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화. 회한 (4)
탁종건의 장례는 본인의 뜻에 따라 치러졌다.
별도의 식 없이.
탁가철방의 식구들과 몇몇 지인만이 참석한 가운데, 한 줌의 뼛가루로 돌아간 탁종건은 본인이 바라던 대로 검지에 흩뿌려졌다.
그 모습을 함께 보고 있던 언동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이 하나를 태어나게 한다고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한 분을 보내드리네. 의술을 배우면서 제법 경험해 보긴 했지만, 이럴 때마다 드는 무력함은 익숙해지지를 않네.”
“옥기 누님. 그래도 마지막에 잠을 자듯 편히 가시지 않았습니까? 웃기도 하셨고요. 안 그렇습니까, 정현 도장?”
“…예. 임종 때 보인 모습도 그랬지만, 철방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이는 것 같습니다. 여한 없이 가셨을 겁니다.”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하셨다.
- 이 땅에 뼈를 묻겠다더니, 소원대로 되었구나.
‘그러게요.’
검지(劍池)에서 흘러나가는 계곡물은 굽이굽이 막간산을 타고 흐를 것이다.
소원대로 이 땅의 일부가 된 것이다.
나는 회한을 뽑아 들었다.
스렁-
그리고 멀어지는 유해를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그러고 있은 지 잠시.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유골함을 다른 야장에게 맡긴 탁장명이 내 쪽으로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덕분에 아버님을 잘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인사는 받기가 좀 뭐 했다.
본래 연세가 있고 노환이 있긴 했지만.
탁종건은 결국 회한을 새로 벼리다가 남은 기력을 다 쓴 것이었으니까.
나는 회한을 검집에 돌려 넣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회한을 새로 벼려주시다가 손주도 안아보시지 못하고 가시게 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나, 탁장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자님께서 와주지 않으셨으면 애초에 부인과 아이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옥기 의원님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산파를 비롯한 일손들도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운을 뗀 탁장명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면서 계속해 말을 이었다.
“평소처럼 저 혼자 철방에 나와있을 때 부인에게 산통이 왔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공자님은 저희 식구들의 은인이십니다. 이 감사를 받아 주지 않으시면 저 탁장명은 여기서 머리를 바위에 찧겠습니다.”
진심으로 바닥에 이마를 찧을 기세를 보이는 탁장명.
‘철방에서 어르신께 돌아가겠다 할 때 알아봤지만 은근 고집 있네.’
탁장명과 그의 부인,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생각하면 저 말도 맞기는 했고.
빈말로라도 받아 주지 않으면 정말로 언행일치를 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 인사를 받겠습니다.”
그제야 빙그레 웃어 보인 탁장명은 흘러가는 계곡물을 아련하고도 후련한 표정으로 응시하더니.
“저는 아버님을 잘 압니다. 아버님께서는 평생을 장인으로 사셨던 분이시고, 가시는 날까지 장인이셨던 분입니다. 회한을 제대로 벼리지 못하셨다면 마음속의 응어리를 결국 풀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럼 아버님의 속내를 들을 기회도 없었겠지요.”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런 아버님에 비해 많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포권을 취해 보였다.
“더욱이 회한을 벼리는 중에 자리를 떠나는 모습까지 보인 저인지라,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민망합니다만…. 공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아니 탁가철방은 공자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 * *
장례를 마치고 철방 거리로 돌아오는 길.
나는 탁장명에게 물었다.
“말씀하시기를 탁가철방이 따르고 싶다고 하셨는데, 다른 야장들과는 이야기가 된 겁니까?”
“예. 대략은 됐습니다. 한데 전원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공자님 앞에서 포부를 말씀드린다고 긴장을 했더니 말을 그렇게 했습니다.”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단강구 대장장이들과의 사정을 다른 야장분들도 아시는지 궁금해서요. 이동 계획을 짜려면 정확한 인원을 알아야 하기도 하고요.”
“아버님이 젊으시던 시절에 도제로 들어오셨던 분 중에 한 분은 정든 땅을 떠나시지 못하시겠다 하셨지만, 뜻 자체는 존중해 주신다고 하셨고…. 그리고 따로 물려받을 철방이 있는 견습 도제 몇 명도 빠지기로 했습니다. 야장의 총원은 저까지 스물입니다.”
“스물. 알겠습니다. 단강구 사정은요?”
“그런 이야기까지 나눌 경황은 없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야장들을 좀 모아주시죠.”
철방 거리로 돌아온 탁장명은 내 부탁에 따라 부탁해 야장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그들 앞에서 호원단철에 관한 이야기 중 야장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빠짐없이 말했다.
“…하여 함께 해줄 야장님들을 찾던 중에 여기 계신 탁장명 대야장님과 인연이 닿아 오게 된 것입니다.”
그에 우식이라는 이름의 잔뼈 굵은 야장이 질문을 해왔다.
“그러니까. 아직 단철장을 인수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다? 단강구 대장장이들의 텃세도 예상되고요?”
나는 그 질문에 답했다.
“예. 다만 은휘상단의 창휘당주였던 은하연 소저가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인수는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뜻을 바꾸실 분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간의 수고를 계산해 은자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의 야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쇠 두드리는 거 말고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얕보기 일쑨데, 솔직한 사정을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데 우리는 은휘상단 같은 이름은 믿지 않아요.”
은휘상단의 영향력은 남직예와 닿아 있는 절강까지 미친다.
하여, 공신력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는데 저렇게 나올 줄이야.
무슨 말을 해야 고민하는 찰나.
우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이름 말고. 공자의 허리에 걸린 검을 맡긴 탁종건 어르신의 안목을 믿겠습니다. 뭐, 텃세야 어딜 가든 있는 거고…. 아니 그런가?”
그러자 다른 야장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렇지, 그렇지. 꼭 자신 없는 것들이 그따위 행패를 부리고 그러는 거지. 난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부르시는가 했네.”
“나는 은휘상단의 이름도 믿을 건데? 거, 자재나 도구가 부족한 일이 없게만 해주시오! 든든한 물주도 생겼겠다, 우리도 이제 뭐 좀 빌리지 좀 말고 해봅시다. 신임 대야장!”
그런 야장들을 향해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선택권을 주었다.
“결정에 후회 없으시겠습니까?”
야장들은 입을 모아 답했다.
“없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이 말했다.
- 쓰흡. 할 텐데, 용운이 이 녀석이 사람을 얼마나 굴리는데…. 분명히 할 텐데….
‘?’
- ?
* * *
탁가철방의 정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기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탁가철방과 인연이 깊은 전장과 주변 철방에 쌓인 빚만 많은 상태라.
땅과 집을 팔고 그러고도 남는 빚을 내가 갚아주는 것으로 금전적인 정리는 끝이었다.
‘보셨습니까, 사부님?’
- 뭐를?
‘만날 제자더러 지독하다 하시는데, 제가 이렇게 쓸 때는 쓰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야장들의 가족들이었는데.
우선은 야장들만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가족들은 이후에 합류하기로 했기에.
야장들의 부인과 자녀들을 가까운 곳에 있는 친정에 모셔다드리는 것으로 그 일도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탁가철방이라는 현판을 챙기는 일뿐.
“갑시다.”
나는 가볍게 제를 올리고 주변에 떡과 음식 그리고 술을 넉넉히 푼 뒤.
현판을 챙긴 탁장명과, 손때묻은 연장을 챙긴 야장들을 이끌고 우리가 타고 온 배에 다시 올랐다.
그렇게 장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 배는, 절강에서 남직예로 넘어온 배들이 으레 쉬어가는 곳인 무호(蕪湖)라는 곳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구에에엑!”
“괜찮으십니까?”
“아, 안 괜찮습니다. 배에서 내렸는데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공을 쌓은 우리와 달리 야장들이 뱃멀미를 심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무호에서 하루 쉬며 진정들을 좀 시키고.
겸사겸사 멀미를 가라앉히는 약재도 마련할 생각이었는데.
두둑한 뱃살에 팔자 수염을 가진 객잔 주인이 반색하며 우리를 맞았다.
“어서옵쇼! 어이고, 많이도 오셨습니다요! 다 일행이십니까요? 둘네여서여덟….”
나는 주인장을 향해 언동생과 야장들 그리고 사공(沙工)과 수부(水夫)들을 더한 인원을 말했다.
“스물여덟 명이오. 식사 목욕 숙박 다 할거고.”
“아이고! 오늘 돼지꿈을 꿨는데 종일 파리가 날리길래 왜 그러나 싶더니만! 어디서 이렇게들 오셨습니까요? 망치에 집게에… 장인들이신가? 아무튼 방은 몇 개를 좀 치워야 해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한데, 문득 숙소로 택한 객잔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상한데?”
“용운 형님? 이 객잔은 무림맹에서 붙여준 선장님께서 소개해주신 곳인데요?”
“언용운 너는 의심이 너무 많아. 그냥 평범한 객잔 주인 같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옥기 너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
“그리고 내가 이상하다는 건 이 객잔이 아니라 들어오는 길에 스친 행상들이야.”
내 말에 정현은 고개를 갸웃했고 사부님께서도 의아해하셨다.
“빈도의 기억으론 수상한 행동을 보인 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 시선을 보내거나 피 냄새가 말라붙은 자도 없었느니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방금 객잔 주인 반응을 생각해봐. 대장장이가 우르르 몰려다녀, 거기다 우리 신임 대야장은 현판을 저렇게 지고 있다고. 그럼 궁금해하는 게 정상이지. 심지어 두 명은 행상 차림이었어. 그런데 붙임성이 저렇게 없다고?”
대화는 여기까지.
언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검에 손을 가져가며 야장들 앞으로 나섰다.
나는 곧바로 명을 내렸다.
“대답은 하지 마시고. 야장님들은 지금부터 제 지휘에 잘 따라 주셔야 합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야장들을 두고 나는 정현을 향해 말했다.
“나랑 하성이가 여기 집기들을 걷어찰 테니까. 너랑 당옥기는 그것으로 야장들 중심으로 숨을 수 있게 방벽을 쌓아.”
명을 마친 나는 곧바로 식탁과 의자를 비롯한 객잔의 집기들을 정현을 향해 걷어차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그렇게 날아든 집기들을 정현은 태극의 묘리를 응용해 부드럽게 받아냈고.
그걸 당옥기가 눕히고 쌓아 야장들 주변으로 방벽을 만들었는데.
그 소리에 방을 정리하러 갔던 주인장이 뛰쳐나와 울상을 지었다.
“…돼지꿈이었는데! 분명 돼지꿈이었는데!”
그 소리에 이쪽이 낌새를 눈치를 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쾅! 쾅!
쾅! 쾅! 쾅!!!!
일순 문이란 문들이 모조리 부숴지며 행상, 어부, 농부, 노인, 악공.
각양각색을 한 살수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각자 손에 쥔 날붙이들을 휘둘러 왔다.
쌔애애액!
쌔애애애액!
나는 곧바로 회한에 손을 가져간 뒤, 착 감겨오는 검병을 잡아 뽑았다.
서리 같이 하얀 검신을 드러낸 회한.
미묘하게 가벼워진 녀석은 내 검초에 약간의 속도를 더했고.
쌔애애액!!
검신이 머금고 있는 약간의 부드러움은 적절하게 휘어져,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검들을 무리 없이 튕겨내게 돕더니.
채챙!
채채채채챙!!!!
내가 흘려보낸 내력을 게걸스레 몸에 감고는, 거리 안에서 틈을 보인 상대를 두부처럼 갈라버렸다.
촤악!! 촤악!!!
촥! 촤아아악!!!!!!
‘명검은 그 값어치를 한다고 그러셨죠? 그 말이 정확하네요.’
- 나 역시 전보다 안락한 기분이 드는구나? 만년한철이 자아내는 특유의 한음(寒陰)한 기운 덕분인가?
‘스승을 공경하는 제자 덕에 좋은 집으로 이사를 오셨으니 그런 기분이 드시는 게 당연하죠.’
- ?
명검 중의 명검으로 거듭난 회한의 위력에 감탄하는 것은 여기까지.
나는 바쁘게 진영을 정비했다.
“하성이는 내 뒤에 붙고! 정현이랑 옥기는 야장들을 지켜!”
그러는 동안에도 살수들의 공격은 이어졌는데.
쌔애애액!
명을 받고 달려온 은하성이 유려한 천뢰검법의 초식을 보여내며 내 등을 노리던 살수의 검초를 막아서더니.
챙! 채채챙!
푸욱!!!!
깔끔하게 해치웠다.
파지직 거리는 검기를 휘감은 검으로 기수식을 취하며 내 뒤에 붙어선 은하성.
“형님!”
만날 흰소리나 하다 처맞는 게 일이던 녀석의 성장한 모습은 이 와중에 내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했다.
‘정현까지는 아니라도 잠깐 등을 맡길 만큼은 성장했구나.’
그러는 사이 또다시 뛰쳐 들어오는 또 다른 살수들.
“또 옵니다.”
“그래.”
푹!!!
푸욱!!!!
나는 놈들을 찌르고 베어내며 이놈들이 어디서 온 놈들인지를 살폈다.
‘사부님께서 말라붙은 피 냄새를 못 느끼셨다는 건 살인에 나선 게 처음이라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주저가 없는 살초들.
내 머릿속엔 그런 살수들을 길러내는 살수 집단 하나가 떠올랐다.
‘…천살막?’
중원 이대 살수 집단 중 하나인 놈들의 장기중 하나는 인해전술이었다.
‘얼마를 받았느냐에 따라 그 끝엔 더 강한 살수가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식으론 끝이 없을 것이다.
“싸우는 방식을 바꾼다.”
“예?”
“하성아. 너 혼자 잠깐만 시간을 벌어 볼 수 있겠냐?”
“해보겠, 아니 해내겠습니다.”
“그래. 죽지는 말고.”
아직 물가에 내놓기에는 걱정이 되는 녀석이었지만.
맡겼으면 믿는다.
나는 잡생각을 털어내고 회한을 고쳐잡았다.
‘내력을 빨아먹듯 받아내던 방금의 느낌과, 손에 전해지는 한기.’
흑마법과 사령술의 효율이 몇 배는 올라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 검을 받았던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질 좋은 완드 역할을 하는 거지.’
사부님이 괜히 안락하다고 하신 게 아니었다.
이 회한과 지금의 내 내력이라면.
단순히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넘어 어떠한 힘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나는 상단전에서 뽑아낸 내력을 빠르게 왼손으로 옮겨 술식을 바닥에 그려낸 뒤.
회한을 찔러 넣었다.
“망자들은 군주의 명을 받들라.”
그우우우우우-
그에 회한에서 뿜어져 나간 시커먼 안개가 널브러진 시체 중 알맞은 대상을 찾아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안개를 흡수한 시체들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시체들의 피부는 경화(硬化)를 한 가죽 갑옷처럼 단단해지고 몸속에 고인 피가 썩어 지독한 시독이 되었다.
체내의 내력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난 손발톱과 이빨은,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로워졌다.
크아아아아!
흑마술이 허락한 탈태환골.
구울로 되살아난 살수들이 내 명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