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궁지 (1)
내가 빙백당으로 가자는 말을 뱉은 이 순간에도 강시들은 계속 밀려들었다.
크아아아!!
걸음을 뒤로 물리며 놈들을 베어내는 사이.
촤악!
촤아악!!!
담용주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빙궁의 성지이자 사당인 그 빙백당 말이오?”
“그래 그 빙백당.”
“…그곳은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을 거요. 경비인력 외엔 병력이 주둔하는 곳도 아니고. 의지할 방벽도 없지, 양식(糧食)으로 삼을만한 것도 없으니. 지금 빙백당으로 가자는 건 그야말로 제 발로 궁지(窮地)에 들어가는 형국이 될 텐데?”
그렇게 운을 뗀 담용주는 다른 방도를 제안해왔다.
“차라리 정면으로 돌파하면 어떻겠소? 추형진을 이루어 일 점으로 돌파하면 어떻게든 길이 열릴 거요. 그렇게 궁도(宮島)를 빠져나가서 북해 땅의 외곽을 지키고 있는 군세와 여타 지원군을 이끌고 오면 어떻겠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담용주의 생각은 흑마법사로서의 나를 경험해 보지 못한 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풍문을 아무리 많이 찾아봤더라도, 흑마법 만큼은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기가 힘들지.’
하나, 지금으로선 우리 쪽 전력이 빙백당으로 이동하는 것만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담 형, 아니 이제 소궁주님이라고 해야 하지 참.”
“부르던 대로 부르셔도 상관없소, 나도 아직 소궁주 소리가 어색하니.”
“담 형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오. 적이 그저 평범한 역도라면 말이오. 하나, 우리가 마주한 적은 마교 놈들이오. 담경주도 보통이 아니고.”
굳이 전생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담 형의 말대로 돌파를 해서 섬의 외곽에 이르렀는데 저들이 배를 치웠다면 거기야말로 궁지가 되지 않겠소?”
“…….”
“배를 구하든 수영을 해서 물을 건너가든 이후에도 변수가 많은 것은 같소. 외곽의 군세는 정청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잖소? 누구 편을 들지 모를 일이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실 처한 상황 자체가 달리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논리적으로 그걸 짚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백관들과 백성들을 내어주는 일이지. 당황을 하는 바람에 내가 생각이 짧았소. 하기야 괴룡이라면 내가 말한 수는 진즉에 짐작했겠지.”
그리고 꼭 전생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원 땅에서 쌓인 방술사로서 명성과 마교를 상대한 실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빙백당에 활로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아니 그렇소?”
“뭐, 그렇지.”
“천하에서 강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마교 놈들을 가장 많이 겪어본 사람도 괴룡이니…. 그 뜻에 따르겠소.”
내게 뜻을 전한 담용주는 주변을 향해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빙백당으로 간다!”
그러자, 빙궁의 무인들이 묵묵히 군례를 올렸고.
담용주는 그들에게 구체적인 명을 내렸다.
“빙백당과 집법부의 사람들은 길을 확보해주시오! 설랑대주는 미리 이동해서 방어선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어 주시고!”
“존명!”
그리고 나를 향해 부탁을 해왔다.
“괴룡과 중원의 벗들은 나와 함께 정청에서 아버님을 모시는 일을 도와주시오.”
“그러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담용주와 함께 정청으로 돌아가, 바깥 상황을 간략히 전하는 일을 함께했다.
“강시 군단이 궁내로 침입했습니다. 저와 괴룡은 빙백당으로 퇴각하자는 결정을 내렸고요.”
그 말을 들은 담창규 어르신은 손을 저어 오셨다.
“너희끼리 가거라. 고명대신들은 용주를 잘 보좌해 주시오.”
“아버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궁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절대로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어르신의 음성에 담용주와 고명대신이 당혹감을 표했으나.
“어차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다. 내가 여기 남으면 경주 그 녀석과 한 번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아비 된 자로서 한 번은 더 꾸짖어 볼 것이다.”
쉬이 뜻을 굽히시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냉정한 말을 전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함께 가 주셔야 합니다.”
“괴룡이 북해빙궁을 위해 애써주고 있는 것은 이 늙은이가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나, 빙궁의 주인은 나요.”
“예. 저도 무례인 줄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빙궁의 주인다운 선택을 해주시라 이렇게 청하는 것입니다.”
“…….”
“큰 아드님이 신경이 쓰이실 겁니다. 천륜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 하였지요.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는 담경주 한 명이 아니라 북해 땅의 모든 백성의 어버이이십니다.”
“…….”
“밖에서 본 강시 중엔 경 노야라고, 한때 마교의 간부였던 자가 있었습니다. 본인들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한 수족도 그렇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터.
나는 이런저런 예를 드는 대신 다시 한번 뜻을 전했고.
“저희와 함께 가셔야만 합니다.”
어르신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지체 없이 우소릉과 정현을 불렀다.
“소릉아. 네가 어르신을 업고.”
“네!”
“정현 네가 뒤를 받친다.”
“예! 언 소협!”
그렇게 어르신을 모시고 정청을 나온 우리는 바쁘게 궁성의 북편으로 향했는데.
그 길에서 사부님께서 물음을 던지셨다.
- 계속해 저 방향을 지켜보는 것을 보아하니, 저기 보이는 저 산에 북해인들의 성지라는 빙백당이 있나 보구나?
‘예. 빙혈산이라 불리는 산입니다. 북해인들이 죽어 묻히는 땅이라, 산 전체가 성지 취급을 받고 그 정상에 있는 얼음동굴을 빙백당이라 부릅니다.’
사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빙혈산의 정상.
소릉이와 정현은 빙백당 안에 궁주 어르신을 모셔다 놓고 나왔고.
“방벽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가져다 쓴다!”
“예! 소궁주님!”
담용주는 빙궁의 전열을 정비해 방어진을 꾸리기 시작했다.
호루룩!
나는 그사이 날아든 응용이의 발에 전서를 매달았다.
“화살이나 마교 놈들이 부리는 매 같은 건 알아서 피할 수 있지?”
호룩!
“그래. 각궁보로 가라.”
그렇게 응용이를 날려 보낸 뒤.
나는 재혁 숙부를 향해 죄송하다고 말하려 했다.
생도들을 전투에 내모는 일은 숙부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
한데, 성질 급한 숙부의 입이 먼저 열렸다.
“흥! 송구하다 어쩐다고 하는 소리를 할 거면 하지 말거라! 내 저 찢어 죽일 마교 놈들을 다 찢어놓고 나서, 아주 호되게 꾸지람할 것이니!”
“예. 그때 가서 꾸지람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나는 언동생들에게도 한마디를 전했다.
“담 형이랑 협조해서 내가 나올 때까지 버티고들 있어.”
그런 내 말에 청죽관 식구들이 연달아 입을 열었는데.
“예. 형님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도 이제 산전수전 꽤나 겪어본 몸들입니다.”
“…사실 저는 조금 무섭긴 하지만요.”
“우 소협이 이러다가도 막상 간 큰 짓을 잘도 하는 거 아시죠? 여기는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들어가 보세요, 언 공자.”
“그래. 얼른 들어가야 얼른 나오지.”
“…당 소저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시겠지만, 빨리 나오시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말씀드립니다. 혹여, 서두르지는 마십시오. 급히 먹은 밥은 체한다 했습니다. 언 소협이 나오실 때까지 반드시 버텨낼 것입니다.”
다른 녀석들도 비슷했다.
“다녀오세요, 용운 님.”
“왜 그런 눈으로 보시지. 큼. 저도 할 때는 하는 놈입니다?”
제갈설지와 천장호를 제외하면 낯이 간지러운 모양인지 딱히 말들은 없었다.
하나, 각각 눈빛으로 맡겨달라는 의사 표현을 해오고 있었다.
“그래. 행여나 죽지들은 말고.”
고개를 끄덕여 보인 나는 언동생들을 뒤로하고 빙백당으로 향했다.
* * *
밤에 깊어감에 따라 마교인들이 부리는 강시들의 안광은 더욱 붉어져 갔다.
자연히 그 기세는 더 매서워졌다.
크아아아아!!!
그러다 보니 당초 중턱 부근에 쳤던 방어선이 점점 더 내몰려 빙백당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본디 하얗고 푸르던 빙혈산을 시커멓게 뒤덮은 강시 군단.
크아아!!
담용주로서는 마른침이 절로 넘어가는 광경이었다.
‘말하는 투도 그랬고, 당장에 처한 상황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괴룡은 저걸 혼자 다 상대를 하겠다는 것 같은데….’
언용운의 술법 중 몇 가지를 확인하기는 했다.
‘암흑 속에 스며드는 술법과 등용산장의 지하에 있는 철문을 해제했던 술법.’
그건 정말이지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나 시커멓게 밀려드는 강시 군단을 고지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저걸 어떻게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에 스쳤다.
‘모산파의 상청검수 일곱을 홀로 제압했다고 들었지만…. 저건 모산파의 도사들이 모두 몰려와야 간신히 상대가 가능할 것 같은데….’
대환단을 흡수한다 치더라도 저걸 언용운이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버티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저희에게 승기가 올 거예요!”
그런데 언동생이라 지칭되는 중원의 생도들은 언용운이 돌아오기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예! 지원군이 올 겁니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일견 광신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언동생들의 모습에, 담용주의 가슴엔 희망과 궁금증이 동시에 피어났는데.
그중 가장 냉철해 보이는 남궁윤이 근처에 오게 됐을 때, 담용주는 그에게 물었다.
“…남궁 공자. 정말로 괴룡이 돌아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겠소?”
“녀석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잘 상상이 가지 않는데. 이런 때 사용하는 술법을 실제로 보시기라도 하셨소?”
“과거 산서행에 따라갔던 녀석들은 무언가 본 게 있기는 한 모양인데, 나는 실제로 본 적은 없소.”
“…그런데 어찌 그리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실 수 있는 것이오?”
“언용운. 그 녀석은 할 수 있다 하겠다 한 것은 반드시 해내는 녀석이니까.”
남궁윤의 답은 담용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했다.
하나,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세는 없었다.
“소궁주님! 설랑대주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음 방어선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방어선의 한 축이 뚫린 참이었으니까.
“진영을 서른 보 뒤로 물리겠소!”
다급히 명을 내린 담용주는 언용운이 있는 빙백당을 응시했다.
‘괴룡. 빨리 돌아와 주시오.’
* * *
빙백당에 들어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체내의 독기를 몰아내는 것까지는 빠르게 됐는데.’
대환단을 흡수하는 게 문제였다.
씨알이 굵어서 그런가?
흡수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라면 단전 안에 잠재워두고 차근차근 녹이려고 했을 건데….’
하나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전부를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밖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을 텐데… 대환단의 흡수가 느리니.’
아무리 나라도 심중에 조바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차분함을 잃어가던 중, 이러다 여기서 언동생을 잃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생각이 점차 커져 심마가 된 것인지, 어느 순간 심상이 시커멓게 암전되었다.
의식이 가부좌를 틀고 있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버린 것은 그 직후였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사부님의 목소리도 안 들리고…. 일단 이 시커먼 공간들을 다 때려 부숴 볼까?’
이걸 어떻게든 깨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심상 속에서 주먹을 풀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차디찬 한기가 스며들었는데.
쩌저적-
그러자마자 시커먼 심상 속의 벽들이 얼어붙는가 싶더니, 일순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
동시에 떨어져 나가듯 가라앉았던 의식이 가부좌를 틀고 있던 몸으로 되돌아왔다.
- 인석이! 잘한다, 잘한다고 해주니까 심마에 사로잡히고…. 큰일이 날 뻔했잖느냐!
사부님의 역정 소리에 정신을 부여잡은 것도 잠시.
난 내 등에 올려진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서 나를 도와준 건, 다름 아닌 담창규 어르신이었다.
남은 힘을 모두 짜내 나를 도와주신 모양이었다.
“어르신?!”
내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무가 넘어가듯 옆으로 쓰러지시는 어르신.
나는 몸을 돌려 그런 어르신의 몸을 받았으나.
“…북해빙궁을 지켜주시게.”
어르신의 시간은 끝난 뒤였다.
“…….”
나는 어떠한 애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르게 눕혀드린 뒤, 곧바로 빙백당을 나왔을 뿐이었다.
어설픈 애도를 하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마교 놈들의 손아귀에서 북해 땅을 구해내는 걸 바라실 것을 알기에.
크아아아아!!!
빙백당을 나와보니 그사이 방어진은 지척까지 밀려 있었고.
부상자들이 가득한 가운데, 언동생들과 담용주가 나를 맞았다.
“언 형!”
“괴룡?”
그들의 알은체를 가볍게 받아준 나는 내력을 상단전으로 밀어 넣어 술식을 짜낸 뒤.
우웅-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그렇게 쏘아 올린 흑마법진은 차츰차츰 넓어지다 하늘에 걸린 시점엔 빙혈산 전체를 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가 되었는데.
“일어나라.”
그것을 확인한 내가 언령을 발하자.
마법진에서 떨어져 내린 시커먼 벼락들이 빙혈산 곳곳에 꽂히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쾅! 쾅!
콰아아아아앙!!!!
빙혈산에 잠들어 있던 북해인의 유골들이 해골 병사가 되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