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34화 (234/444)

제234화. 교류 (6)

향란관의 다음 참가자는 정말로 남궁윤이었다.

녀석이 연무장 위로 올라오자, 많은 관중이 기대를 담아 별호와 이름을 연호했다.

“남궁윤! 남궁윤!”

“비룡검!!!”

“천하제일 후기지수!”

하나, 한편에선 팔짱을 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비룡검이 천하제일 후기지수가 맞나? 오늘 보니 소림의 원철 스님도 한가락 하더만?”

“원철 스님은 이번 대회가 강호 초출이라면서? 그런 건 어쩔 수가 없지. 꼬우면 일찍 강호에 나오셨어야지.”

“원철 스님이 아니라도 방금 매진악 생도를 날려버린 괴룡 언용운이 있지 않소?”

“하긴, 봄에 열린 대회에서 괴룡이 비룡검을 눌렀다지?”

“그건 괴룡의 꾀에 향란관이 통째로 당한 거고, 직접 붙은 적은 없을걸? 누가 이기려나?”

“방금 매진악이 날아가는 것 못 봤나? 당연히 괴룡이지! 마두도 토막 쳤다 하고!”

“에이, 그래도 남궁가의 검이 만만한 게 아니야.”

그런 이야기들이 신경 쓰였던 것일까?

남궁윤은 내게서 눈을 떼고 객석 이곳저곳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

그사이 호흡을 돌린 나는 슬슬 대련을 시작하고자, 녀석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궁윤아. 네 형제자매가 맞고 왔다.”

“…형제자매? 나는 여동생 한 명밖에 없다만?”

“아, 언동생 할거라며. 그럼 청죽관 생도들도 다 네 형제자매지.”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 이 형님께서 소림을 치러가려 하니. 거, 길 좀 비켜줘라.”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는데.

남궁윤은 미간을 좁혔다.

“…그 말은 기권을 해달라는 거냐? 그럴 순 없다. 마방연에선 내가 네 아랫사람이고, 언동생에 끼워달라고 한 것도 나이지만. 오늘 나는 향란관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이름이 어디로 가는 것이 옳은지, 이제 천하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농담이다, 농담. 뭔 말을 못 해요.”

나는 기수식을 취하며 대화를 끝냈다.

“그럼 시작하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윤은 일견 경건하기까지 해 보이는 동작으로 검을 뽑았다.

“내 쪽에서 가겠다.”

말을 마친 남궁윤이 뽑아 든 검에 남궁가 특유의 뇌기가 휘감겼다.

그리고,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나를 향해 쇄도했다.

시커먼 무복을 입고 있는 놈이 그렇듯 빠르게 움직이니.

샤샤샥-

늘어지는 잔상이 꼭 먹구름 같았는데.

그와 함께 뇌기가 휘감긴 검이 휘둘러지니 창공을 유영하는 용이 벼락을 뿌려대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검에 맞서 회한을 휘둘러내며 생각했다.

카앙!!!!!!!!!!!!

‘비룡검 소리가 어울리긴 하네.’

단순히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다.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모든 움직임이 다음 초식을 전개하기 위한 예비 동작이었고, 내 초식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 동작이었다.

내 투로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듯 휘둘러지는 검.

‘창궁무애검(蒼穹無碍劍).’

하늘의 주인은 자신이니, 거리낄 것이 없다는 광오한 이름이 어쩌다 붙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캉!

휘둘러지는 검은 결대로 빗겨내고.

찌르려는 검에는 거리를 바싹 좁혀 공간을 차단한다.

카카캉!!!!!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이랑은 다른 의미로 까다롭네.’

그에, 검강을 휘감아 몰아붙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나 나는 그 생각을 곧바로 접었다.

‘그 방식은 내력 소모가 심해.’

이다음에 소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나 원철은 심후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눈앞의 남궁윤을 두고 소림에 정신을 팔아서는 안 됐지만, 그렇다고 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여기서 밑천을 다 탕진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성취도 내력도 실전 경험도 내가 궁윤이 녀석보다 우위에 있으니, 상대하다 보면 틈이 보이겠지.’

캉!!

캉! 카카카캉!!

그런 생각으로 녀석과 검초를 섞은 지 잠시.

내 머릿속에 드는 감상이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얘는 뭘 이렇게까지 해?’

진검이 오가는 대련이니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당연했다.

다만, 악다문 이와 치켜뜬 눈이 문제였다.

‘…매진악 선배도 저런 표정은 아니었는데. 왜 저러는 걸까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 사부님께 여쭤보니.

곧 어이없는 답이 돌아왔다.

- 그간 네가 궁윤이를 좀 들들 볶았느냐?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던 그간의 설움을 쏟아내는 것이지.

‘……?’

- 뭐?

‘…본인도 방금 궁윤이라고 하셔놓고는?’

그러는 와중에 얼굴을 향해 휘둘러지는 남궁윤의 검.

회한을 세워 십(十) 자의 형태로 그 검초를 막아내자.

캉!!!!

남궁세가의 특유의 강검이 회한과 충돌하며 강렬한 풍압이 얼굴 가죽을 때렸다.

화아아아악!!!!!!

파천검법에는 이렇게 강검을 내세운 초식이 없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파천의 내력이야말로 강(强)과 패(霸)의 성질을 품고 있는데, 왜 저런 검초가 없을까?’

답은 간단했다.

없는 게 아니다.

‘아직 내가 배울 준비가 되지 않은 거겠지.’

그리고 그 말은, 아직 내가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검을 휘둘러 나갔다.

* * *

남궁윤에게 있어 언용운은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언용운이라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볼 때면, 남궁윤은 남궁세가가 쌓아온 명성과 쏟아지는 천재 소리에 취해 있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자신과 달리, 언용운은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낸 녀석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기에, 남궁윤에게 있어 이 대결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번 대결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세간의 사람들에게 진짜 천하제일 후기지수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일이자.

허황한 이름을 벗어던지고 스스로도 새롭게 거듭날 기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여, 그는 이번 대결에 사력을 다할 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려온 이름. 내려놓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궁윤은 이를 악물었다.

물론, 그저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이름을 내려놓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궁윤의 가슴 속엔 언용운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나, 딱 그만큼 검수로서의 투쟁심 또한 존재했다.

캉!!!!

따라잡고 싶었고.

나란히 서고 싶었다.

아니, 조금 솔직해지자면 이겨보고 싶었다.

가능과 불가능을 떠나서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카앙!

카카캉!!!

하여, 남궁윤은 이를 악물고 검초를 휘둘러 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검초를 휘둘러 낸 지 수십 합.

‘틈.’

찰나의 순간 속에 일말의 틈이 보였다.

남궁윤은 그 틈을 향해 뇌기가 휘감긴 검을 휘둘러 냈다.

쌔애애애액!!

하나,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하고 휘두른 검초에 언용운이 휘두른 회한이 여지없이 끼어들었다.

캉!!!!

맞물린 회한은 슬쩍 각을 틀더니, 불똥을 튀기며 미끄러져 나갔다.

회한은 그렇게 남궁윤의 거리에서 빠져나갔다.

키이이잉!

동시에 남궁윤의 귀 뒤로 사라지는 언용운의 신형.

‘놓쳤….’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 상황에서 언용운의 움직임을 놓쳤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

남궁윤은 바쁘게 보법을 밟으며 살갗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투기가 쏟아지는 방향으로 검초를 휘둘렀다.

캉!!

극도의 집중력과 본능에 의존해 검초는 막았지만, 언용운에겐 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왼손으로 펼치는 장력이 날아들었다.

쌔액!!

남궁세가가 검도를 좇는 가문이긴 하나, 모든 무학은 보법과 권장을 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남궁가에도 권법과 장법이 있었다.

쌔애액!

남궁윤은 쇄도하는 언용운의 장력을 향해 남궁가의 천뢰장을 펼쳤다.

펑!!!!!

하나, 장법으론 언용운 쪽이 명백히 위였다.

장력이 맞붙으며 귀를 때리는 굉음이 터져 나오는 사이.

남궁윤의 몸이 반작용에 의해 일장을 날았다.

“쿨럭.”

가까스로 막기는 했으나 속이 울렁거렸고 손목이 시큰했다.

이 순간 남궁윤의 머릿속엔 한가지 단어가 스쳤다.

‘괴물.’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역시 강하다.’

자신보다 명백히 강한 상대.

하나,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자신보다 강한 이와의 대결에서 배움을 얻는 즐거움은, 이미 깨달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나 이대로 물러설 수야 없지.’

이미 말했듯, 이 자리는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었다.

천하제일 후기지수의 이름을 내주더라도, 남궁세가의 자식은 그에 부끄럽지 않은 무예를 보였노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더라도, 최소한 이 자리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떳떳이 말하고 싶었다.

그와 같이 생각한 남궁윤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검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제왕검.’

남궁윤은 바쁘게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

“흡.”

언용운을 향해 걸음을 박찼다.

아직 딱 한 초식을 익혀냈을 뿐이고, 지금의 경지로는 제 위력을 낼 수 없는 검이었지만.

지금의 남궁윤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한 검.

이 순간.

남궁윤의 내력이 뭉텅 빠져나가 검에 휘감기며, 제세일섬(濟世一殲)의 검초로 화했다.

쌔애애애애액!!!

캉!!!!!!!

이윽고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귀를 때렸다.

‘역시 어렵지 않게 막았나. 밀려난 걸음은….’

고작 두 걸음.

일격에 암반도 가를 만큼 강맹한 검이었으나, 여전히 언용운은 남궁윤의 지척에 서 있었다.

그런 남궁윤을 향해 언용운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제왕검이냐? 손이 다 얼얼하네. 근데 까다롭지는 않았어. 까다롭기는 방금까지가 까다로웠지.”

과거의 남궁윤이라면 저 웃음을 조롱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하나, 이제는 안다.

나름의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는 걸.

남궁윤은 쥐고 있던 검을 검집 속으로 돌려 넣었다.

“…내 검은 아직 네게 닿지 않는군. 내가 졌다.”

졌지만, 분하지는 않았다.

비록 천하제일 후기지수의 이름에서는 내려왔지만.

허명을 벗은 그의 검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을 테니.

검을 내려놓은 남궁윤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 *

남궁윤이 패배를 선언하고 연무장을 내려갔다.

본래라면 세 번째 참가자로 당옥기의 오라버니인 당준기가 나설 차례였으나, 매진악이 그의 걸음을 막았다.

그리고 심판석을 향해 걸어가 무어라 말하는 듯했다.

‘…또 뭔 트집을 잡으려고 저래?’

매진악이 심판석에 가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아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향란관의 세 번째 참가자 당준기 생도는 예선전에서 홀로 삼 연승을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더 무리하면 내상이 염려되는바, 향란관에서 기권을 선언했습니다.”

매진악은 트집을 잡은 게 아니라 기권을 했다.

하기야, 향란관의 생각대로 준결승전이 잘 풀렸다면 출전하지 않았을 당준기였고.

이쪽에는 나도 쌩쌩하거니와 정현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 준결승전을 진행해봤자 사람만 상하고 추태로 비칠 거라는 판단인가?’

어쨌거나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갑조 결승 진출자는 청죽관 입니다!!”

그렇게 청죽의 명패가 대진표의 가장 위에 올라가 소림의 옆자리에 걸렸다.

“청죽! 청죽! 청죽!!!!”

“괴룡! 괴룡!! 아니지, 상승룡(常勝龍)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허, 이렇게 되면 종합우승은 청죽관의 몫인가? 최우수 후기지수는 언용운이고?”

“종합우승이야 청죽의 몫이겠지, 근데 최우수 후기지수는 아직 모를걸? 이러나저러나 강호인들 아닌가? 무위 종목의 우승을 누가 하느냐로 갈리겠지.”

나는 쏟아지는 환호에 포권을 취해 가볍게 호응한 뒤.

연무장 한 편에 놓인 참가자용 막사로 돌아갔다.

결승전까지는 시간이 제법 있었지만, 우선 속을 좀 골라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운기 좀 해야겠다.”

“예. 그럼 저희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정현 도장이 안에 계세요. 제가 천막 밖을 지킬게요.”

그렇게 운기를 해 속을 정리한 뒤.

나는 한층 개운한 기분으로 막사를 벗어났다.

한데, 밖을 지키고 있겠다던 은하연 곁에 눈썹이 하얀 노승이 서 있었으니.

다름 아닌 소림의 방장 공효대사였다.

“무림 말학 언용운이 공효대사님을 뵙습니다.”

“무림 말학 정현이 공효대사님을 뵙습니다.”

공효대사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허허. 대사는 무슨, 그저 늙어빠진 중인 것을.”

공효대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내 쪽을 보며 웃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말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눈치가 빠른 은하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정현을 이끌고 조용히 청죽관 생도들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공효대사가 입을 열었다.

“청죽의 대련. 잘 봤소이다. 한데 괴룡의 대련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니, 노납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하나 도져서 불편할 줄을 알면서도 이리 찾아오게 되었구려.”

“하문하십시오.”

“향란과의 대련에서 보인 괴룡의 무위로 짐작건대, 청죽은 소림과의 격구 시합에서도 충분히 실력만으로 이길 수 있었소이다. 한데, 왜 그런 꾀를 내었는지 묻고 싶소.”

“그게 가장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것이 정녕 정도라 할 수 있겠소이까?”

“그게 왜 중요한 겁니까?”

“…응?”

내가 당당하게 되묻자 눈썹을 치켜뜨는 공효대사.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격구 시합장이 아니라 마교와의 전장이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정도를 지키다가 더 큰 것을 잃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닙니까?”

“허허.”

공효대사는 맹랑하다는 듯이 웃었다.

“대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습니다. 정론이시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게 맞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관철해나갈 겁니다. 적어도 이번 대회에 한해선 뭐가 맞는지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말이오?”

나는 청죽과 소림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있는 대진표의 최상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답이란, 승자가 기록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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