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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41화 (241/444)

제241화. 길 (4)

내가 도깨비불을 흩어버리자 숨을 죽이고 있던 언동생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중 은하성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용운 형님? 방금 그건 뭡니까?”

“사념을 한번 들어봤다.”

“오. 그런 것도 가능하셨습니까? 왜 저는 못 본 거 같죠?”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을 향해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사혼은 ‘죽기 싫다.’ 같은 소리밖에 하지 않아. 내력만 닳고 효용이 없어서 잘 하지 않는데…. 이 자는 불에 타는 고통 속에서도 본인의 목숨보다 임무를 우선시했길래 들어본 거야.”

내 말에 당옥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불에 타는 고통은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이라고 의서에도 나와 있어. 화상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을 견디느라 심부가 상해서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대.”

상상만으로도 아팠는지 팔을 쓸어내리는 우소릉.

은하연은 그런 우소릉을 곁눈질하고는 물었다.

“해서,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를 하던가요?”

“초원은 혼란해야 한다고 하더군. 이건 소릉이가 찾은 양피진데, 합치면 어딘가를 장악할 때까지 초원은 혼란해야 한다는 말이 완성되오.”

“…북해빙궁을 장악할 때까지 초원은 혼란해야 한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지금 상황이랑 딱 맞긴 하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건 곁에 있던 제갈설지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초원과 빙궁 양쪽에 마수를 뻗쳐놓은 상황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북해빙궁에 본진이 있겠어요. 애초에 각궁보가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소보주가 습격을 당한 것도 초원에 분란을 만들기 위한 술수였을 거고요.”

“내 생각도 그렇소. 본디 산서를 장악해서 초원과 북해빙궁을 말려 죽이려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빙궁부터 차근차근 남하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꾼 것 같소.”

정현이 긴 한숨을 토해낸 건 그때였다.

“두려운 자들입니다.”

“네가 두려워하면 어떻게 해?”

“마공과 마인들이 두렵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마도 천하를 열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혼란과 전쟁을 유도하는 그 생각이 두렵습니다.”

그 말에 언동생들은 저마다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가벼이 여길 사태는 아니지만 이렇게 심각해질 필요까지 있을까.

어차피 다 족쳐야 할 놈들이란 건 똑같은데 말이다.

나는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고자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장호와 팽소천에게 말을 걸었다.

“소천이 형 그리고 천장호. 두 사람은 무게를 너무 잡고 있는데, 알아는 듣고 그런 표정으로 있는 거야?”

내 말을 들은 팽소천은 천장호를 향해 투덜거렸다.

“…천장호.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더니 안 되잖냐.”

“방금 그 말을 안 했으면 딱 중간을 갔을 거요!”

천장호는 팽소천과 묶이는 게 못내 억울했는지, 가만히 있던 다른 사람을 지목하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 그리고 용운 형! 용명이 이 친구랑 윤 형도 무게를 잡고 있었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시오?!”

“……?”

그에 언용명이 드물게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남궁윤은 진심으로 싫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엮으려 들지 마라.”

두 사람의 드문 모습에 긴장이 풀어진 언동생들은 그제야 웃기 시작했다.

“풉.”

“크흡.”

“크흐흡.”

한층 풀어진 분위기 속에 나는 입을 열었다.

“너무 심각해선 될 일도 안 돼. 일단 실마리를 찾아냈잖아. 정진대회에서 봤듯이 맹주님도 애쓰고 계시고. 일단 이 사실은… 딱 우리만 알고 있는 걸로 하자. 세작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실마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가운데,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건지 팽소진이 입을 열었다.

“용운아 잠깐만! 딱 우리만 알고 있는 걸로 하자는 거면? 숙부나 스승님한테도 안 알린다는 이야기야?”

“예. 재혁 숙부께 말씀을 드리면, 학관으로 돌아가자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맹주님께서 어떤 조치든 취하실 텐데 그게 마교 놈들의 눈과 귀에 들어가면, 놈들의 속셈을 간파한 이점이 사라집니다.”

“그건 그렇네.”

“아예 알리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적절한 시기에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게 입을 맞추고 현장을 나오니.

때마침 각궁보의 소보주 야율위가 달려와 입을 열었다.

“용운 동생! 화재 진압을 도와주었다지?”

“예. 야율 형이 일을 보러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커먼 연기가 치솟길래 이리 와 있었습니다.”

“고맙네.”

그런 야율위의 모습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하셨다.

- 저놈은 왜 이리 늦은 것이냐? 제 놈 집에 불이 났는데 어찌 동작이 저리 굼떠.

스승님의 질타를 들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야율위 본인도 늦게 왔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포권을 해왔다.

“미안하네. 아까 달려왔어야 했는데. 아버님께서 불을 질러놓고 다른 짓을 하려는 자는 없는지 경내를 주시하라고 하셔서 말이야.”

사부님께서는 역정을 내셨지만, 각궁보주의 조치는 적절했다.

불이 났다고 거기에 정신이 쏠려 우왕좌왕하는 것이야말로 마교 놈들이 바라는 행동이었을 테니까.

나는 마주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경내에 수상한 자는 있던가요?”

“없었네.”

“그렇군요. 팽 교수님이랑 북해빙궁 사람들은요?”

“수하들을 시켜 객관으로 안내했네. 자네들도 가세, 도와준다고 숯검정이 다 됐구만. 목욕물을 준비해두라 일러뒀으니, 개운하게들 씻고 나오면 아버님과 함께 자네들을 대접하겠네.”

*     *     *

도착한 객관에서 나는 재혁 숙부에게 짧게 보고한 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자 야율위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다들 헌앙한 모습으로 돌아왔구만.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앞서 걷는 야율위를 따라 각궁보에 있는 게르중 한 곳에 당도하니.

정진대회에서 면을 튼 바 있는 각궁보주 야율수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어서들 오시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야율수.

그는 우리를 향해 깍듯하게 포권을 취했다.

“우리 위를 구해준 것도 그렇고, 진화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고맙소. 이 야율수가 큰 빚을 졌소!”

야율수의 인사에 재혁 숙부는 마주 포권을 취하면서 살짝 빗겨 섰다.

“소보주를 도운 일은 응당 해야 했을 일이고. 화재를 진화한 일은 이 녀석들이 솔선에서 한 일로 저는 뒤나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미미한 공로를 추켜세우니 부끄럽습니다만, 보주님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니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야율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북해빙궁 사람들을 향해서도 포권을 취했다.

“손님 대접을 후하게 하는 걸 자랑으로 삼는 게 우리 초원 사람들인데, 마가 꼈는지 온갖 일이 다 생기는 바람에 이렇게 늦었소. 미안하오.”

북해빙궁 사람 중에서는 담용주가 나섰다.

“아닙니다. 저희도 마음은 각궁보를 돕고 싶었으나, 자칫 어수선한 시국에 오해를 사는 것을 경계해 가만히 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오. 현명한 판단이셨소. 자자, 인사는 이쯤하고 앉읍시다. 초대가 좀 늦긴 했어도 술과 음식은 내 후하게 준비시켜 뒀소이다.”

과연 야율수의 말대로 그들이 준비한 대접을 결코 조촐하지 않았다.

우린 편한 마음으로 음식과 술을 먹었고, 여정으로 쌓였던 여독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 즈음.

상석에 앉아 있던 야율수가 수염을 쓸며 입을 열었다.

“중원의 후기지수들은 각궁보에 오는 것이 처음이지? 그래, 소감이 어떠한가? 음식은 입에 맞나?”

야율수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름답더군요. 초원과 중원의 습속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보기 드문 풍경이었습니다. 실로 초원의 보옥이라 할만합니다. 음식에 관해서는 여기 이 친구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천장호를 가리키니, 녀석이 볼록한 배를 탕탕 두드렸다.

“양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마유주도 시큼한 게 별미라 입맛을 돋우네요!”

“하하하하.”

그에 야율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와하하하!”

연회에 참석한 전사들과 다른 언동생들 그리고 북해빙궁 사람들까지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 왁자한 분위기를 틈타 야율수가 나를 불렀다.

“괴룡.”

“예.”

“내 자네에게 친교의 선물을 하나 줄까 하네.”

“선물이요?”

무슨 선물인가 싶어 되물은 것이었지만, 야율수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는 내가 아닌 북해빙궁 쪽 인사들에게 입을 열었다.

“북해빙궁 손님들은 섭섭해하지 마시오? 일찍이 빙궁에도 사절단과 함께 들려 보낸 바 있는 선물이니까.”

“섭섭할 리가 있겠습니까. 괘념치 마십시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그럼 괴룡은… 잠시 나를 따라오지.”

그리고 연회장을 나갔다.

야율수의 뒤를 따라 도착한 게르에는 삥 둘러 새장이 있었다.

새장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는데, 그 안에는 독수리와 매 같은 각종 맹금류가 들어 있었다.

호루루루루루룩!!!

야율수가 들어오자 밥때라 여긴 것인지, 녀석들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난리를 피웠다.

한데, 그중 한 가운데 위치한 새장으로 다가가 위에 덮인 휘장을 벗기니.

휙-

그 소리가 우뚝 멈췄다.

야율수는 그렇게 휘장을 벗겨낸 새장을 나를 향해 내밀었다.

“챠간숑홀. 중원 말로 백송골(白松鶻)일세.”

그 새장 안엔 하얀 송골매가 들어 있었다.

야율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까 빙궁에도 보냈다고 했는데, 이 녀석은 그런 의례적인 선물로 보내는 매들과는 종이 다른 녀석일세. 칭기즈칸의 생명을 구했다는 매 이야기 들어봤나?”

일화 자체는 들어봤다.

흰 독수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매였나?

“매가 물을 못 마시게 하길래, 왜 그러나 알고 봤더니 물속에 독사가 있었다는 그 일화 말입니까?”

“맞네. 이 녀석은 그 매의 후손일세. 그야말로 영물이지. 아까 봤지? 저기 있는 덩치가 사람만 한 독수리도 이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 기를 못 편다네.”

나는 그 새장을 받아들고 백송골과 눈을 마주했다.

“이런 영물을 저한테 주셔도 됩니까?”

“아직 준 건 아닐세.”

“예? 안 주실 건데 보여 주셨어요?”

우리는 그걸 허위매물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는데요?

“그게 아니라 사람을 가리는 녀석이야. 위는 인석의 형뻘 되는 녀석을 갖고 있지만… 각궁보의 다른 전사들은 누구도 이 녀석의 마음을 얻지 못했네.”

“아하.”

“성질이 어찌나 더러운지 쪼아대고, 발톱으로 할퀴고. 용기가 있으면 새장 안에 손을 넣어….”

나는 야율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장 문을 열고는 손을 뻗었다.

백송골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횟대에서 내려와 내 손에 얌전히 앉았다.

호룩.

“똘똘해 보이긴 하네요.”

호루룩?

“뭐? 보이는 게 아니라 똘똘하다는 거냐? 이게 까부네?”

“…흠. 반응을 보니 그 녀석도 자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 지금부터 자네가 주인일세.”

이래 봬도 키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주로 뼈밖에 없는 놈들만 키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잘 길러 보겠습니다.”

야율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지금껏 우리 각궁보를 탐내는 자들이야 많았네. 하나, 오늘 위가 습격당한 사건이나 근래 각궁보를 두고 도는 형제들을 중원인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다는 소문들…. 이건 초원의 방식이 아니야.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교인들의 방식 같은데. 아닌가?”

“명명백백한 증좌를 잡은 게 아니라 제 짧은 경험과 심증으로 추론하는 단계라, 아니다 맞다 단언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른 새외의 세력들은 이름에 궁(宮) 자가 붙는다.

그만큼 지위가 굳건하고 중앙집권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 각궁보는 그저 성채일 뿐이다.

주변의 부족들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그런 각궁보를 이끌어 와서 그런 것일까.

야율수는 단순히 호방한 것을 넘어 냉철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상관없네. 백도 무림 내에서는 마방연이 마교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실질적인 경험도 가장 많다고 알고 있네. 판단은 내가 할 것이니. 배분은 내려놓고 기탄없이 말해주게.”

그리고 필요하다면 까마득한 후배인 내게도 손을 벌릴 줄 알았다.

그에 힘입어 나는 입을 열었다.

“음. 실례가 아니라면 이 자리에 한 명을 더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누구를?”

“북해빙궁의 담용주. 그를 불러주십시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담용주가 막사로 들어왔다.

“내가 좀 듣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괴룡이 빙궁의 둘째 공자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하여 이렇게 불렀소.”

야율수와 담용주.

팽재혁과 공손무결이 내가 찾은 실마리를 몰라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은 알아 둬야 하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담용주.’

북해빙궁 곳곳을 살펴보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단, 그전에 담용주에게 확인할 게 한 가지 있었지만 말이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

원작에서 숙청을 당했던 사실이나 지금까지 보아온 바에 의하면 담용주는 호인이었다.

하나, 그저 호인이기만 해선 이 이야기를 들어선 안 됐다.

나는 그 점을 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담 형. 지금 드릴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해주시오. 나는 눈동자와 표정, 심장 박동 소리로 말의 진위 여부를 대략 가릴 수 있소.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이 순간 나와의 관계는 끊어질 것이오.”

“정무학관에서 내가 한 말만 빙궁에 전해도 나는 죽은 목숨이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거짓을 말할 생각이 없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북해빙궁의 옥좌를 차지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어 본 적 있소?”

“…야망이라기보다는 소망 정도로 해주시오. 나도 용혈이요. 어찌 빙궁 사람들을 먹여 살릴까 하는 근심을 어찌 안 해봤겠소.”

…소망이라.

기대보단 약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불씨만 있다면, 기름을 부어 그것을 키우는 일은 한순간이니 말이다.

나름의 확인을 끝낸 나는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마교가 초원과 북해빙궁에 동시에 마수를 뻗치고 있습니다.”

나는 공개가 가능한 정보를 추려, 마교의 전략 및 현 상황에 대해 두 사람에게 공유했다.

처음 듣는 정보가 많았던 만큼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담용주는 두뇌가 비상한 덕분인지 내 말을 곧장 이해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의견을 말하기까지 했다.

“…무서운 수군. 괴룡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초원이 혼란스러울 때 마교는 북해빙궁을 집어삼킬 것이고, 소화가 끝났을 때 초원의 부족들끼리는 골이 깊어져 있을 테니…. 초원은 절로 마교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오.”

야율수는 미간을 좁히고 나를 응시했다.

“복안은 있나?”

“죄송하지만 당장 여기서 저희가 뭔가를 도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초원 사람들을 자네들에게 넘긴다는 소문을 퍼지고 있는데, 자네들이 나서서야 역효과야. 그건 나도 알고 있네.”

“보주님께서 중심을 잡아주고 계신 가운데, 저희가 북해빙궁 쪽을 해결하면 자연히 초원의 혼란도 잦아들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야율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그리고 내 손에 올라앉은 백송골을 쓰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이 녀석으로 연락을 주게.”

*     *     *

다음날.

우리는 각종 물자를 챙겨 각궁보를 나섰다.

“그럼 소식 기다리고 있겠네.”

“예, 보주님.”

선물로 받은 백송골을 데려와 마차에 싣자.

호루룩!!

무림맹, 그리고 학관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데려온 다른 전서응들이 기를 못 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당옥기는 헛웃음을 흘렸다.

“…와. 얘 다른 전서응 기강 잡는 것 좀 봐. 완전 새로 태어난 언용운인데?”

“그러게요. 맹금류계의 용운이면… 응용운? 형님, 얘 이름 지었습니까?”

“…묘비석은 준비해놨냐, 하성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발한 마차는 초원을 가로질러 북상을 시작했고.

땅이 눈으로 뒤덮이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마차를 순록이 끄는 썰매로 바꿔 계속해 북상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북상한 끝에.

“괴룡. 저곳이 북해빙궁입니다.”

우리는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 곁에 늘어선 크고 작은 마을들과 그 호수에 위치한 호중도(湖中島)에 지어진 하얀 성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한데, 북해빙궁 사람들과 함께한 우리를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중원에서 오신 손님이시다. 검문은 무슨 검문이냐? 미리 연통을 넣었거늘…. 형님과 다른 백관들은 뭐 하고 계시냐?”

“부경(副卿) 어른. 죄송하지만 예외 없이 검문을 강화하라는 명 말고는 들은 게 없습니다. 궁에는 지금 바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냉정했던 검문이 진행된 뒤.

마을에서 배를 빌려 북해빙궁이 위치한 섬에 내려 선지 한참이 지나자.

뒷짐을 진 소궁주와 빙궁의 백관들이 느릿하게 걸어와 우리를 맞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담경주요.”

흠, 이 새끼….

벌써 눈깔이 살짝 동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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