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전화위복 (1)
시커먼 안개가 객잔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의아했던 것일까?
객잔 안으로 뛰어들던 살수들의 행렬이 잠시 멈췄다.
크르르!
그사이 문드러진 얼굴로 짐승 같은 숨을 내쉬는 구울들의 면면을 을 본 당옥기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물리며 말했다.
“…어, 언용운?”
“왜?”
“왜라니?! 이 상황에서 왜 불렀는지 몰라서 물어? 뭔데 이것들? 요, 요괴야?”
당옥기가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벽 속에서 몸을 낮추고 있던 야장 중 몇몇은 구울을 보고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당옥기를 향해 은하성이 말했다.
“옛날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셨네. 옥기 누님, 세상에 요괴가 어딨습니까? 지금 겁먹으신 겁니까?”
“거, 겁은 무슨?! 생긴 게 사람 놀라게 생겼잖아!”
“에이. 겁먹으셨네. 소싯적에 무서운 이야기 안 좋아하셨나 보죠? 아, 지금도 안 좋아하시는 건가?”
“…죽여버려.”
운을 뗀 은하성은 가까이 있던 구울에게 호기롭게 팔을 걸치며 말했다.
“형님의 사령술? 방술? 뭐 그런 거겠죠. 이렇게 생겼어도 아군이라 이겁니다. 겁을 낼 이유가….”
그런 은하성을 향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주의사항을 말했는데.
“하성아. 걔들 몸에서 나오는 숨이랑 체액에 독 들었다.”
크르르!
때마침 하성이가 팔을 걸치고 있던 구울이 끓는듯한 숨을 내쉬며 침을 뚝뚝 흘렸다.
은하성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엄마 깜짝아!”
은하성이 휘주에 있는 모친을 찾는 동안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하셨다.
- 네 녀석의 방술은 적응이 될 만하면 생각지도 못한 것이 튀어나오는구나? 뭐냐 이것들은?
사부님의 물음은 당옥기가 먼저 한 질문과 궤가 같았다.
나는 당옥기를 보며 말했다.
“뭐냐고 물으면, 어차피 말해줘도 모른다는 말밖에 할 게 없는데. 쉽게 말해 내력을 태워서 단시간에 강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돼.”
“아? 그럼 독이 들었다는 건 시독이겠네?”
“그래.”
그렇게 답을 한 나는 은하성을 향해 말했다.
“하성이 너도 그 정도로 기겁할 필요는 없고. 백독단 먹었잖아? 괜히 까불다가 긁히지 말라고 한 말이다.”
“옙.”
은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정현을 가리켰다.
“근데 정현 도장은 안색이 왜 이렇게 파리합니까? 백독단도 먹었는데?”
“우욱. 죄송합니다. 언 소협께서 방술을 사용하실 때 쏟아져 나온 사특한 기운을 쐬고 나니 속이 좀…. 아! 언 소협의 방술이 사이하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짐작이 가는 바는 있었다.
정현이 쌓은 정순한 내공과 흑마술은 애초에 상극의 성질을 갖고 있었다.
구울을 만들어낸다고 쏟아낸 기운을 가까이에서 있는 대로 들이마셨으니 속이 울렁일 만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정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안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은 여기까지.
낯을 바꾼 나는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현 속을 뒤집어 놓은 기운이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가면서 저쪽도 뭔가 싶어 공세를 멈춘 거지, 이게 끝난 게 아니야. 이놈들, 천살막에서 나온 놈들 같다.”
강호인인 이상 천살막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구울을 보고도 기절하지 않은 간큰 야장들 중 몇몇이 천살막의 이름에 ‘헉.’하는 소리를 뱉었고.
은하성은 다시 한번 물었다.
“천살막? 용운 형님. 마주치면 명을 달리한다는 그 천살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랑 내가 나가서 상황을 한번 보자. 당옥기랑 정현 너희 둘은 여기 있고.”
정현은 미간을 좁혔다.
“천살막이라면 두 분만 그렇게 나가셔선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인해전술을 특기로 삼는 자들 아닙니까?”
“그래 둘이서는 위험하지. 근데 셋, 넷도 마찬가지야.”
나는 구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놈들을 계속 일으켜 세울 생각이다. 그때 손을 보태려면 정현 너는 잠시 이놈들의 기운에 익숙해지고 있어야 해.”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그래. 야장들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신호를 주면 나오는 걸로 한다.”
“예.”
정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옥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암기는 얼마나 남았어?”
“배에다 좀 놓고 내려서…. 절반 좀 넘게 남았어.”
“그럼 회수할 수 있는 거는 좀 하고. 이것들 몸에 시독 흐르고 있으니까, 가진 침이랑 여기 널브러진 젓가락 같은 걸로 아쉬운 대로 더 만들어봐.”
“알았어.”
나는 정현과 당옥기에게 객잔 안에 있을 것을 명했다.
그리고 은하성만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객잔 밖엔 예상대로 각양각색의 살수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뭔, 부른 적도 없는 손님들이 이렇게나 많이 왔지?”
내가 밖으로 나오자 어부 복장을 한 중년인이 작살을 어깨에 걸치며 입을 열었다.
“허. 수하들을 아끼신다더니, 솔선하여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나오신 김에 그냥 순순히 저희를 따라오시는 거 어떠신지?”
운을 뗀 어부는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공자님을 살려가면 수당이 후하게 떨어질 테니. 흔쾌히 따라주신다면 다른 분들은 살려드리겠습니다요.”
나는 어부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니들이 잘도 그러겠다.”
“니들? 저희를 잘 아신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천살막이잖아?”
“크. 식견 한 번 넓으시네.”
내 말에 어부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키웠는데.
이내 곧 제 놈들 얼굴에 스스로 금칠을 했다.
“하기야 천하에 한창 위명이 자자한 괴룡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수락할 곳이 저희밖에 없긴 합니다요?”
“없긴 왜 없어?”
그런 어부를 향해 나는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경쟁업체를 언급했다.
“기염곡 있잖아? 그 양반들이었으면 칼날이 턱밑에 들어왔을 때야 살수구나 하고 눈치챘을 텐데. 너희는 수상한 냄새가 딱 풍기길래 내가 바로 알았지. 이 새끼들 이거 천살막이구나 하고.”
“허? 듣던 대로 사람 복장 긁는 재주가 탁월하시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뭐, 됐고. 이봐 어부. 너희 누구한테 얼마 받았어? 그냥 의뢰 포기하고 돌아가서 위약금 좀 물어주자고 윗대가리들한테 건의하는 게 어때?”
내 말에 어부는 피식 웃었다.
“허허. 하늘도 죽인다는 본 막의 명성을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그건 천살조(天殺組) 이야기잖아?”
천살막은 천지현황(天地玄黃).
네 개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천살조는 말 그대로 황족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을 암살하는 게 가능하다는 양반들이지.’
하나, 나를 공격하러 온 놈들은 천살막의 구성원 중 현살조와 황살조가 동원된 것으로 보였다.
‘내게 들킨 시점에서 천살이나 지살은 아냐.’
내가 이래저래 이름을 날리고 있어도 후기지수로 분류된다는 점과 몇몇 오판 요소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가 그 점을 꼬집자.
“너희는 급이 좀 낮잖아?”
어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진짜 예리하십니다요. 한데, 왜 이렇게 사람 화를 돋우시지? 막 초절정 반열에 오른 핏덩이를 염라대왕님께 소개해 드리는 데는 천살조나 지살조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신경이 쓰여서 그래. 지살조 아랫급들이 온 거면 위험도에 비해 의뢰비를 너무 조금 받았어.”
“어허허허허. 용봉 취급도 못 받는 괴룡 소리를 따내신 거랑 사이비(似而非)교도 몇 놈 혼내 준 것으로 자신감이 너무 올라가셨네. 뭐, 그럼 협상은 결렬로 알겠습니다.”
나름대로 천살막도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래.”
하나, 놈들은 내가 괴룡으로서 세상에 드러낸 면모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그 무지함을 일깨워 주고자, 나는 손가락을 입안으로 가져가 소리를 냈다.
“휘이이이익!!”
그 소리를 듣고 객잔에 뚫린 구멍을 통해 구울들이 뛰쳐나왔고.
크아아아!!!
나는 천살막 놈들을 가리키며 명을 내렸다.
“물어!”
* * *
살수로 길러지기 위해 감정을 죽이는 법부터 배웠을 천살막 녀석들일 테지만.
난생처음 보는 미지의 존재에게 동료의 목이 씹어 뜯기고.
크아아!!
“컥!”
“으, 으아악?!”
촤아아악!
몸이 찢겨나가는 광경에 미지를 향한 공포가 동공들에 깃들었다.
그런 공포심은 본능적인 움츠러듦을 초래했다.
그렇게 굼떠진 놈들의 사각으로 당옥기의 암기가 날아드니.
픽! 픽!!
피피피피픽!!!
추풍낙엽처럼 살수들이 눈을 까뒤집으며 죽어 나갔다.
한편에선 정현이 그려내는 태극이 착실하게 적을 줄여나갔다.
쌔액!
쌔애애액!!
두 녀석을 양쪽 날개로 삼은 나는 계속해 상단전으로 내력을 밀어 올려 송장들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라!”
그어어어!!
전장에 시신이 늘어갈수록 우리 쪽의 군세가 늘어가는 현상에.
혼이 나간 듯이 구는 살수들도 있었다.
“귀신이다! 귀신들의 땅을 잘못 범한 것이야! 백귀야행(百鬼夜行)의 시각에 발을 디뎌버렸어! 다 죽을 거다! 다 죽을 거야!”
하나, 그들 중 몇몇은 송장병사들을 뚫고 나를 향해 살초를 펼쳤다.
“술사를 죽여야 한다! 술사를!!”
하지만 당해줄 내가 아니었다.
나는 한 손으로 구울과 송장병사들을 제어하는 수식을 유지하면서, 다른 손으론 파천검법을 펼쳐냈다.
촤악! 촤아아악!!!!
내가 이토록 활약할 수 있었던 데는 은하성도 한몫했다.
녀석은 평소 성정처럼 날뛰지도 그렇다고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 등만큼은 단단히 지켜냈다.
채챙!
촤아아악!!
그렇게 천살막의 살수들과 싸움을 벌인지 한참.
어느덧 천살막의 살수 중 정말로 숨이 붙어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은 몇 남지 않게 되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살수들 사이에 협상이니 어쩌니 하며 이죽거렸던 어부 놈이 보였다.
“당옥기, 정현. 내 옆으로.”
나는 곧바로 언동생들을 불러들인 뒤.
“멈춰라.”
구울과 송장병사들을 우뚝 세우고 입을 열었다.
“어이, 어부. 내가 의뢰비 너무 조금 받았다고 했지? 내 말이 맞아 틀려?”
“…맞는 것 같습니다요.”
“살려줄 테니까 돌아가. 너희로는 안 돼. 일방적이라 재미도 없다.”
“…….”
“돌아가서 천살조나 지살조로 불러와. 살아생전 강했던 존재일수록 되살아났을 때 강해지니 그편이 나도 더 좋아.”
그런 내 말에.
어부를 비롯해 살아남은 살수들이 번개같이 몸을 빼 달아났다.
그러고 나자 다들 입을 열었다.
“용운 형님? 다 잡은 놈들을 왜 살려서 보내 주시는 겁니까?”
“그보다 천살조나 지살조를 불러오라는 말씀은 정말로 감당이 가능하신 겁니까 언 소협?”
- 그래. 아까 말하는 것을 보니 윗줄의 고수들 같던데, 지금 네 실력과 상태로 감당이 되겠느냐? 거기서 더 무리하면 네 녀석도 아슬아슬한 상황일 텐데?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우선 시체군단에게 보내기 위해 퍼 올리던 내력을 중단했다.
“감당이 안 되니까 보내 준 거다. 저것들을 다 죽이면 정말로 지살조랑 천살조가 차례대로 올 테니까.”
그러자마자 한쪽 코에서 뜨거운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당옥기가 경악을 하며 말했다.
“야, 너 코피나!”
나는 한쪽 소매로 코를 훔치며 말했다.
“이 싸움을 겪은 놈이 돌아가야 천살막이 의뢰를 파기할 가능성이 생겨. 그래서 제갈 군사님께서 하셨듯 허장성세를 부리면서 놓아준 거야.”
“그런?”
“허. 송장들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언동생들을 향해 손을 휘휘 저은 나는 곧바로 객잔으로 향했다.
몇 놈을 살려 보내는 것으로 살수들이 계속해 밀려드는 상황을 막기 위한 수를 둔 나였지만.
세상만사 어찌 될지 모르는 일.
되도록 빨리 이곳을 뜨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객잔 안으로 돌아간 나는 기절한 주인장의 품에 은자를 넣어 준 뒤, 야장들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무호를 떠야겠습니다. 뱃멀미가 있으신 분은 그냥 참으세요.”
“가겠습니다! 멀미 다 도망갔습니다!”
* * *
낙양 무림맹주실.
근래 무창에서 수군진을 돌보던 제갈혜가 오랜만에 올라와 맹주실을 찾자.
공손무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좀 어떻습니까?”
천살막의 표적이 되었다가 빠져나온 언용운의 용태를 묻는 것임을 알았지만.
드물게 몸이 달아 보이는 공손무결의 모습에, 제갈혜는 일부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군진이요, 용운이요?”
“수군진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용운이 이야기도 서면으로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나요?”
“…….”
“농을 한번 해봤습니다. 용운이도 무사해요. 내상을 살짝…”
“내상을 입었단 말씀입니까?!”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무리를 좀 했던 모양인데, 녀석이 아미파의 보리심환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무창에 도착해서 정양을 마친 것까지 확인하고 올라온 참이에요.”
제갈혜의 음성에 공손무결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천살막에 의뢰를 한 자들은 누구겠습니까? 마교?”
“유력하겠지요. 이 시점에서 용운이 그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노리고자 하는 자들이 달리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끙. 초가삼간에 숨어든 빈대라면 확 다 태워버리고 새로 지을 텐데…. 천하를 다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만약을 대비한 준비를 하고, 그러면서 새싹들을 길러내는 수밖에 없겠죠.”
“대군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진하시기로 한 소림과 정무학관의 교류전을 키우는 일, 오면서 들으니 백본회에서도 통과가 됐다면서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천하가 이 지경으로 어지러운데, 피를 흘리기 싫다면 영약이고 무학이고 다들 내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