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37화 (237/444)

제237화. 처음인데? (2)

항룡장과 백보신권의 맞붙음이 있은 직후.

나는 원철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검강을 감은 회한을 휘둘러 냈다.

쌔액! 쌔애액!!!!

쌔애애애액!!!

나는 검수였고 원철은 권사였다.

날붙이를 든 자와 주먹을 말아쥔 자의 대결.

이게 범부 간의 대결이었다면 날붙이를 든 쪽이 몇 배는 유리했을 것이다.

하나, 원철은 범부가 아니었다.

금광이 감긴 녀석의 사지(四肢)는 휘둘러지는 회한의 투로를 정확하게 막아냈다.

펑!!!

펑! 펑!!!!

백도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

그 소림에서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은 천재들 중에서, 가장 앞 열에 설 자격을 그저 배분으로 따낸 것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나서 용아곤을 펼친 각원이 소림 후기지수들의 전형(典型)이고.

이어서 달마십삼검을 펼친 각심이 이형(異形)이었다면.

‘원철은 정수(精髓)다.’

뼈와 몸을 단련하고, 힘과 기를 쌓아 무의 극의에 닿고자 하는 소림의 정신.

맑은 눈동자와 단련된 전신으로부터 풍겨오는 기도에서 이미 엿볼 수 있었지만.

그 진가는 곧바로 이어진 원철의 반격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쌔애애애애액!!

녀석의 행색은 그저 두 주먹을 말아쥔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으나.

전신에 금광을 휘감은 녀석은 실상 온몸이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퍼펑!!!!

손가락을 뻗으면 오지창이 되고.

쌔애애액!

펑!

손날을 세우면 검이 되었으며.

주먹을 쥐면 철퇴가 되었다.

펑! 펑!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초식 하나하나가 소림칠십이절예에 속하는 상승의 절초인지라,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퍼어어엉!!!!

과연 원작의 사람들이 원철에게 투룡(鬪龍)이라는 별호를 붙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도 최초의 대련에선 이기지 못한 상대.’

그러나 나는 정현이 아니었다.

나는 바쁘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휙! 휙!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피할 것은 피했고.

피할 수 없는 투로는 회한으로 쳐냈다.

여유를 부릴 새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원철이 지척까지 쇄도해 왔으니까.

“흐.”

녀석은 내가 항룡장이나 검초를 휘둘러 내기 어려운 거리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씨익 웃었다.

하나, 내겐 진주언가의 운등류를 개량해 익혀낸 파천권법이 있었다.

나는 슬쩍 몸을 틀며 왼손으로 번개 같은 쾌권을 질러냈다.

쌕! 쌕! 쌕!

쌔액! 쌕!!!!!

빛살같이 쏟아지는 권초에 원철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녀석의 몸은 표정과는 달리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에 맞아도 되는 초식과 피해야 하는 초식을 구분해냈는지.

퍽! 퍽!

어깨를 이리저리 흔들어 몇 대를 미리 맞아 냈고.

본인도 권초를 뻗어 맞대응을 해왔다.

쌕! 쌕! 쌕!

파팍!

그렇게 몇 합 얽히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둘은 지척에서 양팔을 교차하는 상태로 대치하게 되었는데.

이 순간에 원철이 씨익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권법에도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

파천권법은 기실 방학 기간에 익힌 것에 불과했으나, 대련 중에 늘어놓을 이야기는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말했다.

한데, 정작 원철이 그에 관해 이야기를 더 꺼냈다.

“진주언가가 또 권의 명가이긴 하지요. 어, 그럼 복권이 되신 건….”

그렇게 숭산에 틀어박혀 있던 원철이 뒤처진 소식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때.

나는 곧바로 박치기를 내질렀다.

그에 녀석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 했으나 살짝 늦었다.

빠악!!!

몸을 빼는 와중에 콧잔등을 맞은 원철.

녀석은 당황한 듯한 얼굴로 코피를 주룩 흘렸지만, 황당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대를 도발하는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련 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실책이지.”

“…빈승이 대련 중에 잡생각을. 스승님께도 자주 혼이 나곤 하는데, 괴룡께서도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원철의 공격이 더욱더 매서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언용운과 원철이 합을 교환한 지 어언 수십 합이 지났다.

두 사람의 대결은 후기지수들의 수준을 명백히 초월해 있었다.

초 근접거리에선 검강과 금광이 어지러이 얽혔고, 거리를 벌린다 싶으면 여지없이 항룡장과 소림의 절초가 충돌했다.

그러다 보니 원철의 가사는 너절해졌고, 곳곳에 생채기가 났다.

언용운의 상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흐.”

“후.”

그런 와중에 본인들은 웃고 있었다.

언동생들은 한데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중 당옥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쟤네 돌았나 봐.”

당옥기의 말에 천장호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러니까요! 어휴. 대환단은커녕 태상환단을 준다 그래도 나는 저렇게는 못 싸운다!”

그러자, 곁에 있던 팽소천이 턱을 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태상환단? 그런 게 있나?”

“아, 소천이 형! 비유 아니요, 비유!”

천장호는 복장이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고.

언용명이 그런 천장호를 말렸다.

“푸흡”

“하하하하.”

“아하하.”

가벼운 웃음이 언동생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사이.

양호처에 기절해있다가 돌아온 정현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좋습니다? 언소협이 유리한 겁니까? 오면서 지켜본 바로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던데요?”

정현의 물음엔 우소릉이 답했다.

“막상막하에요.”

“예. 그야말로 호적수를 만나신 것 같습니다.”

“근데 정현 도장 기절하셨었잖아요? 양호처장님이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하시던가요?”

“걱정 감사합니다, 우소협. 그냥 기력이 다해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니 괜찮다 하셨습니다. 보기에 안 좋아 보입니까?”

그 말에 입을 연 건 은하성이었다.

“보기에도 괜찮아 보입니다. 표정은 오히려 남궁윤 이 형 쪽이 안 좋아 보이는데? 윤 형?”

“…호적수.”

“궁윤이 형!”

“……? 불렀나?”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는 사이.

제갈설지가 한숨을 폭하고 내 쉬었다.

“그나저나 용운 님은 좀 따라붙었나 하는 생각이 들라치면, 꼭 이렇게 본인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이렇게 깨닫게 해주시네요.”

그에 은하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요. 저러면서 굴려대시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세상엔 보는 것만으로 눈이 뜨이는 것 같은 싸움이 있다.

각자 내뱉은 말들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언동생들의 눈은 정작 언용운과 원철의 싸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언동생들이 각자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이때.

소림의 방장 공효대사도 같은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쌔애애애액!!!

소림이 쌓아 올린 유구한 역사가 빚어낸 절예들이 원철의 손에서 펼쳐질 때마다.

내빈석에 모인 이들의 몸이 들썩였다.

“허! 법화연환퇴(法華連環腿)에 이은 용조수(龍爪手)!”

하나,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원철의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괴룡.

믿기지 않는 원철의 무예를 모두 막아내고 있는 언용운이야말로, 그들을 무엇보다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두 후기지수가 벌이고 있는 이 대결이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걸 언용운이 막았어?!”

공효대사는 허허 웃으며 주변의 음성을 흘려넘겼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언용운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정답은 승자가 기록할 것이다.’

일견 패도를 숭상하는 자처럼 들리는 말.

소림의 제자가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크게 경을 치고 면벽동으로 들여보냈을 것이다.

하나 어째서인지, 언용운이 한 그 말은 미운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금 맹랑하게 들렸을 뿐이었다.

‘그간 보여온 행동이 부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지는 않았으니까.’

언용운이 그간 걸어온 행적은 모욕과 번뇌를 감내하고, 육도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을 구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신기한 인사로다.’

지금도 그랬다.

각계 각파에서 모인 정무학관의 교수진들이 하나같이 언용운을 응원하고 있었다.

‘팽재혁 시주는 언가와 연이 깊고, 광풍투개 역시 청죽관의 사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경혜나 제갈민, 한영 같은 사람도 진심으로 언용운을 응원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향란관의 창량도 내심으로 응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별일이로다.’

그 생각과 함께 공효대사는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원철과 맹렬하게 손속을 교환하는 언용운의 움직임을 쫓으며 생각했다.

‘…맹랑한 소리를 할 때. 녀석은 소림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투를 취했다.’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마교를 쫓아다닌 녀석이니.

젊은 혈기에 그저 우뚝 서 있기만 한 것으로 보이는 소림을 원망할 법도 한데.

언용운에게선 그런 기색이 없었다.

다만 숭산에서 수련만 해온 소림의 제자들을 꺾어 보이겠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으로.

마교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으니, 계속 그리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넌지시 전해왔을 뿐이었다.

공효대사는 다시 한번 언용운이 맹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단 오늘의 역사가 어찌 기록이 될지부터 두고 보자꾸나.”

* * *

처맞고도 히죽거리는 빡빡이 녀석과 몇 합이나 붙은 건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후.”

전신이 땀으로 뒤덮였고.

준결승에서 홀로 향란관을 상대한 상태에서, 강기를 감은 공격을 쏟아내다 보니 내력도 조만간 한계에 진입할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한데.’

그런 생각 하에.

나는 일부러 회한을 크게 휘둘러 틈을 보였다.

그러자 원철의 공격이 지체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쌔애애애액!

득달같이 쇄도한 녀석은 내가 열어준 가슴팍의 틈을 향해 일권을 먹이려 했다.

쌔액!

쌔애애액!!!

하나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회전하며 회한을 그어내자.

사지(死地)임을 깨닫고 바쁘게 뒤로 제비를 돌아 빠져나갔는데.

휘릭! 휘리릭!!!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원철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용을 쓰며 불호를 외쳤다.

“아미타! 불!!!”

그리고 제자리에서 몇 장 높이를 단번에 뛰어올랐다.

그렇게 공중에 떠오른 원철은 왼손은 하늘을 받치듯 단전에 가져다 대고, 오른손은 펼쳐 땅을 내리누르는 수인(手印)을 취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여래가 모든 마귀를 굴복시키는 순간 행했다는 수인을 원철이 취한지 잠시.

녀석의 몸이 전에 없던 진한 금광을 머금는가 싶더니.

우우웅!!!

공중에서 제비를 한 차례 돌고는, 오른 손바닥을 쭉 뻗어 내며 나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쓔애애애애애애액!!!!!!!!!!

금빛 손바닥으로 화해, 광채와 함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원철.

그 모습에 사방의 객석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저, 저건?!”

“여래신장! 여래신장이다!!”

나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의 기술들은 보는 순간 대처할 방법이 떠올랐으나, 여래신장 만큼은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당혹감을 느끼며 검을 고쳐 잡은 이때.

내 머릿속에서 사부님의 음성이 또렷이 울렸다.

- 네 사문이 어디냐?

‘파천 검문입니다.’

- 파천의 검은 어떤 검이냐?

사부님의 말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탁 트인 듯한 깨달음이 왔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사문은 파천 검문.

그리고 파천의 검은….

‘하늘도 깨는 검.’

이 순간.

그간 마주해온 강검과 패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혁 백부의 도.’

남궁윤이 휘두르던 제왕검.

각심이 휘두르던 달마십삼검의 절초.

‘강검.’

그리고 그 위에 그간 숱하게 휘둘러온 파천 검법의 초식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덧칠됐다.

나는 남은 내력을 짜내 회한에 휘감았다.

우우우웅-

‘부족한 체력은 혈조술의 도움을 받는다.’

왼손에 나 있던 상처에서 핏줄기를 뽑아내 온몸에 휘감았다.

그렇게 나는, 떨어져 내리는 원철을 또렷이 응시한 뒤.

파천의 강검을 그어냈다.

- 그것이 파천단악(破天斷嶽)이다.

쌔애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애액!!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충돌한 파천단악의 초식과 여래신장은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충격음과 동시에 엄청난 풍압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그 틈바구니에서 튕겨 나가 연무장에 처박힌 이는, 원철이었다.

쾅!!!!!

물론, 나 역시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뼈마디가 욱신거렸지만.

어쨌거나 연무장에 서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널브러져 숨을 쌕쌕거리고 있는 원철에게 다가가 회한을 겨누었다.

“엎어져 있을 사람과 서 있을 사람. 승부는 갈린 것 같은데?”

그러자, 원철이 숨을 몰아쉬다 말고 질문을 해왔다.

“…헉. 허억. 그 피를 사용한 비술… 처음부터 쓸 수 있으셨지 않았습니까?”

그럴 수야 있었지만.

처음부터 썼다면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강호에선 본 실력의 일부는 숨기는 거요. 모르셨으면 이번 기회에 새겨두시오.”

“허허. 이번 대련으로 몇 가지를 배우는 건지…. 빈승이 졌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나는 심판석을 응시했고.

정극경 교수는 청죽관의 깃발이 꽂혀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무위 종목의 결승전. 우승은 청죽관입니다!”

“와아아아아!!!!!!!!”

“괴룡이 원철을 꺾었다! 청죽이! 청죽이 소림을 꺾었다!!!”

“처, 천하제일 후기지수!”

“언용운! 언용운!! 언용운!!!”

“괴룡! 괴룡!! 괴룡!!!”

쏟아지는 함성 속에.

나는 원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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