버님. 그럼 차질 없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탁장명이 사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탁종건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면, 이 회한은 어르신께 다시 맡기면 되겠습니까?”
“그 전에 공자가 휘두르는 검을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저 연세에 무공이 배우고 싶으신 것은 아닐 테다.
새롭게 회한을 벼리는 데 참고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회한을 뽑아 들었다.
스르렁-
탁종건은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제법 있는지, 익숙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 앞에서 나는 파천검법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 * *
이튿날 동이 터 오를 무렵.
새벽부터 탁가철방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회한을 새로 벼리기 위해 모인 야장 스물여섯이 목욕재계를 했고.
목욕을 끝내자마자 야장들이 시조로 삼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 그리고 구야자(歐冶子)를 향해 제를 올렸다.
그렇게 부정을 막아달라는 의식을 치른 대장장이들은 회한과 철괴, 그리고 다른 재료들을 들고 고로가 있는 철방으로 움직였다.
“몇 날 며칠 걸릴 수도 있다더라. 정현은 나랑 같이 탁가철방으로 가서 번갈아 가면서 지키고 있기로 하고.”
“예. 언 소협.”
“너희 둘은 이 댁에 있는 걸로 하자.”
“예, 형님.”
“옥기 너는 부인 좀 신경 쓰고. 혹여라도 무슨 일 생기면 하성이 보내고?”
“그건 걱정 마.”
탁가를 당옥기와 은하성에게 맡긴 나는, 정현과 함께 야장들의 뒤를 따라 탁가철방에 도착했다.
철방에선 탁장명의 지휘 아래 한창 고로가 달궈지는 중이었다.
“통암목으로 만든 숯은 철괴를 넣기 직전에 투입할 겁니다. 만에 하나라도 착오가 있으면 안 됩니다.”
“예!”
“그럼 굉청탄을 더 넣으십쇼! 불을 더 키워야 합니다! 더 달궈야 해요! 더! 더!!”
그런 가운데.
노구를 이끌고 현장을 감독하러 온 탁종건이 나를 향해 물었다.
“공자는 무슨 생각으로 검을 휘두르시오?”
무슨 생각으로 검을 휘두르냐, 라.
쉬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인생관을 묻는 것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머릿속에 답이 떠올랐다.
“후회가 없으려 합니다.”
“…후회라. 이 늙은이가 무공에 문외한이긴 하나, 공자의 검을 견식 해본 바로는 거침이 없어 보였소.”
“그랬습니까?”
“그랬소, 산이 앞에 있으면 산을 가르고, 하늘이 앞에 있으면 하늘을 깨버릴 것 같았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기세가 그랬다는 말이오. 또 간밤에 장명이 녀석을 불러 듣자 하니…. 약관을 막 넘은 나이로 행한 협행이 한둘이 아니고, 지난날의 과오라는 것들도 일부러 그러했다 하던데. 그런 공자께도 후회가 있으시오?”
“간밤에 먹은 음식을 두고도 더 먹을 걸 덜먹을 걸 하는 게 사람 아닙니까? 뭐가 됐든 훗날 돌이켜 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려.”
내 답에 탁종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기를 잠시.
화르르륵!!
고로의 불을 확인한 탁장명이 목청을 높였다.
“아버님!”
그러자, 탁종건이 상의를 벗고 고로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함께 보고 있던 정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감독을 하러 오신 게 아니라 본인도 한 명의 야장으로서 오신 모양입니다.”
“…어. 그런가 보다.”
“마,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린다고 들으시겠냐? 저 모습을 봐라.”
“…옥황상제가 오신대도 못 말릴 것 같긴 합니다.”
간신히 자리보전이나 할 것 같았던 양반이, 고로 앞에 서서 허리를 세우니.
균형이 맞지 않아 쩔뚝거리던 다리가 풀무 위에 얹어지며, 본래 그렇게 한 몸이었던 것처럼 맞아들어가는 듯했다.
이채가 든 것은 눈동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생 불을 가까이해 탁해졌던 눈동자는, 눈앞의 불꽃을 잡아먹겠다는 기세로 태양처럼 타올랐다.
“시작한다!”
이윽고 떨어진 명령에.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로 만들었다는 숯이 고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격한 풀무질이 시작됐다.
화륵! 화르르르륵!!!!
만년한철을 소화해 내기 위해 만들어낸 화염과 장인들이 쏟아내는 더운 숨.
초절정의 문턱을 넘어선 나조차, 숨이 턱 하고 막히도록 하는 열기가 탁가철방 전체를 달구기 시작한 가운데.
회한이 시뻘건 쇳물로 돌아갔고.
“부어라!”
탁종건의 지시에 따라 다른 재료들과 한데 섞여 주괴(鑄塊)가 됐다.
그렇게 뽑혀 나온 주괴를 다시 한번 달궈낸 탁종권이 집게로 집어 모루 위에 올리자.
야장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망치질을 시작했다.
깡! 카아아앙!! 카앙!!!!!
그러자, 망치가 닿는 자리에서 폭죽이 터지듯 불똥이 퍼져 나왔고.
치이이이익!!!!!!!
그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검지에서 퍼왔다는 찬물에 들어간 쇳덩이가 희뿌연 연기를 토해냈다.
“…….”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 밤이 되었고.
다시 또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면 낮이 되었다.
그렇게 스물여섯 야장이 돌아가며 회한을 접어 때린 지 닷새가 되는 날.
은하성이 황급히 찾아와 입을 열었다.
“용운 형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일?”
“부인이 진통이 오신답니다!”
“뭐?! 그래서?”
“옥기 누님도 아이를 받아보신 적은 없다고, 일을 보러 온 어멈이 일단 산파를 부르러 갔습니다! 근데 저번에 진맥해본 바로는 아이가 큰데, 지금 산통이 오면 난산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알았다. 너는 빨리 돌아가서 옥기가 뭐 필요하다는 거나 시키는 거 있으면 다해!”
“예!”
“정현!”
“예! 언 소협!”
“너도 같이 가.”
“예!”
나는 들은 급보를 곧바로 철방 안에 전했다.
“부인께서 산기가 있으시답니다!”
들어온 급보에도 철방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은 멈춰지지 않았다.
탁종건은 날붙이의 모양을 한 쇳덩이를 집게로 집은 채 놓지 않았고.
다른 야장들은 그 위에 망치질을 해댔다.
깡! 까아아아앙!!
하나, 쉬고 있던 탁장명은 벌떡 일어서더니.
탁종건을 향해 말했다.
“아버님.”
깡!
카아앙! 캉!!!!
“불렀으면 말을 하거라.”
“…….”
“정신 사납게 계속 그러고 있을 것이냐?”
“…저는. 가보겠습니다.”
탁장명의 말은 허락을 구하는 것 같은 말 같았으나.
탁가의 속사정을 아는 내 귀에는 자신은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
어느 쪽이 본심인지는 탁장명 본인만 알 테지만.
탁종건은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가보거라.”
탁장명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게 사죄를 청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아닙니다. 댁에 가보세요.”
그렇게 탁장명은 철방을 떠났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방울들이 탁종건의 얼굴 위로 가득 흐르는 가운데, 그는 멈추지 않고 담금질을 주도했다.
깡! 캉! 카아아앙!!
멈추지 않는 망치 소리와 쇠 식는 소리.
그러다 보니 견습 도제들을 시작으로 녹초가 된 야장들은 하나둘 나가 떨어졌고.
종국에는 나도 한 팔을 거들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공자께서 이 집게를 좀 잡아주시오.”
“예.”
그렇게 대다수의 야장이 녹초가 되어 주저앉게 된 끝에.
지난했던 담금질이 끝이 났고.
“물. 깨끗한 물.”
몇 날 며칠을 모루에서 뚜드려 맞은 날붙이를 검지에서 퍼온 깨끗한 물로 씻어내자.
비로소 서리를 그대로 벼려낸 듯한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
탁종건은 한쪽 눈을 감고 그 검신을 들어 이리저리 가늠해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성이 돌아와 입을 연 건, 이때였다.
“해산(解産)했습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탁종건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더니.
바스러지듯 쓰러졌다.
“어르신!”
* * *
지척에서 쓰러지는 노인을 받아내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하나 내 품에 편히 안겼음에도 정신을 잃은 것을 보니, 몸도 정신도 한계였던 모양이었다.
탁종건은 그렇게 몸져누워 이틀 동안 미동도 보이지 않았지만.
당옥기가 지어준 탕약이 먹혔는지 정신을 차리기는 했다.
“정신이 드셨어요!”
하나, 그런 탁종건을 다시 진맥해본 당옥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데?]
[그냥. 기력이 다하셨어. 무림인으로 치면 진원진기를 다 사용하신 거지.]
[회광반조셨군.]
지난 며칠 탁종건의 모습은 불꽃이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는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말릴 수가 없었지.’
잘못 말렸다간 본인이 털어내고자 하는 한을 털어내지 못하고 기력만 다하실 테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탁종건은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더니, 탁장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례는 치르지 마라. 나는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늙은이다. 몸을 푼 지 얼마 안 된 새아가나 챙기거라.”
“아버님! 그런 말씀 마시고 일어나셔야지요.”
“아서라.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유언이니 새겨듣기나 하거라.”
“…도, 돈 걱정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언 공자께서 대금을 많이 주셨었습니다! 그걸로….”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그냥 태워서 검지에 흩뿌려다오. 내게 자식으로서 효를 다하고 싶다면, 검을 벼릴 때마다 내 가르침을 떠올리면 된다.”
“어흐흑.”
탁장명이 눈물을 흘리고, 숙연한 공기가 내려앉은 가운데.
탁종건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신 사납구나,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검은 어찌 됐느냐? 내팽개친 것은 아니겠지?”
“소자가 연마를 마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럼 그만 질질거리고 공자님께 검이나 올려라.”
그 말에 탁장명은 벌게진 눈으로 궤짝 하나를 들고 와 내 앞에 내밀었다.
그 안엔 완성된 회한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용과 구름이 새겨진 검집을 잡은 뒤.
검병에 오른손을 가져가 보았다.
스르렁-
착 감기는 느낌과 함께 미끄러지듯 뽑혀 나온 새하얀 검신.
그 검신에 잠시 정신을 뺏기고 있자니.
탁종건이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시오?”
“더할 나위 없이요.”
“검명은 따로 새기지 않았으니. 공자께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시면 되겠소.”
“회한으로 하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후회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하니까요.”
“허허. 회한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회한이라…. 퍽 어울리는 검명이로고…. 하여간에 감사했소. 공자를 만난 덕에 평생의 응어리를 내려놓고 여한 없이 떠날 수 있게 됐소.”
눈을 뜬 이후로 처음으로 웃어 보인 탁종건은, 거칠게 숨을 쉬며 탁장명에게 물었다.
“…장명이 너는 이제 어찌할 것이냐?”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처자식과 야장들…. 네 식구들 말이다.”
“아버님의 뜻에….”
“…이 아비는 더 이상 네 물음에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
“네가 이제 탁가철방의 주인이고…. 대야장인 것이야. 대야장이라면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예.”
“이 아비는 언공자를 보고 깨달았다. 내심으론 젊은 날의 과오를 후회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망치고 있었음을.”
“…아버님.”
“다시금 벼려낸 회한은…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간의 과오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장명아….”
“예.”
“후회할 일은 살다 보면 일어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두려워 멈추어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너는… 도망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탁종건의 마지막 말에, 탁장명의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차오르는 서러움을 간신히 삼키고는 답했다.
그것이 그의 아버지가 가장 바라는 것이자.
탁가철방의 대야장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새겨듣겠습니다.”
탁종건은 아들의 마지막 말에 잠을 자듯 눈을 감았다.
그를 평생 괴롭혔던 회한(悔恨)은 이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새로운 검으로 거듭났기에.
그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