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49화 (249/444)

제249화. 궁지 (2)

흑뢰(黑雷)가 떨어진 자리에 서 있던 강시들은 그 자리에서 녹아버렸다.

덕분에 생겨난 공간에서, 뼈만 남은 새하얀 손들이 튀어나왔다.

팍!

튀어나온 손들은 삐걱거리며 용을 쓰더니, 스스로의 몸을 끄집어냈다.

크르륵!!!!!

그렇게 묫자리를 뚫고 나온 북해의 고인들은 뼈만 남은 몸에 쌓인 흙과 눈을 떨쳐냈다.

그리고 박차고 나온 관에 다시금 손을 넣어 부장(副葬)된 한철 무구를 끄집어내고는.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나를 응시했다.

크르르르르!

- …지금 저것들이 명을 내려달라는 것이냐?

‘예.’

- 허. 빙백당으로 가면 해결이 될 거라더니, 이런 방술도 있었더냐? 용운이 네 방술은 볼 때마다 사람 입이 벌어지게 하는구나.

안광을 빛내는 해골 병사들.

실상은 군단의 장인 내게 명을 내려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었으나.

한창 강시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북해빙궁의 무인들에게는 그 광경이 기괴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물리며 중얼거렸다.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꿈이었으면 좋겠군. 강시에 시달리는 것으로 모자라, 성지에 잠들어있던 백골들이 묫자리에서 나오다니. 그야말로 말세(末世)의 풍경 아닌가.”

“…북해빙궁이 이렇게 끝이 나는가?”

언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내가 마법진을 쏘아 올리는 것을 보고는 씩 웃는 녀석도 있었고.

강시들을 상대하다 뒤늦게 나를 확인한 녀석들은, 나와 해골 병사들을 번갈아 응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지금 바로 알게 될 테니까.

나는 하늘에 걸린 흑마법진을 응시하며 한마디를 읊조렸다.

“쓸어버려.”

그렇게 읊조린 한마디는 언령으로 화해 해골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크르르!

일제히 몸을 돌린 해골 병사들이, 마교의 술사들이 부리는 강시들을 향해 한철 무구들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촤악!!

휘둘러지는 날붙이에 강시들은 어시장에서 토막 나는 생선들처럼 썽둥썽둥 잘려나갔다.

촤아악!!!!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시전한 흑마법은 그저 백골을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오게 하는데 그치는 저급한 해골 지배술이 아니었다.

촤악!!

촤아아악!!!

하늘에 걸린 흑마법진 아래에서라면, 생전의 무위를 어느 정도 재현해 낼 수 있게 해주는 지배술 계열의 최상위 마법 중 하나였다.

‘각골(刻骨)의 명령.’

사실 제약이 많은 마법이었다.

지배를 받는 대상이 생전에 특정 분야에 높은 숙련도가 있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내력을 필요로 해, 악몽의 군주와 맺은 계약이 만료된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시전해 볼 엄두를 못 냈던 마법이었다.

‘그런데 북해빙궁의 성지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 땅에 묻힌 이들은 모두가 빙궁의 무학을 뼈에 새긴 이들이었고.

빙혈산에 가득한 음한한 기운과 회한은 흑마법의 효율을 높여주었다.

그 덕에 되살아난 해골 병사들은 평범한 강시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한 부대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지금도 백골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크륵!

크르륵!

그렇게 붉은 안광을 길게 늘어뜨리며 강시들을 향해 달려드는 해골 병사들의 모습에.

담용주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이런 방법이었나? 언동생들이 어찌 그리 괴룡만 돌아오면 된다고 확신에 차 있었는지 알겠구나.”

북해빙궁의 노신 중 어떤 이는 눈물까지 흘렸다.

“…선조들께서 북해빙궁을 지켜주시기 위해 나서 주셨는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싸우고 있는 해골 병사들은 정말로 북해빙궁의 선조들이었고.

북해빙궁의 성지였기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나도 담창규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하여, 나는 그 말을 정정하는 대신 담용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담 형. 궁주 어르신께서 귀천(歸天)하셨소.]

[…그러셨군. 무슨 말씀은 없으셨소?]

[있으셨소. 빙백당 안에서 대환단을 녹이다 심마에 들었는데, 어르신께서 남은 힘을 짜내 도와주시고는… 북해빙궁을 지켜달라 하시고 가셨소.]

[그러셨군.]

[하니, 방금 저쪽에 계신 노신이 한 선조들께서 북해빙궁을 지켜주신다는 말이 기실 틀린 말이 아니오. 내가 조금 거들었을 뿐. 북해 땅의 선조들이 살펴주시는 게 맞소. 지금 상황에선 지친 빙궁의 무인들에게 큰 힘이 될 말이기도 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소.]

내 생각을 들은 담용주는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조들께서 굽어살펴주고 계십니다! 마교 놈들을 몰아내고 북해빙궁을 지킵시다!”

빙궁의 무인들은 그런 담용주의 말을 목청을 높여 따라 했다.

“선조들께서 돕고 계신다! 역도와 마교 놈들을 몰아내자!”

“성지와 빙궁을 지켜라!”

그리고 용기백배하여 무구를 휘둘러내기 시작했다.

줄곧 밀리기만 했던 방어선이 남하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도 회한을 휘두르며 그 틈바구니에 뛰어들었다.

쌔애애액!!

촤아악!!

달려드는 강시들을 베어내고.

“방울 소리가 저쪽에서 들리오! 저쪽을 공격하시오!”

술사의 위치를 파악하여 알려주고 있기를 잠시.

내 좌우로 재혁 숙부와 언동생들이 따라붙었다.

그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재혁 숙부였다.

크아아아!!

촤악!

숙부는 시커먼 도를 휘둘러 강시들을 베어내며, 혀를 내두르셨다.

“정웅 형님께서 복원해야 한다고 한탄을 하시는 이야기야 익히 듣긴 했는데, 언가의 강시술이 이 정도였더냐? 일전에 모산파의 제자들을 상대할 때 보여준 술법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저는 언 소협이 상청검수들을 꺾는 모습 외에도 산서, 파양호, 무호에서 있었던 싸움에서 술법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만, 오늘이 제일 놀랍습니다.”

재혁 숙부의 말에 첨언한 정현에 이어, 제갈설지도 한마디를 더했다.

“맞아요. 저도 산서에서처럼 강시들의 통제권을 빼앗거나 무효화시키는 술법을 사용하실 줄 알았는데. 이런 술법이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일인 군단이라 불리셔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요?”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에 가타부타 답을 하는 대신, 당면한 상황을 설명했다.

“숙부. 그보다 한가지 결정을 내릴 게 있습니다.”

“또 무슨 결정?”

“북해빙궁 장악을 주도한 마두가 아무래도 연옥란인 것 같습니다.”

“연옥란이 누구냐. 마방연에서 나온 이름인가? 너희들도 아느냐?”

그런 재혁 숙부의 물음에 언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시점에 연옥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하나, 내겐 원작의 정보를 풀어 놓을 핑계 삼기에 딱 좋은 구실이 있었다.

“산서에서 제 손에 죽은 마두 곽사홍의 사매입니다. 녀석이 제 사매를 상당히 두려워했습니다. 마교에서 강시를 다루는 놈들의 집단인 괴왕부의 후계자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매? 아, 그럼 아까 깔깔거리면서 너더러 놀자고 하던 그 목소리가…?”

“예. 그녀인 것 같습니다.”

“그럼 결정을 내리자는 말은?”

“사홍이 놈에게 듣기론 판단이 칼 같은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이 속도로 산을 내려가면 사람도 정보도 다 날아갈 것입니다.”

“…돌파하자는 것이로구나.”

“보시면 알겠지만 해골 병사들이 사이사이에 있으니, 그리 무리한 일은 아닐 겁니다. 본대와 좀 떨어질 뿐이죠.”

“여기서 주저를 했다간 교단(敎壇)에서 너희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지! 그리하자! 다들 이의는 없느냐?”

언동생들은 대답 대신 날개처럼 붙어있던 대형을 뾰족한 쐐기처럼 바꿨다.

*     *     *

마른하늘에 시커먼 주술진이 우산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새카만 벼락과 함께 땅에 묻혀있던 백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거의 빙혈산 정상에 다다랐던 연옥란의 강시 군단이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공을 들인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이었으니.

아무리 마인이라도 사람이라면 그 광경에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나, 마옥군주 연옥란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조 내사, 저것 좀 봐요! 우리 강시가 그냥 쓸려나가고 있어요! 활강시도 아닌 것들이 무공을 쓰네요?!”

“…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문자 그대로 차시환혼(借屍還魂)의 술이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그렇죠?”

“…예.”

“아하하하. 사홍이도 길준이도 어쩌다 그 꼴이 났는지 이제야 알겠네! 보고 있는 지금도 안 믿기는데, 저런 수를 숨기고 살아온 녀석을 걔들이 무슨 수로 상대해?”

연옥란은 그렇게 한참을 남 일처럼 깔깔거렸는데.

“백귀야행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멋 모르는 놈들이 그냥 지껄인 게 아니라, 언용운 쟤 진짜 천재 중의 천재였구나?”

그러다 문득 정색을 하고 조겸을 돌아보았다.

“조 내사.”

“예, 군주님.”

“나 언용운이 갖고 싶어졌어요. 가능할까요?”

“생포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죠.”

마뇌의 눈에 든 적도 있었던 연옥란은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끔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때가 있었다.

조겸은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직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북해빙궁을 장악하는 일의 성패도 장담키 어려워 보이는 상황입니다. 언용운이 날린 것으로 추정되는 전서응도 잡지 못했습니다. 녀석이 본교의 매를 다 물어 죽였습니다.”

“흐음.”

“이 일에 투입된 교단의 자원이 적지 않습니다. 하여, 당장의 전황과 별개로 본궁이 궁지에 몰려있는 형국이라 그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으니…. 그건 어렵겠습니다.”

그런 조겸의 말에, 연옥란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들어갔다.

“하하, 그렇긴 하네. 이제 내가 궁지에 몰려버렸네요?”

북해빙궁의 정청에서 내전이 터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연옥란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마방연이니 뭐니 설쳐대는 중원의 후기지수들을 이 기회에 내전에 휘말려 죽었다고 하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연옥란은 바뀐 생각을 조겸에게 말했다.

“그럼… 그냥 북해빙궁을 언용운에게 내어주죠.”

“예?”

연옥란의 말에 조겸은 기함을 하듯 눈을 키웠다.

그러든지 말든지 연옥란은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여긴 끝이에요. 담경주가 빙궁을 제대로 휘어잡지를 못했잖아.”

“…….”

“우리 도움을 받아 이긴다 해도 반란에 시달릴 것이고, 얼마 안 가 무림맹과의 전쟁이 시작되겠지. 지금의 본교가 하나 된 백도 무림과 전면전을 치를 체력이 되나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구실 주지 말고 물러나자고. 강시야 또 만들면 되고, 좀 비싸긴 해도 빙궁의 물산이야 구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깔끔하게 손을 털자고요.”

“…하오나, 다른 교단이나 왕부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상당한 자원이 들어간 계획이었습니다. 엄혹한 처벌이 있을 텐데요?”

조겸의 말에, 연옥란은 웃는 낯을 거두고 미간을 좁혔다.

“조 내사는 그런 게 무서워요?”

“속하가 어찌 그런 것을 겁을 내겠습니까. 역천괴마 어르신과 군주님께 불똥이 튈까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나도 안 무서워. 벌을 주면 받고 죽으라면 죽지 뭐. 근데 이게 오히려 본교의 대계를 앞당기는 일이에요.”

언용운은 단순한 후기지수가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고, 괴왕부로서는 제일 필요한 재원이었다.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했다.

“공을 안겨주면 백도무림 내에서 언용운의 영향력과 활동 범위가 커지겠지. 그러다 보면 저 녀석을 우리 수중에 넣을 수 있는 틈이 생길 거고.”

“그렇기는 할 것입니다.”

“소림의 땡중들을 다 쳐죽이는 것보다 쟤 하나 사로잡는 게 마도천하를 앞당길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하자 조겸은 소매를 붙여 들며 고개를 숙였다.

“군주님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속하는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연옥란은 다시금 빙혈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음, 근데 솔직히 조금 아깝긴 하네. 담경주… 우리 소궁주님 지금 어디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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