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35화 (235/444)

제235화. 교류 (7)

공효대사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곤 떠나갔다.

“허허. 그럼 노납은 결승전을 기대하고 있겠소이다.”

나는 그런 공효대사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동안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 …….

평소라면 무슨 말이라도 하셨을 것 같은데, 가만히 계시는 모습에 역시나 소림과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 말을 아끼시는 이유가 있겠지.’

하여, 지금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언동생들에게 향하니.

은하성과 우소릉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아주었다.

“승리를 부르는 그 이름!”

“언!”

“용!”

“우우우운!!”

두 녀석이 호들갑을 떠는 가운데, 당옥기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은하성! 우소릉! 조용히 좀 해!”

그리고 나를 향해 물었다.

“언용운. 공효대사님이랑 무슨 대화를 한 거야?”

은하연과 정현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인지 눈빛을 빛냈는데.

“향란관과의 대련을 보니 꾀를 쓰지 않아도 격구에서도 이겼을 텐데, 왜 그랬냐고 묻던데?”

내가 답을 하자.

은하연이 아미를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 일을 따지러 오신 건가요?”

“따지러 왔다기보다는 기저에 깔린 생각을 묻는 느낌이었소. 그게 정도(正道)냐는 물음이 뒤따랐거든.”

“해서, 뭐라고 답하셨는데요?”

“시합이 아니라 마교와의 전장이라고 생각해 보시라 했지, 정도를 지키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자 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교와의 싸움은 도(道) 하나만을 챙기기도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운을 뗀 정현은 그간 거쳐온 마교와의 싸움 중 몇몇 순간을 꼽았다.

“학관 습격 때엔 인명 피해가 컸을 것이고, 산서금붕 어르신을 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정과 도를 모두 챙기려다, 정작 의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정현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으나.

듣는 내 입장에선 좀 머쓱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냥 내 맘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해몽이 너무 과한데.”

“원시천존. 그냥 한 말씀에도 도기가 흐르시니 가히….”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정현은 그런 나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고는 공효대사가 멀어진 방향을 향해 중얼거렸다.

“…소림. 태산북두답습니다.”

태산북두는 세인들이 소림을 칭송할 때 가져다 붙이곤 하는 수식어였다.

하나, 정현의 태도는 칭송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 점을 묻고자 입을 열었다.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태산북두.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상이긴 하나 태산(泰山)은 함부로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고, 북두(北斗)는 하늘 저 너머에 있지 않습니까?”

“세태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말이구만?”

“예. 꼭 공효대사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젊은 무승들도 물정에 어두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숭산에 궁둥이 딱 붙이고 앉아서 어지간한 바깥일엔 꿈쩍도 안 하고 수련만 하니 그런 거겠지.”

“사실 빈도도 그랬었습니다. 무당산에 들어앉아, 자세, 말, 행동. 사소한 것에서부터 정도를 좇다 보면 자연히 도가 트인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세는 지금도 바른데?”

“생각 자체는 지금도 같으니까요. 다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본인의 이야기로 정현의 말은 끝을 맺었다.

하나 녀석의 말은 결국 자신이 느낀 것을 소림의 제자들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청죽이라는 하룻강아지들한테 천년 소림의 후기지수들이 꺾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정무학관의 검술 천재께서 한 수 가르쳐 주라고.”

“…꼭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으십니다?”

“맞는데?”

“예? 언 소협이 계신데 제가 어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는 정현.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려 주었다.

“그런 게 있다.”

* * *

주어진 휴식 시간이 끝났다.

정진대회의 대미를 장식할 무위 종목 결선의 때가 된 것이다.

척.

척.

청죽과 소림의 깃발이 연무장의 좌우로 내걸린 가운데.

심판석의 중앙에 앉아 있는 정극경 교수가 청죽관과 소림의 깃발 쪽으로 팔을 뻗어 보이자, 곧바로 소리꾼이 목청을 높였다.

“참가자들이 입장하겠습니다!”

그 음성에 맞춰 참가자들이 걸음을 옮기자.

소림의 무승들이 절도있게 발을 구르며 사문의 이름을 연호했다.

“소림! 소림! 소림!!”

질세라 청죽관 생도들도 발을 굴렀다.

“청죽! 청죽! 청죽!!”

그에 관중들도 두 패로 나뉘어 목소리를 보탰다.

하나, 개중엔 청죽과 소림을 저울질해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정무학관의 자체 기숙사 대항전에서도 만년 꼴찌나 하던 청죽관이 이렇게 큰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맡아두고, 무위 종목에서 소림과 결승전을 다 벌이는 것을 다 구경하는구만?!”

“금년에 입관한 청죽관의 일학년생들이 대단하긴 해.”

“그중에서도 괴룡 언용운 공자가 제일이고! 그 남궁윤이 스스로 검을 돌려 넣게 만들었으니 명실상부 천하제일 후기지수가 아니겠나?”

“에이.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말은 솔직히 조금 더 두고 봐야지. 못해도 하루는 지켜내야 그리 불러줄 거 아닌가?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소림과 붙게 됐으니….”

“엥? 그 말은 괴룡이 질 거라는 건가?”

“물론이지,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이라는 말도 모르나? 모르면 알려줌세. 세상 모든 무공은 다 소림에서 나왔다 뭐 그런 말이야. 원철은 그 소림에서도 제일가는 후기지수고!”

함께 걸어 나오던 원철은 그런 관중석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시주와 나를 견줘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누가 길고 짧은지는 대보면 알겠지. 잠시 뒤면 엎어져 있을 사람과 서 있을 사람이 갈릴 텐데. 뭔, 그런 고민을.”

“하하하. 어리석은 물음에 현명한 답을 주시는군요. 어린 시절 수계를 받고, 속세에 나와보는 게 처음이라 그러니 시주가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후회 없는 일전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소림과 우리는 서로를 향해 예를 표하고 갈라져 연무장을 내려왔다.

그리고 출전 순번을 정했다.

청죽관의 선봉은 은하연이었다.

나는 연무장에 올라갈 준비를 하는 은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은 소저.”

그러자 은하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왜요. 못 이기면 상상에 맡긴다, 뭐 그런 말씀을 하시려고요?”

어찌 사람의 마음을 저렇게 곡해할 수 있나 싶어, 나는 사부님께 하소연을 했다.

‘은 소저는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 글쎄? 일단 사람은 아닐 것이다.

‘?’

- 산해경에 나오는 요괴나 악귀 그런 쪽이겠지.

사부님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자.

나는 은하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불렀소.”

“예? 언 공자? 주화입마 오신 거 아니죠?”

“내가 평소에 은 소저나 다른 언동생들을 다소 채근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소.”

- 다소?

“…그건 할 수 있는 일에 한해 그런 것이고.”

좀 몰아붙여야 본 실력을 내는 은하연이었지만.

그것도 때와 상대를 가려야 했다.

지금의 은하연은 무승들의 적수가 되지 못할 터였다.

“객관적으로 소림에서 누가 올라오든 지금의 은 소저가 상대하기엔 버거울 거요. 무리하지 말고 검후 교수님께 배운 것들을 쏟아내고 온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오시오.”

“알겠어요.”

은하연은 살풋 웃으며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소림의 선봉으로 나선 이는 곤(棍)을 사용하는 각원이었다.

은하연과 각원.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곤 각각 기수식을 취했다.

각원은 꼬나쥔 곤을 등허리에 붙이고 반장(半掌)을 하는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 각원의 곤에는 불가무공 특유의 금광이 감겼다.

은하연은 한기를 감은 검을 휘두르며 각원을 향해 미끄러지듯 쇄도했다.

그리고 서늘한 검기를 흩뿌리며 검초를 휘둘러냈다.

쌔액! 쌔애액!!

쌔애애액!!

하나, 은하연의 검초는 풍차처럼 회전하는 각원의 곤을 뚫어내지 못했다.

캉! 캉!

카강!!!

각원은 엄청난 속도로 곤을 회전시키며 위치를 바꿔댔다.

붕!!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왼손에서 등으로.

붕!!

부웅!!!!

등에서 다시 오른손으로.

그렇게 곤이 회전하며 옮겨 다니는 동안 각원의 걸음 또한 빠르게 전진했다.

그렇다 보니 은하연은 반강제로 걸음을 물려야 했는데.

그런 걸음들이 생겨남에 따라 보법이 어그러졌다.

보법은 무공의 근간.

보법이 어그러지자, 그녀의 손 또한 어지러워졌다.

“……!”

그로 인해 은하연이 공방 어느 곳에도 신경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틈을 타.

카앙!

어느새 곤의 끄트머리를 창처럼 움켜쥔 각원이 그 틈을 헤집으며 일격을 질러냈다.

- 용아곤(龍牙棍).

용의 이빨을 본뜬 소림의 상승무공을 사부님께서 알아본 이때.

은하연은 황급히 검을 틀어 내려 그 투로를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퍼퍽!

펑!!!!!!!!

귀를 때리는 굉음과 함께 은하연의 몸이 연무장에서 튕겨 나왔다.

나는 비영파천보를 시전해 살짝 몸을 띄웠다.

그리고 은하연의 등을 받쳐 내렸다.

팟.

받아든 은하연을 내려놓자.

심판의 손이 올라가며 소리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각원 스님이 은하연 생도를 날려버렸습니다!”

그제야 은하연은 한줄기 숨을 토해냈는데.

동시에 한줄기 핏물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정현이 입을 열었다.

“은 소저, 괜찮으십니까?”

“속이 좀 울렁거리긴 하는데 내상을 입은 건 아니에요.”

“하면 피는 왜?”

은하연은 소매를 들어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마지막 일격 말고도 몇 대 맞았는데. 역부족인 걸 알고 올라갔지만…. 아파한다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깨물고 있다 보니 그런 거예요.”

나는 그런 은하연을 향해 한마디를 전했다.

“고생했소.”

그리고 정현의 등을 밀었다.

“네 차례다, 정현.”

“예.”

정현은 어느 때보다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을 향해 올라갔다.

* * *

정현이 연무장으로 걸어 올라가는 동안.

양호처의 직원들과 당옥기는 은하연의 상태를 살폈다.

본인의 진단대로 내상을 입거나 뼈가 부러진 곳은 없었다.

각원도 나름대로 손속에 사정을 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은하연이 진맥을 보는 동안, 정현은 은하연이 기수식을 취했던 자리에서 송문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렁-

각원 또한 처음 기수식을 취했던 자리로 돌아가, 곤을 꼬나쥐고 반장을 취해 보였다.

두 후기지수 중 먼저 땅을 박찬 사람은 각원이었다.

팟!

종횡무진 곤을 돌리며 정현을 향해 쇄도한 각원.

붕! 붕!

부우웅!!!!

은하연과의 대련은 전력이 아니었다는 듯 그의 곤은 더 빨라진 상태였다.

하나, 집중할 때면 나처럼 시간의 흐름을 보고는 하는 정현이었다.

쌔액! 쌔액!

쌔애애액!!!

그런 녀석이 검사를 감아 태극을 그려내자, 각원이 휘둘러 내는 곤초는 부서지고 흩어져 내릴 뿐이었다.

텅! 텅!

텅아아아앙!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곤초에, 각원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휘리릭- 곤을 고쳐잡더니.

은하연을 날려버린 용아곤법을 본격적으로 시전하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다만 그 속도가 한층 맹렬했다.

‘은하연이 당한 초식이 머리 한 개짜리 용이면… 이건 머리 아홉 개 달린 용이네.’

슉! 슉!

슉! 슉! 슉!

범인의 눈에는 필경 각원이 쥔 곤이 분열하는 것처럼 보였을 터.

하나, 면면부절 이어지는 정현의 부드러운 검초는 흔들리지 않았다.

텅! 텅!

정현은 그것을 차분히 받아치며 각원이 쥐고 있는 곤은 결국 하나뿐이라는 것을 증명해냈고.

끝내는 태극의 거류(巨流) 속에 각원이 곤을 놓치게 만들었다.

터어어엉!!

정현은 각원의 코앞에 잠시 송문검을 겨누었다가.

각원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손을 응시하다 패배를 시인하자.

“빈승이 졌습니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기수식을 취했다.

다음 놈 나오라는 녀석 나름의 시위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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