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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32화 (232/444)

제232화. 교류 (4)

술잔이 몇 번 오가는 동안 나는 야율위에게 열심히 금칠을 해주었다.

“허! 정말로 화살 한 발로 기러기 두 마리의 목을 꿰셨단 말입니까? 말로만 듣던 신궁이신데요?!”

“크흠. 신궁은 아니고. 각궁보의 전사들이면 철새들이 날아갈 때 시도해보는 일일세.”

“크. 그렇게나 신궁들이 많다니. 다른 방파와 궁들은 몰라도 각궁보와는 척지면 안 되겠습니다.”

야율위는 그런 내 언변이 만족스러웠는지 비실비실 웃으며 본인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흐흐흠. 그러는 자네야말로 혼자서 마두의 목도 베고 모산의 상청검수 일곱을 누르고 그랬다면서?”

“마두의 목을 벤 일은 운이 좋았습니다. 뭐, 소보주님과 저 둘만 있으니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상청검수들보다는 제가 낫긴 합니다.”

“핫핫핫. 중원의 친구들과 서먹한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 겸손들을 떨어서인데 자네는 그게 없어서 좋아!”

그러고 있은 지 대략 한 시진쯤 되었나?

야율위가 술을 푸는 표주박을 빼앗더니 이런 말을 했다.

“자, 동생도 한잔 받게.”

“음. 지금 동생이라고 하셨습니까?”

“왜? 불쾌했나?”

“그럴 리가요. 객관에 문을 두드렸을 때. 형님의 눈빛이 매서워서 제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까 근심했는데. 전해진 것 같아 기뻐서 그럽니다, 기뻐서.”

그런 내 모습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하셨는데.

- …한 시진 만에 도끼눈을 뜨던 자와 호형호제를 터? 네 녀석의 혀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이냐? 안에 피 대신 꿀이라도 흐르나?

‘친화력이 좋다는 말을 두고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그러십니까 사부님?’

사부님께 표현을 좀 살갑게 해달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 사이.

야율위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근데, 우리 이렇게 술을 나누고 있어도 되는가? 객관을 안내받을 때, 그 대학원생… 이라는 사람들이 당부하기를 음주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해달라던데?”

“그건 이 정진대회라는 것이 혈기가 끓는 후기지수들이 모인 자리이다 보니, 그 혈기에 절제 없는 술이 더해져서 사고가 날까 그런 거지요. 저랑 형님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런가?”

“예. 그거랑 출전 종목에 집중하라는 뜻도 있겠는데, 저는 내일 출전하는 종목이 없습니다. 형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네.”

“그러니까요. 형님과 기분 좋게 한잔하고, 아침에 땀 좀 빼고 나서 개운하게 대회 일정 구경하러 가면 됩니다.”

“아, 마침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사실 중원 후기지수들을 잘 몰라서 보는 재미가 좀 없던데. 괜찮으면 내일 청죽관의 객석 근처에 자리를 잡아도 되겠나?”

그러는 중에 나온 야율위의 가벼운 부탁.

어려울 것은 없었다.

“좋지요.”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 봬도 이 동생이 무림 맹주님이랑 밥도 먹고! 야유도 가고! 막 다한 사이입니다. 운영위에 제가 딱 말해 놓겠습니다!”

“하하핫. 좋군. 아무튼 괴룡이라는 이름과 함께 풍문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이, 가감이 좀 있어서 그렇지 다 사실이었다니? 동생도 고생이 많았겠구만.”

그로 인해 한층 푸근해진 분위기 속에.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고생이랄 것도 없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요즘 초원은 어떻습니까?”

막내 숙부가 돌아가시며 남긴 이야기엔 마시와 북시 이야기가 있었다.

마시와 북시는 빙궁의 산물이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했지만, 초원과도 밀접한 곳이었다.

하여 물어본 것이었는데.

야율위는 내 물음에 침음을 삼켰다.

“초원은 요즘 상당히 어수선하다네. 부족들 간에 날이 서 있고. 크고 작은 분란이 잦네. 우리가 소 닭 보듯 하던 무림맹의 초청장을 괜히 수락한 게 아니야.”

그렇지.

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이곳에 와있는 것이었다.

체면, 위엄, 정치적인 입장들을 고려하는 어른들의 대화에선 쉬이 나오지 못하는 사정들.

‘그런 사정들이 후기지수들의 입에선 우정을 매개로 나올 수가 있지.’

나는 계속해 대화를 잇기 위해 자연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흠. 초원을 터전으로 삼는 부족들이 다양해서 그런 겁니까?”

“그런 부분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한데, 요즘은 같은 족속이라도 사는 군락이 떨어져 있으면 잘 믿지 않고 날을 세우는 형국이라네. 흉흉한 괴담이 돌아서 그런 모양인지….”

괴담?

그 말에서 나는 수상한 냄새를 느꼈다.

“괴담이라시면? 제가 또 상청 검수 일곱을 누른 몸입니다. 잡귀 퇴치 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는데요?”

“귀신의 이야기는 아니고. 아이들이 납치를 당했다느니, 전사들이 실종됐다느니 하는 이야기야. 본디 아이들이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너무 멀리 가는 것을 막고자 그런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삼아 해주곤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 보군요?”

“맞네. 실제로 그런 정황이 있었음이 확인되어서 부족장들의 회의가 있었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은 지 한참.

어느새 내가 가져온 술동이가 바닥을 보였다.

“…이런. 술이 다 떨어졌군.”

“대회가 끝나면 아마 연회가 크게 열릴 겁니다. 아쉽지만 술잔은 그때 나누기로 하시지요. 형님.”

“그러지. 그럼 내일 보도록 하세.”

“옙.”

그렇게 각궁보의 객관을 나온 나는 청죽관으로 돌아왔다.

쉬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밤은 길었고.

나는 내일 참여하는 종목이 없었다.

돌아볼 곳이 많았다.

‘남해적룡궁(南海赤龍宮), 남녕표국(南寧鏢局)까지는 돌고 여유가 있으면 검령문(黔靈門)까지. 봐두는 게 좋겠지.’

하여, 주기도 몰아내고 새롭게 술 한 동이를 챙기기 위해 온 것이었는데.

연무장에서 합격진의 위치를 잡아보고 있는 선배들과 동기들이 보였다.

“우 후배. 방금은 너무 튀어 나갔네.”

“회장님 말이 맞아. 우 동생 혼자 무승들 사이에 고립되고 싶은 거야?”

“거, 겁주지 마세요. 은 형.”

“그만큼 조심하라는 거지.”

“자자, 다시 한번 해보세. 만약에 소림을 상대로 만나게 되면 초반에 기세를 잡아야 해. 첫 포진이 아주 중요하네.”

내일 있을 합격진 종목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에 내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열심이네요.’

- 네 녀석이 내 대환단 거리면서 쥐잡듯 잡는데, 열심히 하지 않고 배기느냐?

‘저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말과 함께 나는 사부님이 들어계신 회한을 응시했다.

그러자 문득 탁종건 대야장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쳤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합격진 준비를 한다고 여념이 없는 청죽관 생도들을 뒤로하고, 나는 술동이 하나를 새로 챙겨 들었다.

그리고 내공을 운용해 주기(酒氣)를 몰아낸 뒤.

다시금 길을 나섰다.

‘그럼 다음 객관으로 가보실까.’

* * *

정진대회 셋째 날.

이날은 종일 합격진 종목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한 경기도 놓치지 않도록, 한 경기장에서 차례차례 모든 대진이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총 여덟 집단이 참가한 가운데.

소림은 예선에서 운매관을 꺾었다.

그리고 준결승 상대로 남해 적룡궁을 꺾고 올라온 청죽관을 만나게 되었다.

곧이어 시작될 준결승 경기를 앞두고.

소림의 방장 공효대사는 수염을 쓸며 노삼에게 말을 건넸다.

“청죽이 달라졌다는 말이야 일찍이 전해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괄목상대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흐하하. 제가 봐도 우리 애들의 기세가 좋긴 한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작풍월개 소리를 들어가며 학관에 몸을 두고 계시더니, 푸른 대나무가 드디어 꽃을 피웠구려. 노고가 참으로 많으셨겠소이다.”

“크흠. 근데 사실 제가 한 건 뭐 없습니다. 용운이 그 녀석이 물건인 거지요. 용 한 마리가 연못에 들어앉으니 다른 녀석들도 펄떡거릴 수밖에요. 물론 그 언용운이를 청죽관에 데려온 사람이 저긴 하지만요. 흠하하!”

그런 노삼을 향해 창량이 한마디를 했다.

“노교수님. 내빈이 많습니다. 체통을 지키시지요.”

“창량교수.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부러우면 솔직하게 부럽다고 합시다? 으하하!”

그 사이 공효대사는 멀찍이 후기지수들이 앉은 객석들 중 파란 무복을 입고 있는 청죽관의 객석을 응시했다.

‘언용운이라.’

그렇게 옮겨온 공효대사의 시선엔 자연스레 언용운의 주변에 모여있는 인물들이 보였다.

‘…각궁보의 소보주와 남해 적룡궁의 인사들이 아닌가?’

소림의 방장쯤 되는 자리는 무위나 인품만으로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공효 대사에게는 판을 읽는 능력이 있었다.

‘벌써 사람들을 사귄 것인가?’’

하여, 언용운 주변에 모인 면면들의 의미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습속이 달라 물과 기름처럼 지내는 새외의 인물들을?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 해야 할지…. 하여간 마냥 후기지수 취급해선 안 될 인사로고.’

공효대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작금의 천하에 필요한 인물됨이긴 하도다.’

하나,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격구에서 보인 꾀.’

규칙에 어긋난 부정행위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규칙에 어긋나지 않은 수였다.

그 수에 넘어간 것 자체가 격구 경기에 참여한 소림의 제자들의 수양이 부족하다는 증거였으니, 그것을 두고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 의도가 정도였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게 공효대사의 결론이었다.

‘유들한 성정이 나쁜 것은 아니나, 난세에는 많은 유혹이 있을 진데. 저 인사가 언제고 푸른 대나무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공효대사의 시선은 이제 객석의 원철에게로 옮겼다.

‘역시 원철이가. 소림이 굳건한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귀들도 세존의 말씀에 감화되어 불제자가 되었다.

불법을 공부한 원철과 소림의 후기지수들이 굳건한 중심이 된다면.

언용운이든 아니면 또 다른 누가 되었든 잘못된 길에 심취하지는 않으리라.

‘공손 맹주와 지금의 나 같은 관계가 되면 좋겠지.’

그러면 백도무림는 자연히 굳건해질 터였다.

공효대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호각이 울렸다.

삐이익!!!!!

합격진 종목의 준결승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공효대사는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먼저 움직인 것은 청죽관이었다.

채! 채채채채챙!

청죽관의 스물다섯 생도는 절도있게 발검을 하더니.

한 마리 새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양 날개를 펼쳤다.

“가자!”

그리고 매섭게 소림의 무승들을 조여왔다.

그 맹렬한 기세에 소림의 무승들은 단숨에 포위를 당했다.

하나, 소림의 반격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캉!!!!!!!!!

수비를 위해 취하고 있던 원진(圓陣)에서, 해바라기의 이파리처럼 뻗어 나온 봉들이 청죽관 생도들의 검을 쳐내기 시작했고.

탕! 캉! 캉캉캉!!!!

그와 동시에 하나가 다수가 되고 다수가 하나가 되며 만(卍)자를 그리는 나한진의 묘리가 펼쳐졌다.

맹렬하게 공격해오던 푸른 공작의 날개는, 그 순간부터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

공효대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 * *

청죽관의 합격진 조는 소림에게 패했다.

“합격진 종목! 준결승 첫 번째 대진의 승자는 소림입니다!!”

그 결과가 소리꾼의 입에서 흘러나오자마자 나는 새외의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형님들. 저는 밑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러게.”

“그러시게나.”

양해를 구하고 은하연, 정현과 함께 경기장으로 내려와 보니.

청죽관 생도들은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넝마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경룡이 형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역부족이었네.”

경룡이 형을 향해 나는 되물었다.

“제게 왜 미안해하십니까.”

그 물음에 답을 한 것은 은하성이었다.

“아, 형님이 만날 한 소리가 지면 뒈진다는 거랑 대환단 못 따면 죽는다는 말이었잖아요!”

“상상에 맡긴다고 그랬지 죽는다고는 안 했는데?”

“그게 그거죠!”

“하성아. 지금 나한테 짜증 내는 거냐?”

“오늘은 좀 봐주십쇼.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아이고 삭신이야.”

“입은 안 아픈 거 같은데. 이리와. 언행일치하게 해줄 테니까 주둥이 내밀어.”

입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은하성은 꿈틀꿈틀 몸을 뒤집었다.

어이가 없어서 한번 봐주기로 하고.

나는 경룡이 형에게 말했다.

“저는 소림을 이겨보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것 자체가 청죽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건 또 그렇구만.”

“수련하면 되죠. 수련해서 쫓아가 보는 겁니다.”

“그래. 또 해야지. 또 시켜주게.”

그러고 있는데,

누워있던 은하성이 말했다.

“내일이면 후회할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회장님.”

“꼭!”

“앜!”

“한마디를 더해서 매를 벌어요!”

“아악!”

그렇게 은하성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는 생각했다.

‘이기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했다.’

무위 종목에 집중하기 위해 정현과 나, 은하연이 빠진 청죽관의 합격진 조였으니까.

무승들의 손속이 과하다 볼 수도 없었다.

‘종목 자체가 이런 종목이야.’

내용 자체도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해줄 법하기도 했고.

다들 분함을 동력으로 삼는 듯하니 그야말로 약이 되는 패배라 할 만했다.

하지만.

너절한 상태로 뻗어있는 선배와 동기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울컥했다.

‘그런데 열이 받네?’

이 빡빡이 자식들이.

감히 누구 애들을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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