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교류 (3)
< 관주우웅!!!! 언용운 선수의 장시에서 출발한 격구공이 우소릉 선수의 이마까지 이어지며, 경기가 끝나기 직전 아슬아슬한 득점이 이뤄집니다! 일 점! 단 일 점으로 청죽이 소림을 꺾었습니다!!
목청 좋은 소리꾼이 내지른 음성에.
객석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소림이 승리한다는 것에 돈을 건 관객들은 울상이 되었고.
“소, 소림이 일 회전에서 탈락할 줄이야?!”
“아직 탈락은 아니야! 저기 계율승이 심판석으로 가는 거 안 보이나?! 판정을 물으러 가는 거겠지! 아직 모르는 거야!”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모르긴 뭘 몰라?! 청죽이 소림을 꺾었다!”
“젠장! 믿고 있었소이다!!”
“믿고 있기는? 치라는 공은 안 치고 왜 무승들에게 싸움을 거냐고 그랬으면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게! 청죽이 이겼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소림의 젊은 무승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저마다 중얼거렸다.
“저, 저래도 되는 것입니까?!”
“청죽관이 우리를 속였습니다!”
중년의 계율승 중 한 명은 그런 젊은 무승들을 꾸짖었다.
“오랜만의 야유에 들뜬 것은 알겠는데, 다들 언행을 신중히 하거라. 불법을 받드는 자들이 어찌 그리 가볍게 말을 뱉느냐.”
하나, 그러면서도 판정 번복을 기대하는 듯했다.
“판정에 관해서는 원경이 물어보러 가지 않았느냐. 얌전히들 있거라.”
그렇게 객석에서 희비가 교차하는 사이.
언동생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가장 먼저 달려온 녀석은 애초에 경기장에 있었던 우소릉이었다.
“언 형!”
“마무리 좋았다. 한철검 물려준 값 하는데?”
“헤헤.”
녀석을 칭찬하고 있는 사이.
소림의 무승들을 잡아두는 역할을 맡겼던 은하성과 정현이 달려왔다.
“용운 형님! 와! 진짜 형님 생각대로 되긴 했는데, 근데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하성아. 나는 네 질문의 의미를 이해를 못 하겠다.”
“예?”
“안 될 건 뭐야?”
그렇게 되묻고 있는 와중에 은하연과 당옥기가 다가왔다.
둘 중 은하연은 수건과 회한을 내밀었고.
당옥기는 입을 열었다.
“안 될 건 뭐냐니? 언용운 너 또 뭔 사기 쳤잖아?”
“사기라니?”
“니가 뭐라 뭐라 하니까 무승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마지막엔 다들 당했다는 표정들이던데? 그게 사기 친 게 아니면 뭔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거냐? 느그 기숙사로 좀 가라.”
“캬악!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잖아! 응원을 해줘도 난리야!”
길길이 날뛰는 당옥기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냥 규칙 아시고들 있냐고 물었을 뿐. 다른 말은 안 했다. 근데 소림의 무승들이 달려든 거야. 그걸 상대하다가 규칙대로 점수를 냈을 뿐이고. 내가 부정 장시를 썼어? 공을 경기장에 하나 더 넣었어? 안 그래 정현?”
“합격진으로 결판을 내자 같은 말씀은 안 하시긴 했습니다. …어조가 좀 미묘하시긴 했습니다만. 그 어조에 현혹된 것 자체가 소림의 무승들이 의욕이 과해 스스로 눈을 가린 형국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이런 걸 두고 심리전이라 하는 거다.”
그런 내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말하는 것은 화경이야 화경. 소림의 땡중들에게 측은함이 들기는 처음이로고.
그러는 사이 운영위에서 결론이 나왔다.
“을조 삼, 사 번 대진은 청죽관의 승리입니다!”
하여, 언동생들에게 거보라는 말을 하려는 이때.
“거봐….”
대뜸 고완산 선배가 나를 목 위에 태웠다.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면서 눈물을 지었다.
때아닌 목말에 눈물.
“크흑. 크흐흑”
대체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다.
“…고 선배? 체육부장님?! 사람들이 봅니다?”
“보라고 하는 건데 봐야지!”
“보긴 뭘 봅니까? 이제 겨우 일 회전을 통과했을 뿐인데 왜 목말을 태우세요?”
“크흑. 크흐흑.”
“…목말은 그렇다 치고. 울기는 왜 우십니까? 경룡이 형한테 옮으셨어요?”
그런 내 말에 고완산 선배가 훌쩍거리며 답했다.
“크흑. 나도 모르겠네. 그냥 눈물이 나오네.”
“본인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자네가 격구에 나서기로 한 이상 최소한 준우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요?”
“내 똥 같은 손이 소림을 일회전 상대로 뽑았잖나! 일회전에 소림이라니?! 눈앞이 깜깜했는데, 그걸 이겨버리니 눈물이 나오는 것 같네!”
이어서 경룡이 형도 눈시울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매진악, 호연찬. 그 친구들도 못 했던 일을 우리 청죽관이 해내다니. 크흑.”
“…환장하겠네.”
뭐, 개인적으로 겨우 일회전을 통과해놓고 이렇게 목말을 타고 있는 형국이 남사스럽기는 했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덕분에 은연중에 깔려있던 소림 공포증이 가신 모양이었으니까.
“울든지 웃든지 마음대로들 하세요.”
* * *
첫날 대회 일정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나는 언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학관 식당으로 향했다.
“용운아!”
그렇게 찾아간 식당 앞에는 윤영 숙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숙부님?”
반가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나는 함께 있던 언동생들을 소개했다.
“이렇게는 산서에 같이 가셨을 때 보신 녀석들이시니 아실 테고, 이쪽은 강남상왕의 자녀들입니다. 제 밑에서 총무부장이랑 공보차장을 맡고 있고요.”
“은하연입니다. 산서상계의 금준(金駿)이라 불리시는 이윤영 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은대인의 자녀분들 이시구만? 반갑네. 그리고 지금은 용운이 외숙부로 온 것이니 금준이고 대인이고 너무 그렇게 격식을 차릴 것 없네.”
“이쪽은 파서독제의 따님입니다. 청죽관의 약방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 파서독제께서 그렇게 아끼신다는 따님이신… 가만, 청죽관의 약방일을 보고 있다고? 검은 무복이면 향란관 아니신가? …왜?”
“그, 그건 사정이 좀 있어서요. 아무튼! 처음 뵙겠습니다! 당옥기입니다!”
윤영 숙부도 아직 저녁을 안 드셨다길래, 소개를 마친 우리는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받아온 요리를 앞에 두고 윤영숙부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내빈석이랑 대국장이 워낙에 떨어져 있어서 위기는 그냥 용운이 네가 이겼나보다 했는데, 소림과 붙은 격구가 압권이었다. 용운이, 너 공효대사의 눈동자를 본 적 있느냐?”
“애초에 대사를 뵌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흰 눈썹에 덮여있어서 안 보이던데요?”
“나는 소림에 시주를 한 적도 있고 해서 여러 번 뵌 적이 있긴 한데, 나도 대사의 눈동자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청죽관이 득점을 하면서 경기가 끝나버리니까 그 눈꺼풀이 번쩍 뜨이시더구나. 아버님이나 네 부모님이 이걸 직접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아, 외조부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서신으론 괜찮다 하시던데.”
“실제로 많이 좋아지셨다.”
이후로 윤영숙부는 외조부의 이야기와 태원상단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나는 방학 때 진주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신변잡기를 나누고 나자, 윤영 숙부께서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여셨다.
“…새외에서 온 손님들이랑 이번에 새로 무림맹에 가입한 곳들의 후기지수들과는 혹 이야기를 나눠봤느냐?”
“그럴 시간이 없었죠. 저는 오늘 열린 종목에 다 참가했으니까요.”
“음. 그건 그렇구나.”
“대진이 맞물려서 북해빙궁주의 차남은 만나보긴 했습니다.”
“담용주를 보았구나. 빙궁 내에서 입지가 좀 좁긴 한데 사귀어둬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다른 새외의 손님들과도 기회가 있다면 면을 터놓거라.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새외 사람들이 배타적인 구석들이 있다. 그래서 보통은 외부인이 그들의 권역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친분을 쌓아두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될 것이야.”
나는 윤영숙부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그러는 숙부님께서는 면들 좀 트셨습니까?”
“그러다가 너를 보러 오는 게 이리 늦어진 것 아니냐? 맹주님이랑 노삼 교수님이 가교역할을 해주셔서 많이 사귀었지. 백본회라는 것에 본격적으로 참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나름대로 소장파(少壯派)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좋은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무림맹이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할 테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거친 숙부와 나 사이의 대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남은 대회는 자신 있느냐?”
“대환단이 걸렸는데, 자신 있어야죠.”
“끙. 소림이 대환단을 턱 내놓은 게 무슨 이유인가 했는데, 듣고 보니 그 원철이라는 소림의 제자가 천재 중의 천재라 하던… 마침 저기 오는구나?”
딱 그때.
원철을 비롯해 몇몇 무승들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예선전 일을 따지러 오는 건가?’
만약을 대비해 나는 언제든지 출수를 할 수 있도록 몸을 틀어 앉았다.
한데, 소림의 젊은 무승들이 한 행동은 합장이었다.
손뼉을 마주 붙인 원철은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욕을 하시는 건 아니시죠?”
불가의 방식으로 심술을 내는 건가 싶어서 물었는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호를 읊는 그 모습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아미타불.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소림의 제자들이 산간에서 수련만 하며 지내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 되어 마주하게 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청죽과 괴룡의 실력인 것이지요.”
그렇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인 원철은 호승심이 일렁이는 눈매로 말했다.
“다만 다음번에는 이쪽도 제대로 실력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진 경기를 두고 항의하는 게 아니라, 남은 경기에서 진심으로 싸워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와주는 게 더 좋지.’
상대가 진심을 다해오는 건 이쪽도 바라는 바였다.
‘다가올 마교와의 싸움.’
소림의 후기지수들이 지닌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나와 청죽은 그들에 비해 어떤지, 확인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씩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찾아온 둘째 날.
이날 벌어지는 대회 일정은 격구 준결승과 결승.
그리고 궁도(弓道)의 예결선이었다.
먼저 치러진 것은 궁도였다.
예결선이라 하였지만.
궁도는 예선이 곧 결선이었다.
일 순(巡), 그러니까 다섯 발을 쏴서 점수가 낮은 참가자는 탈락하게 되는 방식이었으니까.
시작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초원을 터전 삼고 활을 애병으로 삼는 새외세력 각궁보(角弓堡)의 소보주 야율위였다.
퉁! 퉁! 퉁! 퉁 퉁!
푹! 푹! 푹! 푹! 푹!
대충대충 활을 재서 쏘는 것 같은데도 그가 쏘는 화살은 어김없이 홍심에 날아가 박혔다.
하나, 궁도는 군자의 육예라 하여 이 시대의 있는 집 자식들은 기본 수양으로 몸에 익히는 것이었다.
중원의 후기지수들도 좀 느려서 그렇지 계속해서 홍심에 화살을 꽂았다.
투웅!
푹!
그리하여, 미리 준비한 화살이 동이 났을 때.
각궁보에서 온 야율위.
윤국관의 제갈설지.
향란관의 조철성.
저렇게 세 명이 공동 우승을 확정지은 상태였고.
딱 하나 남은 화살이 은하연의 손에 들려 있게 되었는데.
[은소저. 반드시 맞춰야 할거요.]
내가 심심한 응원에 말을 전하자.
은하연이 이를 악물더니.
퉁!
푹!
기어코 홍심을 쏘아냈다.
“궁도 종목은 운영위의 회의 끝에 공동 우승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우승자는 각궁보의 야율위! 윤국관의 제갈설지! 향란관의 조철성! 청죽관의 은하연 입니다!”
그렇게 궁도 종목이 막을 내렸다.
이어진 격구 준결승 시합에서 청죽관은 향란관을 상대로 신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
운매관을 꺾고 올라온 각궁보의 후기지수들을 상대하게 됐는데.
< 득점! 또 득점입니다! 각궁보의 후기지수들이 언용운과 우소릉의 속도를 따라잡지를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 각궁보의 후기지수들은 향란관에 비해 싱거운 상대였다.
초원에서 살아가는 전사들은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신법이 투박했던 것이다.
대앵!!!
< 경기 종료! 청죽관이 각궁보에게 일곱 점 차 대승을 거둡니다! 격구 종목에서도 우승을 가져가는 청죽! 청죽관의 기세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 결과.
둘째 날에도 두 종목을 석권하며 청죽관의 종합우승과 최우수 후기지수 선정에 한 걸음을 크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하루였다.
‘…내가 지금 각궁보의 소보주 야율위를 만나러 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진대회가 단순히 후기지수들이 모여 노는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춘계 대항전 때와는 천하의 사정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대회의 규모가 달라졌다.
단순히 대회에서 우승하고 상품을 얻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됐다.
‘윤영숙부가 찾아와 강조했지만.’
장차 백본회의 한 축으로 거듭날 신세력.
원작에서 마교를 상대하는 데 큰 힘이 되었거나 먹이가 되고 말았던 새외 세력들과 관계를 쌓아야 했고, 거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속사정들도 캐내야 했다.
‘마교 놈들과 사파 녀석들의 행동이 원작의 흐름을 완전히 벗어난 지금. 정보와 인연이 가장 큰 무기야.’
하오문의 도움을 받았던 사도련의 일로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나였다.
하여, 이렇게 야율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는데.
각궁보의 후기지수들이 묵고 있는 객관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계십니까?”
때마침 야율위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싸늘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언용운? 그대가 여긴 무슨 일로?”
하기야, 대패의 쓰라림을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를 향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놀리러 왔나?”
…점수를 좀 적게 냈어야 했나?
“그럴 리가요. 친교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친교? 갑자기?”
“소보주께서는 갑작스럽겠지만, 저는 전혀 갑작스럽지가 않습니다. 제 외조부께서는 산서금붕이시고 제 본가는 하북 진주입니다. 초원의 이야기를 옛날이야기처럼 들으면서 자랐죠.”
하나, 내겐 세 치 혀가 있었고.
“그렇다 보니 초원의 대전사들을 어려서부터 동경했습니다. 오늘 치러진 궁도 종목과 격구 종목? 그딴 것의 승패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초원의 대전사들은 활도 격구도 말을 타고 할 텐데요. 사실상 소보주께서 봐주신 것이지요.”
“…크흠.”
미리 준비해둔 미주(美酒) 한 동이가 있었다.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컬컬하네. 마침 준비해온 중원의 술이 있는데, 남은 이야기는 안에서 할까요? 초원의 명주들에는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별미로서 즐길 만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